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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18일 첫 방문때 김순자 과학대노조 지부장이 교수와 학생들이 커터칼 가지고 다니며 찢은 현수막을 들어 보이고 있습니다.
▲ 찢어진 현수막 지난해 10월 18일 첫 방문때 김순자 과학대노조 지부장이 교수와 학생들이 커터칼 가지고 다니며 찢은 현수막을 들어 보이고 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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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일요일 오후 7시, 퇴근 시간이 됐습니다. 비가 내리던 그날, 저는 무거운 발걸음을 울산과학대로 옮겼습니다. 다음 날 근무가 야간이어서, 여유가 좀 있었거든요. 그래서 전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과 노숙하며 같이 밤을 보내고, 그 사연을 <오마이뉴스>에 올리려고 했습니다.

지난해 10월 18일,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이 본관 점거 농성을 한다고 해서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느꼈던 것들을 <오마이뉴스>에 올리려 했으나, 개인적으로 사기 사건에 휘말리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그 문제를 해결 하느라 좀 바빴습니다.

개인적인 문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다시 울산과학대 청소 노동자들 소식이 궁금해졌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본관 점거 농성을 하다가 길거리로 쫓겨 났다는 소식도 들었고, 울산과학대 교수와 학생으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있다는 소식도 접했습니다(관련 기사 :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문제, 이사장 직접 나서야"). 오는 11일은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이 농성을 시작한 지 300일이 되는 날이라고 합니다. 나이 든 그분들이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해 시간 날 때 하룻밤 그 곳에서 자보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의 상황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농성 300일 앞둔 그곳, 울산과학대를 찾았습니다

본관 점거파업 하면서 지난 날짜에 X표시를 해두었습니다. 본관 점거 파업당시 사진.
▲ 2014년 6월 16일부터 파업시작 본관 점거파업 하면서 지난 날짜에 X표시를 해두었습니다. 본관 점거 파업당시 사진.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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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8시께 울산과학대 정문을 들어섰습니다. 길 양 옆으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습니다. 보슬보슬 빗방울에 젖은 벚꽃잎이 바람결에 눈처럼 흩날리며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벚꽃이 핀 나뭇가지 사이로 리본이 많이 달려 있었고, 벚나무와 사이에 걸린 현수막은 찢긴 채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이 노숙 농성하는 장소를 찾기 위해, 불이 꺼져 어두운 학교 길을 따라 갔습니다. 학교가 언덕 위에 있어 가파른 산길을 타고 올랐습니다. 본관 뒤편으로 가니 작은 천막 하나가 보였습니다. 화단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리본이 보였고, 농성장으로 보이는 천막 앞엔 찢긴 현수막이 널브러진 채 비를 맞고 있었습니다. 농성장 안으로 고개를 내밀며 인사를 하고 현수막에 대해 먼저 물어 보았습니다(관련 기사 : "총장이 커터칼로 현수막 철거... 울산과학대 기막힌다").

"아이고 말도 마소.
작년에 우리가 시내 집회 다녀오는 사이에 과학대 교수들하고 학생들 수백 명이 커터칼, 가위 가지고 다니면서 저렇게 다 찢어놨다 아입니꺼. 얼마나 속상한지 아직도 분이 안풀려예. 다 연대해주는 노조에서 만들어 준 건데 아까워서 다시 묶어 달아 놓으려고 합니더."


대학교수와 학생들에 의해 찢겨진 현수막이 많이 있었습니다.
▲ 농성장 천막과 현수막 대학교수와 학생들에 의해 찢겨진 현수막이 많이 있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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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은 튼튼하게 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누가 설치해 준 것이냐고 물어보니 플랜트 노조에서 만들어 준 것이라 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니 다른 청소노동자들도 저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김순자 지부장과 몇몇 조합원이 천막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손자를 품에 안을 나이가 되신 분들 같았습니다. 그 분들은 저에게 저녁을 먹었는지부터 물었습니다. 안 먹었다고 하니, 간단히 저녁을 차려주시더군요. 저녁을 먹고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난해엔 본관 안에 있었는데 왜 밖에 천막을 치고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말도마예. 우리가 지난해 6월 16일부터 파업을 시작했지예. 파업하면서 바로 본관을 점거해버렸지예. 우리는 최저 시급 받고 일 몬하겠다꼬, 생활 임금을 달라고 이러고 있으니까 금방 끝날 줄 알았어예. 10년, 20년 다녔는데도 아직 최저 시급이 말이 되는교. 집에서 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인데 먹고 살게는 해줘야 보람된 직장으로 알고 열심히 일하잖아예.

전국에서 많은 분이 도와 주셔서 잘 버티고 있었는데 고마 지난해(2014년 10월 20일 아침 6시께) 법원 집달관하고 교수들이 우르르 와서 그대로 덜렁 들어밖으로 내동댕이 쳤어예. 부아가 치밀어 되겠심니꺼. 그래서 여기에 다시 천막치고 이렇게 노숙 농성하고 있는기지예."

지부장님은 지난
3일 다시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며 휴대폰으로 찍은 동영상을 보여줬습니다. 옆에 있던 조합원이 이야기를 돕습니다.

