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스마라푸라의 오랜 문화와 삶을 담고 있는 시장이다.
▲ 스마라푸라 시장 스마라푸라의 오랜 문화와 삶을 담고 있는 시장이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발리 동쪽의 스마라푸라(Semarapura)는 17~20세기 초엽에 걸쳐 발리를 지배했던 겔겔 왕조의 수도였다. 고도 스마라푸라는 발리 문화의 기반이 되는 문화 양식이 확립된 오랜 도시로, 발리의 문화와 예술이 살아 있다. 오늘날 발리의 무용, 음악, 미술, 연극 등의 양식이 스마라푸라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옛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이곳에서는 당연히 시장과 시장에서 사는 사람들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나는 아내와 함께 발리 옛 도읍의 전통 생활 방식을 그대로 만나볼 수 있는 스마라푸라 시장 답사에 나섰다.

스마라푸라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은세공 제품들이다. 스마라푸라 인근에서는 가내 수공업 형태로 만드는 은세공 공장이 많기 때문이다. 은세공 그릇과 은세공 제기 등 다양한 전통 은세공 조각품들을 쉽게 둘러볼 수 있다. 이 스마라푸라 재래 시장에서 여러 제품 중에 은세공 제품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스마라푸라의 은제품들은 은을 녹여서 전체 모양을 만든 후 세부적인 조각 작업을 한다. 스마라푸라를 포함해 발리의 여러 곳에서 만들어지는 은세공 제품들은 질적으로나 디자인 면에서 세계적으로 우수하다. 발리의 여러 곳에서 만나는 화려한 은제품들은 발리의 은세공 기술에 유럽 미술가들의 예술세계가 반영된 것들도 많다. 특히 스마라푸라의 은세공 제품들에는 왕실의 영향으로 인해 품위 있고 화려한 제품들이 많다.

은세공으로 유명한 발리 스마라푸라 시장

일상생활에서 팔리는 은제품들과 의식용 은세공품들이 팔리고 있다.
▲ 은제품 일상생활에서 팔리는 은제품들과 의식용 은세공품들이 팔리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시장의 은세공 제품 가게에서 보이는 화려한 은제품들은 은식기, 은주전자와 같이 개인 가정에서 사용되는 것들도 있지만 힌두교 사원에서 신에게 공양하는 의식 용기로 사용되는 은제품들이 많다. 정교한 꽃 문양이 가득한 발리의 의식용 은제품들은 종교적 분위기를 강하게 풍긴다.

시장 입구에서 보니 인도네시아의 전통 염색 의류인 바틱(Batik) 가게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발리의 바틱은 파라핀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천을 짜는 전통 방직 기계로 하루에 3m 정도를 짠다고 한다. 바틱의 원뜻은 '작은 점을 찍는다'는 뜻인데, 바틱의 문양이 점을 찍어 이은 듯한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스마라푸라 시장의 바틱 가게 입구에는 옷감으로 팔기 위한 바틱 원단과 함께 바틱으로 만든 화려한 사롱(sarong)들이 걸려 있다. 가게 안에는 사롱과 함께 바틱으로 만든 식탁보, 셔츠, 가방이 전시 중이다. 바틱의 문양을 보니 기하학적 문양이 많고 새무늬와 꽃무늬가 있다. 바틱의 문양 안에 발리의 자연이 담겨 있는 것이다.

발리의 바틱은 과거에 왕족만이 사용을 했기 때문에 가격이나 질적인 면에서 인도네시아 바틱 중에서 제일 우수하다. 발리 바틱은 주로 노란색, 갈색, 푸른색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색들은 모두 생명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바틱의 색상은 촌스러운 원색 계열이 아니라 부드러운 중간색이 섞인 파스텔 톤이어서 세련된 느낌을 준다. 파스텔 톤의 색상은 오래 두고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바틱으로 만드는 인도네시아의 전통 염색 의상인 사롱 중에서도 발리의 사롱은 밝고 화려하다. 발리인들이 허리에 두르는 사롱의 전통 문양에는 수많은 신화와 이야기를 가진 발리의 힌두교 문화가 녹아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이 보기에 발리 남자들이 사롱을 입고 있으면 왠지 불편해 보이지만, 발리 여인들이 화려한 사롱을 입고 있는 모습은 아름답게만 보인다.

점심 시간이 가까웠기 때문인지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음식을 파는 작은 식당이 성업 중이다. 코코넛 과즙에 고기와 젤리 등을 넣어 파는 식당의 간이 의자에 앉아 발리의 아가씨들이 군것질하듯이 음식을 먹고 있다. 이 아가씨들은 코코넛의 시원한 과즙에 담긴 간식거리들을 숟가락으로 떠먹으면서 발리의 더위를 식히고 있다. 사진을 찍는 나를 보고 가게 주인 아주머니가 약간 쑥스럽다는 듯이 웃는다. 이곳 발리도 다른 남국의 사람들같이 사람들이 밝고 활달해서 좋다.

식당이 있는 구역을 지나자 갑자기 노랗고 빨간 꽃의 세상이 펼쳐진다. 발리의 힌두교도들이 아침마다 신에게 올리는 짜낭(Canang)에 담길 꽃들이다. 신에게 바치기 위한 꽃들은 어디에서 이 많은 양이 공급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매일 아침마다 꽃가게를 가득 채우고 있다. 꽃 가게 바로 옆의 짜낭 노점에서는 아침에 팔고 남은 짜낭들을 마저 팔고 있다. 나는 발리 여행에서 아침마다 바쳐지는 짜낭의 꽃들을 보면서 발리인들의 독실한 신앙심을 느낀다.

