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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장... 누구에게는 3시간. 외로운 죽음을 정리하는 데는 반나절도 필요 없었다.

지난 14일, 낮 12시 반에 전북 전주의 한 다세대주택가에 도착했다. 짙은 남색 작업복을 입은 세 사람이 1.5톤 트럭에서 검은 플라스틱 통을 주섬주섬 꺼내놓는다. 근처 원룸에서 '특수청소'를 하기로 했다. 특수청소는 고독사, 자살, 범죄현장 등을 청소하는 일이다.

고 이경호(56·가명)씨는 사망한 지 일 주일 만에 발견됐다. 자살이었다. 이씨의 집 우편함엔 전기요금 고지서만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12월까지 돈을 납부하지 않으면 전기를 끊겠다는 내용의 연체 고지서였다. 전기요금은 이미 작년 9월부터 밀려 있었다. 

이씨의 우편함에 '전기공급 제한 예정 알림' 고지서가 붙어있다. 전기세는 작년 9월부터 밀린 상태였다.
 이씨의 우편함에 '전기공급 제한 예정 알림' 고지서가 붙어있다. 전기세는 작년 9월부터 밀린 상태였다.
ⓒ 양원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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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은 이미 수습된 상태. 특수청소 업체인 B업체의 김아무개(40) 대표는 "시신은 대부분 인근 파출소 경찰이나 장례식장 직원이 수습한다"고 말했다. 특수청소 업체는 그저 '죽음의 흔적'만 치우면 된다. 작업에 앞서 직원들은 검은 플라스틱 통들을 이씨 집 앞에 차곡차곡 쌓았다. 세척도구, 탈취제, 혈흔반응제 등 특수약품이 담긴 통과 소독기다. 상황에 따라 플라스틱 통은 더 필요할 수도 있다.

김 대표는 "직접 들어가기까지는 현장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없다"고 귀띔했다. 생전 고인의 고통스러운 흔적들로 난장이 된 현장일 수도, 혹은 아주 차분한 현장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부패가 심각한 시신이나 주변에 혈흔이 많이 분사된 현장엔 더 많은 작업 도구가 필요하다.

작업을 대기 중인 ‘검은 플라스틱 통’. 산업용 마스크와, 물티슈, 크리넥스 휴지 등 청소도구가 담겨있다.
 작업을 대기 중인 ‘검은 플라스틱 통’. 산업용 마스크와, 물티슈, 크리넥스 휴지 등 청소도구가 담겨있다.
ⓒ 양원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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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렸다... 이제 '죽음의 흔적'을 치워야 한다

오후 1시. 드디어 문이 열렸다. 직원 3명과 함께 들어서니 꽉 찰 정도로 좁은 원룸이다. 방 한편엔 침대가 하나 놓여 있었다. 맞은편엔 고인의 옷가지들이 행거에 차곡차곡 걸려 있었다. 그 옆 작은 책상엔 약병이 잔뜩 놓여 있었다. 신경안정제와 소화계통 약이 대부분이었다. 책상 위엔 노트가 잔뜩 쌓여 있다. 펼쳐진 노트 위로 그가 적은 걸로 보이는 글귀들도 보인다.

이씨는 '영원한 어둠'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지만, 누군가는 그의 흔적을 치워야 한다. 현장 상태는 양호했다. 심지어 혈흔 한 점도 없었다. 직원 장아무개(43)씨는 "이렇게 깨끗한 현장은 거의 드물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현장에 따라 시신에서 흘러나온 부패물을 밟고 미끄러져 다치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라고 거들었다.

특수청소는 대개 '(집안)전체 소독→ 부패물 정리→ 짐 정리, 유품 포장→ 짐 반출→ 청소→ 탈취작업(소독)'으로 진행된다.

