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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몇 년 동안 유기농산물을 사먹고 있는데요. 갈수록 커지는 것 같아요."
"왜 내가 재배한 유기농산물은 생협이나 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작고 볼품이 없을까요?"

텃밭농사 교육을 하다 보면 가끔씩 이런 말을 듣는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지어보면, 유기농인증 마크가 찍힌 포장 속의 농산물에 비해 더 거칠고 투박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때문에 내가 농사를 잘 못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자책하는 사람도 있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포장된 유기농산물들은 선별돼 상품이 된 것들이다. 작고 볼품없는 농산물은 상품이 될 수 없다. 농산물이 상품이 되면서 생긴 차별이다. 물론, 작거나 벌레가 먹었다고 맛이 없거나 영양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농산물이 상품이 되면서 생긴 차별

유기농의 가치는 농부의 땀과 자연이 함께 만든것이다
▲ 농부의 마음 유기농의 가치는 농부의 땀과 자연이 함께 만든것이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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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흙, 날씨 등의 환경적인 조건과 농사방법에 따라서 변수가 많다. 특히, 비닐하우스처럼 온도와 습도 등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시설이 아닌 자연 상태의 노지에서 짓는 유기농 농사는 더욱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농작물을 겉모양으로 비교해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쁘고를 구분하는 것은 진정한 유기농의 가치를 모르는 행동이다.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와 차별 문화가 농산물로 이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유기농산물 소비가 가치보다는 겉모양으로 판단하는 기형적 소비문화로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웰빙'의 유행을 타고 친환경농산물의 재배가 늘고 그 시장도 점차 커졌다. 이전까지 유기농산물의 유통과 판매는 지역에 기반을 둔 생활협동조합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이제는 대형마트가 들어오면서 경쟁구조로 바뀌었다. 생협 간의 경쟁도 불가피해졌다.

먹을거리를 가격으로 경쟁하면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그 피해가 돌아간다. 유기농산물도 크고 때깔 고운 것이 좋다는 인식이 생기게 되면, 유기농의 가치를 전파하던 생협도 소비자의 요구사항을 무시할 수 없다. 생협 매장의 활동가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형마트와 다른 생협의 농산물과 비교를 하면서 '갑'질을 하는 진상 손님이 많아졌다고 한다.

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

유기농사를 잠시 접게 되었다는 어느 농부의 편지
▲ 농부의 편지 유기농사를 잠시 접게 되었다는 어느 농부의 편지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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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농산물보다 비싼 돈을 내고 사먹는 '고객'으로 대접을 받으려고 하면 유기농의 가치와 건강한 농산물 모두를 잃게 된다.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신뢰, 상생의 가치가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농민은 유기농산물에 대한 가치와 긍지를 갖기보다는 소비자와 계약자가 원하는 '상품'을 생산하게 된다.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 시키지 못하면 출하물량이 줄어들고, 계약해지의 손해도 감수해야 한다. 결국, 편법을 쓰려는 유혹이 커지게 된다. 농부들과 농사 전문가들이 펴낸 책 <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의 한 대목을 살펴보자.

"더 큰 걸 좋아하니 비료를 줘야 하고, 비료를 더 주면 병해충이 더 잘 생기니까 농약을 더 자주 쳐야 해요. 이렇고 돌고 도는 겁니다." (<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 본문 중에서)

유기농산물에 대한 인증검사가 제대로 안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김승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친환경 민간인증업체 지정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인증기관과 친환경인증농가들의 위법행위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2001년부터 유기농 인증이 시작됐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심사와 인증 방법이 크게 다르다. 한국의 경우, 농사과정은 무시하고 실험실에서 나온 결과만으로 검사를 하는 제도의 허점이 위법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유기식품 심사 방법은 한마디로 '실험실 만능주의'라고 표현할 수 있다. 실험실주의를 달리 표현하자면 '결과 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들(외국)은 인증을 위한 심사에서 실험실 분석을 하지 않는다. 분석은 단속의 도구로만 드물게 쓰일 뿐, 유기농인지 아닌지 판가름하는 도구로 쓰이지 않는다. 심사원은 논,밭,목장을 찾아가 직접 흙을 만져보고 작물과 동물의 상태를 관찰한다." (<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 본문 중에서)

친환경농업육성법에 따르면, 유기농산물의 인증요건은 "3년간 화학비료와 유기합성농약을 일체 사용 하지 않고 토양 및 농업용수가 기준에 적합한 포장(밭)에서 재배한 농산물"로 규정하고 있다. 그 아래 단계인 무농약 인증조건은 "농약은 사용하지 않고, 화학비료는 기준치의 1/3이하로 사용"하는 요건을 갖추면 인증을 해주고 있다.

어디서 누구로부터 왔는지 알고 있는 '신뢰'가 인증

직접 기른 콩을 장터에서 팔다 논란에 휩쓸린 이효리. '유기농'이라는 말을 쓴 게 문제였다고 한다.
 직접 기른 콩을 장터에서 팔다 논란에 휩쓸린 이효리. '유기농'이라는 말을 쓴 게 문제였다고 한다.
ⓒ 이효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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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조건을 규정하는 것은 법적인 규제의 필요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농부와 자연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진실되게 담겨 있을 때, 비로소 완전한 유기농산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먹는 농산물이 어디서 누구로부터 어떻게 왔는지 알고 있다면 그것은 '신뢰'라는 인증이 된다. 비싼 인증료 내가면서 유기농인증을 받을 필요도 없고, 생산자의 얼굴을 아는 소비자는 그것을 확인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가수 이효리씨가 힘들게 농사지은 콩을 수확하는 것을 방송에서 봤다. 지역에 도움을 주기 위한 마을장터 행사에 참가해 콩을 판매하면서 '유기농'이라는 글씨를 썼다는 이유로 고발 당했다고 한다. 유명 연예인에 대한 악의적인 관심이 부른 해프닝이지만, 진짜 유기농은 크고, 반질반질한 것도 아니며, 동전만한 인증 표시가 농부가 흘린 땀의 수고와 자연이 주는 가치를 보증할 수는 없다.

농부와 자연의 가치를 거짓 없이 담아야 진정한 유기농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알아야 올바른 농사를 짓는 농부를 응원할 수 있고, 유기농의 가치를 알아주는 소비자가 될 수 있다.

"제주에 내려와 첫 농사로 콩을 했는데 드디어 첫 수확을 했다. 농사라고 해봐야 봄 지나 밭에 콩을 뿌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이렇다 할 말이 없다. 문제는 수확이었는데, 우리 밭에 돌이 너무 많아 기계가 들어올 수 없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약 1000평 되는 밭에 약도 치지 않아 콩반 풀반, 일일이 낫으로 베려니 막막했다. 그래도 주변에 도움에 손길이 많아 엄두를 내보았다." (이효리의 블로그 <소길댁> 글 중에서)


태그:#유기농, #이효리콩, #유기농인증, #친환경농산물, #화학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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