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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쿠사 이와지마 코스
 아마쿠사 이와지마 코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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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첫날, 비를 맞으면서 아마쿠사 이와지마 코스를 걸었다. 기왕에 걷는 것, 날씨가 맑으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그거야 희망사항인 거고, 멀리 규슈까지 걸으러 갔는데 비가 내린다고 걷기를 포기할 수야 없지. 대신 사진 찍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폭우가 내릴 때 걸으면서 카메라가 비에 젖어 사망하는 꼴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그래서 아예 방수 카메라를 장만했는데, 미처 챙기지 못했다. 인천공항에 가서야 생각이 났다.

버스에서 내려 배낭을 메고 비옷을 입었다. 그러면 배낭이 젖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카메라는 비옷 속에 꽁꽁 숨겼다. 사진 찍기를 완전히 포기할 수 없어 비가 잦아 들거나 그치면 사진을 찍을 작정이었다.

이와지마 코스를 걷는 내내 비가 내렸지만 다행히 빗줄기는 굵어지지 않았다. 비는 이따금 잦아 들어 안개비가 되어 흩뿌려지기도 했다. 덕분에 걷는 걸음이 더뎌지지 않고 잘 걸을 수 있었다.

아마쿠사에는 3개의 규슈올레 코스가 있다. 2월 28일, 개장식을 한 아마쿠사 레이호쿠 코스와 아마쿠사 마쓰야마 코스 그리고 아마쿠사 이와지마 코스다. 

[규슈올레 ①] 아마쿠사 레이호쿠 코스를 걷다

아마쿠사 이와지마 코스는 센자키 버스정류장에서 시작해 센조쿠 천만궁까지 이어지는 길로 전체길이는 12.3km이며, 소요예상시간은 4시간.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와지마 섬을 해안을 따라 거의 한 바퀴 도는 코스로 일본의 어촌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길이다.

난이도는 중상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비 내리는 날은 난이도가 달라질 수 있으니 주의할 것. 바닷가를 따라 걷는 길은 상관없지만, 산길은 비에 흙이 젖으면서 길이 미끄러워지기 때문이다. 특히 내리막길을 조심해야 한다. 넘어지거나 엎어지거나 자빠질 수 있으므로. 

센자키 고분
 센자키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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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자키 버스정류장에서 시작된 길은 숲으로 이어진다. 이곳에 선사시대 고분들이 흩어져 있다. 하지만 고분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덤이 너무 펑퍼짐했기 때문이다. 이게 낮은 고분이 맞는 거야?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더니 "고분"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긴 선사시대 무덤이라면 그 안에 묻힌 시신은 오래전에 한줌 먼지가 되어 흙에 섞여 들어 흔적조차 찾기 어려워졌을 것이다. 그러니 봉분이 펑퍼짐해지는 건 당연하리라. 그래도 고분 몇 기는 무덤처럼 보이기는 했다.

고분 유적이 있는 숲길을 벗어나니 길은 마을 지나 바닷가로 이어진다. 모래밭이 있는 해안 풍경이나 바다에 떠 있는 배는 우리나라 어촌 풍경과 다를 바가 없지만, 마을에 있는 집들은 모양이 확실히 우리나라와 다르다.

아마쿠사 이와지마 코스
 아마쿠사 이와지마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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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어항은 작은 마을이었다. 이 마을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건 아마쿠사 시마바라 난을 일으킨 아마쿠사 시로가 이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아마쿠사 시로는 16살의 어린 나이에 에도 막부의 과중한 세금과 천주교 탄압에 반발해 난을 일으켰다. 그를 따른 이들은 3만7천여 명에 이른다고 기록돼 있다.

이들의 봉기는 에도막부에 의해 진압됐고, 난에 참여했던 이들은 대부분 참수를 당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이와지마 섬은 천주교 순교지가 됐다. 아마쿠사에는 곳곳에 아마쿠사 시로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때문에 우리가 걷는 길은 예전에 아마쿠사 시로가 걸었던 길일 수도 있단다.

아마쿠사 이와지마 코스
 아마쿠사 이와지마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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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줄기는 이따금 거세지다가 잦아들기를 반복했다.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비옷을 입고 걸으면 비 때문에 옷이 젖는 게 아니라 땀 때문에 옷이 푹 젖는다. 어느 사이엔가 온몸이 땀으로 푹 젖었다. 공기가 통하지 않는 비옷 때문이다.

하늘은 검은 잿빛에 가까웠다. 마을을 벗어나기 전, 하늘을 올려다 보니 여러 겹으로 이어진 전깃줄에 제법 큰 새들이 어둔 하늘을 이고 무리지어 앉아 있었다. 새들은 낯선 사람들이 몰려오자 한꺼번에 검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무리 봐도 솔개 종류지 싶었다. 그래서 물었더니 솔개란다.