이씨의 집은 상태가 매우 좋은 편이라 바로 짐 정리에 들어가기로 했다. 김 대표와 직원들은 준비해 온 검은 봉투 안에 이씨의 짐을 분주하게 주워담았다. 막무가내로 담는 건 아니다. 기준이 있다. 직원 이아무개(33)씨는 "타는 것과 안 타는 것을 구분해서 담는다"고 말했다. 소각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다. 실린 짐들은 유가족들이 원한 물건이 아닐 경우, 대부분 폐기물처리장으로 향한다.

유가족이 요청한 유품은 따로 보관... "사연들 참 많더라"

유가족이 보존을 요청한 물건이 있으면 그 유품은 따로 분류된다. 김 대표는 "유품들 대부분은 유가족에게 택배로 보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귀중품, 앨범, 고인의 기록물 같은 것들이 주로 보존을 부탁하는 유품"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죽음은 '가난에 떠밀린 한 가장의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었던 걸까. 망자는 말이 없을 뿐이다. 김 대표는 "고인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유가족에게 이러쿵저러쿵 묻는 건 실례되는 일"이라 말했다. 그는 "고인의 흔적을 정리하며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단지 추정만 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앨범 속 이씨는 밝은 얼굴이었다. 앳된 미소가 인상적인 미남이었다. 그의 앨범은 가족사진으로 가득했다. 딸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것 같았다. 딸의 어린 시절부터 휴가 때 찍은 것처럼 보이는 사진들과 졸업사진까지, 이씨가 마지막까지 간직한 앨범엔 딸의 인생이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짐이 적어 1시간 만에 정리는 마무리됐다. 이어 반출 작업이 시작됐다. 이씨의 방에서 묵직해 보이는 검은 봉투들이 쉴 새 없이 들락날락했다. 오후 2시 반. 이씨의 짐이 집 밖으로 전부 나왔다. 다 모인 짐은 1.5톤 트럭 짐칸 절반 정도를 겨우 채울 정도로 단출했다.

상태가 양호하고 방도 좁으니 청소도 간단하단다. 화장실, 베란다, 거실 순으로 청소가 진행됐다. 청소는 올해로 2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장씨가 맡았다. 그는 혹시 기억에 남는 현장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장씨는 "현장에 올 때마다 (고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죽은 사람들을) 보면 사연도 참 많다"며 "이 일에 뛰어든 계기도 TV에서 이렇게 특수청소하는 일을 보고 '참 좋은 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대답했다.

늘어나는 중장년층 고독사... 40대 남성 자살률, 재작년대비 9.9% 늘어 

특수 청소의 마지막 단계인 ‘소독’ 과정. 김 대표는 “이렇게 작은 원룸은 오래 뿌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특수 청소의 마지막 단계인 ‘소독’ 과정. 김 대표는 “이렇게 작은 원룸은 오래 뿌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 양원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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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청소가 끝나고 소형 청소기 모양의 연두색 기계가 이씨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소독기다. 특수청소의 마지막 단계인 소독을 위해서다. 희멀건 연기가 순식간에 집안을 삼켜 버렸다. 이씨의 마지막 공간, 삶, 죽음은 그렇게 정리됐다. 오후 3시 30분. 특수청소 작업을 시작한 지 3시간 만이다.

김 대표는 "요즘은 노인 고독사보다 중장년층 고독사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오늘 작업도 '어느 50대 가장의 죽음'이었다. 그는 "2012년을 기점으로 노인의 고독사율이 꾸준히 줄은 걸로 안다"며 "복지 혜택이 늘어난 노년층보다는 오히려 이혼 등을 이유로 자살하는 40~50대가 많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20~30대들이 사망한 현장도 간혹 갈 때가 있다"며 "그런 경우는 (내가 경험한 바로는) 다 자살"이라고 덧붙였다. 또, 그는 "중장년층의 고독사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실제로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2013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40대 남성의 자살률(47.2명, 10만 명 기준)은 재작년보다 무려 9.9%가 늘었다. 30대나 50대 자살률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덧붙이는 글 | 양원모 기자는 21기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고독사, #특수청소, #바이오해저드,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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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를 꿈꾸는 대학생입니다. 미생입니다. 완생은 바라지도 않고, 중생이나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 21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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