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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함께합니다. 그가 품는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너무나 아파서 가슴이 막막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오며, 작기만 했던 가능성은 어느덧 기대 이상으로 실현됐습니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중심에는 '사람은 상처 받고 고통만 당하기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약 24년(1991~2014년) 동안 조카와 함께 울고, 웃던 나날들의 경험이, 어떻게 풍성한 열매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 말

종이접기는 덕이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종이접기는 덕이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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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장애인 복지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종이접기를 배우고 있다. 올해 4학년이 된 덕이는 특수반에서도 이제 고학년반인 목련반으로 올라갔다. 덕이의 종이접기가 목련반 아이들에게도 즐거움을 주는 터라 덕이도 덩달아 즐거워했다. 특수반은 덕이에게 학교생활의 비상구 역할을 충분히 해주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는 나로서는 매번 덕이를 복지관까지 태워다주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덕이와 함께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이곳에서 내려야 한다", "만약 잠들어서 복지관에서 못 내리더라도 그냥 타고 있으면 집에 올 수 있으니, 다른 곳에서 내리면 안 된다", "누가 덕이에게 '맛있는 것 사줄게 함께 가자'고 해도 절대 따라가서는 안 돼" 등등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설명하며 단단히 일러뒀다. 덕이는 사람을 무척 좋아해서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갔다. 그 점은 늘 덕이에게 관심을 가져야 함을 의미했다.

종이접기 수업이 끝난 뒤에도 어디에서 버스를 타고 어디에서 내려서 어떻게 걸어와야 하는지 반복해서 알려주었다. 다행인 것은 덕이가 타고 다니는 버스의 종점이 우리 집 근처라는 점이었다. 종점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데 약 5분 정도 걸리는, 덕이가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거리였다. 당시에 초등학교를 가는 데도 약 10분 정도 걸렸으니, 덕이가 잘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종이접기는 손으로 접었을 때 다양한 색들과 모양이 나타나는데, 덕이는 무척 흡족해했다. 사실 나도 조금 놀랐다. 덕이가 이렇게 종이접기를 좋아하고 잘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처음 약 1년 정도는 선생님께 지도를 받더라도 겨우 종이를 꾸기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어느새 책에 나와 있는 그림을 보고 그대로 접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종이접기에 푹 빠진 덕이가 사라졌다

"덕아, 덕이는 종이접기가 재밌니?"
"응, 좋아."
"이번에 접는 모양은 뭐니?"

덕이는 미소만 짓고 열심히 종이를 접는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쉽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온 정성을 다한다. 보고 있는 나도 기쁘다.

"덕아, 이번에는 누구 줄 거야?"
"슬기(가명) 줄 거야."

슬기는 같은 학년임에도 덕이를 오빠라고 부르며 잘 따르는 아이였다.

"슬기는 좋겠다. 덕이가 종이접기도 해서 주고, 함께 놀아주고. 그치?"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저 열심히 접을 뿐... 동생들을 유난히 좋아하는 덕이는 요즘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다. 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 본인의 작품을 선물로 주고 있으니... 이렇게 나름의 생활에서 마음에 여유를 부릴 때 덕이가 없어졌다. 복지관에 간다고 나간 덕이가 복지관에 안 간 것이다.

나는 퇴근 후 오후 7시에 알게 되었다. 그동안 어머니나 다른 가족들이 쉽게 찾을 줄 알고 나에게 말하지 않으셨단다. 어떻게 된 거지? 어디 갔을까? 지금 혼자서 얼마나 무서워하고 있을까? 등등의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우선 버스종점에 찾아가서 다시 확인을 했다. 그러나 덕이의 행방을 아는 버스 운전기사는 없었다.

덕이는 평소에 자가용을 타거나 버스, 전철, 기차를 타면 5분도 안 되어 잠들어 버렸다. 그래서 덕이가 타는 버스 운전기사님들께 음료를 드리면서 "이 아이는 버스를 타면 멀미의 일종으로 5분도 안 되어 잠드니 번거로우시더라도 이 아이를 000복지관에서 깨워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눈도장을 찍었다. 다행히 덕이가 출발지점에서 버스를 타다 보니 운전기사의 바로 뒷좌석에 앉을 수 있어 깨우기가 수월했다. 그런데 덕이가 없어진 것이다.

이런 일을 우려해 나의 핸드폰 번호와 집 전화번호를 새긴 팔찌를 덕이 손목에 걸어줬었다. 누구라도 혹시 덕이를 본다면 연락을 주길 바라면서... 버스 노선을 따라 찾아보기로 했다. 강남버스터미널까지 갔다가 그곳에서 다시 집앞으로 돌아서 오는 노선이었다. 동생과 함께 핸드폰을 들고 찾던 중 덕이의 전화를 받았다. "고모..."하고 끊겼다. 이건 뭐지...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앵벌이로 잡혀간 것은 아닌지...

강남터미널 주위를 샅샅이 뒤졌지만...

일단 동생과 함께 차를 몰고 버스터미널로 갔다. 그 시간이 오후 9시 정도. 터미널로 들어가 방송을 부탁한다고 했더니 짜증을 냈다. "애가 없어져서 그러니 빨리 해달라"고 말하는데도 왜 그렇게 여유를 부리는 것인지... 겨우 두 번 방송하고 방송시간이 끝났다며 문을 닫으려 했다. 내가 화를 내며 "지금 방송시간이 문제냐, 아이가 없어졌는데..."라고 사정을 하자 3번 더 해주었다. 터미널 주위에 있는 공중전화를 몇 번이나 둘러보았다. 그러나 덕이는 없었다.

오로지 덕이만 생각하며 헤매던 중, 고속버스터미널의 맞은편에 있는, 편도 3차선 또는 4차선의 길 건너 공중전화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도 보지 않고 그곳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그곳에도 없었다. 안타까움에 나도 모르게 한탄이 나왔다. "덕아, 너 지금 어디 있는 거니?" 절규였다.

그 때 그 시간까지 떡을 팔고 계셨던 아주머니께서 "혹시 애 찾으슈?"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내가 "예"라고 답하자 지하도로 내려가는 계단을 가르켰다. 있었다. 거기에 덕이가 있었다. 혼자 계단과 계단을 왔다 갔다 하며 놀고 있었다. 눈물범벅이 되어 애타게 찾던 우리와는 달리 표정이 여유로웠다.

덕이를 안고 지하도로 건너 차있는 곳까지 왔다. 덕이를 내차 뒷좌석에 내 무릎 위에 앉혔다. 동생이 운전해서 집에 올 때까지 덕이를 끌어안고 울었으니 많이도 울었다.

의외로 덕이는 아무말도 안 하고 내가 우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런 덕이가 '고모가 어련히 알아서 데리러 오겠지'하는 믿음에서 그런 것 같아 고마웠고, 무던한 성격이 대견했다. 그렇게 덕이를 찾았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덕이도 많이 아팠겠지만 나 또한 사이사이에 많이 아팠구나...

○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버스 와 멀미, #사라지다, #찾다, #애끓는다, #무던한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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