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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부터 충남 태안반도에 있는 가로림만 쪽으로 걷기운동을 시작했다. 내가 사는 집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인 태안읍 삭선리에 차를 놓고, 삭선천 둑길에 조성된 '솔향기길'을 45분가량 걸으면 가로림만 초입에 닿는다.

그동안 주로 가로림만과는 반대 방향인 장명수 포구로 가서 해변 길을 걸었다. 장명수 역시 자동차로 5분 거리 안에 있다. 장수정이라는 정자 앞에 차를 놓고 갈대밭 길을 지나 해변으로 가기도 하고, 두야리 수문 위에 차를 놓고 곧바로 모래톱을 밟기도 한다.

충남 태안군 태안읍 삭선리 삭선천 올레길 끄트머리 생태공원 쪽에서 바라본 가로림만 만조 대의 풍경이다.
▲ 가로림만 풍경 충남 태안군 태안읍 삭선리 삭선천 올레길 끄트머리 생태공원 쪽에서 바라본 가로림만 만조 대의 풍경이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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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장명수에서 해변 걷기운동을 하곤 했는데, 요즘에는 삭선천 올레길을 걷거나 가로림만으로 간다. 가로림만에 대한 애착을 다시금 체감한다. 이는 가로림만을 지킬 수 있게 된 반가운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내가 사는 충남 태안 읍내에서 동남 방향으로는 '빼앗긴 바다' 천수만이 있고, 남쪽으로는 장명수가 있다. 육지 속으로 움푹 파고들어 온 작은 포구인 장명수. 그곳에서 오른쪽 서남 방향으로는 근흥면의 연포와 채석포가 있고, 안흥항과 신진도로 이어진다.

또, 장명수의 왼쪽 남동 방향으로는 남면의 몽대항과 몽산포, 청포대, 마검포가 있고 천수만과 안면도로 이어진다. 서쪽으로는 만리포와 천리포, 모항항과 파도리 등이 있고 서북쪽으로는 이원방조제와 학암포, 구레포 등이 있다.

삼면이 바다인 태안반도 중심인 태안읍 북쪽에 가로림만이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가로림만을 보면 가슴에 통증 같은 것이 느껴졌다. 가로림만도 결국에는 천수만처럼 '개발귀신'에게 먹힐지 모른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빼앗긴 바다 천수만에 대해 그리움이 새록새록 피어오르더니, 끝내는 가로림만도 빼앗기고 말 거라는 절망감 때문에 돌연 눈물이 솟구친 적도 있다.

태안군 태안읍 삭선리와 원북면 청산리의 경계인 갈두천 둑길 끄트머리에서 바라본 가로림만 썰물 때의 풍경이다.
▲ 가로림만 풍경 태안군 태안읍 삭선리와 원북면 청산리의 경계인 갈두천 둑길 끄트머리에서 바라본 가로림만 썰물 때의 풍경이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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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가로림만 쪽으로는 발걸음이 잘 떼어지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가로림만을 보는 일이 뜸해졌다. 이럴수록 가로림만에 대한 애착심을 더욱 키워야 하고, 가로림만의 원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가로림만 쪽으로는 냉큼 발길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흔연한 마음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로림만을 갈 수 있다. 나는 요즘 자주 가로림만을 보곤 한다. 삭선천 둑길과 갈두천 둑길을 따라 가로림만으로 가는 일도, 도내리 포구에서 가로림만 해변을 걷는 일도 이제는 마냥 즐겁다. 고맙고도 기쁜 일이다.

'개발귀신'과의 9년 전쟁

오랫동안 거센 찬반 논란과 주민 갈등을 증폭시킨 가로림만 조력발전 계획이 사실상 백지화됐다.

지난달 6일 환경부는 가로림만 조력발전사업 환경 영향평가서를 반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가로림만의 공유수면매립기본계획의 법정 유효기간은 11월 17일까지다. 그 기간 안에 다시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찬성 쪽과 반대편의 일치된 견해다.

지난달 17일, 가로림만 조력발전건설 반대투쟁위원회(대표 박정섭)는 서산시청 앞 소공원에서 자축 막걸리 잔치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그동안 가로림만 조력발전 반대투쟁에 함께 했던 많은 주민들이 모여서 막걸리를 마시며 한껏 기뻐했다.

환경부가 '가로림만 조력발전사업 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하기로 결정한 10월 6일로부터 열흘 후인 17일 오후 반대투쟁위원회는 서산시청 앞 소공원에서 자축 막걸리 잔치 행사를 열었다.
▲ 막걸리 잔치 환경부가 '가로림만 조력발전사업 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하기로 결정한 10월 6일로부터 열흘 후인 17일 오후 반대투쟁위원회는 서산시청 앞 소공원에서 자축 막걸리 잔치 행사를 열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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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림만 조력발전건설 반대투쟁위원회는 자그마치 9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 9년 동안 줄기차게 반대 투쟁을 했다는 얘기다. 중간에 가로림만 조력발전건설 백지화를 위한 서산·태안 연대회의도 생겨 힘을 보탰다. 2013년에는 다각적인 투쟁 방법의 일환으로 가로림만 생태문화협동조합도 생겨났다.

