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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연대가 출범하고 얼마 안된 2013년 1월 어느날,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서 캠페인 중인 고 권문석 알바연대 대변인.
▲ 최저임금 1만원 캠페인 중인 고 권문석 알바연대 대변인 알바연대가 출범하고 얼마 안된 2013년 1월 어느날,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서 캠페인 중인 고 권문석 알바연대 대변인.
ⓒ 권문석 추모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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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 원 운동의 시작

"최저임금 1만 원? 당신부터 최저임금 1만 원 받아오면 안 돼?"

시민단체가, 사회 운동이 무엇인지 알았던 나였지만, 남편이 '최저임금 1만 원'을 주장하는 알바연대에서 일하겠다고 하는 순간 나는 웃으며 물었다. 바가지를 긁으며, 그런 운동하기 전에 우리집의 생계를 책임지라며 집에서 시위를 벌였다.

남편은 '알바연대' 일을 시작하자마자 아침 일찍 사무실에 출근해 저녁이 다 되어 들어왔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회의나 야간 캠페인, 강의가 잡혀 있었다. 알바연대가 점점 잘 나갈수록 같이 밥 먹을 시간이 줄어 들었다. 그래도 일정이 없는 날이면 집에 들어와 수다를 떨며 밥을 먹었고, 아이 목욕을 시켰다. 아이가 잠든 후에는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피파 온라인 게임'을 하거나, TV 앞에서 각종 스포츠 중계와 드라마를 즐겼다.

2013년은 육아 휴직을 하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를 돌보며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던 해였는데, 집에만 있었던 나는 종일 남편이 집에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남편이 집에 도착하면 나는 '말문이 터지곤' 했다. 말없이 지냈던 하루의 적막을 깨듯이 말이다.

그의 전화는 집에서 꽤 자주 울렸다. 자고 있을 때는 절대 전화를 받지 않았던 그였지만, 자고 있지 않을 때는 매우 친절하게 전화를 받았다. 활발한 활동으로 기자들의 주목을 많이 받아왔던 터라, 그는 전화로 걸려오는 모르는 번호도 늘 반가워했다. 퇴근해서는 꼭 '알바연대'와 '기본 소득'을 인터넷 검색창에 입력해 오늘 어떤 기사가 실렸는지,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확인했다.

2013년 5월 1일, 첫 알바데이를 하고 술에 취해 새벽에 집으로 들어온 남편은 "기자들이 많이 왔다"며 "기분이 좋아 사람들하고 2차까지 하고 들어왔다"며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손에는 20만 원 짜리 술값 영수증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그래도 되지?"라고 물었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나의 남편이, 권문석이 홀연 떠나버렸다. 2013년 6월 2일, 바로 2년 전의 일이다.

출판사 디자이너에서 시민단체 활동가로

육아 휴직을 마치고, 나는 일하던 곳을 관두었다. '싱글맘'으로 살며 일하기에는 사무실이 너무 멀어졌다. 퇴사를 하고 새로 일하기 시작한 곳이 바로 '알바연대'였다. 나는 그 곳에서 알바연대/알바노조의 홍보 팀장을 맡게 됐다. 알바연대 대변인이었던 권문석이 세상을 뜨고 6개월만의 일이었다.

주로 내가 맡은 일은 다양한 홍보 업무였다.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소식지를 제작하는 일이었다. 몇 번의 소식지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정기적이지 않았다. 소식을 알리고, 다양한 인쇄물을 기획하고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오마이뉴스>에 알바노조 단체 아이디를 만들고, 글을 송고하기 시작했다. 기자회견에 다녀와서 글을 썼고, 조합원들과 함께 연재 기사를 만들었다. 알바노조에서 준비하는 수많은 행사의 포스터와 홍보물을 디자인했다. 언젠가 권문석과 침대에 누워서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기본소득과 아르바이트 노동에 대한 글을 써야겠어. 알바 노동자들의 글을 받아서 엮은 책을 내는 것도 좋겠지?"
"그러면 당신이 책을 쓰고, 내가 디자인을 하면 되겠다."

권문석의 그 꿈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나는 그 일을 하게 된 셈이 되었다. 일주일에 한두 편씩 글을 쓰거나 고쳐댔다. 나는 권문석과 달리, 직접 글을 쓰는 일을 했다. 대변인이었던 권문석은 매일 '알바연대'를 검색하면서 '아르바이트생(알바생)'이라고 기사를 쓴 기자에게 '아르바이트 노동자(알바노동자)'라고 수정 요청을 했지만, 나는 그처럼 꼼꼼하지 않아 이 같은 일은 하지 않는다. 대신 더 많은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알바노조에서 일하면서 사람들이 내게 직접적으로 물은 적은 없지만, 그들의 눈빛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죽은 남편이 일하던 곳에서 일하는 것 괜찮아요?' 권문석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역할을 대신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가 활동하던 단체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으니 아무렇지 않다. 그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뤄주고 싶은 마음은 한결같다.

