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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스 크다톤(Alas Kedaton)의 원숭이 공원에서 따나롯 사원(Pura Tanah Laut)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우리를 태운 차는 야자수가 굽어보는 시원스런 논두렁을 지나 좁은 시골길을 계속 달렸다. 한 여행지에 대한 인상은 그날의 날씨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바닷가로 달려가는 오늘의 하늘은 너무나 맑게 개어서 마음은 쾌청하기만 하다.

차가 달린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따나롯 사원이 가까워졌다. 내가 따나롯 사원에 도착했다는 것을 안 것은 수많은 차와 함께 여행객들이 한 방향을 향해 이동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따나롯 사원은 발리의 여행 거점인 꾸따(Kuta)와 스미냑(Seminyak)에서 연결되는 발리 북서쪽에 있어서 접근성 면에서도 아주 좋은 곳이다.

여행자들에게 필요한 옷과 가방, 모자 등을 팔고 있다.
▲ 따나롯 사원 입구 상가 여행자들에게 필요한 옷과 가방, 모자 등을 팔고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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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를 내고 바닷가 쪽으로 들어서니 따나롯 사원으로 가는 문 앞 양쪽으로 상점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상점에서는 해변에서 입을 수 있는 옷도 팔고 모자도 팔고 열대과일도 판다. 아내가 찐 옥수수에 잠시 관심을 보이더니 이내 발길을 돌린다. 옥수수가 맛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한국 옥수수와 같이 특유의 달콤한 찐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상점들을 뒤로 하고 해변으로 들어서는 석문을 통과했다. 순간, 우리 눈앞에 광활한 대양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따나롯 사원은 광활한 바다를 배경으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아름답기에 여행자들이 빠트리지 않고 들르는 곳이다. 바다의 사원, 따나롯 사원은 발리에서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다. 신비감이 감도는 이 사원은 성인영화 <엠마누엘(Emmanuelle)>에 환상적인 배경으로 나오면서 명성을 더하게 되었다.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는 것은 이곳의 분위기가 그만큼 신비하고 몽환적이기 때문이다. 바다의 사원을 찾는 발리 현지인들은 이 사원에 바다의 신이 살고 있다고 믿는다. 

발리에서 그 이름 유명한 바다의 사원으로 가고 있다.
▲ 따나롯 사원 가는 길 발리에서 그 이름 유명한 바다의 사원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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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인파 속에서 조금 걷다보니 멀리 바닷가에 따나롯 사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따나롯 사원도 발리의 다른 사원들과 같이 힌두사원이다. '따나롯(Tanah Laut)'의 '따나(Tanah)'는 땅, '라웃(Laut)'은 바다를 뜻하며, 이름 하여 '바다 위의 땅'이라는 뜻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아주 심한 곳에 서 있는 이 섬은 물이 차는 밀물 때에는 섬이었다가 썰물 때 바닷물이 빠지면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육지가 된다. 그래서 밀물 때에 멀리서 보면 사원이 실제로 바다 위에 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사원 주변의 바다는 몽환적인 분위기로 인해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 따나롯 사원 사원 주변의 바다는 몽환적인 분위기로 인해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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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도 절경이지만 수많은 여행자들을 매료시키는 것은 엄청난 높이를 자랑하는 파도이다. 대양에서 몰려드는 집채만한 파도가 사정없이 해안가의 절벽을 때리고 있다. 파도는 해변의 바위에 부딪히면서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 일대 장관이면서도 경외감이 드는 이 파도는 거침없이 몰려들었다가 다시 해안에서 힘차게 빠져나간다.

수많은 여행자들은 모두 거친 파도를 바라보고 사진기에 담으며 감탄하고 있다. 이 거친 파도는 따나롯 사원 바로 앞까지 넘실대지만 크지 않은 이 사원은 용케도 건재하다. 늘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해안, 이 파도 때문에 따나롯 사원은 더 신비롭다.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아름다운 사원이다.
▲ 따나롯 사원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아름다운 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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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 함께 바닷가를 따라 잘 다듬어진 산책로를 걸었다. 길게 이어지는 해안선은 전혀 단조롭지 않게 구불구불 이어지고 있다. 사원과 해안의 절벽이 조금씩 모습을 달리 하면서 다가온다. 우리는 발리의 매력은 수많은 힌두교 사원들 안에 담긴 다양한 전설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 전설 속에는 발리를 지키는 힌두교의 신들이 등장한다. 발리 사람들은 이 전설 속의 신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따나롯 사원의 전설은 16세기에 자바(Java)에서 온 힌두교의 고승 '니라르타(Nirartha)'가 바닷가에 신령스럽게 서 있는 섬의 경관을 보고 감탄하여 당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사원을 세우면서 시작된다. 나는 발리 친구 아롬에게 이 사원의 전설에 대해서 물었다.

