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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관은 대통령을 지키는 사람이라 했죠? 대통령은 국민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국민이 위기에 빠졌는데 나 혼자 살겠다고 도망칠 수 없어요."

SBS 드라마 <쓰리데이즈>에서 나온 대사다. 경호관 한태경(박유천 분)이 위험하니 피하라고 권하자, 드라마 속 대통령 이동휘(손현주 분)가 이렇게 대답했다. 세월호 참사 즈음에 나온 대사여서일까, '대통령은 국민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이동휘의 말은 시청자들에게 울림을 주었다.

지난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는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세월호 사건이 나고 200일 넘게 흘렀지만, '대통령은 국민을 지키는 사람'이라던 이동휘는 드라마 속에만 존재할 뿐 현실에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세월호 특별법도 여야 합의에 이르렀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왜 시작인지 궁금하여 지난 3일, 안산에서 세월호 희생자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를 만나 세월호 200일과 특별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다음은 이호진씨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인 단원고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가 10월 13일 광주 북구 전남대에서 '길 위에서 희망을 묻다'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날 강연은 '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광주시민상주모임'과 전남대 총학생회의 주최로 열렸다.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인 단원고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가 10월 13일 광주 북구 전남대에서 '길 위에서 희망을 묻다'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날 강연은 '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광주시민상주모임'과 전남대 총학생회의 주최로 열렸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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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이 세월호 참사 200일이었어요. 200일이란 시간이 유가족 입장에서는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이기 때문에 200년이 흐른 것 같을 텐데, 어떻게 보내셨나요?
"200일 사이에 명절이 한 번 지났고 계절은 두 번 바뀌었죠. 그런데 세월호 참사는 국가나 관리들이 끼어있는 참사이기에 저희가 바라는 진상규명이 확실히 되고 있지 않아요. 거기에 연관된 책임자들이 다 나오려면 앞으로 명절이 몇십 번 더 지나가야 하고 계절이 몇 십 번 바뀌어야 할 지 예상할 수 없어요.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유가족 대부분이 초기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6개월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참사 진상규명을 밝히기 위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지금 확실히 잘 알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시간 등 모든 것을 다 초월해서 마지막까지 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야 할지 모르지만, 참사 진상규명이 확실히 밝혀지는 그날까지는 아마 모든 유족이 똑같이 행동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거기에 저도 포함이죠."

-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했어요, 어떻게 평가하세요?
"합의된 특별법은 현 정권 하에서는 진상규명을 안 하겠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저희가 진상규명시간을 길게 잡은 거예요. 현 정권은 진상규명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법이 그렇게 합의된 거고 그 합의안을 가지고 세월호 진상규명을 밝힌다는 건 불가능해요. 현 정권 하에선 아마도 어려운 상황이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밝혀야 하지 않나 생각하죠."

아이들 잃은 부모의 억울함 때문에... 십자가 도보순례 시작

- 지난여름에 900Km 도보순례를 하셨잖아요.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하게 되셨어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시간이 경과한 후에도 단 한 명의 생존자도 구하지 못했어요. 그럼에도 정부에서 내놓은 대책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어요. 그 때문에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은 억울했고 참담했어요. 그 부모 심정에서 '어떻게 해야 아이들의 억울한 한을 풀어줄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사태가 그 지경까지 이르렀으면 누군가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너희들이 책임회피를 하고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면 유족인 나라도 십자가를 져야지 않느냐'란 생각에서 십자가를 진 거죠."

- 그냥 걸어도 힘이 들었을 텐데 십자가를 지셔서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땡볕에 걸어서 상당히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건 사실이죠. 그럼에도 십자가를 지고 갔다는 건 십자가에 남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이죠. 저는 그전부터 천주교 신자가 되는 것을 원했기 때문에 '그냥 걷는 것보다 십자가와 함께 먼 길을 떠나게 되면 뭔가 커다란 의미가 있을 것 아니냐, 또 세상에 울림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당시엔 11명의 실종자가 가족을 만나지 못할 때였어요. 그래서 기도하며 길을 가게 되면 그 기도소리가 하늘에 닿고 세상에 울림을 줘서 행여라도 아이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기도하며 갔어요."

