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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 동안 남편과 인도·네팔·동유럽으로 배낭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여자와 미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남자가 같이 여행하며 생긴 일, 또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며 겪은 일들을 풀어내려고 합니다. - 기자 말

암리차르 황금사원의 무상급식소. 나눔을 중시하는 시크교의 철학에 따라, 시크교의 총본산이 황금사원에서는 누구나 무료로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다.
 암리차르 황금사원의 무상급식소. 나눔을 중시하는 시크교의 철학에 따라, 시크교의 총본산이 황금사원에서는 누구나 무료로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다.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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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을의 선선한 공기를 태우고 달리던 버스 안으로 더운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버스가 저지대로 내려갈수록 공기는 무겁고 축축해졌다. 앞좌석 손잡이를 잡은 두 손 위에 얼굴을 기댔다. 손에서 땀이 새어나왔다. 미끈한 땀이 손잡이의 녹슨 쇠를 어루만졌다. 손에서 녹슨 쇠의 찡한 냄새가 났다. 이게 무슨 냄새더라. 생각났다. 엄마 심부름을 갔다가 거스름돈 동전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손에 꼭 쥐고 집으로 갔을 때 손에서 나던, 그때 그 냄새. 

다람살라에서 푼자비주로 가는 버스에는 승객이 많지 않았다. 열댓 명의 인도인들과 프랑스 가족, 그리고 더스틴과 내가 승객의 전부다. 버스의 나머지 공간은 점점 무더워지는 공기와 침묵이 묵묵히 채워나갔다. 규칙적으로 부는 더운 바람에 눈이 스르르 감기려던 차, 날카로운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버스 안 침묵을 깼다.

프랑스 꼬마 둘은 버스에 오르기 전부터 대단한 인기였다. 길고 풍성한 금발의 곱슬머리. 싱그러운 빨간 입술. 하얀 피부 위에 보석같이 박힌 파란 두 눈의 6살짜리 여자아이. 그리고 그 옆에 누나의 손을 잡고 선 네 살배기 남자아이. 버스가 출발하기 전, 인도 아저씨들은 두 꼬마를 둘러싸고 서서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핸드폰 카메라로 바삐 담아냈다. 꼬마들은 이 정도 인기몰이는 늘 있는 일이라는 듯 팬 사인회를 연 연예인처럼 의젓하고 예의 바르게 아저씨들의 사진 촬영을 응대했다.

아이들은 버스 안에서도 의젓했다. 날은 덥고 버스는 불편했지만, 단 한 번의 투정도, 응석도 없이 6시간의 버스 여행을 침착히 견뎌냈다. 하기야. 아이가 어릴 때부터 함께 세계 여기저기를 여행하는 유럽 사람들이니, 이 두 꼬마가 그들보다 20년은 더 산 우리보다 훨씬 더 여행 베테랑일지도 모른다.

암리차르의 골목
 암리차르의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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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원에서 나가 조금만 걸어가면 나오는 '잴리언왈라 바그'. 1919년, 평화시위를 위해 모여든 무고한 인도 군중을 향해 영국군이 총대를 겨누어 수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벽에 뚫린 구멍은 총자국.
 황금사원에서 나가 조금만 걸어가면 나오는 '잴리언왈라 바그'. 1919년, 평화시위를 위해 모여든 무고한 인도 군중을 향해 영국군이 총대를 겨누어 수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벽에 뚫린 구멍은 총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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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좌석에 나란히 앉아 장난을 치던 남매가 몸을 돌려세웠다. 두 아이는 옆에 앉은 엄마의 볼록한 이마를 닮아 있었다. 4살 6살 두 아이의 파란 눈동자 위로 버스 창 밖의 인도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버스 안팎을 이리저리 살피던 호기심 많은 두 쌍의 파란 눈이 뒷좌석에 앉은 할아버지 얼굴 위로 동시에 멎었다.

머리를 빡빡 민 인도 할아버지. 긴 금발의 여자아이. 곧게 뻗은 바가지 머리를 한 남자아이. 역삼각형 구도로 마주한 셋이 서로를 응시했다. 아이 둘이 입가에 손을 올리고 꺄르르 웃었다. 할아버지의 뒷모습도 씨익 웃었다. 셋은 친구가 되었다.

