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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전 상임고문의 새정치민주연합 탈당은 예정돼 있었다. 그는 지난해 12월 17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정치인생을 건 결단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관련 기사 : "정권에 맞설 용기 없는 새정치, 정치 인생 건 결정하려고 한다")

결단은 곧 탈당을 의미했고, 그 시기가 언제가 될 것인가만 남아 있었다. 정 전 고문은 당을 향해 거침없는 비판을 내놓았고, 그에 비해 신당을 추진하는 세력과의 거리는 가까워 보였다. 결국 그는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당을 떠났다. 새정치연합의 당 대표 경선 첫 합동연설회 일정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정 전 상임고문의 탈당을 놓고 다양한 반응들이 나온다. 또 그의 행보에 대한 평가도 이어지고 있다. 당 안에서 지분을 잃은 상태에서 어쩔 수 없는 정치적 선택이라는 시선과 야당으로서 기능을 상실한 새정치연합을 대체하기 위한 결단이라는 시선이 공존한다. 냉소와 기대, 절망과 희망이라는 이중적 평가다.

이 같은 평가는 그의 탈당으로 더욱 분명해진 '시민사회의 정치세력화'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아직 대안으로서 '정치인 정동영'이 유효한지, 제3정당을 통한 야권재편은 가능한지 살펴보자.

새정치연합의 냉소적 시선... "어차피 안 될 일"

정동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11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탈당을 선언하며 재야와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국민모임' 동참을 밝혔다.
▲ 탈당 선언 정동영, '국민모임' 동참 정동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11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탈당을 선언하며 재야와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국민모임' 동참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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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제주와 경남에서 당 대표 경선 첫 합동연설회 일정을 마치고 당직자들과 기자들이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늦은 시각까지 자리를 지켰던 한 당권주자는 "정동영은 절대 탈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으로 옳지 않고, 당의 대권후보였던 사람으로서 해서도 안 될 일이라는 말이었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해 당의 주요 인사들은 기자들의 질문에 항상 이렇게 답변했다. 그러나 그 당권주자가 떠난 직후 자리에 있던 기자들은 정 전 고문의 탈당 선언 기자회견 공지 문자를 받았다.

대화의 주제는 당 대표 후보들의 연설에서 정 전 고문의 행보로 바뀌어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한 핵심 당직자는 "정 고문이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 어디로 가려는 건지 모르겠다"라며 "어차피 안 될 거다, 지지율이 높게 나왔던 것도 국민들이 신당이라고 하면 그냥 좋아하는 게 있어서 그렇지 실체가 드러나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고문의 탈당과 시민사회의 신당 창당 움직임에 냉소적 시각이 느껴졌다. 그러한 반응은 다음 날 당권주자들의 발언에서도 이어졌다.

문재인 의원은 10일 울산 합동연설회에 앞서 "한마디로 안타깝다"라며 "(당이) 진보적이지 않더라도 당 내에서 진보적으로 끌고 가도록 하는 게 맞다"라고 말했다. 박지원 의원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당 대통령 후보를 지내신 분이 탈당했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내부에 계파갈등의 고리가 너무 심했던 것 아닌가 깊게 반성한다"라고 말했다. 이인영 의원은 "탈당은 명백히 잘못된 일"이라며 "어려운 곳에서 혁신하는 것이 진짜 혁신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세 후보 모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정 전 고문이 "새정치연합이 서민과 중산층이 아닌 중상층(中上層)을 대변하면서 대한민국에 서민과 사회적 약자, 노동자들이 기댈 정당이 사라졌다"라고 비판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방어하거나 반박하지도 않았다. 이는 당내에, 특히 전북 지역에서 정 전 고문을 지지하지만 탈당하지는 않는 당원들이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을 고려해 발언의 수위를 조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정 전 고문의 발언에 발끈한 건, 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인 우원식 의원이다. 그는 11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정 고문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한다, 을지로위원회에 참여해서 노력해 보고, 그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탈당을 얘기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관련 기사 : "정동영, 농성장에 와보지도 않았으면서...")

