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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문학연구자로 지방대 강의를 나가고 있는 강사다. 수업시간마다 학생들에게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사회에 대한 따뜻하고 예리한 시선이 사회 구성원 간에 공감과 소통을 가져올 수 있는 열쇠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행동해야 한다는 걸 역사속의 많은 사례를 통해 보여주었다. 많은 젊은 학생들이 2014년 한해 동안 일어났던 엄청나고 많은 문제들에 대해 침묵과 무관심으로 외면했다. 그 것이 불의에 동조한 것과 다를바 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행동으로 실행하는게 아직 어렵다고 생각하거든 담벼락에 대로 욕이라도 해보라고 했다.
사회에 불의에 대항해 싸우라는 목소리를 내는 수업을 하고 있다
▲ 나는 좋은 선생이다 사회에 불의에 대항해 싸우라는 목소리를 내는 수업을 하고 있다
ⓒ 김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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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대학에서 매 학기마다 두 개의 강의를 맡아왔다. 2014년 가을학기에도 늘 그랬듯이 2개의 강의를 배정받았다. 이 번 학기는 둘째주에 추석연휴가 끼어 있어서 그 주 수업은 보강으로 대체되는 스케줄이 주어졌다. 연휴가 끝나고 보강수업을 위해 행정실에 연락을 취했다. 두과목 다 같은 강의실로 잡아 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담당 행정직원으로부터 그에 대한 답문을 받았다. "교수님, 한과목은 폐강됐는데 모르셨어요?"

어느 누구로부터도 내 과목이 폐강됐다는 언질은 듣지도 못했다. 그 행정직원의 말에 의하면 학교 내부 사정으로 인해  폐강된 다른 교양수업도 있다고 했다. 이미 계약이 체결된 상태고 학기가 시작된 이 시점에서 폐강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당사자인 학생과 강사는 영문도 모른채 일방적으로 그 수업을 잃었다. 그리고 그 수업의 강사인 나는 폐강소식을 일주일이 넘도록 알지 못한채 방치되어 있었다.

행정직원에게 전후사정을 듣고 보니 노동청에 신고를 해야 할 만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신고를 할시 나에게 불리한 상황들이 존재했다. 첫 번째는 계약서다. 강의에 대한 계약서는 학기초에 행정실이나 담당학과 과사에서 직원이 강의실로 와서 계약서를 넘겨주고 싸인을 받아간다. 그런 일들이 대부분 학기초에 행해지지만 급한일이 아니여서 행정일이 많은 조교나 직원들이 칼같이 서두르진 않는다. 당사자인 강사 역시 이미 강의가 진행된 상태고 계약서에 대해 크게 관여하진 않는 실정이다. 이런 관행들로 학기가 시작된지 3주가 흘렀지만 나는 내 강의에 대한

계약서에 싸인을 하지 않은 상태다. 내가 D대학에서 두과목을 맡았다는 증거는 오직 여전히 두과목으로 표시되있는 교내전산망뿐이었다.

두 번째 문제는 갑과을의 관계다. 시간강사 자리를 얻는 것이 쉬지 않은 상황이다. D대학에서 한과목이라도 강의를 유지해야 한다. 또한 학교라는 세계는 넓은듯 하지만 아주 좁고 그 관계망이 촘촘해서 이 일을 문제삼아 다른 학교강의도 배정받기 어려운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생겼다.

결국 나는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강의실에서 영웅이 현실에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속상한 상황을 주변 어르신들에게 털어놨지만 아무도 내게 나가 싸우라는 말씀을 주진 못했다. 나가 싸우는 순간 한 동안 혹은 오랫동안 강사질을 못할 가능성이 크고 그 것은 곧 내게 장기 실직을 의미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상대해야 할 대상은 갑이고 나는 을의 입장이다. 이 것은 싸움에서 승패를 쥐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상대방이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사회의 정의를 위해 깨어있는 자각된 시민이 될 것을 내게 가르쳤던 모든 분들이 이 상황을 그 이론에 대입시키지 못했다.

그 날 이후 나는 머릿속이 복잡했고 심경은 참담했다. 여전히 수업시간에는 깨어있는 시민, 행동하는 시민을 위한 강의내용들로 가득했다. 자각하고 행동하는 시민의식만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할 수 있고 그 사회의 주인은 여러분임을 잊지 말라는 채찍질을 휘두르며 학생들의 무관심을 아프게 때렸다. 그 채찍질은 또한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나에게 가장 크고 깊에 휘두른 것인데 나는 그저 맞고만 있었다. 채찍질을 멈추지 못하는 나는 그렇게 나를 학대하며 상처를 키우고 있었다. 이 때 내게 필요한 것은 힐링일까?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우리는 힐링의 인문학 홍수에 빠져있다. 인문학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내용들이 쏟아졌고 독자들은 그 속에서 일상의 상처를 보듬어 낼 수 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한 것인지 '힐링'에 대한 수요와 공급은 끝없이 이어졌다.

