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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 동안 남편과 인도·네팔·동유럽으로 배낭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여자와 미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남자가 같이 여행하며 생긴 일, 또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며 겪은 일들을 풀어내려고 합니다. - 기자 말

델리의 햇살
 델리의 햇살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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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러지 말고 루디아나라는 곳으로 가세요. 거기로 가면 15분마다 델리 가는 버스가 있어요."

등장. 버스 없는 버스 터미널에서 우리를 구해줄 용감한 청년. 우리의 영웅. 델리행 티켓 두 장을 내놓으라고 보는 사람마다 붙잡고 닦달하며 암리차르 버스 터미널을 휘젓고 다닌 지 삼십 분. 외국인인 우리에게는 델리행 티켓을 팔지 않는다. 이유를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청년은 루디아나로 가는 버스로 우리를 안내했다.

무책임하고 무례한 버스 직원들의 태도에 화가 난 우리는 퉁퉁 부은 얼굴로 청년의 뒤를 쭐레쭐레 쫓았다. 근데 우리 좀 재수 없지 않나? 이 청년은 버스 직원도 뭣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잖아. 델리로 가겠다고 울부짖는 우리가 하도 가여워 도와주고 있는데, 우리의 이 못생긴 표정은 뭐야? 나는 구겨진 눈썹을 당장 풀었다. 청년이 돌아봤다. 나는 보란 듯 씩 웃었다.

"제 동생이에요. 동생은 루디아나보다 더 멀리 가긴 하는데 아무튼 도움이 될 거예요. 버스 기사한테 두 분 델리 가신다고 말해놨어요, 혹시 문제 생기면 제 동생한테 얘기하세요."

뭐지. 혹시 웃돈을 노린 사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의 이 친절함은. 남자는 듬직한 등짝을 잠시 들이밀더니 버스에서 내렸다. 우리는 동생의 든든한 수호 아래, 두 시간 후 루디아나에 도착했다.

델리 가는 버스가 15분 마다 있다고 했겠다. 우리는 15분 안에 총명하고 얍삽하게 모든 걸 해결하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 양쪽 길로 갈라섰다. 나는 노점으로, 더스틴은 표를 파는 창구로. 델리로 가기 위한 열정으로 가득한 나는 평소와는 다른 민첩한 태도로 감자칩과 음료수를 사서 더스틴에게 달려갔다.

"표 샀어? 얼마래?"

더스틴은 대답 대신 두꺼운 눈썹을 꾸물거렸다. 하얀 싸구려 전등 빛이 비추는 버스 터미널에 백여 명의 사람이 더스틴의 눈썹처럼 꾸물대고 있었다. 티켓 창구는 모두 비어 있었다.

"델리 가는 표 어디서 사나요?"

행인 1, 무시. 행인 2, 우리를 힐끗 쳐다보고는, 무시. 창구에 대고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행인 3, 델리 가는 버스가 없단다. 고로 표도 없단다. 루디아나 행 버스 옆 좌석에 앉은 시크교 청년이 내일부터 버스 파업이 있을 거라고 하더니, 오늘 밤부터 시작된 건가. 터미널 주차장에는 앞으로 최소 1년간은 꼼짝도 않을 것 같은 묵직한 버스 세 대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루디아나까지 왔건만, 상황은 더 꼬여버렸다. 암리차르에서는 외국인인 우리에게만 표를 팔지 않았지만, 이곳 루디아나에서는 델리로 가는 버스 자체가 없다. 어쩌나. 일단 앉자. 구석 바닥에 주저앉아 감자칩 봉지를 뜯었다. 사람들은 불안해 보였다. 몇 주 전부터 예약해 놓은 버스도 취소된 모양이었다. 약속된 버스를 운행하는 건 당신의 의무가 아닙니까! 한 남자가 울부짖었다. 

"델리 가요?"

배가 수박 통처럼 볼록, 튀어나온 인도 아저씨 둘이 다가왔다.

"네. 표 사셨어요?"
"표는 없고... 5500루피면 택시를 타고 갈 수 있어요. 한 사람에 800루피씩. 같이 탈래요?"


간디가 생활하던 방. 간디 슴리띠에 전시되어 있다.
 간디가 생활하던 방. 간디 슴리띠에 전시되어 있다.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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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돈은 또 없다. 검고 깨끗한 서류 가방을 든 두 아저씨의 손가락에는 두껍고 묵직한 반지가 여러 개 달려 있었다. 우리는 돈 좀 있는 아저씨들이 델리행 버스 티켓을 어디서 구해올까 싶어 아저씨들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시간이 더 지났다.

