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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1일, 한 20대 청년에게 '국기모독' 등의 혐의로 구속 영장이 청구 됐다. 지난 4월 18일,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집회가 열린 광화문 광장에서 돌발적으로 태극기를 불태웠던 청년 이야기다. 당시 보수 언론들이 '이거다!' 싶었는지, 앞 다퉈 자극적 보도를 냈던 그 사건 말이다.

<조선일보> 1면이 대표적이었다. 청년의 돌발 행위는 "시위대" 일반의 행위로 퉁쳐졌다. 경찰이 낮부터 기다리 듯 차벽을 쌓아 정체 된 교통은, "도로를 불법 점거"한 시위대에 의한 "극심한 정체"로 둔갑됐다. 경찰의 충돌 피해 상세히 다뤘지만, 정작 충돌 자체가 경찰 스스로 길을 막고 최루액과 물대포를 쏘면서 발생했다는 건 짚지 않았다. 길이 뚫리고 난 뒤, 시위대가 유가족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함께 노래 부른 뒤 평화롭게 자진 해산하더라는 뒷 이야기도...(관련 기사: 채널A 화면 캡처까지... <조선> 꼭 이래야 했나)

이런 일에 거의 빠지지 않고, 코멘트를 남기는 분이 있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다. 그는 "'성완종 리스트' 때문에 정신을 팔고 있는 동안 태극기가 불타고 있다"며 "태극기를 불태운 것은 대한민국 국민을 불태운 것인데 이를 방치하면 이게 국가냐"라고 주장했다. 그가 청년의 소식을 알게 된다면, 아마 정의 실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느끼겠지. 헌데 그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태극기는 더 이상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상징이 아니라는 점을...

'좋았던 시절' 누구나 향유하던 2002년 월드컵 때의 태극기

2002 월드컵 당시, 4강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대형 태극기 응원을 하고 있는 관중들.
 2002 월드컵 당시, 4강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대형 태극기 응원을 하고 있는 관중들.
ⓒ 정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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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당시, 미국과의 조별 리그 경기에서 응원하는 축구팬들
 2002년 월드컵 당시, 미국과의 조별 리그 경기에서 응원하는 축구팬들
ⓒ 정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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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2002년 월드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때 태극기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잘 알 것이다.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한 마음으로 열광하던 사람들에게 태극기는 너무나 친숙해 자신들의 일부나 마찬가지였다.

두건, 원피스, 응원도구 등... 태극기를 활용해 개인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을 표현했다. 한 편, 대형 태극기 아래에서는 함께 힘을 모아 하나의 거대한 감정장을 형성하기도 했다. 결국 태극기는 우리의, 우리에 의한, 우리를 위한 일종의 '매체'였던 셈이다. 유신 독재 시절, 매일 게양식 때마다 가던 길을 멈추고 강제로 충성을 표해야 했던 '그 태극기'의 아우라는 몰락했다.

'변방의 작은 나라' 즘으로 여겨지던 우리 나라가, 미국 등 강대국들을 차례로 꺾던 모습에서 사람들은 '꿈은 이루어진다'는 걸 확인했다. 엄청난 에너지를 세계에 발산한, 그들의 손에는 태극기가 들려 있었고, 그것이 곧 그들의 자존심이었다. 만약, 해당 청년이 이 때 태극기를 불태웠다면 필자도 매우 분노하고 강력한 처벌을 주장했을 것이다.

'보수 이념' 상징하는 필수 아이템 된... 2015년 태극기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대한고엽제전우회 주최로 열린 김기종씨의 리퍼트 미국대사 피습 규탄 집회 '한미동맹 강화로 종북세력 척결대회'에서 바람에 날리는 태극기 사이로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의 그림이 보이고 있다. 무대 위에선 트럼펫으로 미국가가 연주되고 있다.
▲ 리퍼트 감싼 태극기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대한고엽제전우회 주최로 열린 김기종씨의 리퍼트 미국대사 피습 규탄 집회 '한미동맹 강화로 종북세력 척결대회'에서 바람에 날리는 태극기 사이로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의 그림이 보이고 있다. 무대 위에선 트럼펫으로 미국가가 연주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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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유세를 벌이는 가운데, 지지자들 머리 위로 대형 태극기가 펼쳐졌다.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유세를 벌이는 가운데, 지지자들 머리 위로 대형 태극기가 펼쳐졌다.
ⓒ 공동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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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즘 태극기를 보면 감흥이 별로 느껴지지 않게 됐다. 나는 변함없이 나라를 사랑하는데, 왜 이런 권태로움이 느껴질까? 그리고 이것이 비단 필자 만의 경험일까? 이제 태극기는 보수 이념의 상징처럼 된 것 같다.

2012 대선 당시, 새누리당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 동성로에서 유세를 벌일 때 지지자들 머리 위로 대형 태극기가 등장했다. 어쩌면, 그것이 태극기가 '재아우라화' 되는 본격적 서막이었을지도 모른다. 보수 단체들의 각종 집회에, 빠지지 않는 아이템이 바로 태극기다.

리퍼트 미국 대사가 다쳤을 때, 과한 찬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민망한 부채춤을 추던 종교인들이나 고엽제전우회 할아버지들은 태극기로 카메라 시야를 꽉 채웠다. 애국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 중에 변희재씨도 지난 재보선에 출마하면서, 태극기를 상징으로 활용하기도 했다(비록 거꾸로 달긴 했지만...). 그밖에 보수 단체나 정치인들이 태극기를 아이템으로 활용하는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사실 '애국 보수'라는 말은 식상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진보적 정치 지향을 가진 사람들도 충분히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진보일 수 있다. 결국, 나라에 대한 사랑은 진보든 보수든 이미 전제된 사실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건, 그 나라를 사랑하는 방식에 대한 입장이 서로 다르단 거다. 무엇이 가치있고 지향해야할 바인지를 각축하는 건 나중 문제이다. 따라서 '애국'이란 말을 어떤 정치 지향을 가진 쪽이 점유하고부터 시작하는 건 일종의 동어반복이자 위화감 형성 밖에 되지 않는다. 마치 '애국 보수'를 지칭하고 '태극기'를 손에 든 사람들에 반대하는, 진보·좌파들은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 모양새가 형성된 달까.

국가는 국민을 위해 무엇을 했나

물론 태극기는 우리 나라의 공식적인 '국기'이고, 비단 애국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사랑하는 '매체'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를 손상할 경우 처벌한다는 <형법> 규정이 있다. 하지만 법은 형식일 뿐, 거기에 의미부여를 하는 건 사람이다.

여기에 의미부여를 하려는 사람들이 말하는 '대한민국' 그리고 김진태 의원이 말하는 '국민'이, 누구를 위한 대한민국이고 어떤 국민인지는 이미 고민 됐어야할 문제다. 어쩌면, 그 청년은 정부여당이 꿈꾸는 '대한민국'이 자신이 꿈꾸는 '대한민국'과는 다른 '구린 것'이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김진태 의원이 말하는 '국민'이 우리 모두가 될 수는 없어 보인다.

필자는 그 청년이 적절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는데 도덕적 책임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에게 법적 책임까지 물을 수 있을까? 국가가 국민에 제대로 봉사하지 못 하는 나라에서, 국민에게 국가에 충성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자신의 취임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자신있게 했다고 한다.

"자, 미국 국민 여러분.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나는 이 말을 오늘날 한국 실정에 맞게 다음과 같이 뒤틀어 본다.

"자, 김진태 의원님. 한국 국민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국가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태그:#태극기, #김진태,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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