"따나롯 사원은 뱀신이 지키는 신성한 사원이라고 하는데 어떤 연유로 이런 전설이 생겼나요?"

"따나롯 사원을 세운 '니라르타'는 신앙심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신통한 법력을 가지고 있었지요. '니라르타'는 발리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신통한 일들을 보여주었는데, 자신이 두르고 있던 목도리로 뱀을 만들어 따나롯 사원을 지키게 했다고 합니다."

이 전설을 믿을지 말지는 개인의 자유이다. 전설은 항상 과학의 범주를 벗어나서 사람들 개인의 상상력 속에 있기 때문이다. 발리 사람들은 지금도 바다의 화신인 흰 뱀이 이 사원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발리 사람들이나 여행자 모두 뱀신에게 기도하면 축복을 받고 지혜의 문이 열린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발리의 힌두교도들은 이 믿음이 강할 것이고 여행자들은 이국의 전설을 즐기며 막연히 복을 비는 기도를 할 것이다. 종교는 믿음의 힘에서 비롯된다. 사원 입구에서부터 뱀신의 축복을 받는 특별한 체험을 위해 많은 발리인들이 몰려들고 있다. 아무튼 나는 사원 입구에서 뱀신에게 건강과 행운을 빌었다.

바위섬 안의 사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 사원 건너가기 바위섬 안의 사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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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나롯 사원이 있는 바위섬은 바닷물이 빠지는 썰물 시간 때에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 바닷가와 바위섬 사이에는 바닷물이 사람의 발목 높이 정도로 차 있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발리 친구 아롬에게 걸어서 바위섬에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바닷길을 건너기에는 약간 애매하게 바닷물이 차 있었다.

물론 바닷물이 섬과 육지 사이에 가득 차면 사원 측에서 섬으로의 입장을 통제한다. 지금은 통제 바로 전의 시간이다. 여행객들 중에서는 바닷물을 발로 차면서 바위섬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자세히 보니 바닷물은 조금씩 더 차오르고 있다. 얕은 바닷물이지만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슬아슬해 보인다.

물론 나 혼자 여행을 하고 있으면 당연히 바위섬에 들어갔겠지만 아내의 안전을 위해서 바위섬 진입은 포기하고 바위섬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우리가 바위섬 바로 앞에서 멈추어 섰듯이 바위섬의 암벽은 육지를 향해 돌진하다 멈춰버린 듯이 육지를 향해 팔을 벌리고 있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바닷가에서 여행자들이 사원을 감상하고 있다.
▲ 따나롯 사원 감상 바닷물이 빠져나간 바닷가에서 여행자들이 사원을 감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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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위에 서 있는데 젖은 바위 바닥이 꽤나 미끄럽다. 바닷물 속에 자주 잠기는 바위라서 곳곳에 해조류도 끼어 있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물길이 닿지 않는 작은 언덕 위로 올라섰다. 이 작은 언덕의 목 좋은 자리에는 이미 세계 각국의 수많은 여행자들이 자리를 잡고 주변 바다의 절경을 맘껏 감상하고 있다.

바위섬의 작은 동굴 안으로 들어선 여행자들을 보니 바위섬 안에 살고 있는 뱀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성수(聖水)를 찾아가고 있다. 바위섬 바위 틈에서 솟아나오는 물이 기적의 성수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의 신을 모시는 따나롯 사원에서 솟아나는 물은 기적을 일으키는 성수라고 발리인들은 믿고 있는 것이다.

여행자들은 힌두교 의식대로 이 바위 틈의 물로 얼굴을 씻고 이마에는 밥풀을 붙인 후 귀에 꽃을 꽂는다. 그리고 이 여행자들은 약간의 강압에 의한 헌금을 내고 자신의 복을 기원하고 있다. 눈 앞에서 바로 보이니 직접 들어가서 해보고 싶지만 바닷물이 조금 더 차올라서 가까스로 마음을 참았다.