문제의 근원을 찾아라
▲ 필링의 인문학 문제의 근원을 찾아라
ⓒ 김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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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이 말을 타고 질주하다 갑자기 멈춰서 뒤돌아 본다. 왜일까. 자신의 영혼이 쫓아오지 못했을까 봐. 지친 내 영혼을 기다려 위로한다. '힐링(healing)'의 인문학이다. 그런데 또 다른 인디언을 주목해보자. 그는 멈춰섰지만 자신의 말을 쳐다본다. 경주마는 눈가리개를 한다. 이것 때문에 앞만 보고 뛴 것이다. 이 인디언은 눈가리개를 확 벗긴다. 일명 '필링(peeling)'의 인문학이다.

첫째, 과연 나는 생각하는가
둘째, 나는 행복한가
셋째, 희망은 있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힐링이 아니라 필링의 인문학이라는 것을 유범상교수는 알리고자 한다. 그의 저작인 <필링의 인문학>에서는 '인문학이 모두에게 '힐링'이 되는 것은 아니다.누군가에게는 절망을 줄 수도 있다. 따라서 인문학 자체가 아니라 인문학의 방향과 내용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말을 타고 달리던 인디언의 두 가지 태도에 빗대었다.

눈가리개는 경주마에게 장착되는 것이다. 말은 본시 초식동물로 주위를 살피는 본능이 있다. 그래서 눈가리개가 없으면 멈추기도 하고 옆으로 방향을 틀기도 해서 경주마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 눈가리개다. 눈가리개가 있어야지만 한 방향으로 질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말에서 내려 눈가리개를 뗀 인디언은 그 말의 엉덩이를 보게 됐다. 엉덩이 오른쪽은 쉴새 없이 채찍질을 당해 깊은 상처가 있었다.

<필링의 인문학>이 말하는 인문학은 달리다 지친 나 자신에 대한 위로가 아니라 나를 어디론가 끊임없이 몰고 가는 자에 대한 비판이다. 달리는 말을 세우고 내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리며 위로 받기도 하지만 누가 나(의 말)에게 눈가리개를 장착하고, 채짹질을 해대며 질주하게 몰아세웠는지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한 위로를 받기 위해서는 위로가 아닌 위로받아야 하는 상황을 제공한 사회에 대한 비판과 성찰 그리고 변화를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도처에 깔린 한국사회의 문제들 그리고 비판과 성찰을 통해 위로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낸 다른 국가들의 사례를 예를 들어 이 것이 허상이 아닌 실상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한 예로 독일과 스웨덴의 노동자, 시민들의 정치적.비판적 시민으로서의 삶을 들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의 수많은 학살을 스스로 비판했다. 이와 같은 무자비한 일을 자행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의식이 없었던 것이 원인이라는 판명하에 정치적 시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자율적인 연방정치교육원을 만들어 정치의식을 갖는 시민교육에 앞장 섰다. 노조.교회.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정당 연구소 등 정치재단을 지원해 일상적으로 정치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스웨덴은 자유성인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농민이나 노동자들이 자율성을 가지고 학습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 정책은 19세기부터 이어져 왔다. 19세기 귀족들만 고등교육을 받는 것에 대항해 민중은 자신들의 지역고등학교를 만들었다. 그러다 1912년 정부가 지원하면서 활성화 되었다. 1938년 살츠바덴협약에서 노사 간의 자율교섭원칙을 확보하게 됐고 동시에 회사가 노동자의 성인학습권을 인정해 주는 법안이 상정됐다. 이로서 스웨덴에서는 노동자들이 평생 학습을 기본권리로 인정받았다. 이를 위해 스웨덴 노동자들은 학습휴가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성인교육이 시민들이 항상 사회문제에 관심을 쏟을 수 있는 의식을 생성하는 원천이다고 보여진다.

이런 교육을 받은 독일,스웨덴 시민들은 개별적이 아니라 집합적으로 공동체의 일에 개입한다. 시민들은 학습하고 토론하면서 산업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행위자로 참여하고 있다. 시민들의 비판과 토론이 제도정치를 이끄는 주도적인 역할을 함으로서 위험사회를 성찰해 다가올 위험을 예방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사회는 여전히 안대를 한 말을 타고 위험한 질주를 하고 있다는 지적을 한다. 위험한 질주는 현재의 위험과 함께 다가올 위험까지 동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예로 세월호 참극을 들었다.

〚그 원인은 내부에 있다.  세월호의 등장 이면에는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정책이 있었던 것이다. 줄푸세는 '747(7%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위 경제대국)을 위한 기본전략이었다(유범상 2014:267)

세월호와 같은 배를 감독하는 기관은 한국해운조합이 주무기관이다. 이 기관은 2,100여 선사들이 회비를 내서 운영하는 이익집단이다. 그러니 배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었겠는가.정부는 안전규제조차 민간단체에 맡긴 꼴이다.(유범상 2014:267)