뱀을 닮은 과일, 처음 먹어보다

발리의 염색의류인 바틱은 화려하고 밝아서 인기가 좋다.
▲ 바틱 발리의 염색의류인 바틱은 화려하고 밝아서 인기가 좋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발리의 아가씨들이 코코넛 과즙에 젤리 등을 넣은 음식을 먹고 있다.
▲ 시장의 간이식당 발리의 아가씨들이 코코넛 과즙에 젤리 등을 넣은 음식을 먹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우리나라의 옛 여인들처럼 머리에 짐을 지고 이동하는 여인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부터는 열대 과일의 향연이 펼쳐진다. 나는 평소에 보지 못했던 열대 과일들을 먼저 찾아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껍질이 짙은 갈색의 뱀 껍질처럼 생긴 과일이다. 과일 안의 과육이 어떤 모습으로 생겨 있을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과일이다. 뱀 껍질 같은 이 과일은 생긴 모습처럼 스네이크 프루트(snake fruit)라고도 불리는 열대 과일, 살락(Salak)이다.

동남아시아를 여러 번 여행 하면서 열대 과일을 많이 먹어보았지만 아직도 먹어보지 못한 과일을 만나는 것이 반갑다. 살락은 만져보니 껍질이 단단한데 껍질이 단단할수록 과육의 맛이 더 신선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밤 정도 크기의 살락의 껍질을 까보니 마치 마늘이 동그랗게 모여 있는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한입에 넣고 씹어 보았더니 밤을 먹는 듯한 아삭아삭한 소리가 나며 식감은 아주 부드럽다. 맛은 달거나 시지 않고 묽은 요구르트 같은 맛이 난다. 너무 한 입에 씹다 보니 과육 안의 큰 씨가 이에 걸렸다.

발리인들이 아침마다 신에게 바치는 짜낭에 들어갈 꽃을 팔고 있다.
▲ 꽃 발리인들이 아침마다 신에게 바치는 짜낭에 들어갈 꽃을 팔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발리인들은 매일 짜낭을 신에게 바치면서 행복을 기원한다.
▲ 짜낭 발리인들은 매일 짜낭을 신에게 바치면서 행복을 기원한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마르끼샤(Markisa)는 겉모습만 보고 오렌지나 귤로 착각했다. 겉모습은 길쭉한 오렌지 같이 생겼는데 껍질 겉 표면은 울퉁불퉁하지 않고 미끈미끈하다. 다 익은 상태인 주황색 과일로 주로 팔리는데 옆의 과일 바구니를 보니 익기 전의 초록색 과일로도 팔리고 있었다. 발리 이곳저곳에서 과일 주스나 식당의 음식 재료로 자주 만났던 과일의 원래 모습이 이렇게 생겼던 것이다.

마르끼샤는 들어보면 아주 가볍고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는다. 브라질 원산의 열대 덩굴과일인 마르끼샤는 남미에 진출했던 기독교 선교사들이 '패션 프루트(passion fruit)'라는 이름을 붙인 과일이다. 과일 내부의 과육 모양이 그리스도의 수난인 '더 패션(the passion)'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마르끼샤를 쪼개보니 마치 개구리 알이 뭉쳐있는 듯한 과육이 가득 차 있는데 이 모양을 보고 기독교인들이 혼란을 느낀 모양이다.

과일의 껍질이 마치 뱀의 껍질같이 생겼지만 맛은 부드럽다.
▲ 살락 과일의 껍질이 마치 뱀의 껍질같이 생겼지만 맛은 부드럽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마치 귤같이 생긴 껍질을 까면 개구리 알같이 뭉쳐있는 과육이 나온다.
▲ 마르끼샤 마치 귤같이 생긴 껍질을 까면 개구리 알같이 뭉쳐있는 과육이 나온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발리의 호텔에서 묵으면 환영의 의미로 이 마르끼샤를 방 안에 넣어두는데 차게 해서 먹으면 더 좋다고 하여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먹었다. 검은색 개구리 알 같이 뭉친 것은 마르끼샤의 씨인데 과일 내부의 회색 과육과 함께 먹었다. 과육이 톡톡 터지면서 씹히는데 맛이 상큼하고 달콤하다. 과일 향은 입 안에 부드럽게 퍼진다. 쏟아져 나오는 과육을 마시듯이 입 안에 넣고 천천히 젤리처럼 씹어 먹는 재미가 있다.

발리 수박가게의 수박은 수박에 그어진 줄이 선명하지 않고 우리나라 수박보다 더 길쭉하게 생겼다. 발리에서는 식당에서 나오는 후식에 수박이 많다. 수박은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날이 더울 때 갈증 해소에는 최고다. 발리에서는 수박 값도 정말 싸서 전혀 부담 없이 사 먹을 수 있다. 그런데 발리의 수박은 흰 부분의 과육이 많고 맛이 밋밋한 편이다. 우리나라 수박 같이 달고 입안에서 눈 녹듯이 녹는 맛의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한 수박들이다.

나는 발리의 활기찬 시장에서 발리 사람들의 일상 삶을 만났다. 관광지에서는 보지 못했던 자연스러운 웃음과 바쁘게 사는 모습들을 새롭게 만났다. 나는 그래서 발리에서 가는 도시마다 시장을 찾아다녔다. 거기에는 발리의 실제적인 모습들이 있었다.

수박가게에서 조금 밋밋하게 생긴 발리의 수박을 팔고 있다.
▲ 수박가게 수박가게에서 조금 밋밋하게 생긴 발리의 수박을 팔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400여 편이 있습니다.

이 여행기는 2014년 6.19일~6.24일의 인도네시아 발리 여행 기록입니다. 인도네시아의 여행정보와 여행지에 관련된 내력을 알아보고, 올바른 여행문화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아울러 열대의 섬, 발리의 매력도 함께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태그:#인도네시아 여행, #발리, #스마라푸라 시장, #살락, #마르끼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