주큐사구 신사
 주큐사구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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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큐사구 신사를 지나자 아스팔트 포장이 된 완만한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대나무 숲이 듬성듬성 숨어 있는 구불거리는 길이었다. 그 길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참을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지나온 어촌이 내려다보였다. 마을 뒤로 바다에 점점이 뿌려진 섬들이 보였다. 일본이 섬나라라고 하더니 정말 섬이 많구나, 싶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계절에 오면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는 이와 사쿠라 꽃공원에서 벚꽃은 없었다. 벚꽃이 피기에는 계절이 너무 일렀던 것이다. 아쉬웠다. 하지만 어쩌랴. 그곳을 지나 산에서 내려오자, 쉼터가 나온다. 그곳에서 이와지마 주민이 따뜻한 차를 끓여놓고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쉼터 한쪽에 걸린 액자에는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자필로 쓴 글이 들어가 있어 눈길을 끈다.

나는 이와지마 보리새우를 사랑해요.

이와지마는 보리새우 양식으로 아주 유명한 섬이라고 했다. 이와지마 올레 코스 주변에는 잘 지은 집들이 많은데 이런 집들을 '보리새우 궁전'이라고 부른다는 게 가이드 혼조씨의 설명이다. 보리새우를 양식해서 번 돈으로 어마어마 하게 큰 집을 지었다는 의미란다.

이와지마 보리새우
 이와지마 보리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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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지마는 지금이야 보리새우 양식으로 소득을 올리면서 생활이 윤택해졌지만 예전에는 가난한 어촌이었기 때문에 먹고살기 어려워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난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고향을 떠난 이들은 도시의 빈민이 되거나 노동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으리라. 그런 이들에 대한 슬픈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게 혼조씨의 이야기다.

서명숙 이사장이 특별히 사랑하는 이와지마 보리새우, 이와지마 코스를 걷는다면 꼭 맛보기를 권한다. 아주 맛나다. 아마쿠사에서 먹었던 보리새우를 생각하니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다카야마 산을 지나면 대나무와 등나무가 뒤섞인 산길이 이어진다. 내리막길이다. 계단으로 이어진 길은 비에 푹 젖어 미끄럽기 짝이 없다. 발을 잘못 디디면 그대로 미끄러져 곤두박질 칠 것 같다. 조심해야지. 하지만 결국 미끄러지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엉덩이에 흙이 잔뜩 엉겨 붙었다.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다. 뒤에서 "괜찮느냐"는 말들이 쏟아진다.

길을 벗어나니 바다가 나타난다. 검은 자갈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해변 길은 바닷물에, 빗물에 푹 젖어서 검게 빛나고 있었다.

"자갈이 미끄러워요, 조심하세요."

누군가 소리쳤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자갈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금속성 소리를 토해냈다. "아파, 조심해서 밟아"라고 외치는 것처럼. 자갈밭에서 사람들의 걸음은 더뎌졌지만 내 걸음은 오히려 빨라졌다. 자갈밭은 해변을 따라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게 이어졌다.

아마쿠사 이와지마 코스. 검은 자갈밭이 이어지고 있다.
 아마쿠사 이와지마 코스. 검은 자갈밭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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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밭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숲으로 이어졌다. 한 때는 사람들이 다녔지만 이제는 잊힌 채 사라질 뻔 했던 길을 사람들이 찾아서 걷고 있는 것이다. 길은 사람들이 걸어줘야 빛나는 존재가 된다. 그 길이 끝에 마을이 있었다. 비를 잔뜩 머금은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득 채운 채 바닷가 마을을 굽어보고 있었다. 

어딜 가도 길은 바다와 이어져 있는 길이 아마쿠사 이와지마 코스였다. 우리는 시모야마 마을까지 걸었다. 시모야마 마을에서 이와지마 코스가 끝나는 지점인 센조쿠 천만궁까지는 2km 남짓. 그 길을 마저 걷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아쉬움을 남겨야 언젠가 다시 이 길을 걸으러 간다면서 배낭을 꾸리지 않을까?

규슈올레를 걷고난 뒤 절대로 빼먹어서는 안 되는 것 한 가지는 바로 온천욕이다. 이날 저녁, 우리 일행은 온천으로 유명한 우레시노로 이동,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푹 담그고 도보여행의 피로를 풀었다.

그래, 이 맛에 규슈올레를 걷는 거야.


태그:#규슈올레, #이와지마, #아마쿠사, #보리새우, #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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