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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가슴 젖꼭지가 이상하긴 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얼마 후 건강검진 결과, 유방과 갑상선 등등이 '재검' 판정을 받았다.
 오른쪽 가슴 젖꼭지가 이상하긴 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얼마 후 건강검진 결과, 유방과 갑상선 등등이 '재검' 판정을 받았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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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말께, 전화 한 통이 왔다. 동부시립병원이었는데, 건강검진 결과지를 보내줬는데 못 봤느냐고 물었다. 받기는 했지만 아직 열어 보지는 않았다고 대답하자 재검진 받아야 할 부분이 몇 곳 있단다. '아니, 한 두 곳도 아니고 몇 곳이라고? 이 사람들이 장난하나?'하는 생각에 재검진 받을 의사가 없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자 전화를 건 이는 나더러 검사 결과지를 꺼내 보란다.

어디에 둔지도 모르는 결과지를 겨우 찾아서, 전화를 건 이와 함께 조목조목 짚어가며 확인을 했다. 유방과 갑상선은 재검사를 해야 하고 위장에는 용종이 아주 큰 게 하나 있고 작은 것도 몇 개 있다고 기록돼 있다.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나를 위해 병원에서 전화를 건 이는 또박또박 친절하게 설명했다. 통화를 마친 나는 잠시 '멍 때리고' 앉아 있었다. 일단 위장은 용종이라는 병명이 확실하게 나왔으니 됐고, 유방과 갑상선은 그냥 재검사를 해야 된다? 뭐지?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 나는 잠시 '멍 때리고' 앉았다

가족을 떠올렸다. 남편은 시골에 있고 아이들은 직장 일로 바쁘고, 생각 끝에 머문 사람이 언니였다. 강원도에 사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 이야기를 했다. 언니는 17년 전쯤에 유방암 수술을 했다. 혈육이라고는 자매뿐인 언니와 나는 급한 일일수록 차분해지는 성격이다.

서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전화는 끊었지만, 언니의 심정이 어떨지 내 심정이 어떨지 서로 말 안 해도 알기에 대책 같은 것은 의논하지 않았다. 10분쯤 후에 언니가 전화를 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 내일 아침 제일 빠른 시간으로 예약을 해놨으니 가보란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검사를 받으러 갔다. 담당의사는 언니의 주치의였다. 초음파와 엑스레이 촬영을 하라는 말을 뒤로 하고 나오다가 간호사가 든 종이를 보니 '특급'이라고 쓰여 있었다. 검사 결과는 3일 뒤에 나온단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3일을 일부러 일거리를 만들어서 바쁘게 지냈다.

유방 같은 경우에는 두 번이나 암 판정을 받고 병원을 3곳이나 바꿔가며 진찰을 받은 결과, 오진으로 밝혀진 적이 있다. 위장은 26년 전에 위암으로 판정 받은 후 병원에 12일간 입원해서 기어이 오진임을 밝혀 낸 바 있다. '이번에도 그런 걸 거야'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방 쪽이 자꾸 신경이 쓰인다. 얼마 전부터 목욕 후에 유방을 보면 오른쪽 젖꼭지가 안으로 말려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보여 주면서 "이상하지?"라고 했더니 "그러게"라고 답하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저냥 넘어갔다. 지혜보다 미련이 먼저 나는 게 사람이라고 했던가. 나는 쥐뿔도 모르면서, 나이가 드니까 유방 모양도 변한다고만 생각했다. 유방은 그렇다 치고, 난데없이 갑상선은 왜?

의사의 한마디 "음~ 언니와 같은 거네요"

진료실 밖에는 형부가 와 계셨다. 언니가 못오니 형부가 오신 모양이다.
 진료실 밖에는 형부가 와 계셨다. 언니가 못오니 형부가 오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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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가 나오기 전날, 늦은 밤 망설이다가 남편에게 전화로 알렸다. 아직 확실한 병명도 모르면서 부산을 떨고 싶지 않아서 아이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결과를 보러 가는 날, 이른 아침에 언니가 전화를 했다. 손자들 때문에 서울에 올 수는 없고, 의사 선생님께 잘 부탁해 놨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순응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란다. 나는 알았노라고 씩씩하게 대답은 했으나 혼자 결과를 듣는다는 사실이 약간 무섭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아직 아무 것도 밝혀진 건 없어. 그러니까 아닐 수도 있어'라고 주술처럼 중얼거렸지만 모양이 변한 유방이 자꾸 신경 쓰였다.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남편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골에서 새벽차를 타고 왔단다. 진료실 앞에 초조하게 앉아 있는데 간호사가 부른다.

일부러 활짝 웃으며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았다. 선생님의 표정이 미묘하다. 아, 불안하다.

"음 ~ 언니와 같은 거네요."

나는 아무 말 없이 속으로, '이젠 어느 병원에서 또 검사를 하지?'하는 생각으로 선생님 얼굴을 응시했다. 선생님은 컴퓨터 화면을 내가 보기 좋도록 돌려놓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설명이 끝날 때까지 얼어붙은 듯이 앉아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진료실 밖에는 형부가 와 계셨다. 언니가 못오니 형부가 오신 모양이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는데 기억에 남는 말은, "여기서 수술 받아도 되고 다른 병원에 가서 수술 받아도 된다"라는 말 밖에 없다.

그때서야 눈물이 쏟아졌다. 남편과 형부는 유방암에 걸린 자매를 각각 아내로 둔 불운의 남자들이었다. 형부는 아무 말 없이 내 얼굴을 바라보고, 남편은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태그:#유방암, #갑상선암, #오진,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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