"델리 가요?"

두 시간 후. 하염없이 흐르기만 하는 시간에 정신이 아득해갈 무렵, 남색 두건을 두른 시크교 남자가 다가왔다.

"저쪽에서 지금 델리 가는 표를 팔고 있어요."

남자가 가리키는 곳은 200m 앞 간이 테이블. 테이블 앞으로 이미 100여 미터의 긴 줄이 달려 있었다. 나는 배낭을 지키기로 하고 더스틴을 보냈다. 버스가 몇 대나 가는 걸까. 저렇게 많은 사람이 다 탈 수나 있으려나. 나는 200m 앞에 선 더스틴의 작은 등짝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마치 열심히 노려보면, 앞선 줄이 줄어들기라도 할 것처럼.

"아직 못 샀죠? 그러지 말고 우먼 큐(Women queue)에 가서 줄을 서요."

시크교 남자가 다시 내게로 왔다. 인도에서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배려해 여성만 설 수 있는 줄을 따로 둔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간이 테이블 앞에 뱀 꼬리처럼 길게 이어진 줄을 장식한 사람들은 모두 남자. 나는 테이블로 달려갔다.

"가방이요! 가방!"

아, 가방. 표를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배낭을 지킨다는 첫 번째 의무를 깡그리 잊어버렸다. 나는 다시 배낭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배낭을 메고, 내 배낭보다 두 배는 무거운 더스틴의 배낭을... 들고는 싶었으나 차마 들지 못하고 힘만 끙, 하고 줬다.

"이런 데 배낭을 두고 가면 당장 훔쳐가요. 조심해야 해요."

시크교 남자가 돌아와 더스틴의 배낭을 들고 앞장섰다. 나는 남자를 따랐다. 순간 코가 시큰하다. 무슨 사람이 이렇게 착해. 우먼 큐에는 여자가 한 명 있었다. 여자가 표를 샀다. 간이 테이블에 앉은 직원은 줄을 선 남자 세 명에게 표를 주고는 나를 흘끔 쳐다봤다. 그리고는 다시 줄 선 남자들을 상대했다. 어라. 저 안 보입니까 저? 제가 여자로 안 보입니까? 또 싸워야 합니까? 나의 영웅 시크교 남자가 돌아왔다.

남자는 이곳 직원인지, 표를 구하는 승객인지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무지하게 바쁘다는 거였다. 남자는 총명한 두 눈을 똑똑히 뜨고 자신감 넘치는 걸음으로 버스 터미널의 여기저기를 휘젓다가,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없는 내 곁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뻔히 버스 직원에게 무시당하고 목소리 큰 인도 남자들의 힌두어에 눌려 입도 뻥끗 못 하고 직원의 옆 얼굴만 노려보고 있는 나를 대신해 남자는 직원에게 내 표를 달라고 대신 소리쳤다. 직원이 못마땅하다는 듯한 얼굴로 표를 두 장 내밀었다. 줄을 선 남자들이 웅성댔다. 시크교 남자가 다시 소리쳤다. "잔돈을 주시오!" 잔돈이 돌아왔다. 다시 한 마디. 표에 좌석 번호가 적혔다. 더스틴은 아직 뱀 꼬리의 끝에 속수무책으로 서 있었다. 보이냐! 표를 구했다! 델리 티켓 포 두! 델리행 티켓 두 장이요!

"고마워요. 정말 너무 고마워요."

너무 고마운 나머지 간을 꺼내 조금이라도 떼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내 간 따위 받아봤자 쓸모도 없을 테고. 우리는 고맙다는 말만 무한 반복 했고, 남자는 별 거 아니라며 다시 바쁜 걸음으로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버스에 올랐다. 제일 뒷자리다. 조금만 늦었으면 터미널에서 밤을 새울 뻔했다. 내일부터 파업이라니, 내일이라고 버스가 있을지 모를 일이다. 고마워요. 시크교 청년. 네 명이 나란히 앉게 되어 있는 버스 뒷좌석에 앉아, 나는 피곤한 고개를 떨어뜨리며 암리차르와 델리 사이의 어디쯤을 달리고 있는 버스에 몸을 맡겼다. 남편도 못 알아보는 고개가 자꾸 더스틴이 아닌 왼쪽 인도 아저씨의 뾰족한 어깨 쪽으로 넘어갔다. 구성진 라이브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떴다.