사회운동가 고 권문석 동지 2주기 추모제 ‘권문석의 이름으로 최저임금 1만원’이 지난 5월 31일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문석의 이름으로 최저임금 1만원 사회운동가 고 권문석 동지 2주기 추모제 ‘권문석의 이름으로 최저임금 1만원’이 지난 5월 31일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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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달다, 최저임금 1만 원!

걸스데이 혜리가 취업포털 사이트 광고에서 2015년 '370원이 오른 최저임금 5580원'을 이야기했던 것은 기억하지만, '최저임금 1만 원'을 주장했던 알바연대 대변인인 고 권문석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권문석이 세상을 뜬 그해 6월은 뜨거웠다. 당시 서울 학동사거리에서의 최저임금위원회 앞 '최저임금 1만 원' 농성과 집회가 연일 계속됐고, 최저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처우에 대한 보도는 계속됐다. 같은 해 8월 아르바이트노동조합(알바노조)가 설립됐고, '최저임금 1만 원' 운동은 매년 진행됐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되는 현재, 민주노총이 '최저임금 1만 원'을 주장하면서 이 의제는 날개를 달았다. 알바노조는 오는 6월, 최저임금 1만 원 전국 순회 '만원 버스'를 운행하고 전국을 돌며 최저임금 1만 원 운동을 펼칠 예정이다.

사회 운동가 고 권문석 동지 2주기 추모제 '권문석의 이름으로 최저임금 1만 원'이 지난 5월 31일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 자리에서 나는 '권문석이 살아 있었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최저임금 1만 원 운동이 보편적인 의제가 된 지금을 좋아했을까? 아니면 더욱 초췌한 얼굴로 퇴근해서는 '피곤하다'며 내게 하소연했을까? 오늘도 권문석의 꿈을 이루기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 곳곳에 있다.

그리운 벗에게
- 송경동(시인)

권문석 동지
오랜만에 불러 보는군요
요즈음은 잘 지내는지요
뭘하면서 지내나요
지금도 기본소득 일을 하고 있나요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를 위해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가요

010-4260-6539
한참 소원했지만
어느 때 다시 만나
무슨 일을 도모해야 할지 몰라
동지의 번호를 지우지 못하고 있네요
어떤 회의 때는 분명
나타날 사람인데 왜 안 오지
비어 있는 자리 하나가
자꾸 눈에 들어오기도 하더군요
워낙 말이 없던 사람이라
권문석 동지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고
늘 물어보았어야 했는데
지금도 우리 곁에 있는데
있는 줄을 까먹은 건 아닌가
둘러보기도 합니다

좌파들이란 참 말 많고
자기 주장 쎄고 까칠한 동지들로 알려져 있는데
좌파 중에 좌파라는 권문석 동지는
참 말 적고 수더분하고
몸으로만 묵묵히 일을 하던 동지라
우리끼리 뒤에서 참 희한하고
좋은 동지라고
존경할만한 동지라고
수군거리기도 했답니다

그렇게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갔던
수많은 투쟁들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와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
그리고 2011년 희망버스 운동 등을
떠올려 봅니다
가장 궂은 일이더라도
계급장 없이 일할 줄 알던 동지
문득 문득 우리 모두가
미안해하고 고마워했던 동지

그런 동지에 대한 추도시를 써라니요
아직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함께 꿈꾸었던 일들이
어느 정도라도 실현되는 그날
나는 동지를 내 안에서 비로소 보낼 수 있겠습니다
그전까진 함께 가야죠
별 일 못하면서 이렇게
숟가락 올리며 가도 되냐고요
물론이죠. 걱정말아요.
동지는 최선을 다해 살았고
우리에게 남겨준 일들만으로도 충분하니
나와 우리와 함께 가요
지금도 조금 아프나요
걱정말아요
우리가 부축하고라도 갈게요
엎고라도 갈게요
늘 동지의 자리 하나는 우리 곁에 비워두고 갈께요

(2015년 5월 31일)

○ 편집ㅣ조혜지 기자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강서희는 알바노조 홍보팀장입니다.
알바노조 http://www.alba.or.kr , 02-3144-0935



태그:#권문석, #알바노조, #최저임금, #알바연대, #최저임금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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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동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2013년 7월 25일 설립신고를 내고 8월 6일 공식 출범했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시급 10,000원으로 인상, 근로기준법의 수준을 높이고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알바인권선언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http://www.alb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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