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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보드랍고 향긋한 쑥을 끓여 먹어야지요. 그래야 짧은 봄을 보내도 아쉽지 않지요.
 봄, 보드랍고 향긋한 쑥을 끓여 먹어야지요. 그래야 짧은 봄을 보내도 아쉽지 않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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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향기가 진동합니다. 봄 향, 코로만 마실 게 아니라 입으로도 향긋하게 맛봐야지요. 지난 11일, 아내와 길을 나섰습니다. 여수 갯가길 3코스(돌산 방죽포해수욕장~향일암). 이곳은 5월 개장을 앞두고 한창 막바지 정비 중입니다.

"처~ 얼~ 석~, 처~얼~석~"

여수갯가길 3코스가 시작되는 돌산 방죽포 해수욕장 인근 바다는 파도마저 느릿한 게으름의 바다입니다.
 여수갯가길 3코스가 시작되는 돌산 방죽포 해수욕장 인근 바다는 파도마저 느릿한 게으름의 바다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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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죽포 해수욕장 앞 바다에 숭어가 정신없이 뛰어 오릅니다. 5월 보리 숭어가 맛나지요.
 방죽포 해수욕장 앞 바다에 숭어가 정신없이 뛰어 오릅니다. 5월 보리 숭어가 맛나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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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죽포 해수욕장. 파도 소리마저 느려 터졌습니다. '천천히'가 아무리 느림의 미학이라지만, 파도 소리까지 굼뜨니 속 터집니다. 이곳의 봄 바다는 긴 겨울잠에서 일어나기 싫은 게으름이 뚝뚝 묻어납니다. 그걸 본 파래, 김 등의 해초와 말미잘이 바다에게 '그만 벌떡 일어나시지'하며 볼을 꼬집습니다. 겨울잠이 너무 맛있나 봅니다.

바다 중간 숭어떼가 운동 중입니다. 숭어, 여기저기 물 밖으로 뛰느라 정신 없습니다. 멀리서도 '퐁당 퐁당'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는 갈매기 한 마리. 그림입니다. 뛰어오르는 숭어 떼가 침을 삼키게 합니다. 5월에는 보리 숭어가 맛나지요. 꿀꺽~

"콩나물밥, 달래장 기대해!" 맛은?

겨울을 난, 봄 기운 가득한 달래는 약초지요.
 겨울을 난, 봄 기운 가득한 달래는 약초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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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매~, 저 아깐 것을 다 버렸네."

여수 갯가길 3코스 중. 돌산 백포로 접어 들었습니다. 길가 밭에 달래가 무더기로 버려졌습니다. 그걸 본 아내, 무척 아까워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파 밭 사이에 무더기로 나 있는, 봄향 주렁주렁 묻어 있는 달래는 이 대파 밭에선 천덕꾸러기입니다. 달래가 대파의 성장을 억제하는 잡초라는 것이죠. 저걸 버리다니, 아무래도 일손이 딸리나 봅니다.

"철썩~ 쏴~ 철썩~ 쏴!"

백포 해안. 파도 소리가 우렁찹니다. 방죽포 해수욕장 인근 바다가 봄에 밀려나기 싫은 겨울 바다의 몸부림이라면, 몽돌이 구르는 백포 해안가는 봄과 씨름하는 듯 생동감 넘치는 바다입니다. 게다가 밋밋한 풍경에 운치를 더해주는 섬까지 있어 걷는 게 신선 놀음입니다. 아기자기한 갯가길이 자연스레 '힐링'을 부릅니다. 봄 바다 풍경에 입 쩍 벌리고 감탄하던 중, 상념을 깨는 소리.

"어머, 달래 좀 봐!"

아내의 놀라움과 즐거움에 가득 찬 외침. 걷다 말고, 급기야 봄과 놀려고 퍼질러 앉았습니다. 달래의 유혹에 넘어간 아내가 밉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처용가>에서, 귀신에게 아내를 뺏긴 처용도 눈 하나 깜짝 안 했걸랑요. 뿐만 아니라 걷기, 다음에 해도 됩니다. 하지만 달래 캐는 재미는 이 시기 놓치면 한참 기다려야 하니까.

"당신, 콩나물밥과 달래장 해 줄 테니 기대해!"

봄 향기 그윽한 달래장입니다.
 봄 향기 그윽한 달래장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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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호기(?)는 따로 믿는 구석이 있었나 봅니다. 정신 없이 달래 캐던 중에도 남편 맛있는 것 해 주려는 마음이 참 예쁩니다. 아니 감동입니다. 남자 나이 오십 넘으면 대파 밭 사이에 난 달래처럼 잡초 취급받기 마련. 매력 떨어진 볼 품 없는 남편을 챙기다니. 봄은 이렇듯 예상을 깹니다. 갑자기 없던 힘이 불끈합니다.

쑥국, 한 번은 먹고 봄을 보내야 미련이 덜하다

"달래가 잘 안 뽑히네."

봄 캐는 아내를 뒤에서 가만 지켜보다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아 달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웬 걸, 달래, 캐기 마저 조심스럽습니다. 힘을 까딱 잘못 쓰다간 뿌리째 뽑기는커녕 싹둑 잘라 먹기 일쑵니다. 방긋 웃음이 납니다. 이쯤이면 여수 갯가길 3코스 전체 걷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대율~소율~임포 향일암' 구간은 다음에 걷기로 합니다.