날이 밝아있다. 델리다. 같이 택시를 타고 가자던 아저씨 두 명도 버스에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아저씨 한 명이 더스틴의 팔을 붙잡았다. 더스틴이 팔을 뿌리쳤다. 기차에서, 버스에서 내리기만 하면 수십의 릭샤꾼들이 몰려오는 인도다. 기차나 버스에서 내리면 누가 불러도, 누가 만져도 개의치 않고 무조건 직진하는 것, 인도에서 5개월이란 시간을 보내며 생긴 자동 반응이다.

"아 죄송해요. 모르는 사람인 줄 알고."

더스틴이 멋쩍게 사과했다. 아저씨를 호객꾼으로 오해한 게 미안해서. 호객꾼이라면 무례하게 팔을 뿌리쳐도 된다고 잠시 생각한 게 또 미안해서.

"어디로 가요? 같이 릭샤 탈래요?"

빠하르 간지 쪽으로 간다는 아저씨들과 오토릭샤에 마주앉았다. 순하게 생긴 키 작은 아저씨는 아들, 딸이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일한다고 했다. 그래서 델리를 찾은 우리를 반갑다고 했다. 우리는 호주 뉴질랜드와 아무 상관도 없는데.

빠하르간지까지는 100루피. 더스틴과 나 둘만 탔다면 어림도 없었을 현지인 요금이다. 돈을 내겠다는 우리 요청을 아저씨들이 극구 사양했다. 어제부터 이상하다. 인도는 이런 데가 아닌데. 인도 사람들은 이렇지 않은데. 인도가 헷갈린다.

델리의 여름은 실전이다

델리 명소고 뭐고. 그늘이 최고다. 그늘에 모인 사람들.
 델리 명소고 뭐고. 그늘이 최고다. 그늘에 모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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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는 더웠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은 더위를 견디는 데 소모됐다. 서울에서 이렇게 진득한 더위를,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이처럼 날 것으로 견디어 낸 적이 있었던가. 서울은 더위를 가공한다. 뜨거운 태양과 습한 공기는 에어컨을 통과해 실내로 들어오는 동안 산뜻하고 시원한 쾌적함으로 변신한다.

'올 들어 최고 기온', '불쾌지수 50%' 같은 말은 점심 시간에 외출하는 잠깐이 아니라면 인터넷 기사 제목을 통해 엿보는 남의 이야기다. 서울의 여름은 봄보다, 가을보다 춥다. 사무실은 무릎 담요를 덮고 일해야 할 만큼 서늘하다. 피치 못하게 실외로 나가야 할 때도 있지만, 참기 어렵다면 더위를 당장에 피할 곳은 어디든지 있다.

커피숍, 대형서점, 지하철, 버스, 은행. 서울에서의 더위란 잠수함 창으로 바다를 구경하듯 실내 유리창 바깥의 눈 부신 햇살만 구경하면 되는 추상적인 것. 불쾌한 촉각은 쏙 뺀, 찬란한 햇살과 파란 하늘 같은 쾌적한 시각만 남은 감각. 델리의 더위는 그렇지 않다.

델리의 여름은 실전이다. 40도를 웃도는 기온과 뜨거운 태양은 멋모르고 입안에 넣어버린 커다란 만두와 같다. 너무 뜨거워서 씹어 삼킬 수도 없고 이미 입에 넣었기에 뱉을 수도 없는. 이미 여름의 델리로 들어온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해가 다 삼켜버려 얼마 남지 않은 키 작은 그늘 사이를 건너뛰며 목덜미로 흐르는 땀을 슥 쓸어내리는 정도.

햇살에 지친 남자. 그늘에 누운 남자.
 햇살에 지친 남자. 그늘에 누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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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인디펜던트 게이트 앞. 차 하나 없다. 우리의 델리는 한적하다.
 델리 인디펜던트 게이트 앞. 차 하나 없다. 우리의 델리는 한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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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이 보이는가? 당장에 물 한 병이라도 사 마셔라. 식당이 보이는가? 배가 고프지 않아도 무조건 들어가라. 노점도, 식당도, 그 어떤 건물도 나무 그늘도 없는 거리를 걷게 되는 때가 분명히 있을 테니. 정수리를 뜨겁게 달구는 해가 제발, 조금만 더 빨리 저물어 들기를 바라며 입을 헤, 벌리고 멍하니 길을 걷는 그런 순간.