버스에는 잡상인들이 유난히 많이 들락거렸다. 상인들은 버스가 속도를 늦추는 틈을 타 잽싸게 버스 위로 올라탔다. 푼자비주의 더운 날씨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승객들 덕에, 잡상인들이 파는 차가운 음료수와 과일은 꽤 잘 팔리는 편이었다. 깡마르고 키 큰 젊은 남자 하나가 버스에 올랐다. 남자는 목까지 길게 이어진 끈에 달린 아이스박스를 들고 있었다.

아이스박스 안에는 알루미늄 거푸집들이 규칙적으로 꽂혀 있었다. 거푸집 속에서 시원한 잠을 자는 주인공은 쿨피(인도식 아이스크림). 남자는 주위를 살피며 버스 뒤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승객들은 주문에라도 걸린 듯 하나같이 남자를 불러세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승객들 손에서 차가운 쿨피가 매끄럽게 빛났다.

시원하겠다. 먹고 싶다. 맥그로드 간지에서 겪은 끔찍한 설사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저것은 홈메이드 아이스크림. 저 젊은 남자가 푼자비의 음침한 도로 구석 어딘가에서, 직접 요거트를 붓고 막대기를 꽂은 아이스크림. 포장지 따위는 없다. 그것도 모자라 가격이 10루피밖에 되지 않는다. 인도에서 절대 먹지 말아야 할 음식 10위 안에 들 만한 불량식품이다. 앞좌석 아저씨 손에 든 시원한 얼음과자에서 차갑고 하얀 물이 뚝, 하고 떨어졌다. 나는 남자를 불렀다. "쿨피 하나요!"

암리차르 황금사원 입구. 사원 앞에는 발을 씻기 위한 작은 못이 있다.
 암리차르 황금사원 입구. 사원 앞에는 발을 씻기 위한 작은 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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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교의 창시자 구루 나나크는 신의 계시를 받은 후 전도 생활을 위해 인도 각지를 떠돌아다녔다. 구루 나나크가 아무것도 지닌 것 없이 인도를 떠돌면서도 생을 연명할 수 있었던 건 사람들의 나눔 덕분이었다.
 시크교의 창시자 구루 나나크는 신의 계시를 받은 후 전도 생활을 위해 인도 각지를 떠돌아다녔다. 구루 나나크가 아무것도 지닌 것 없이 인도를 떠돌면서도 생을 연명할 수 있었던 건 사람들의 나눔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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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이 할아버지도 남자를 불러세웠다. 할아버지는 양손에 탐스러운 쿨피를 하나씩 집어들었다. 할아버지가 오른손에 든 아이보리색 쿨피를 쪽, 하고 빨았다. 왼손에 든 쿨피는 곱슬머리 누나 손에 들려주었다.

"What is this?(이게 뭐예요?)"

명랑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여자아이가 물었다.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힌두어로. 여자아이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리더니 할아버지를 빤히 쳐다봤다. 할아버지가 다시 쿨피를 쪽, 하고 빨았다. 아이는 알아들었다는 듯 씩 웃었다. 그리고 외쳤다. "땡큐!"

쿨피를 한 번 쪽, 빤 여자아이가 쿨피를 남동생 입가에 대주었다. 남동생도 누나를 따라 쿨피의 가장자리를 쪽, 하고 빨았다. 히죽히죽. 두 남매가 할아버지를 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할아버지의 뒤통수도 히죽히죽 웃었다.

옆에 앉은 엄마는 볼록 나온 이마를 검지로 쓰다듬었다. 불편한 기색이다. 하긴. 이 의심스러운 인도식 홈메이드 아이스크림을 먹고 아이가 배탈이 날 확률은 반반이니까. 엄마가 그러건 말건. 아이들은 엄마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쿨피를 열심히 핥았다. 할아버지도 핥았다. 나도 핥았다. 히죽히죽. 할아버지의 빡빡 민 뒤통수가 다시 웃었다. 나도 웃었다.