"당신이 쑥을 캐다니 너무 재밌다."

여수갯가길 3코스 개장을 앞두고 막바지 정비 작업 중입니다.
 여수갯가길 3코스 개장을 앞두고 막바지 정비 작업 중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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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갯가길 3코스 백포 인근 바윗길입니다. 갯가길의 아기자기함은 절로 힐링이 되지요.
 여수갯가길 3코스 백포 인근 바윗길입니다. 갯가길의 아기자기함은 절로 힐링이 되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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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캐는데 남자, 여자 따로 있남? 달래 캐기를 포기하고 쑥 캐기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봄 향 가득한 쑥 캐기도 장난 아닙니다. 칼 대신 사용하는 손톱에 쑥물이 진하게 들었습니다. 힘 조절 잘못하면 쑥이 뿌리째 뽑힙니다. 뿌리째 뽑아야 할 달래는 잘라 먹고, 뿌리 필요 없는 쑥은 뿌리까지 뽑고. 꼭 청개구리 같습니다.

"쑥국, 한 번은 먹고 봄을 보내야 금방 지나가는 봄에 대한 미련이 덜하지 않겠어?"

된장 풀어 끓인 쑥국. 봄국으로 최고지요. 그러고 보니 아내는 2주 전 남편 끓여준다고 쑥 캐 와선 고대로 말려 죽이고 말았답니다. 쑥국을 떠올린 건, 아마 미안함이지 싶네요. 헉, 이를 어째! 쑥을 캐다 보니 고사리까지 지천으로 널렸습니다. 여수 갯가길, 완전 봄의 잔칫날입니다. 봄 캔답시고 오랫동안 쪼그려 앉았더니 허리가.

봄은 바다 뿐 아니라 소나무까지 일깨웠습니다.
 봄은 바다 뿐 아니라 소나무까지 일깨웠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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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가져가 드셔요."

봄, 얼마나 캤을까? 아내, 싱글벙글입니다. 입이 귀에 걸렸습니다. 아내는 여수 갯가길 3코스 막바지 정비 작업 중이던, (사)여수갯가 김경호 이사장과 이회형 이사, 김남중 이사, 이판웅 이사, 한혜광 이사에게도 봄 향 가득한 달래를 한 아름씩 나눠 주었습니다. 그러고도 달래가 넉넉하게 남았다는 사실에 아내는 몹시 행복해 했습니다.

당신, 맛없다고 안 할 거지?... 누가 감히 아내에게

뜨끈뜨끈한 밥에, 삶은 콩나물을 듬뿍 넣고, 봄 향기 진한 달래장을 얹었습니다. 이런 콩나물밥 어디서 맛 보겠습니까!
 뜨끈뜨끈한 밥에, 삶은 콩나물을 듬뿍 넣고, 봄 향기 진한 달래장을 얹었습니다. 이런 콩나물밥 어디서 맛 보겠습니까!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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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말이 없는 봄 국의 지존, 쑥국입니다.
 두 말이 없는 봄 국의 지존, 쑥국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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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을 사서 집에 왔습니다. 남편은 달래, 쑥, 고사리를 분리하고 아내는 콩나물을 삶습니다. 남편은 달래에 묻은 흙 등을 씻었습니다. 쑥을 다듬었습니다. 봄 향에 코까지 즐거웠습니다. 아내는 콩나물밥에 끼얹어 먹을 달래장을 만들며 언제나처럼 한 마디 던졌습니다.

"당신, 맛없다고 안 할 거지?"
"왜 그래, 또!"

그동안 맛 없을 때가 없었지요. 아내 손맛은 '일품'을 넘어 '명품'입니다. 적어도 남편에겐. 그런데도 아내는 요리할 때마다 '맛' 걱정입니다. 이걸로 치면 아내는 참 겸손한 저만의 전용 요리사입니다. 하기야 진짜 맛없기로서니, 간 부은 남자 아님에야, 어찌 감히 맛 없다고 호기롭게 말하겠어요. 그 사이 콩나물밥과 달래장이 완성됐습니다. 쑥국도 끓였습니다.

"얘들아, 밥 먹자!"

식탁은 온통 봄입니다. 아! 뿔! 싸! 아이들은 풍성한 봄 요리를 거부합니다. "뱀 나오겠다"며 고기를 찾습니다. 아이들이 눈앞에서 배신 때릴 줄이야! 붙잡을 새도 없이 "이것들을 그냥"이란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야속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런 입맛으로 키운 부모 탓이지요. 아내와 남편은 봄 향 가득한 요리를 '맛~있~게~' 먹었답니다!

여기서 잠깐. 봄 요리 후기입니다. 아파트 옆 동에 혼자 사는 기러기 아빠가 있습지요. 손이 큰 아내가 콩나물과 달래장, 쑥을 따로 먹기 편하게 담았습니다. 한 끼 먹을 양이라면서. 남편은 나르기만 했습지요. 지인이 그러대요.

"콩나물밥 세 끼로 나눠 맛있게 먹었다. 각시한테 고맙다 캐라!"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봄향, #콩나물밥, #쑥국, #달래장, #여수갯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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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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