더위 때문인가, 델리는 조용하다. 모든 여행자가 증오해 마다치 않는 도시 델리. 여행자를 등쳐먹으려는 인간들로 가득한 도시라고 귀에 딱지가 박히게 들어왔던 도시다. 델리보다 악명 높은 인도의 여름이 가까워져서 그런가. 우리가 여행한 인도의 여느 도시보다 조용하고 깔끔하다. 악명 높은 인간들도 더위에 기가 꺾여 집안으로 숨어들었나 보다. 우리를 건드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의 델리는 한적하다.

골목 중간마다 서 있는 노점에는 노란색이 많다. 망고다. 한 달 전부터 자주 보이던 망고가 이제는 지천으로 깔렸다. 수레 한가득 노랗게 쌓인 망고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50루피를 냈다. 노랗고 탐스러운 망고 네 개가 봉지에 담겼다.

나무 그늘을 건너뛰며 라씨 가게로 갔다. 얼음 조각이 든 시원한 바나나 라씨를 한 잔 사 마셨다. 5개월 전 여행을 시작했을 땐 이거 한 잔 마시고 바로 몸져누웠을 텐데. 인도를, 네팔을 여행하는 동안 면역력 하나는 튼튼해졌다.

이제 난 무적이다. 난 사흘간의 버스 여행을 견뎌낼 수 있으며 인도 삼등석 기차역 대기실에서 쥐와 함께 밤을 지새울 수도 있다. 10루피짜리 길거리 아이스크림도, 정화하지 않은 얼음 넣은 음료수도 이제는 나를 아프게 할 수 없다. 아, 여행자 카페에서 파는 비싼 참치 샐러드 빼고(관련 기사 : 완벽했던 여행, 참치샐러드 한 젓가락에 와르르).

눈이 맑은 코코넛 아저씨.
 눈이 맑은 코코넛 아저씨.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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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하나 마실까?"

햇살이 데운 코코넛 하나를 샀다. 코코넛 대가리를 댕강, 자른 아저씨가 소처럼 멀겋고 착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컴 컴(Come, come)"

미지근한 코코넛을 다 마시는 걸 지켜본 아저씨가 우리를 불렀다. 내 손에서 다 마신 코코넛 통을 가져가더니 가장자리를 칼로 팠다. 아저씨의 녹슨 칼 위로, 걸쭉한 코코넛 밀크가 묻어나왔다. 하얀 코코넛 밀크 사이로 우리 손 아니면 아저씨 손, 혹은 녹슨 칼에서 묻어나왔을지 모를 거뭇한 구정물이 선명하게 흘러나왔다. 이게 진짜 맛있는 거야, 하는 눈으로 착한 아저씨의 눈이 웃으며 다시 우리를 들여다봤다. 아저씨는 코코넛 밀크를 코코넛 통 속에 다시 넣고 우리에게 건넸다.

"이걸 어째."
"몰라. 일단 걷자."


일부러 수고해서 맛있는 코코넛 밀크까지 파 준 아저씨에게는 진심으로 고맙지만, 이것만은 못 먹겠다. 제아무리 장기 버스에, 얼음에, 길거리 음식에 강해진 우리라지만 구정물이 훤히 보이는 코코넛 밀크만은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아저씨에게 인사하고 뒤를 돌아 걸었다.

뒤로 도는 거 너무 어색하지 않았어? 너 너무 긴장해서 몸이 빳빳하잖아. 투닥투닥 다투다 코코넛 밀크를 먹는 척 손을 휘저었다. 어느 정도 아저씨가 멀어졌을 때쯤, 아저씨가 안 보는 걸 확인하고 쓰레기통에 코코넛 통을 휙 던졌다. 다행히 아저씨는 보지 못했다. 그래도 미안하다. '다음에 인도에 올 때는 조금 더 튼튼한 장을 가지고 올게요' 굳게 다짐했다.

