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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4일 이찬우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기업 부담을 덜어주는 차원에서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3일 뒤인 27일엔 이형준 경총 노동정책본부장과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JTBC 뉴스룸에서 토론을 벌였다. '정규직 과보호론'에 대한 기업과 노동계의 입장은 판이했다.

'정규직 과보호로 기업이 정규직 채용을 꺼린다'는 기업의 입장과 '정규직을 과보호하지 않았을 뿐더러 정규직 해고 완화와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 완화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노동계의 반박이 오갔다.

이 본부장은 "정규직이 법적으로 과보호를 받고 있고 부담이 커져 기업이 신규 채용을 꺼린다"고 말했다. 이 말만 들으면 마치 정규직은 '철밥통'이고 기업은 정규직을 평생 책임진다는 말처럼 들린다. 한 번 들어가면 나오지 않는 정규직 때문에 청년실업이 해소 되지 않는다는 투다.

고용유연성을 높이시겠다는 양반들이 2013년 정년연장법 통과는 왜 그리 서두르셨을까. 20~30대 취업준비생들이 바라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해고 완화가 아니라 인턴제·수습기간 폐지 등의 취업완화다. 정년연장은 청년실업 해결과 반대되는 법안이었지만 그래도 가계부담은 덜어줄 수 있었다. 아들, 딸이 취업을 못해도 아버지가 몇 년 더 벌 수 있게 되니까. 그런데 이제는 아버지마저 실업자가 될 판이다.

청년실업 해결은커녕 아버지마저 실업자 될 판

기획재정부 고위 관료 입에서 나온 '정규직의 해고 요건 완화' 발언을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사진은 퇴근하는 직장인들.
 기획재정부 고위 관료 입에서 나온 '정규직의 해고 요건 완화' 발언을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사진은 퇴근하는 직장인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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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계는 우리 사회가 정규직을 과보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지금도 많은 사업장에서 정규직 대량해고가 이어지고 있다. 불과 10년 사이에 정규직을 대량해고하고 회사를 매각하는 '먹튀기업'이 늘었다. 대우차(현재 한국지엠)나 쌍용차 등이 그런 경우다.

'법·제도상으로도 우리나라의 정규직에 대한 정리해고는 쉬운 편에 속한다'는 보도도 있다. 특히 지난 2013년 고용노동부가 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노동시장 지표 비교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정규직 집단해고는 OECD 34개국 중 4번째'로 쉬운 것으로 조사됐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으며, 기업의 부담은 줄이고 고용유연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비정규직을 늘렸다. 원래 비정규직은 해외파견이나 임시직처럼 일정한 기간만 고용하는 형태를 말했다. 그러나 기업은 비정규직에게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시키며 임금을 깎고 계약기간을 단축했다.

이렇게 양산된 비정규직 노동자는 취업을 해도 삶의 질이 달라지지 않고,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른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로 인해 기업만 좋은 '고용유연성'을 낳았다. 정부가 비정규직도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이 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기업은 오히려 비정규직 대량해고로 맞섰다.

현대차가 2004년 대량해고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인정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지난 9월 10년 만에 나왔다. 그런데도 현대차는 순순히 정규직 전환을 해주지 않았다. 대신 그동안 일한 경력을 버리고 신규채용으로 들어오면 받아주겠단다. 10년치 임금과 퇴직금을 그냥 주기가 아까워서 였을까. 이런 판결을 얻기까지 노동자들은 10년을 싸웠는데, 그 고통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다.

기업이 고용유연성의 주체여서는 안 되는 이유

미생 포스터. 장그래는 1년 계약직 사원이다. 정규직 해고가 완화되면, 비정규직의 처우가 개선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 "죽을 만큼 열심히 하면, 나도 가능한 겁니까?" 미생 포스터. 장그래는 1년 계약직 사원이다. 정규직 해고가 완화되면, 비정규직의 처우가 개선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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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정부의 말대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을 완화하면' 기업이 고용을 늘릴까. 드라마 <미생>에 나오는 오차장(오과장)이나 강대리가 해고당하면 수많은 '장그래들'이 정규직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비정규직인 '장그래'는 '양과 질이 다른 노력'으로 회사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원작 대로라면 결국 정규직이 되지 못한 채 계약이 끝나면 회사를 나가게 될 인물이다. 현실 속 '장그래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인턴·수습·계약직을 거쳐 대부분 비정규직을 면치 못한다.

고용유연성 제도 그 자체만 본다면 기업뿐 아니라 노동계도 반길 일이다. 일이 필요한 사람은 일자리를 얻고, 쉬어야 하는 사람은 재취업 걱정 없이 회사를 나와서 쉬고 난 뒤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면야 반대할 리 없다. 문제는 현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도 않거니와 기업이 고용유연성의 주체여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

기업의 이익을 위한 고용유연성은 경제 불화를 야기한다. 기업의 필요에 의해 고용하고, 필요가 없어지면 해고를 하는 게 고용유연성은 아니다. 지금의 고용유연성 악화 원인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을 키운 기업의 태도에 있다고 본다.

'비정규직=파리 목숨'이라는 공식이 사회에 공공연히 퍼져 있다.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것은 점점 어려운 일이 되었다. 20대에 정규직으로 입사하는 것은 취업준비생들에게 꿈같은 일이다. 서류 면접, 인터뷰에 이어 일주일씩 합숙하면서 팀워크까지 보는 합숙면접을 통과해 면접에 붙어도 '장그래'처럼 인턴사원이 될 뿐이다.

이런 현실을 모를 리 없을 텐데, 기업이 정규직 뽑기를 꺼리기 때문에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는 정재계 인사들의 발언은 "기업은 사람을 싼 값에 쓰고 싶은데 우리나라 국민들은 너무 비싸다"라는 말처럼 들린다. 온전한 고용유연성을 바라기에는 갈 길이 멀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알바노조 20대 조합원입니다. 알바노조 www.alba.or.kr 02-3144-0936



태그:#비정규직, #정규직고용완화,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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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동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2013년 7월 25일 설립신고를 내고 8월 6일 공식 출범했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시급 10,000원으로 인상, 근로기준법의 수준을 높이고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알바인권선언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http://www.alb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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