"저번엔 교수들이 나서서 그러더니 이번엔 학생들이 나서서 이러네요. 부모 같은 사람들이 생계비 좀 올려달라고 이러고 있는데 자식 같은 학생들마저 이러니 참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학생에 물어보니 리본 철거하는데 함께하면 학점 올려준다고 그랬다고 하대요. 그런 미끼를 던지니 학생들이 그렇게 많이 동원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동영상을 보니, 여러 명의 남녀 학생이 나무에 달린 리본을 뜯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동영상을 찍던 분이 인터넷에 올릴 것이라고 경고를 주는 데도 아랑곳 않고 철거를 이어갔습니다. 울산과학대 남녀 학생들은 청소노동자의 항의에도 그렇게 1시간 가량 철거 작업을 한 후 자진 해산했다고 합니다.

청소노동자들의 주장에 대해 울산과학대 관계자는 7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학생들에게 현수막 철거를 하면 학점을 주겠다고 한 건)사실 무근이다"라며 "(3일 발생한 일에 대해)따로 조치한 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울산과학대학교는 울산시 동구에 위치한 대학교로 울산공업학원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울산공업학원은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을 설립한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세운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3일 울산지법은 한 달 전인 10월 8일 학교측이 낸 '퇴거단행 및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을 받아들여, 농성중인 청소노동자 16명에게 각각 330만 원씩(11일분)의 강제이행금을 부과했습니다. 현재 노동자들의 통장은 압류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파업과 노숙 농성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정부가 청소 용역에게 주는 시중 노임 단가가 시급 7915원인데 우리 울산과학대 청소 노동자는 지난해 최저 시급인 5210원 받고 있습니다. 그것도 10년 이상 건물 곳곳을 쓸고 닦고 청소를 해오고 있는 사람에게요.

억울하게도 오히려 학교에서 업무 방해를 들어 가처분 신청을 했어요. 지금 우리는 농성장 철거를 당했고요. 1인당 330만 원을 내야 할 처지가 됐어요. 심지어 지금 단전·단수에다 화장실까지 사용하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그날 저녁 이야기를 오래 하다 보니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습니다. 노숙 농성 하는 분들은 "자기들만 못 가게 하지, 외부인은 가도 된다"며 안내해줬습니다. 화장실 다녀오니 노동자분들은 계란을 먹으라며 제게 건넸습니다. 민중 교회로 이름난 등대교회에서 부활절이라고 삶은 계란과 음료수를 주고 갔다고 합니다. 배가 불렀지만, 성의를 받아 한 개 까먹었습니다. 그 후 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노조원이 제 잠자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바닥은 따스했습니다. 잠자리에 누우니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습니다.

지난 6일 오전 8시 20분경부터 청소원 노동자들이 출근 시위를 했습니다.
▲ 울산동구과학대 정문앞 출근시위 지난 6일 오전 8시 20분경부터 청소원 노동자들이 출근 시위를 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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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았습니다. 이슬비가 계속해서 내리는 가운데 교직원 출근 시간에 맞춰 출근 선전전을 하러 나갔습니다. 둘로 나뉘어 한 쪽은 울산과학대 정문 앞에서 선전전을 하고, 한 쪽은 승합차를 몰고 총장이 산다는 마을로 갔습니다. 저도 따라 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총장의 차량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되어 다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철수했습니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이 모여 회의를 할 때 저는 조용히 그곳을 빠져 나왔습니다. 높은 언덕에서 아래로 내려오니 어두운 밤에 봤던 벚꽃 나무가 길 옆으로 화려하게 서 있었습니다. 지나는 길에 등교하는 학생들이 보였습니다. 그들에겐 봄 꽃바람이 싱그럽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남녀 학생들은 무심하게 농성장을 지나 건물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학교 안에선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늙은 노동자가 오늘도 노숙 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4월 11일 과학대 노조 300일 연대의 날 포스터
ⓒ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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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가치있는 삶인지 고민하는 교육 기관이 대학이라 여겨 왔는데 이번 울산과학대 청소 노동자의 파업 사태를 지켜 보며 그런 가치와는 너무 동떨어진 교육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따뜻한 인간미보다 학점과 취업에 더 관심을 두게 하는 대학 교육 현실에서 비정규직 노동 현실은 더 어두울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울산연대노조 울산과학대지부 청소노동자들이 드리는 글

우리는 청소밖에 모릅니다. 그러나 울산과학대에 들어올 내 자식같고, 손주같은 학생들이 더 나은 교육을 받기 바랍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대하는 교육. 낮은 자를 위하는 교육. 나만 잘 산다고 끝이 아닌, 이웃과 함께 사는 교육. 그러나 지금 울산과학대는 그런 교육을 가르치지 않는것 같습니다.


함께 10년을 일한 청소노동자들의 소박한 소원을 이처럼 무시하는 대학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배울지 무섭습니다. 학교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은, 대학의 주인인 학생들입니다. 학생들, 우리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에 힘을 주세요. 우리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세요.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이 이토록 아프게 싸우는구나, 관심 가지고 알려 주세요!

농성장을 나오는 데, 한 분이 읽어 보라며 작은 선전물 하나를 주었습니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의 호소문은 300일이 다 돼가는 노숙 농성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오는 11일이 농성 300일 되는 날이라 합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에선 그날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대학에서 청소하는 분들에게 생계비 조금 더 올려주는 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일까요? 비정규직이라 불리는 청소노동자도 무시 당하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태그:#울산과학대, #청소 노동자, #연대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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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노동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청소노동자도 노동귀족으로 사는 사회는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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