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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길바닥에 엎드려 밤샌 오체투지 참가자가 지난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비정규직 법·제도 철폐를 요구하며 오체투지 행진을 이어가려하자, 경찰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이날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시간 청와대에서 신년기자회견을 진행하는데 차가운 바닥에서 온 몸을 기는 우리들의 절박한 외침을 들을려고 하지 않고 있다"며 규탄했다.
▲ 오체투지 "우리의 절박한 외침 듣지 않나요" 차가운 길바닥에 엎드려 밤샌 오체투지 참가자가 지난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비정규직 법·제도 철폐를 요구하며 오체투지 행진을 이어가려하자, 경찰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이날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시간 청와대에서 신년기자회견을 진행하는데 차가운 바닥에서 온 몸을 기는 우리들의 절박한 외침을 들을려고 하지 않고 있다"며 규탄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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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걸음을 걷고 몸 전체를 땅바닥에 대며 절한다. 다시 열 걸음을 걷고 절하기를 반복한다. 엎드려 있으면 땅에 댄 얼굴 옆으로 행인들의 발이 지나간다. 비아냥거리는 말들이 귀에 들어온다. "일자리 줄 테니 그만하지"라며 낄낄거린다. "적당히들 하지"하며 혀를 찬다.

가장 낮은 자세로 갖은 모욕을 감수하며, 온몸으로 소리치는 것이다. "제발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정리해고법과 비정규직법의 철폐. 절망의 상징인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을 복직 시키고,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법을 없애자는 것이 지난 7일부터 진행된 2차 오체투지 행진단의 요구였다.

나는 지난 10일 아침부터 참가했다. 행진은 지난 11일에 청와대 앞 기자회견으로 마무리될 예정이었지만, 결국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형광색 울타리와 매연을 뿜어내는 버스에 둘러싸여 그날 밤을 꼬박 밖에서 보냈다.

하루 저녁을 꼬박 찬바닥에 엎드려 지샜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 해서 마무리 기자회견을 보지 못하고 일어섰다. 바람이 쌩 불었다. 구미와 평택 굴뚝 위 차광호, 김정욱, 이창근씨 등 고공 농성자들이 걱정이다. 이 나라는 왜 이 추운 날에 노동자들이 굴뚝 위에 올라가 있어야 하는지, 왜 언 땅바닥에 몸을 내던지는지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엎드린 이들의 팔다리를 주무르다 나도 엎드렸다

차가운 길바닥에 엎드려 밤샌 오체투지 참가자가 지난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비정규직 법·제도 철폐를 요구하며 오체투지 행진을 이어가려하자, 경찰이 이를 저지하며 참가자의 사지를 붙들고 이동하고 있다.
▲ 사지 붙들려 옮겨지는 오체투지 행진단 차가운 길바닥에 엎드려 밤샌 오체투지 참가자가 지난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비정규직 법·제도 철폐를 요구하며 오체투지 행진을 이어가려하자, 경찰이 이를 저지하며 참가자의 사지를 붙들고 이동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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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후,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앞 횡단보도를 지나는데 경찰이 갑자기 벽을 쳤다. 오전에 오체투지를 하던 강남대로에서는 더 큰 횡단보도에서도 오히려 경찰들이 교통 신호기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행진을 보호하기까지 했는데 무슨 기준인지 알 수 없었다. 행진 대열이 끊기고 미처 건너지 못한 이들이 항의했지만, 경찰은 '교통 방해'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 와중에 몇 행진단이 경찰 발밑에 엎드려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버틴 4시간여. 해는 이미 져가고 있었고, 땅은 얼어 있었다. 안절부절못하며 엎드린 이들의 팔다리를 주무르다 나도 엎드렸다. 가장 적극적인 저항의 방식이었다. 방패가 정수리를 누르고, 머리 위로 비명이 들렸지만, 고개를 들지 않았다.

쌍용자동차 김득중 지부장과 기륭전자 윤종희 조합원이 대한문에 엎드려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몸을 일으키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막지 않았다면 몇 분 만에 지나갔을 길이었다. 주위에서 "괜찮냐, 아픈 데는 없냐"고 물었다. "몸은 괜찮은데 속이 상한다"고 답했다. 

몇 시간 동안 땅에 이마를 대고 있다가, 새삼스레 깨닫고 말았다. '교통 방해' 뒤에 숨겨진 말은 '너희는 국민이 아니다'였다. 우리는 짐짝이었다. '일반' 시민의 통행을 방해하는 장애물이었다. 사지가 들렸고, 몇 번이고 시멘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서울 남대문 경찰서 경비과장은 "시민들이 여러분의 해산을 원한다"고 방송했다. 완전히 틀리지는 않은 말이었다. 횡단보도에 엎드려 있으면서 성난 경적 소리를 들은 것이 세 번 이상은 되었다.

허나 '일반' 시민과 그렇지 않은 이를 정의하고, 가르는 건 누구인가.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교통이 방해되느냐가 아니라, '누가' 거리에 나와 있느냐였다. '일반' 시민인가 아닌가, 국민인가 아닌가. 그 사이에 근본적인 질문이 사라진다. 이 행진은 누구를 위한 행진인가. 1700만 노동자 가족의 안전과 평화가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가. 국민의 1%도 안 되는 독점 자본가들의 무한한 이윤과 안전만 지켜져야 하는가.

자신감은 타신감에서 나온다

차가운 길바닥에 엎드려 밤샌 오체투지 행진단이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경찰 병력에 막히자, 경찰 방패 사이로 몸을 밀어넣고 있다. 이날 이들은 전날 비정규직 법·제도 철폐와 정리해고, 비정규직의 아픔과 상처를 알리기 위해 청와대 인근 청운동주민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려고 했으나, 경찰은 집회신고 시각을 넘겨 시민들의 통행에 불편을 주는 불법집회라며 이들의 행진을 저지했다.
▲ 차가운 바닥에서 밤샌 오체투지 행진단 차가운 길바닥에 엎드려 밤샌 오체투지 행진단이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경찰 병력에 막히자, 경찰 방패 사이로 몸을 밀어넣고 있다. 이날 이들은 전날 비정규직 법·제도 철폐와 정리해고, 비정규직의 아픔과 상처를 알리기 위해 청와대 인근 청운동주민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려고 했으나, 경찰은 집회신고 시각을 넘겨 시민들의 통행에 불편을 주는 불법집회라며 이들의 행진을 저지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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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또한 깨달은 것이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경찰 발밑에 엎드렸을 때. 곧 등 위로 겉옷과 담요가 올라오고, 팔다리에 핫팩이 붙었다. 가만히 땅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내 믿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건, 다른 누군가들을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순간 누군가 했던, "자신감은 '타신감'에서 나온다"는 말이 떠올랐다.

당시엔 잘 알아듣지 못했는데, 순간 그 말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경찰에 막혀 언제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고민 없이 땅바닥에 엎드리고 그대로 밤을 지샐 수 있었던 것도 함께 연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11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도 사람들은 뜬눈으로 우리 곁을 지켰다.

결국 청와대는 보지도 못했다. 이 나라는 노동자를 철저히 무시했다. 그러나 오체투지는 이제 시작이다. 우리는 함께다. "같이 살자"는 외침을 외면하는 저들보다 강하다. 우리는 손 잡고, 기어서, 새 세상으로 가는 움직임을 계속할 것이다.

지난 12일 아침 경찰 버스 옆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 어느 기자 한 분이 카메라를 들이댔다. 학생으로서 오체투지에 참여한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학생이 아니라 알바 노동자로서 참여한 것이라고 답했다. '우리'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으려면, 나도 끝까지 함께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태그:#오체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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