을지로위원회는 그동안 당 안에서 노동 현안과 민생 의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해 왔다. 그런 을지로위원회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정 전 고문이 당의 우경화를 비판한 것은 탈당의 명분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정권교체 측면에서도 반박이 이어졌다. 김기식 의원은 12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다른 건 몰라도 정권교체를 위해서 탈당을 하고 분열을 한다는 건 모순"이라며 "새정치연합이 진보적 가치를 충분히 실현하는지 물어본다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수 진보정당의 노선으로는 '수권의 길'이 없다는 게 이미 여러 번의 실험에서 드러났다"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다양한 노선의 정치세력이 하나의 연합정당을 구성해, 그 안에서 노선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일명 '빅텐트론'을 주창해 왔다. 

관망하는 진보정당... 통합과 분열의 가능성

새정치연합과 달리 진보정당들은 정 전 고문의 탈당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진보진영 전반이 위축될 수 있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극제의 역할을 기대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진보정당이 이미 분열돼 있는 상태에서 또 하나의 유사한 정당을 창당하는 것에는 내심 불편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실제로 신당 창당이 진행되고 이들이 직접 선거에 참여하는 시기가 되면 진보정당들의 통합이 이뤄지거나, 아니면 분열 상태가 고착화 될 가능성이 있다.

천호선 정의당 대표는 "정 고문이 큰 고민 끝에 새로운 길에 나서기를 결심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라며 "아울러 더 큰 진보를 위해 머리를 맞댈 만한 비전을 제시해 주기를 기대해본다"라고 말했다. 심상정 원내대표 역시 "정 고문의 새정치연합에 대한 지적은 다수 국민의 준엄한 목소리"라며 "국민들은 양당 중심의 기득권 정치에 대해 절망하고 있다. 정의당은 더 나은 삶을 약속할 제3의 대안 정치 세력을 열망하는 민심의 한복판에 서서 야권 혁신에 매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환영의 메시지를 내놓았지만, 정의당은 유일한 원내 의석이 있는 진보정당이라는 점에서 신당이 꼭 반갑지만은 않다. 특히 시민사회가 자신들이 아닌 또 다른 새 정당을 통해 진보정당의 통합을 추진하는 것에는 불만도 드러냈다. 정의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정의당과 얼마나 큰 차별화를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합리적 진보를 표방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별 다를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신당을 만들어서 뭔가를 하겠다는 건 결국 통합의 주도권 쥐겠다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당 대표 선거가 진행 중인 노동당은 조금 더 복잡하다. 각 후보들이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나경채 후보는 "진보정치 노선과 틀에서 함께 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면 이분들(신당)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라며 통합 가능성을 내비쳤다. 윤현식 후보는 "통합 움직임에서 노동당이 고립될 가능성도 있다"라며 "빅텐트의 좌파로 머물 때, 지향을 올곧게 견지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나도원 후보는 "신당의 파괴력이 크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라며 "정동영의 '좌클릭'이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감동을 주긴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이전과 다른 정치실험... 장점과 불안요인

12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국민모임 주최 '새로운 정치세력, 왜 필요한가? - 야권교체없이 정권교체 없다' 토론회가 열렸다.
 12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국민모임 주최 '새로운 정치세력, 왜 필요한가? - 야권교체없이 정권교체 없다' 토론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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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정치세력들의 반응에서 봤듯이 정 전 고문과 신당의 앞길은 험난하다. 기성정당들과의 관계뿐 아니라 창당 명분 등 대외적인 부분에서 진정성과 실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당을 새로 창당하는 것 자체도 어렵다. 일단 사람을 모아야 하고 자금이 있어야 한다. 과거의 소수 진보정당 규모로 새정치연합이라는 아주 오래된 제1야당을 교체할 수는 없다. 한마디로 '바람'이 불어야 한다. 이전보다 더 큰 바람, '안철수 현상'을 대체할 수 있는 바람이 있어야 한다.

