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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파키스탄을 잇는 와가 국경의 국기하강식. 귀여운 소녀들의 댄스파티 이후에 각 나라의 국경을 지키는 장병들의 세레모니가 시작된다.
 인도와 파키스탄을 잇는 와가 국경의 국기하강식. 귀여운 소녀들의 댄스파티 이후에 각 나라의 국경을 지키는 장병들의 세레모니가 시작된다.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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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 동안 남편과 인도·네팔·동유럽으로 배낭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여자와 미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남자가 같이 여행하며 생긴 일, 또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며 겪은 일들을 풀어내려고 합니다. - 기자 말

8명 정원인 봉고차에 15명을 구겨 넣는 인도 대중교통 운영방식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그래도 이건 좀 심했다. 인도-파키스탄 국경인 와가에 가기 위해 봉고차에 구겨져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기다린 지 어언 1시간. 정원은 이미 한참을 초과했건만 만족을 모르는 봉고차 기사는 30분 후 승객 여섯 명을 더 데리고 돌아왔다. 돌아버리겠군.

터질 듯한 봉고차 안으로 사람들이 끼어들었다. 승객들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서로의 몸을 조금씩 더 눌렀다. 조금 더. 조금 더. 몸이 비틀어지고 허벅지가 조여왔다. 여분의 공간이 기적적으로 만들어졌다. 5명이 차 안으로 들어왔다. 마지막 한 명은 차마 들어오지 못하고 문간에 한쪽 발을 올렸다가 실패하기를 반복했다.

우리가 앉은 좌석 쪽 창문으로 기사가 다가왔다. 내려서 다른 차에 타란다. 싫어. 왜 하필 우리야? 만만한 게 외국인이야? 1시간 반이나 기다렸는데? 다른 차에 타서 또 1시간을 기다리라고? 싫어!

"싫어요! 더는 기다릴 수 없어요!"

나는 화를 버럭 냈다. 좀 심했나. 기사는 알았다는 건지 고개를 건들건들 흔들더니 전능의 힘을 발휘해 마지막 승객 한 명을 기어코 차 안에 구겨 넣었다. 옆자리에 앉은 여자가 하품을 했다. 왼팔을 길게 뻗더니 내 어깨 위에 팔을 기댔다. 나의 어깨는 여자의 팔걸이가 됐다. 참자. 순대 속 구겨 넣어진 당면이 됐다 생각하자.

봉고차가 와가로 향했다. 와가로 가서 파키스탄 국경을 넘을 건 아니고. 국기하강식을 보러 가는 길이다. 동료 '순대 당면'들도 모두 국기하강식을 보기 위해 이토록 비참하게 차 안에 구겨져 있는 중이다. 국기하강식이란 말 그대로, 하루가 저물고 국경 문을 닫을 때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기를 하강하는 의식. 그게 뭐라고? 인도-파키스탄의 국기 하강식은 특별하다. 와가와 암리차르를 잇는 텅 빈 도로가 매일 국기 하강식 2시간 전만 되면 수백 대의 봉고차와 오토바이로 가득 찰 정도로.

1시간을 달렸다. 차에서 내려 인도 아저씨 두 명과 함께 걸었다. 아저씨들은 자이푸르에서 왔다고 했다. 자이푸르는 지금 꽤 덥죠? 고개를 절레절레. 생각만 해도 끔찍한가 보다. 절레절레 흔드는 아저씨의 이마 위로 땀방울이 송골송골 새어나왔다. 5월의 푼자비보다 더우면 얼마나 더운 걸까. 생각하지 말자.

"외국인은 VIP 좌석에 앉을 수 있어요"

와가 국경 국기하강식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와가 국경 국기하강식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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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고차에서 내린 승객들은 지체할 틈 없이 국경을 향해 재빠르게 걸었다. 더스틴과 나도 발걸음을 재촉했다. 국경에는 이미 엄청난 숫자의 인파가 모여 있었다. 벌집처럼 촘촘히 쌓인 인도 남자들의 등짝 뒤로 바짝 붙었다. 비집고 가보자. 어림도 없다. 층층이 쌓인 등짝들은 단 1mm도 벌어질 틈을 보이지 않았다. 국기 하강식이고 뭐고 국기 모서리도 못 보게 생겼다. 이게 다 봉고차 기사의 탐욕 때문이다. 2시간 전에 출발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을.