인도를 떠나며

자마 마스지드. 인도에서 가장 큰 모스크다.
 자마 마스지드. 인도에서 가장 큰 모스크다.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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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뜹만디르로 갔다. 12세기 노예 왕조의 이슬람 술탄이었던 꾸뜹 웃딘 에어백이 힌두교에 대항해 승전한 기념으로 세운 미나르다. 하늘 높이 솟은 승전탑을 고개를 90도로 꺾어 올려다 봤다. 아! 감탄사를 내질렀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다. 델리에서 가장 볼 만한 유적지라는 꾸뜹만디르다. 그렇다지만…. 앞에 서서 사진 한 번 찍고, 아, 하고 작은 숨을 내뿜는 거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다. 덥다. 가자.

델리에서의 나흘을 그렇게 보냈다. 레드포트에 가서 아, 간디 슴리띠에 가서 아, 인디펜던트 게이트에 가서 아. 도대체 자비라고는 모르는 강력한 햇살에 아아아아. 그렇게 나흘의 더위를 견뎌내고, 델리에서의, 그리고 인도에서의 이틀이 남았다.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쿠트브 미나르 탑 (오른쪽). 무슬림인 쿠트브 딘 아이바크가 델리 정복을 기념하여 1193년에 건립을 시작하여 1368년에 완공되었다. 왼쪽의 회색 기둥은 4세기에 세워진 7.2m의 철주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거의 100% 순도로 만들어진 철주는 지금도 녹이 슬지 않았다.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쿠트브 미나르 탑 (오른쪽). 무슬림인 쿠트브 딘 아이바크가 델리 정복을 기념하여 1193년에 건립을 시작하여 1368년에 완공되었다. 왼쪽의 회색 기둥은 4세기에 세워진 7.2m의 철주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거의 100% 순도로 만들어진 철주는 지금도 녹이 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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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가장 큰 모스크라는 자마 마스지드로 갔다. 자마 마스지드 앞 시장거리인 찬드니촉. 분주하고 악명 높은 델리의 거리가 여기에 있었다. 인도 여름의 잔인한 더위도 이 거리의 분주함과 강렬함, 들끓는 인생은 잠재우지 못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사이클 릭샤들. 노란색과 초록색으로 몸통을 반반씩 칠한 익숙한 오토릭샤. 선명한 주홍빛을 내는 산처럼 쌓인 향신료. 기름 냄새. 오래된 듯 신선한, 사모사 튀기는 고소한 기름 냄새. 보라, 빨강, 초록의 화려한 사리들. 탐스러운 인도 스위츠. 그리고 무엇보다, 시장 거리를 가득 메운 상인들의 강렬한 눈빛.

우리는 인도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위해 유명하다는 카레 집을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빗물인지, 개오줌인지 알 수 없는 구정물이 들어찬 물웅덩이 사이를 걸어 매콤하고 기름진 냄새가 나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은 사람들로 복적였다.

유명한 맛집 앞이라 가게 회전이 오래 걸리는지, 줄을 선 사람들은 아예 거리 바닥에 주저앉아있었다. 단 한 순간도 시각과 후각, 청각을 내버려 두지 않는 찬드니 촉의 분주한 골목에 다시 정신이 빼앗겼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나는 이수지. 더스틴과 인도 여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밥을 먹으러 왔지. 여기는 찬드니 촉. 줄을 서자, 줄. 다시 가게 앞으로 갔다.

자마 마스지드 앞 시장거리인 찬드니촉. 분주하고 악명높은 델리의 거리가 여기에 있었다. 인도 여름의 잔인한 더위도 이 거리의 분주함과 강렬함, 들끓는 인생은 잠재우지 못했다.
 자마 마스지드 앞 시장거리인 찬드니촉. 분주하고 악명높은 델리의 거리가 여기에 있었다. 인도 여름의 잔인한 더위도 이 거리의 분주함과 강렬함, 들끓는 인생은 잠재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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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한 남자가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나왔다. 바구니 안에는 갓 구운 로띠가 수십 장 쌓여 있었다. 길바닥에 주저앉은 사람들이 손을 내밀었다. 바구니를 든 남자가 로띠를 하나씩 집어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난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맛집 줄이라니. 식당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로띠를 얻으러 온 사람들이다. 난을 주는 이와 난을 받는 이들은, 오래 전부터 이어진 의식을 행하듯 익숙하고 침착했다.