따나롯 사원 자체는 작은 사원이지만 바위섬 정상에 오롯이 자리 잡은 사당은 바다 위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아름답게 서 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사원을 보고 있으려니 힌두교 스님들의 신앙심이 얼마나 컸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사원은 바위섬의 절벽을 돌아가며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다.

사원 내부까지의 입장은 통제되어 있지만 석문과 석상, 그리고 힌두교의 최고신인 상 향 위디(Sang Hyang Widhi)를 모신 사당과 이 사원의 창립자, 니라르타를 모시는 사당이 적나라하게 들여다보인다. 바위섬의 암벽을 돌아가며 만들어진 좁은 계단은 마치 천국으로 올라가는 아슬아슬한 계단처럼 보인다.

여행자들이 포말을 그리는 파도를 즐기고 있다.
▲ 따나롯 사원의 파도 여행자들이 포말을 그리는 파도를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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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위섬은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 자연 그대로 만들어 놓은 걸작이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사원이지만 바위섬 암벽에는 나무가 자라서 잎을 드리우고 꽃까지 피우고 있다. 휴양지의 바닷가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빌라와 같은 한적한 모습이 그렇게 신비로울 수 없다.

나와 아내는 해안가와 바위섬을 잇는 낮은 바위지대를 벗어나 해안가로 튀어나온 높은 바위 위로 올라섰다. 발 밑으로 파도와 사원을 감상하고 즐기는 여행자들의 다양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위 끝에 볼록하게 생긴 앉기 좋은 명당 자리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고 기념사진을 찍느라고 북새통이다.

바닷가 사원의 절경을 사진 찍던 사람들이 바닷물을 즐기고 있다.
▲ 바닷물에 발 담그기 바닷가 사원의 절경을 사진 찍던 사람들이 바닷물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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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넘실대는 바로 앞 바위에서도 많은 여행자들이 움직인다. 즐거운 여행자들은 파도가 해안에서 밀려나가면 얼른 사진을 찍고 파도가 몰려오면 다시 해안가 쪽으로 뛰어온다. 주변을 둘러보니 샌들을 신고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 매혹적인 해안가에서는 신발과 바지가 파도에 젖는 것도 즐거움이다. 나도 사진을 찍으며 잠시 방심했다가 바지에 거친 파도의 공격을 받았다.

따나롯 사원 북쪽의 절벽 위에 일몰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 일몰 감상 따나롯 사원 북쪽의 절벽 위에 일몰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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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 사원 앞 절벽 위에 모여 있는 이유는 또 있다. 따나롯 사원에서 바라보이는 낙조가 숨 막힐 듯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절벽 위에 서둘러 도착한 연유도 곧 일몰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이 사원 앞에서 맞는 일몰이 인도네시아 제일경이라고 하는데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일몰이 얼마나 아름답기에 숨이 막힌다는 것인지, 정말 제일경인지, 관광지에 대한 과장홍보가 아닌지 의심도 하면서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낙조를 기다렸다.

거친 파도소리 속의 일몰이 일대 장관이다.
▲ 따나롯의 일몰 거친 파도소리 속의 일몰이 일대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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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해를 보고 매일 해가 지지만 따나롯 해변의 바다 너머로 넘어가는 해는 정말 가슴 벅찬 감동이다. 따나롯 사원의 일몰이 환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대양의 파도가 굴곡진 바위 해안을 거칠게 때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수m 높이의 파도가 포말을 그리며 부서지는 뒤쪽으로 시뻘건 해가 사라지고 있었다. 대양의 파도 소리는 마치 영화의 배경음악처럼 바다 위의 해를 거칠게 감싸고 있었다.

나는 아내와 손을 잡고 산책을 하며 해안가를 걸어 나왔다. 사원과 파도에서 조금 떨어져서 바다를 다시 한 번 바라다보았다. 수많은 바다를 보아 왔지만 다시 와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정말 아름다운 바다이다. 해가 지면서 우리가 향하는 주차장 쪽으로 수많은 관광 인파가 이동하고 있었다. 그 관광객 인파의 머리와 어깨 위로 마지막 남은 햇빛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350 여 편이 있습니다.



태그:#인도네시아 여행, #발리, #따나롯 사원, #바다의 사원,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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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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