"외국인은 VIP 좌석에 앉을 수 있어요. 경비원에게 한 번 물어봐요."


자이푸르 아저씨의 귀띔. 경비원은 왼쪽으로 난 텅 빈 길을 안내했다. 우리는 비키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경찰에게 슬쩍 돈을 쥐여주는 인도인들 사이를 유유자적 지나 VIP 좌석으로 갔다. VIP라니. 내 생에 VIP라는 타이틀을 달아본 적이 있었던가. 아아. VIP라는 게 이렇게 좋은 것이었던가.

모두가 단추 구멍만한 시야라도 확보하기 위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바람까지 살랑이는 기분 좋은 길을 지나 선사 받는 계단 한 구석. 시야가 뻥 뚫렸다. 인간 장벽을 일구고 있는 인도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염치불구하고 우리도 VIP 신분 한 번 즐겨보자.

인도 대 파키스탄 '댄스 배틀'

와가 국경 국기하강식은 소녀들의 댄스와 깃발 들고 달리기로 시작한다.
 와가 국경 국기하강식은 소녀들의 댄스와 깃발 들고 달리기로 시작한다.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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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에는 댄스파티가 한창이었다. 교복을 입은 인도 그리고 파키스탄 10대 소녀들이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귀엽게 몸을 흔들었다. 열댓 명이 모여 춤을 추는 가운데 소녀 하나가 인도 국기를 들고 국경 문으로 달려들었다. 국경 너머 파키스탄 쪽에서도 환호성이 이어졌다. 남자 하나가 앞으로 나와 흥을 돋웠다.

이곳에서는 모든 게 경쟁이다. 인도 대 파키스탄 댄스. 인도 대 파키스탄 응원. 인도 대 파키스탄 깃발 들고 달리기. 절대 질 수 없다는 의지로 똘똘 뭉친 군중의 환호성은 점점 더 커졌다. 군중의 흥이 극에 달했을 때, 기다리던 장병들이 등장했다.

화난 표정의 장병들은 당장에 파키스탄을, 인도를 어떻게 해버리기라도 할 듯 상대방의 국경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국경에 바짝 다가선 인도 장병은 다리를 180도로 쫙 벌려 파키스탄에 힘찬 앞발 차기를 선사했다. 파키스탄 장병도 지지 않았다. 너 두고 보자는 표정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힘차게 킥! 힘찬 앞발 차기에 관중은 환호했다.

환호하는 수백의 관중을, 국경 중앙에 걸린 마하트마 간디와 모하메드 알리 진나의 사진이 내려다봤다. 관중도, 나도, 재미나게 구경 중이지만 아무래도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를 원치 않았던 마하트마 간디가 그다지 좋아할 만한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장병들의 발차기에 군중은 환호한다. 간디가 그리 좋아할 만한 장면은 아니다.
 장병들의 발차기에 군중은 환호한다. 간디가 그리 좋아할 만한 장면은 아니다.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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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파키스탄은 본래 한 국가였다. 두 나라가 갈라선 것은 영국이 인도의 지배를 그만둔 1947년의 일이다. 영국이 인도를 떠나는 과정에서, 인도는 종교를 기준으로 두 나라로 분리 독립을 결정한다. 힌두스탄(인도)과 파키스탄이다. 

무슬림은 파키스탄, 힌두교는 인도라는 선을 긋고 이어진 분리 독립이었다. 하지만 힌두교와 이슬림교, 불교, 시크교, 가톨릭교 등 갖가지 종교를 믿는 인구가 국토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상황에서 단순한 선을 그어 나라를 분리한다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두 나라의 분리 독립으로 1억25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고, 힌두교·시크교·이슬림교도들간의 내부적 싸움이 더해져 50만 명에서 100만 명에 이르는 사상자가 났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분리 독립에의 상처와 카슈미르를 중심으로 한 영토 분쟁으로 두 나라의 관계는 점차 악화됐다. 악화된 관계는 세 차례의 전쟁과 셀 수 없이 잦은 소규모 충돌·테러·군사 냉전을 불러 일으켰다. 언어를 비롯해 문화·지리·경제 등 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공유하는 두 나라이지만, 인도와 파키스탄의 관계는 적대와 의심으로 얼룩져 있다.