여행자 등쳐먹는 악명 높은 델리 사람들은 다 어디 갔나. 델리에서 내가 찾은 사람은 이런 사람들뿐이다. 가난한 자들을 위해 갓 구운 따뜻한 난을 매일 같은 시간에 나누는 식당 주인. 코코넛 통을 일부러 긁어주는 노점상인, 우리를 도와준 여행 천사, 시크교 청년.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세 개를 받았다는 식당은 그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허름했다. 뜨끈한 기운이 솟는 화덕이 놓인 입구를 지나, 장식 하나 없는 하얀 벽에 둘러싸인 누런 테이블에 앉아 시금치 카레와 양고기 카레를 주문했다. 음식은 맛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로띠 하나만큼은 세계 최강이다.

"인도가 그리울 것 같아?"

추가 주문한 뜨거운 로띠를 살살 찢으며, 내가 물었다.

"음…. 나는 인도가 너무 싫어."
"응 나도 싫어. 더워. 더러워."


"그래서 떠나고 싶고, 지금은 떠날 때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난 인도를 사랑해. 인도는 내가 살던 곳과 너무 다르지만, 또 같기도 해. 다만, 여기서는 모든 것이 날 것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날 뿐. 그 적나라함에 불편하고 피곤하기도 하지만, 그 적나라함과 솔직함을 사랑하기도 해."
"응. 나도 사랑해. 인도가 분명히 그리울 거야. 그리고 반드시 돌아올 거야."


부족하기에 사랑한다지 않나.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의 매력을 보는 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의 부족함과 결함까지 껴안는 일. 중요한 건 진실한 태도. 인도가 우리에게 진실했던 만큼, 우리도 자신에게 진실했을까. 우리는 인도의 모든 걸 껴안았을까. 다섯 달 가까이 머물렀지만, 알아낸 것보다 알고 싶어진 것이 더 많은 인도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델리의 밤은 낮보다 관대하다. 낮의 뜨거운 기운이 아직 공기 속을 맴돌지만, 비참한 기운마저 느껴지게 하는 한낮의 더위는 물러났다. 주황색 전등 아래로 강물이 비췄다. 더럽다. 언제고 쌓여 있는 저 쓰레기. 시큼한 냄새. 오토릭샤의 털털대는 바퀴 사이로 차의 경적 소리가 으스러졌다.

다리 건너편 도시의 시끄러운 음악이 서로 엉겨붙었다. 튀김을 가득 쌓은 널따란 은색 쟁반을 머리에 인 남자가 우리 곁을 스쳤다. 커다란 배낭을 멘 커플은 호텔 주소가 적힌 구겨진 프린트 종이를 손에 쥐고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사리를 입은 인도 여자가 쓰레기를 주워 먹고 있는 소 옆으로 지나갔다. 릭샤 왈라가 우리에게 손짓했다. 짜이 왈라가 차를 끓였다. 모든 것이다. 내가 증오하고 사랑한 인도의 모든 것이, 이 거리에 있다.

인도를 떠난다. 캘커다에서 시작한 델리까지의 여정이 뱃속에서 휘몰아쳤다. 5개월. 길었던가. 짧았던 것 같다.

인도. 길가에서 삶을 꾸려가는 가족. 기차역 직원의 두툼한 금반지. 너무 많은 사람. 너무 많은 냄새. 너무 많은 마살라. 종교와 환생. 인도의 기차. 버스. 버스 밖 풍경. 친절한 사람. 퉁명스런 사람. 배낭 여행자. 당장에 터져버릴 듯 복잡한 거리. 릭샤왈라의 동그란 어깨. 무더위. 라씨. 바나나를 파는 꼬마. 구정물을 손으로 받아 마시던 보드가야의 아이들. 노란색 꽃을 팔던 눈이 큰 바라나시의 아이들. 보석 같은 타지마할. 평화로운 시킴. 네팔 국경의 밤. 인도 삼등석 기차 칸.

나는 이 나라를, 이 사람들을, 왜 그렇게 미워했던가. 조금 더 사랑할 걸. 조금 더 다가갈 걸. 조금 더 마음을 열 걸. 이별은 언제나 어렵다. 한 나라와의 이별은 오묘하다. 아쉽고 슬프지만, 상대를 껴안을 수 없다. 나는 눈을 감고, 다시 한 번 나의 인도를, 인도의 냄새와 소리와 맛과 풍경을 떠올렸다. 기억 속 인도의 오감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머리가 무겁다. 어지럽다. 비행기가 이륙했다.

델리의 지하철. 쾌적하다. 에어컨이 나온다.
 델리의 지하철. 쾌적하다. 에어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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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델리 , #인도, #인도여행, #배낭여행, #장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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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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