- 많은 분들을 만나셨을 텐데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광주 금남로를 지날 때 몸이 불편한 장애우들이 저희가 지나가는 길을 아시고 나와 계셨어요. 그날은 같이 해주셨는데 그런 순간들이 기억에 남죠. 그리고 길에서 음료수나 과일을 주며 힘내라고 응원했던 분들도 기억에 남아요."

-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다리가 아파서 고통스러울 땐 그런 생각도 했지만, 일주일이 경과한 후엔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기 때문에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었죠. 오히려 힘이 나서 포기할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요."

- 지난주 지현이의 시신이 나왔어요. 그날이 지현이의 생일이라 더 안타까웠는데 유가족들 분위기는 어땠어요?
"지현이가 며칠 전에 가족들 품으로 돌아왔어요. 지금은 추모공원으로 자기 자리를 찾아갔는데 지현이가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상태죠. 유족들도 많이 지친 상태였고, 그 분위기를 틈타서 정부는 인양 얘기를 꺼냈죠.

팽목항에 있던 실종자 가족들이 의견이 나뉜 건 사실이에요.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순간에 지현이가 돌아온 것이었거든요. 지현이가 가족 품으로 돌아온 의미는 '기다리고 끝까지 정성을 다하면 나머지 9명의 실종자도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이 담겨 있어요. 그래서 인양을 얘기하던 유족들도 '기다리고 끈기 있게 구조하면 만날 수 있구나'는 깨우침을 가졌죠. 지현이가 돌아옴으로 해서 세월호 실종자 구조에 한층 더 기대를 갖고 있는 때라고 보시면 됩니다."

- 지현이의 경우, 생존 학생들이 얘기했던 장소에서 발견된 것으로 아는데 왜 시간이 오래 걸렸을까요?
"지현이는 마지막 목격된 순간이 화장실 쪽이었어요. 발견된 곳 역시 그곳이라 가족들과 만날 수 있었는데 그 부분은 지현이가 나오기 전에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서 실종자 가족들이 당국에 말한 부분이에요. 그런데 왜 이제 나왔느냐는 앞으로 두고 볼 일입니다. 다만, 세월호가 침몰한 지 시간이 꽤 흘렸기 때문에 진흙 등 여러 부유물이 끼어 가라앉은 상태에서 지현이가 늦게 발견되지 않았나하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거죠."

-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던데.
"어떤 것을 언론이라 하는지 모르겠지만, 세월호 참사 후 대한민국에서 언론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에어포켓 논쟁, 무의미하다"

- 세월호 가족 대책위 유경근 대변인 말에 의하면 아이들이 찍었던 동영상에서 입었던 옷과 나왔을 때 옷이 다르다고 하셨어요. 그렇다면 실제 에어포켓이 존재했다는 의미인가요?
"그러나 전체가 다른 건 아니에요. 옷이 같은 아이도 있었고 다른 아이도 있었죠. 그러나 동영상이라는 것은 침몰할 때에 찍은 것도 있지만, 침몰 전에 찍은 동영상도 있을 것이고 동영상을 찍은 후 갈아입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애매해요. 실제 에어포켓이 있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에어포켓은 무시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 그럼, 에어포켓은 중요하지 않다고 보세요?
"실제로 배가 침몰하고 한두 시간은 모르지만 하루나 이틀 지나면 에어포켓은 없다고 봐야죠. 하루나 이틀 지나고 에어포켓이 있는지 확인한 사람이 없는데 에어포켓을 얘기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봐요."