황금사원 연못과 시크교도. 시크교도들은 주로 주황색이나 남색으로 된 두건을 쓴다.
 황금사원 연못과 시크교도. 시크교도들은 주로 주황색이나 남색으로 된 두건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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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교 경전 '아디 그란트'를 보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황금사원은 구루 나나크가 시크교를 창설한 곳이며 시크교의 경전인 '아디 그란트'가 편찬된 곳이다. 황금사원 자체도 경전 아디 그란트를 소장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시크교 경전 '아디 그란트'를 보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황금사원은 구루 나나크가 시크교를 창설한 곳이며 시크교의 경전인 '아디 그란트'가 편찬된 곳이다. 황금사원 자체도 경전 아디 그란트를 소장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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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교의 나눔에는 차별이 없다

버스는 암리차르로 접어들었다. 습기 찬 공기는 묵직한 듯 가벼웠다. 버스가 스쳐 가는 도시 남자들의 몸은 두껍고 단단했다. 체구가 큰 남자들은 하나같이 자기 얼굴 크기의 크고 단단한 두건을 두르고 있었다. 혼자 몸만으로도 버스를 가득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남자 하나가 버스 위로 올라탔다. 남자는 긴 칼을 허리춤에 차고 있었다. 경찰인가. 심각한 표정의 남자 뒤로 다른 남자들이 따라 올랐다. 남자들은 버스의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작은 알루미늄 컵을 승객들에게 나눠주었다.

물이다. 차가운 물.

이상한 광경은 계속됐다. 주인공은 다시, 버스에 올랐던 남자와 비슷한 용모의 두건남들이다. 테이블 위로 올라선 남색 두건의 남자 주위로 군중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나는 창 밖으로 고개를 빼고 남자 주위를 유심히 살폈다. 군중을 이끈 건 허리춤에 찬 칼도 아니고 남자의 단단한 몸도 아니었다. 화채였다. 수박화채. 더위에 지쳐 손을 내뻗는 사람들 손 위로 얼음 화채가 오갔다. 화채와 빈 그릇뿐, 지폐는 단 한 푼도 오가지 않았다.

"시크교도야", 더스틴이 속삭였다. 시크교? 읽고 있던 소설책, <적절한 균형>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시크교도의 상징인 쇠 팔찌 '카라'를 차고 있던 택시 기사. 정부의 시크교도 탄압으로 신분을 숨기려 팔찌를 뺐지만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던 손목. 불안하던 기사의 눈빛. 그 사람들이구나. 한 종교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탄압의 역사라니, 꽤 슬프고 억울한 종교다.

황금사원 내부 시크교 중앙 박물관. 박물관 대부분의 소장 자료는 시크교도가 받은 박해에 관한 자료이다. 인도 인구의 1%를 차지하는 소수 종교인 시크교는 수차례 심한 박해를 받았다. 그 때문에, 평화와 선행이라는 시크교의 철학과 어울리지 않게 저항운동과 전투적인 태도로 상징되기도 한다.
 황금사원 내부 시크교 중앙 박물관. 박물관 대부분의 소장 자료는 시크교도가 받은 박해에 관한 자료이다. 인도 인구의 1%를 차지하는 소수 종교인 시크교는 수차례 심한 박해를 받았다. 그 때문에, 평화와 선행이라는 시크교의 철학과 어울리지 않게 저항운동과 전투적인 태도로 상징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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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화채를 나눠주는 시크교도들. 몰려든 군중.
 길거리에서 화채를 나눠주는 시크교도들. 몰려든 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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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향하는 암리차르는 시크교의 역사와 문화의 중심이 되는 도시다. 1577년 시크교 제4대 교주 람다스가 시크교 신앙의 중심지로 성스러운 암리타사라스(불멸의 연못) 주변에 건설한 도시로, 도시 이름 또한 이 연못 '암리타사라스'에서 비롯되었다.

암리차르의 중심에는 황금사원이 있다. 황금사원은 시크교의 총본산이다. 황금사원은 구루 나나크가 시크교를 창설한 곳이며 시크교의 경전인 '아디 그란트'가 편찬된 곳이다. 황금사원 자체도 경전 아디 그란트를 소장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황금사원을 중심으로, 암리차르를 비롯한 푼자비주에는 많은 시크교도가 거주한다. 시크교도들을 분간하는 건 어렵지 않다. '칸데 키 파훌(khanḍe-kī-pahul)'이라 불리는 종교의식을 치른 시크교도들은 '다섯 개의 케이(Five Ks)'를 몸에 지닌다. 다섯 개의 케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케스키(Keski)'라 불리는 두건. 화채와 물을 나눠주던 남자들 머리 위에 단단히 자리 잡은 그 두건이다.