몇 가지 측면에서 신당은 가능성이 있다. 우선 이전과는 다른 실험이라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진보정당들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최근 정의당을 제외하고 이전까지는 민주노총이라는 든든한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노동자와 농민, 서민을 앞세우는 정치를 하겠다는 게 그동안 진보정당들의 방향성이었다. 그러나 이번 신당 창당 움직임은 '시민사회 정치세력화'로 볼 수 있다. 창당 준비위 성격인 '국민모임'의 정체성에 그것이 잘 드러나 있다. 이것은 창당 과정에서 스펙트럼을 넓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또한 신당이 명확한 진보노선을 택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볼 만하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제3지대 창당은 '중도'를 향한 것이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등장한 '안철수 신당'은 여야, 진보와 보수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은 제3지대의 '중도정당'을 표방했다. 그에 앞서 지난 2007년 대선에 등장했던 창조한국당 역시 문국현 대표의 '중도노선'에 따라 창당됐다. 실체가 불분명한 '중도'가 아닌 진보적 가치를 내세운다는 점에서 '국민모임'의 실험은 새롭다. 이 두 가지 요인은 신당의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장점으로 보인다.

불안요인도 분명 있다. 우선 어디서 '동력'을 얻을 것인가 하는 지점이다. 동력은 곧 사람을 의미한다. 정치적 이해관계로 신당을 찾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그 사람들을 어떻게 걸러낼 것인가, 아니 일단 어떻게 사람을 모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상당한 파급력을 보여줬던 '안철수 신당' 역시 각 지역별로 창당대회를 개최하는 단계까지 나아갔지만, 결국에는 인물난에 시달렸다. '새정치'에 어울리며 선거에 나갈 만한 사람이 모이지 않았던 것.

'왜 필요한가'보다 '어떻게 창당할 것인가' 고민해야

그런 점에서 정동영 전 고문과 같은 인사의 합류는 필수적이다. 당을 조직하고 더 많은 사람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 신당에 대해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이번에 정 전 고문과 함께 탈당을 하고 신당에 합류할 예정인 구 민주당 인사들은 그런 '선수'들이라고 보기 어렵다. 노동 중심의 의식 전환을 보여준 정 전 고문에 비해 다른 인사들은 당내 입지가 줄어들면서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신당을 택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고 신당이 '정동영 신당'으로 갈 수도 없다. 안철수 신당에서 봤듯이 사당화 된 정당은 결코 온전하게 일어날 수 없다. 또 설령 새정치연합이 흔들리고 있다고 해도, 그곳에는 문재인, 박원순, 안희정, 안철수와 같은 '인기 있는'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기 때문에 '정동영 신당'으로는 밀릴 수밖에 없다. 결국 국민모임의 신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과, 실제로 사람을 모으고 창당 작업을 할 수 있는 인사를 영입해야 한다. 거기서 창당의 승부가 판가름 난다 해도 무방하다.

정 전 고문은 보다 바닥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한동안 잊힌 존재였던 그는 어쨌든 이번 탈당과 신당 합류로 주목을 받았다. 아직 존재감이 있다는 걸 증명한 셈이다. 또한 그의 진보적 활동 역시 상당 부분 인정을 받았다. 진보정당의 긍정적 평가는 그의 활동이 축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들이 탈당과 신당 합류가 '개인의 욕심'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비치는 것은 완전히 막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정 전 고문은 4.29 재보궐 불출마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정 전 고문과 신당의 길은 이제 막 시작됐다. 실제로 창당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아직 안갯속이다. 11일 국민모임의 첫 토론회에서도 많은 우려가 제기됐다.(관련 기사 : "새정치 열망 언제나 높지만 언제나 실망") 국민모임은 이후에도 전국을 순회하며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토론회의 주제는 '새로운 정치세력, 왜 필요한가'이다. 현재 야당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고,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새로운 정치세력, 어떻게 창당할 것인가'이다.


태그:#정동영, #국민모임, #신당, #새정치연합,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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