2013년 BBC 조사에 따르면 45%의 인도인들이 파키스탄인을, 54%의 파키스탄인이 인도인을 싫어한다. 내 옆에 앉아 장병들의 발차기에 환호하는 남자가 조금 무서워졌다. 이 사람들, 진심이다.

하강식 보지 못한 청년, 미안해

국기하강식 후 기념사진.
 국기하강식 후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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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무는지 하늘이 누르스름해졌다. 굳게 닫혀 있던 국경의 문이 열리고,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기가 동시에 내려갔다. 서로 발차기를 해대던 두 나라의 장병들이 다시 서로를 마주 보고 악수했다. 다시 국경이 닫혔다. 군중이 국경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다시 봉고차.

"하강식 봤어요?"


조수석에 앉아 있던 인도 청년이다. 표정을 보아 하니 못 봤나 보다. 하긴. 그 인간 장벽은 실오라기 하나라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지. 라자스탄 아저씨 둘과 가족 한 팀은 만족한 표정이다. 경비원에게 뇌물이라도 줬나 보다. 청년에게 미안하다. 나는 외국인이라서 보고 다른 사람들은 돈이 있어서 봤다. 청년은 못 봤다. 외국인도 아니고 돈도 없어서.

내가 만약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웃돈을 쥐여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부러 찾아간 국기 하강식을 보지 못했다면 분통을 터뜨렸겠지. 난 청년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듯 마는 듯 웅얼거리다 차 안으로 들어갔다.

더스틴과 나는 오후 8시 반까지 버스터미널로 가야 했다. 델리로 가는 버스표는 예약이 안 되고, 8시까지 터미널로 오면 표를 살 수 있다는 대답을 들은 터다. 봉고차는 낯선 곳에 차를 세웠다. 힌두 사원 앞이었다. 서로의 몸에 엉겨붙어 봉고차 안에서 2시간을 함께한 우리의 순대 가족들은 정말 순대 속 당면처럼 딱 달라붙어 정이 들어 있었다. 자이푸르 아저씨가 함께 힌두 사원에 들어가자고 했다. 축제가 있는 모양이었다. 미안. 저희는 8시까지 버스를 타러 가야 해요. 봉고차 동료들 안녕. 암리차르 안녕.

해가 진다. 와가 국경의 국기하강식은 매일 해가 질 무렵 거행된다.
 해가 진다. 와가 국경의 국기하강식은 매일 해가 질 무렵 거행된다.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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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오후 8시다. 마음이 급해진 우리는 사이클 릭샤를 잡아탔다.

"투어리스트 게스트하우스?"
"에."
"두 유 노 게스트하우스?"
"에…."


…. 마음은 급한데 말이 안 통한다. 그렇다면 숙소 근처 람박 공원으로 가자. 아저씨는 람박 공원을 알아들었는지 어쨌는지, 릭샤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어둑해진 암리차르의 거리를 저어나갔다.

릭샤는 낯선 길로 접어들었다. 본 적 없는 암리차르의 풍경이 드러났다. 크고 세련된 현대식 건물 안으로, 고가의 브랜드 상점이 즐비했다. 모든 것이 새롭고, 깨끗하고, 비싼 거리. 그 거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낡은 릭샤가 두 배낭 여행자를 달고 바퀴를 절며 도로를 굴러내려 갔다.

"진짜 50루피 줘?"

또 시작이다. 릭샤를 탈 때마다 닥쳐오는 이 고뇌. 람박까지 50루피에 가기로 했지만, 생각보다 거리가 멀다. 사이클 릭샤를 만든 사람은 승객을 최대한 깊은 고뇌에 빠지게 하는 방향으로 릭샤를 고안해 낸 것이 분명하다.