남색이나 주황색을 띠는 두건 안쪽에는 신이 인간에게 내린 것을 훼손하지 않는 의미로 자르지 않은 긴 머리카락, '케쉬(Kesh)'가 고정되어 있다. 긴 머리카락은 하루에 두 번, 정돈된 삶을 유지하는 의미로 나무 빗인 '캉가(kangha)'로 빗질한다. 허리춤에는 용기와 약자에 대한 보호를 상징하는 '키르판(Kirpan)'을 차며, 옷 안쪽으로는 겸손과 정결함을 위한 속바지 '카체라(Kacchera)'를 입는다.

케스키(시크교의 두건)을 쓴 시크교도
 케스키(시크교의 두건)을 쓴 시크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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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교를 창설한 건 하급 카스트 출신의 구루 나나크다. 그 때문인지 시크교는 카스트 제도를 배격하며 인간의 절대 평등을 주장한다. 일체의 종교의식을 거부하는 시크교는 형식적인 종교의식 대신 현세에서의 선행과 신에 대한 사랑만으로 인간이 구제될 수 있다고 믿는다.
 시크교를 창설한 건 하급 카스트 출신의 구루 나나크다. 그 때문인지 시크교는 카스트 제도를 배격하며 인간의 절대 평등을 주장한다. 일체의 종교의식을 거부하는 시크교는 형식적인 종교의식 대신 현세에서의 선행과 신에 대한 사랑만으로 인간이 구제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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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교를 창설한 건 하급 카스트 출신의 구루 나나크다. 그 때문인지 시크교는 카스트 제도를 배격하며 인간의 절대 평등을 주장한다. 일체의 종교의식을 거부하는 시크교는 형식적인 종교의식 대신 현세에서의 선행과 신에 대한 사랑만으로 인간이 구제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인도 인구의 1%를 차지하는 소수 종교인 시크교는 수차례 심한 박해를 받았다. 그 때문에, 평화와 선행이라는 시크교의 철학과 어울리지 않게 저항운동과 전투적인 태도로 상징되는 종교이기도 하다.

시크교의 창시자 구루 나나크는 신의 계시를 받은 후 전도 생활을 위해 인도 각지를 떠돌아다녔다. 구루 나나크가 아무것도 지닌 것 없이 인도를 떠돌면서도 생을 연명할 수 있었던 건 사람들의 나눔 덕분이었다. '나눔'은 '절대 평등'과 함께 시크교의 기본이 되는 철학이다. 종교, 계급, 성별, 국적, 돈이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나눔을 베푸는 것이, 종교의식을 배척하는 시크교도들의 단 하나의 종교의식이다.

시크교의 총본산인 황금 사원은 그런 시크교도의 철학인 나눔과 평등의 중심지다. 황금사원은 배낭 여행객들 사이에서 무료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시크교도든 힌두교도든 외국인이든 누구나, 황금 사원 내부에 마련된 숙소에서 무료로 잠을 잘 수 있다. 심지어 밥도 준다. 화채에 물에 밥에 잠자리까지. 이 두건남들. 퍼줘도 너무 퍼준다.

황금사원 왼쪽에는 'Free Kitchen(프리 키친)'이라는 간판이 붙은 건물이 있다. 무료로 음식을 나누어주는 곳이다. 공짜로 잠까지 자는 건 염치 없는 우리는 식당이나 가보기로 했다. 쭈뼛거리며 신발을 벗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은 하나의 커다란 강당 같은 곳이었다. 수십 명의 인파가 식당으로 들어오고, 또 나가고 있었다.

바닥에 겸손하게 앉은 사람들은 인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줄을 맞춰 앉아 있었다. 더스틴과 나도 차례를 기다렸다가 옆 사람들 줄에 맞춰 바닥에 주저앉았다. 두건남 열댓 명이 바닥에 앉은 사람들에게 식판과 수저를 나누어줬다. 이어 바구니를 든 다른 두건남이 코코넛 줄과 달, 짜파티를 식판에 덜어주었다.