가로림만을 끼고 있는 서산과 태안의 전체 어촌계 중에서 절대 다수인 32개 어촌계가 가로림만 조력발전건설 반대 투쟁에 합류해 수적으로는 반대쪽이 훨씬 우세했다. 하지만, 찬성 쪽 주민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조력발전소를 건설하려는 쪽은 자금력과 정보력이 있었다. 돈으로 주민들을 회유했고, 공청회 자리에서는 용역들을 동원해 반대쪽 주민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찬성 주민과 반대 주민들 간 갈등은 날로 첨예화되어 맞불 집회도 빈번했고 인터넷 공간에서의 논리 싸움도 치열했다. 지금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벌어진 이런저런 형태의 '개발귀신'과의 싸움은 대개 개발 쪽이 승리했다. 반대 주민들은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가로림만 조력발전건설 반대투쟁위원회가 지난 9년 동안 벌여온 반대투쟁은 실로 눈물겹다. 삼복더위와 엄동설한에도 아랑곳없이 서산시청 앞 대로변에 농성천막을 설치하고 수년 동안 농성을 벌였다. 수십 명이 함께 세 차례나 서울 정부청사와 과천 정부청사로, 또 세종특별시 정부청사로 며칠씩 행진을 했다.

가로림만 조력발전 건설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어민들과 주민에게는 오직 환경 보존이 절대 명제였다. 이들은 환경 보존에 지역과 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결단코 포기할 수 없는 절대 가치였다.

2014년 3월 12일 가로림만의 어민들은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서 삭발식을 했다. 일주일 동안의 행진 마지막 날이었다.
▲ 가로림만 조력발전 건설 반대투쟁 2014년 3월 12일 가로림만의 어민들은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서 삭발식을 했다. 일주일 동안의 행진 마지막 날이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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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국무회의 차원의 결정과 공포 절차가 남았다. 하지만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서 반려 결정이 사실상의 건설 백지화를 의미하므로 가로림만 조력발전건설 반대투쟁위원회의 박정섭 대표는 한껏 고무된 표정이었다.

백지화를 확정하는 정부 절차가 마무리되면 대대적인 축하 행사를 열어야하겠지만, 우선 소규모로 자축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지금까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 이런저런 형태의 '개발귀신'과의 싸움에서 반대투쟁이 승리한 곳은 단 한 군데입니다. 강원도 동강이지요. 동강이 본래 모습으로 보존됐습니다. 그런 승리에 우리 가로림만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우리는 기나긴 개발귀신과의 싸움에서 마침내 이겼습니다. 가로리만의 승리와 보존이 다른 지역에도 좋은 자극과 귀감이 되기를 바랍니다."

건장한 체격의 그는 9년 동안의 싸움에도 조금도 지치지 않은 기색이었다. 가로림만의 해풍 속에서 나고 자란 걸출한 사나이였다. 그는 그동안 만난고초를 함께 한 어민, 또 굳게 연대한 지역주민과 일일이 악수하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가로림만의 승리가 전국에 퍼지기를...

10월 17일 오후 서산시청 앞 소공원에서 열린 가로림만조력발전건설 백지화를 환영하는 자축 행사에서 지난 9년 동안 반대투쟁을 이끌었던 박정섭 위원장(가운데)이 전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대표였던 남현우 변호사(오른쪽)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옆에서 국수를 들고 있는 태안 출신 홍재표 충남도의원.
▲ 막걸리 잔치 10월 17일 오후 서산시청 앞 소공원에서 열린 가로림만조력발전건설 백지화를 환영하는 자축 행사에서 지난 9년 동안 반대투쟁을 이끌었던 박정섭 위원장(가운데)이 전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대표였던 남현우 변호사(오른쪽)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옆에서 국수를 들고 있는 태안 출신 홍재표 충남도의원.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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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역주민으로서 일찍부터 가로림만 조력발전건설에 반대하는 쪽에 섰지만, 반대투쟁에 적극 나서지는 못했다. 나름의 사정과 한계 탓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3년 8월 가로림만생태문화협동조합을 창립하고 초대 이사장을 맡으면서 반대투쟁에 나섰다. 가로림만생태문화협동조합은 가로림만을 지키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의 한 가지였다.

반대투쟁 전면에 나서서 활동하면서도 늘 불안했다. 1980년대 초 천수만을 개발귀신에게 빼앗긴 참담한 기억도 왕왕 나를 괴롭혔다. 그때는 반대투쟁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그냥 두 손 놓고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고스란히 천수만을 잃었다.

불과 몇 년 전에 4대강이 무참하게 도륙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불안했다. 저 4대강처럼 가로림만도 종래에는 개발귀신에게 먹히고 말 거라는 불안감으로 식은땀을 흘리기도 했다. 전국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개발귀신의 악다구니 소리에 위기감을 느꼈다.

나는 이제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됐다. 앞서도 말했지만 요즘은 자꾸 가로림만 쪽으로 걷는다. 태안읍 삭선리의 삭선천 올레길이나 태안읍과 원북면의 경계인 갈두천 둑길을 밟고 40∼50분을 걸어 가로림만을 대할 때마다 절로 환성을 지르게 된다. 가로림만에 죄를 짓지 않고, 본래 모습을 지킨 게 그렇게 기쁘고 흥겨울 수 없다.

충남 태안군 원북면 이화산에서 바라본 가로림만 썰물 때의 일부 풍경이다.
▲ 가로림만 충남 태안군 원북면 이화산에서 바라본 가로림만 썰물 때의 일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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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민이 아니다. 어장도 없고 맨손 어업권도 없다. 하지만 가로림만 어디에나 가서 가을 한철에는 망둥이낚시를 할 수 있고, 어촌계 양식장이 아닌 곳에서는 마음대로 조개를 캐고 굴을 따고 낙지도 잡을 수 있다. 가로림만 특산물인 감태와 곤쟁이젓도 철마다 맛볼 수 있다. 가로림만의 물범도 구경할 수 있다.

지난 9년 동안 가로림만을 지키기 위해 땀과 피눈물을 흘리며 싸운 어민들과 지역주민들, 또 고장 밖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나는 앞으로 가로림만을 자주 보고, 더욱 뜨겁게 사랑할 수 있게 됐다. 가로림만을 볼 때마다 행복해지는 마음이 가득하다.


태그:#가로림만, #조력발전, #환경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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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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