안전은 유착과 특혜로 위협받고 있었다. 한국해운조합은 퇴직한 해양이나 교통 관련 관료들을 이사장으로 영입했고, 현직 공무원은 퇴직 후의 자리를 생각해 문제를 묵인했을 수 있다.또한 해양경찰청은 지난 2월 세월호의 특별안전점검 당시 구명정 훈련과 비상시 대피훈련 시행 여부에 대해 '양호'등급을 매겼다
배가 침몰했을 때 구조를 책임진 민간업체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이하 언딘)와 해경의 관계도 미심쩍다. 사고 초기부터 컨트롤타워는 없었고, 재난관리시스템도 작동되지 않았다. 해상통제권이 있는 해경과 선박사고 수습을 책임지는 해양수산부, 국가의 재난을 총괄하는 안전행정부, 국정컨트롤타워인 청와대까지 사고 당일 현장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피해자에 대한 대책은 더 가관이다. 빠른 구조와 진상을 요구하는 가족들에게 심리적.정신적 문제로 접근했다. 전문가들이 대거 등장해 격한 분노와 좌절, 깊은 슬픔과 절망을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나 트라우마 관점으로 진단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생긴 지원단이 '경기도.안산 통합재난 심리지원단'이고, 이후에는 '안산 정신건강 트라우마센터'를 설치했다. 심리와 트라우마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전제하고 질병에 주목한다. 심리적.의료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정당한 분노마저 질병으로 취급할 우려가 있고, 모든 문제를 이 문제로만 이해할 수도 있다. (유범상 2014:270-271)〛

유범상교수는 우리가 원하는 힐링〔위로〕이 과연 문제의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책 없이 마음의 상처가 치료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그 해결책을 내놨고 나는 그 해결안에 동의하는 바이다.

나는 사회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연구자로 통한다. 그리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주인공이 되는 문제에 있어서는 꿀먹은 벙어리마냥 입다물고 귀막고 눈감고 그저 편안한 방법으로 외면을 선택했다.

박노자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시간강사문제에 대한 언급한 적이 있다. 시간강사의 연봉은 상상을 초월한다. 연봉 400만원대, 시급에 따라 더 낮아질 수도 더 높아질수도 있지만 대동소이하다. 연봉뿐만 아니라 처우 역시 최악이다. 북유럽의 경우 정규직, 비정규직에 대해 차등없이 같은 일이 한다면 동일한 급여와 혜택이 주어진다. 한국에서 정교수와 시간강사의 연봉차이는 엄청 나다. 물론 정교수라는 직급에 부여되는 노동량과 시간강사에 부여되는 노동양에는 차이가 있지만 노동에 있어서 가장 큰 비중을 가지는 강의만 두고 볼 때, 대학이라는 사회내에서 가지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에게 부여되는 차이와 차별은 아주 크게 크게 존재하고 있다.

대학에 몸담고 있으면서 강단에 서서 사회의 정의실현을 외치는 많은  선생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구하나 자신들의 필드 내 문제인 시간강사처우에 대한 해결을 위해 직접 몸을 던지는 이들을 나는 보지 못했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나서야 한다. 하지만 강사라는 위치는 생계나 미래를 위해 그 문제를 외면하고 있고, 교수들은 교수라는 직함을 얻기위해 그들 역시 같은 과정을 당연스레 지나왔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하거나, 가지고 있더라도 이미 그 과정을 거쳐 이제 남의 문제가 된 상황에서 굳이 문제시 하지 않으려 한다.

유범상교수는 자신의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실천하려 노력한다고 한다. 교육과 글을 통해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독서모임을 활성화해서 성인들을 위한 교육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나는 강의와 글을 통해 유교수와 같은 맥락의 활동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유교수 그리고 나를 포함한 소위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남의 문제가 아닌 내가 주인공이 되는 문제에 대해서 과연 용기이게 메스를 댈 수 있는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타자의 상징으로 생각당하는 대상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성찰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제안을 하는 많은 이들이 스스로의 문제 중 자신이 미래에 갑이 될 '을'의 입장에서 혹은 이미 '을'을 지나 '갑'이 된 상황에서 진정 '을'을문제를 해결할 의지에 대한 성찰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이 책에서 던진  "우리가 원하는 힐링〔위로〕이 과연 문제의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책 없이 마음의 상처가 치료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대해 '내 밥줄이 걸려있어도 그렇게 할 수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나는 저자와 나 그리고 책에 제시된 해결책을 알고 있는 모두에게 자신의 실질적인 이권이 개입된 문제에 이토록 당당하게 개입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유범상의 필링의 인문학
▲ 필링의 인문학 유범상의 필링의 인문학
ⓒ 김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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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음을 받은 자들은 행동으로 답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요건이 무엇인지를 이 책에서 우리는 찾을 수 있다. 바로 '연대'라는 힘이다.『필링의 인문학』은 우리에게 또 다른 물음을 던져주고 있지만 결국 그 물음에 대한 해답도 가지고 있는 책이다.

덧붙이는 글 | 본인의 개인 블로그나 학술블로그 아포리아에도 올립니다



필링의 인문학 - 이상한 놈, Peeling의 인문학을 만나다, 수정증보판

유범상 지음, 논형(2014)


태그:#필링의 인문학, #박노자, #유범상, #힐링의 인문학,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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