릭샤 뒷좌석에 앉아 둥글게 말린 릭샤꾼의 어깨를 보고 있자면 반드시 50루피만 내리라, 50루피만 해도 현지인이 내는 것의 10배는 되는 것이다 하고 차갑고 굳건하게 다짐했던 마음은 대충 쌓아올린 성냥개비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100루피를 더 주기로 했다.

"저 사람은 티켓 샀는데... 왜 우리는?"

와가 국경을 가득 채운 군중. 매일 열리는 국기하강식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다.
 와가 국경을 가득 채운 군중. 매일 열리는 국기하강식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다.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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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더스틴의 방향 설명을 들으며 람박 공원을 한 바퀴 삥 돌았다. 공원은 해가 진 도시의 선선함을 즐기러 나온 가족들로 활기가 돋았다. 공원으로 향하는 내내 힌두어로 뭔가를 조잘대던 릭샤 아저씨는 공원에 오자 말이 더 많아졌다.

여기가 람박 공원이다. 여기가 그 유명한 그 사람의 집이다. 뭐 그런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물론 힌두어로. 우리가 알아듣든 말든 개의치 않고. 고맙다. 못 알아듣는 힌두어지만 이야기를 나눠줘서. 아저씨의 나긋나긋한 문장 사이를 찌르르, 벌레의 울음소리가 장식했다. 풀냄새가 났다. 저녁 공기가 선선하다.

주변 릭샤꾼들의 도움을 받아 기어코 숙소에 도착했다. 배낭을 챙겨 다시 릭샤 위에 올랐다. 오후 8시, 버스터미널이다. 150루피를 냈다.

"오, 땡큐! 땡큐!"

뜻밖의 웃돈에 아저씨는 오늘 밤 암리차르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마냥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인사했다. 멋쩍다. 더스틴과 나는 어쩌다가 한국에서, 미국에서 태어나 대학도 가고 돈도 벌어 그 돈으로 여행이나 하고 있는데 말이지.

내가 만약 인도에서 태어나 학교도 못 다니고 평생 사이클 릭샤를 끌고 있다면. '노 땡큐'를 연발하다 아주 가끔 릭샤를 타는 주제에 가격이나 깎으려는 얄미운 외국인 여행객을 뒤에 태우고 페달을 밟고 있다면. 1년 번 돈을 다 모아도 꿈도 못 꿀 구두를 파는 백화점 쇼윈도 옆을 지나고 있다면. 아마도, 대단한 분통을 터뜨렸겠지. 민망해진 우리는 아저씨에 질세라 셀 수 없는 땡큐를 밤 공기 위로 쏟아냈다.

버스 정류소. 델리행 티켓은 없었다. 아니 없단다. 오후 8시에 오면 표를 살 수 있다던 직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인도는 항상 이런 식이다. 예약이 안 된다던 표는 언제나 매진이다.

"방금 저 사람 델리행 티켓 산 거 아닌가요?"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방금 다녀간 인도 사람이 델리행 티켓을 샀다. 외국인에게만 안 파는 거야? 나는 분통을 터뜨렸다. 분명히 아침에 예약이 안 된다고 했다고! 델리행 티켓을 달라! 표를 달라! 우리에게도 표를 살 권리가 있다! 외국인을 차별하지 마라! 우리는 시위자가 돼 '델리 티켓 포 투!'를 연발하며 창구 앞에서 난동을 부렸다. 주위 사람들이 눈을 가늘게 뜨고 우리를 비웃었다.

릭샤 아저씨와 암리차르 공원 드라이브를 하며 잠시나마 움텄던 인도에 대한 애정이 뿌리째 뽑혀 나갔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와가 국경에서 VIP 좌석을 받을 때는 좋다고 하던 나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티켓을 팔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리며 해진 암리차르의 버스 정류장을 휘젓고 다녔다. 나도 참 치사하다.

하늘 높이 발차기, 킥!
 하늘 높이 발차기, 킥!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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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와가 , #인도 파키스탄 국경, #와가 국기하강식, #암리차르,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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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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