황금사원 무료급식소. 은색 알루미늄 식판 위에 놓인 하얀 짜파티를 손으로 찢어 입에 넣었다. 돈 많은(?) 여행객 주제에 염치없이 공짜 밥을 얻어먹고 있자니 빡빡이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황금사원 무료급식소. 은색 알루미늄 식판 위에 놓인 하얀 짜파티를 손으로 찢어 입에 넣었다. 돈 많은(?) 여행객 주제에 염치없이 공짜 밥을 얻어먹고 있자니 빡빡이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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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원 무료급식소에서 받은 코코넛죽과 짜파티. 소박한 음식이지만 차별없는 시크교도들의 나눔때문인지 따뜻하다.
 황금사원 무료급식소에서 받은 코코넛죽과 짜파티. 소박한 음식이지만 차별없는 시크교도들의 나눔때문인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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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색 알루미늄 식판 위에 놓인 하얀 짜파티를 손으로 찢어 입에 넣었다. 돈 많은(?) 여행객 주제에 염치없이 공짜 밥을 얻어먹고 있자니 빡빡이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프랑스 아이들에게 쿨피를 쥐여준 인도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다른 승객들과 다를 것 없는 대단치 않은 빛바랜 셔츠를 입고 있었다. 10루피 하는 쿨피 정도야 돈이 많든 적든 누구나 살 수 있는 거지만, 하얀 피부를 살짝 긁기만 해도 돈이 떨어질 것 같은 프랑스 꼬마에게까지 쿨피를 나눠줄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원하기만 하면 쿨피 열 개고 스무 개고 사서 길가에 버려도 그만인 사람들 아닌가.

20루피면 사먹고도 남을 짜파티는 정말 돈이 없어서 밥을 굶는 사람들에게 나눠줘야 마땅한 거 아닌가. 하루에 500루피 넘는 예산으로 수개월을 여행하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까지 줄 것까진 없잖아.

황금사원 무료급식소. 식당은 하나의 커다란 강당 같은 곳이었다. 수십 명의 인파가 식당으로 들어오고, 또 나가고 있었다. 바닥에 겸손하게 앉은 사람들은 인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줄을 맞춰 앉아 있었다.
 황금사원 무료급식소. 식당은 하나의 커다란 강당 같은 곳이었다. 수십 명의 인파가 식당으로 들어오고, 또 나가고 있었다. 바닥에 겸손하게 앉은 사람들은 인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줄을 맞춰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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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차르는 시크교의 역사와 문화의 중심이 되는 도시다. 1577년 시크교 제4대 교주 람다스가 시크교 신앙의 중심지로 성스러운 암리타사라스(불멸의 연못) 주변에 건설한 도시로, 도시 이름 또한 이 연못 '암리타사라스'에서 비롯되었다.
 암리차르는 시크교의 역사와 문화의 중심이 되는 도시다. 1577년 시크교 제4대 교주 람다스가 시크교 신앙의 중심지로 성스러운 암리타사라스(불멸의 연못) 주변에 건설한 도시로, 도시 이름 또한 이 연못 '암리타사라스'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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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나눔은 그런 게 아닌가.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좋았다. 무언가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쿨피 하나를 나누었다. 그뿐이다. 시크교도들에게,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나눔이란 가난한 자에게만, 종교가 같은 사람에게만, 나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에게만 베푸는 적선이나 계산이 아니다. 적선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나눔은 휴지 위에 물이 번지듯 평등하게 번지는 인간적인 정이다. 그 정은 돈 많은 관광객에게도, 나의 형제를 박해한 힌두교도들에게도 막힘 없이 평등하게 흐른다.

이 두건남들, 꽤 매력적이다.

황금사원은 연못으로 둘러싸여있다. 이 연못이 성스러운 암리타사라스로, 불멸의 연못이다.
 황금사원은 연못으로 둘러싸여있다. 이 연못이 성스러운 암리타사라스로, 불멸의 연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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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최규화 기자



태그:#암리차르, #시크교, #황금사원, #푼자비,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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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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