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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가 15년 다이어리 앞에서 웃고 있다.
▲ 15년 첫날 활짝핀 웃음으로 시작하는 이서 이서가 15년 다이어리 앞에서 웃고 있다.
ⓒ 연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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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가 태어날 때 잊지 못할 감동적인 순간이 있었다. 오랜 진통 끝, 마침내 이서가 세상에 나왔을 때 두 할머니들이 눈물을 흘리며 아내와 이서를 축복했던 순간이다. 조산원에서 아내가 내는 신음소리가 거의 방음 없이 두 할머니들에게 들렸던지라 나 못지않게 두 분도 옆에서 애를 많이 태우셨다. 특히 장모님은 본인 딸의 고통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 중간에 눈물도 많이 쏟으신 것 같았다. 아이는 아내가 낳았지만 마음으로 두 할머니들이 함께 낳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래서일까 두 분의 손녀사랑은 참 남다르다.

가끔 두 분이 이서랑 놀아주는 모습을 보면 할머니들이 이서랑 놀아주는지 이서가 할머니들과 놀아주는 건지 구분이 안될 때가 많다. 이서를 어떻게든 웃겨 보려고 수십 가지의 표정과 의성어가 동원된다. 그래도 안 되면 노래와 춤을 추고 마침내 소, 닭, 강아지가 되어 기어이 이서를 웃기고 만다. 50줄이 훌쩍 넘으신 분들이 체력은 어찌 그리 좋으신지 몇 시간이고 이서와 놀아도 지치는 기색이 없다. 이서 할머니들의 손녀 사랑을 보면 부모인 우리보다 더 지극정성인 것 같아 귀감이 된다. 그러나 한 편으로 손녀와 함께 있는 두 분의 모습에 애잔함을 느끼기도 한다.

30년 넘게 무역외항선 기관장 남편과 함께한 장모님

장인어른은 30년 넘게 무역 외항선을 타신 베테랑 기관장이시다. 외항선의 특성상 한번 출항하면 6~9개월까지 해외를 누비다 오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보니 장모님은 20대 신혼은 물론 아내와 처제를 출산할 때도 장인없이 보낸 시간이 많으셨다. 천성이 선하고 순하신 분이라 그런 상황에서도 30년의 세월을 묵묵히 보내셨지만 마음 한켠에는 의지할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셨을 것이다. 장인어른이 입항하시고 함께 지내시는 기간에 장모님의 표정이 환해지시는 것을 보면 말이다.
외할머니의 등이 참 따뜻한 이서는 곤히 자고 있다.
▲ 외할머니에게 업혀있는 이서 외할머니의 등이 참 따뜻한 이서는 곤히 자고 있다.
ⓒ 연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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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장모님의 삶을 알기에 이서와 함께 만개한 웃음꽃을 볼 때면 내 마음도 훈훈하고 짠해진다. 그분께 또 하나의 가족을 선물한 것 같아서 말이다.

직장과 병행하며 간암 말기의 할아버지를 모시는 우리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부터 늘 일을 해오셨다. 나를 포함한 동생 둘을 키우기 위해 직종을 바꿔가며 여러 일을 해오신 분이다. 나와 둘째 여동생은 다 커서 이제 좀 편하게 사시려나 했는데 이서가 태어날 즈음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대장암, 간암 말기 판정이 나왔다. 연세가 너무 많으셔서 손도 쓰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배변을 위한 시술만 한 이후 결국 퇴원조치를 했고 이후 병간호는 어머니의 몫이 되었다.
어머니를 아무리 피곤해도 이서만 보면 피곤이 싹 가신다고 하신다.
▲ 이서와 놀아주는 어머니 어머니를 아무리 피곤해도 이서만 보면 피곤이 싹 가신다고 하신다.
ⓒ 연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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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는 거의 매주 이서를 보러 오신다. 퇴근하고 저녁 8시라 고단하실텐 데도 이서를 보면 힘이 난다고 일부러 찾으신다. 우리 어머니이기 때문에 나는 안다. 몸보다 병간호로 지친 정신적인 피로 때문에 사랑스러운 손녀를 보러 오시는 것이다. 이 작은 존재를 사랑하고 돌봄으로 스스로 위안 받으시는 것이다. 그런 어머니가 때로는 안쓰럽다.

연약하고 작은 존재를 사랑할 때 오는 기적

이서를 통해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 무엇을 하지 않더라도 존재로서 받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이 연약하고 무력한 존재를 아무 이유 없이 온 가족이 아끼고 사랑한다. 특히 이서의 두 할머니들을 볼 때면 그렇다. 아이에게 무한히 주는 애정을 통해 그분들이 치유되고 위로를 받는다. 어쩌면 행복은 누군가로부터 사랑 받는 것보다 한 존재를 아낌없이 사랑할 때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두 할머니들의 사랑을 보며 오늘도 이서 아빠는 부끄럽다.

덧붙이는 글 | 해당기사는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goliathgx)에 중복 개제 됩니다.



태그:#할머니, #손녀바보, #딸바보, #육아, #신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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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한국 사회에 평범한 신입아빠, 직장인인 연응찬이라고 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바라보는 사회가 정말로 대한민국 국민이 느끼고 공감하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평범한 눈과 자세로 세상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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