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르신들이 어버이날 가슴에 다시는 카네이션에는 자식 키운 '뿌듯함'이 담겨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어버이날 가슴에 다시는 카네이션에는 자식 키운 '뿌듯함'이 담겨 있습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잘해라!"

5월 8일.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왠지 가슴이 답답합니다. 자식으로 부모님께 한 게 있어야지요. 부모님께서는 "니들이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만으로 고맙고 감사하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자식 입장에선 효(孝)를 다하지 못함에 미안하고 죄송할 뿐입니다. 꼭 내리사랑 때문만은 아니지요.

"아이 고맙다!"

올해 87세이신 아버지의 전화.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또 거두절미하시고 바로 본론이셨습니다. 예전부터 아버지께서는 "전화비 많이 나오니 전화는 빨리 끊는 게 상책"이라는 주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왜 무엇이 고맙다는 건지 말을 나눠봐야 압니다.

"아버지, 뭐가 고맙다는 거예요?"
"우리 아들이 갖다 준 유자빵 맛있게 잘 묵었다!"


아내가 가져 다 준 선물 등 잘 받았다는 표시입니다. 술 담배 안 하시는 아버지, 심심풀이로 '딱'이었나 봅니다. 아내는 뭐만 생기면 아버님 댁을 부리나케 드나듭니다. 빵, 떡, 과자, 라면, 쌀, 과일 등을 수시로 사다 나르는 아내가 무척 고마울 뿐입니다. 흔히 하는 말처럼 결혼 잘 했고 땡 잡았지요.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자연의 이치와 삶의 지혜

거제도 특산품 유자빵입니다. 술 담배 안하시는 아버지 입맛에 맛았나 봅니다.
 거제도 특산품 유자빵입니다. 술 담배 안하시는 아버지 입맛에 맛았나 봅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언제부터였을까? 아버지께선 어느 때부터인지 매사에 감사하셨습니다. 세상은 불만보다 고맙고 감사할 게 더 많다고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바뀌셨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이유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아마 자연의 이치를 터득한 삶의 지혜이지 싶습니다. 원망하고 살 수 없는 세상이라는 거죠.

"네 아버지가 유자빵 하나를 뜯어서 혼자 벌써 다 드셨다."

어느 새 어머니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전활 뺐긴 겁니다. 어머니, 반가움에 "잘 사냐?"란 인사말부터 나눌 법한데, 말이 급하시나 봅니다. 빵 잘 드시는 빵보 아버지가 나눠먹지 않고 혼자 드셔서 밉다는 건지, 더 없냐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마움의 표시라는 것쯤은 알지요.

"아버지가 요즘 감기를 달고 사신다. 유자빵은 감기에 좋잖아. 좀 더 구해봐라."

하하하하~, 부모님 꼭 짜신 거 같습니다. 지난 4월 말, 거제도 여행길에 빵보 아버지 생각하고 가져 온 유자빵. 다 드셨나 봅니다. 덤으로 아들이 보고 싶나 봅니다. 나이 드신 아버지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은 시 한 수 읊지요. 거제도 시인, 김용호 님의 시(詩) '유자빵'입니다.

당신의 삶이 묻어 있는 향기로운 빵과 카네이션

어머니께선 달달하고 은은한 유자빵이 감기 달고 사시는 아버지께 좋다고 더 원하시더군요. 자식, 이런 거라도 해야지요.
 어머니께선 달달하고 은은한 유자빵이 감기 달고 사시는 아버지께 좋다고 더 원하시더군요. 자식, 이런 거라도 해야지요.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유자빵
                                  김용호

  세상에는 빵도 많다 외로움 또한 많다
작은 빵 한 개로서 허기가 달래질까
그러나 가을향기로 채워주는 빵이 있다


  세속에 휘둘리고 불안에 흔들리고
서있는 방향조차 분간하기 쉽지 않다
한 줄기 위안이 되려 기꺼이 여기 있다


  두려워 하지마라 찬찬히 살펴보라
삶 속에 묻어있는 작은 향기 즐겨본다
오히려 소박하여라 유자빵 여기 있다


김용호 시인, 거제 태생답게 거제도 특산품 유자빵에 대해 자랑입니다. 오죽했으면 유자빵은 외로움과 허기를 채워주며 위안까지 준다 할까. 이는 아마도 저희 아버지께서 갖고 있는 '빵에 대한 개념'처럼 여겨집니다. 당신의 삶이 묻어 있는 빵이라는 거죠.

"어머니, 카네이션 달았어요? 저녁에 들를게요."
"알았다. 카네이션은 안 사와도 된다. 누나하고 형이 보냈더라."


말은 그래도 얼굴 뵙지 않으면 서운해 하실 부모님입니다. 아내는 저녁에 고등학생이라 어른보다 더 바쁜 아이들과 함께 부모님 댁에 간다 합니다. 아내가 시댁에 하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처가에 생색날 정도는 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미안할 따름입니다. 대신, 장모님께 전화했습니다.

장모님, 애지중지 키운 딸 고생시켜 죄송합니다!

장모님께 보내는 카네이션. 장모님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장모님께 보내는 카네이션. 장모님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장모님, 카네이션 달았어요?"
"아니. 큰 사위가 안 달아주는데 누가 달아 주겠어?"
"왜 그러세요. 큰 아들 작은 아들이 잘 하잖아요. 손자 손주들도 그렇고."
"아들이랑 사위랑 같아?"
"알았어요. 작은 사위가 잘하잖아요. 별 일 없지요?"
"별 일 있지 왜 없어. 큰 사위가 전화한 게 별일이지."
"쑥스럽게 너무 그러지 마세요. 아이들이랑 다음에 갈게요."
"우리 큰 사위 전활 다하고 고맙네."


장모님께 아침부터 전활 넣었는데, 받질 않으셔서 오후에서야 통화했습니다. 장모님께서는 어버이날이랍시고 전화 한 통 달랑 넣은 사위에게 오히려 더 고맙다 하십니다. 전화도 잘 하지 않는 사위가 뭐가 좋다고 고맙다 하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키워 보니 이런 부모 마음 좀 알겠더군요.

아내는 장모님께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던 딸이었습니다. 장모님은 "초등학교 운동회 등에도 그 많은 학생 가운데 딱 꼬집어 딸을 바로 발견했다"더군요. 아내는 그런 어머니를 무척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 학교 행사에 가 보면 많은 아이들 중 내 아이들 찾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딸 데려와선 고생만 시키니 죄송할 뿐이지요.

길거리에는 가슴에 카네이션 꽂은 어르신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카네이션 단 가슴을 유독 앞으로 내미시는 것 같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카네이션 한 송이 다신 걸 가지고도 으쓱 뻐기시는 걸 보면 부모 마음은 아주 단순한 것 같습니다. 그게 부모인 것을….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 사랑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임현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어버이 날, #카네이션, #아버지, #어머니, #장모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