- 이번 시신 수습으로 세월호 인양 이야기는 들어갔습니다만, 보통 생각하기엔 물속에 들어가서 수색하는 것보다 배를 건져서 찾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도 생각되는데, 실종자 가족은 반대하잖아요. 인양 과정에서 시신이 유실될까봐 우려되기 때문인가요?
"인양을 반대하는 이유는 유가족들이 정부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간 정부가 내뱉은 얘기를 뭐하나 진실 되게 가져온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냥 처음에 '구하겠다, 걱정하지 마라'라고 해놓고 단 한 명도 못 살렸고, '언제까지 수색을 완벽히 끝내겠다'는 식으로 해서 했던 부분도 말과 전혀 다르죠.

정부에서 지금까지 유족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진정성을 가지고 유족을 대한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인양을 해서 아이들을 가족 품에 돌아갈 수 있게 하겠다'는 말자체도 믿기 어렵죠.

또 인양할 경우, 6500톤 배를 통째로 건져 올릴 기술이 없다고 봐요. 인양되는 여러 방법이 논의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시신이 단 한 구도 유실되지 않게 하겠다는 믿음을 정부에서 주지 못했어요. 그래서 유족이나 실종자 가족이 인양을 반대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도 마찬가지죠."

"유가족, 정부 불신이 큰 정도가 아니죠...100% 안 믿어요"

- 유가족들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 큰 것 같아요.
"불신이 큰 것이 아니라 믿음 자체가 없어요. 불신이 크다는 건 예를 들어 10개 중 8~9개를 못 믿지만, 1~2개는 믿을 수 있을 때 불신이 크다고 말하죠. 하지만 지금은 믿음 자체가 아예 없어요. 그래서 말하는 개념이 불신과 다르겠죠. 100% 안 믿어요."

- 일반 유가족과 단원고 유가족이 다른 목소리를 내던데...
"일반인하고 학생이 모두 합쳐서 304명이에요. 304명 생각이 다 같을 수는 없어요. 그러나 바라보는 건 똑같아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밝히고, 책임자 처벌을 바라는 건 똑같아요.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방법에 있어서는 생각들이 다를 수는 있어요. 그건 세월호 유족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집단에 관계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봐주세요."

- 야당의 태도는 어떻게 보세요?
"야당의 인기가 요즘 많이 떨어진다고 하잖아요. 제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벌어진 결과인데 그건 상당히 문제라고 생각해요. 강력한 야당이 있어야지 힘없고 약한 서민들이 조금이라도 기댈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죠. 정치가 안고 있는 숙제라고 봐요. 야당 쪽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초심의 상태로 돌아가서 국민들에게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한, 이런 모습이 당분간 지속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다를 것 같은데...
"이 전엔 국가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죠. 그러나 이후는 국가가 이 정도라는 걸 새삼스레 느꼈고 정치가 이렇게까지 썩었다는 것도 느꼈죠. 그래서 억울한 일이나 힘든 일이 있어도 국가를 믿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유가족의 건강은 어때요?
"건강은 상당히 안 좋아요. 너무나 큰 고통이 가슴 속에 있기 때문에 본인들의 건강을 챙길 겨를도 없을 뿐더러 실제로 느끼질 못해요. 정상적인 생활을 할 때면 감기가 오거나 몸이 아프면 바로 알 수 있는데 이건 그런 일과 다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팔 다리가 순식간에 잘려 나간다면 알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것을 느낄 유가족은 아직 안 계실 겁니다."

- 지난주 태범이 아버지 인병선씨가 돌아가셔서 유가족들은 큰 충격이었을 것 같아요.
"상당히 안타깝게 생각하죠. 좀 힘이 들더라도 좀 더 이 땅에 계시면서 세월호 진상이 규명되는 날까지라도 같이 하시고 힘을 보태주셨다면 유족들에게 상당히 도움이 되는 부분일텐데, 안타깝게도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모든 유족에게 큰 슬픔이죠."

- 지금 가장 힘든 건 뭐예요?
"여러 가지죠. 세월호 진상규명이 당장 어렵다는 사실, 그리고 사실적으로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기 때문에 세월호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가슴 아프고 힘들죠. 그건 모든 유족이 한결같을 거예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 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 이야기'(http://blog.daun,.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세월호, #이호진, #이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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