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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5개월째인 9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부분의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여전히 문제점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이런 괴리감 속에서 5개월을 보낸 가족들의 마음은 어떨까. 가족들이 편지를 쓰기로 했다. 그동안 마주친 사람들에게 편지를 띄우고, 또 다른 사람이 편지를 이어 써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으로 진실을 밝히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메아리가 전해오기를 바란다. [편집자말]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8일째인 지난 4월 23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사고해역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8일째인 지난 4월 23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사고해역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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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아버지, 어제도 제게 전화를 주셨지요.

"밥은 잘 먹고 다니냐? 어떻게 지내는지 안 봐도 알 것 같다. 어떤 일이 있어도 건강 잃으면 안 된다."

제가 대답했지요.

"예, 아버지 저 잘 있고요, 끼니 거르지 않고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조금 지나면 뵈러 내려갈게요."

그리고 서둘러 전화를 줄였습니다. 2013년 초 아버지는 말기암 진단을 받으셨지요. 그때 이미 손을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말을 의사로부터 들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진통제와 호르몬제 처방을 하며 아버지께 이렇게 얘기했지요.

"하시고 싶으신 거 다 하시고 드시고 싶은 것도 다 드세요."

그런 당신이 아들 걱정을 하십니다.

"점심 먹었냐? 끼니 건너뛰면 안 된다. 니가 건강해야 성호 어미도 챙길 수 있다. 먼저 니가 건강해야 한다. 안 넘어가더라도 꼭꼭 챙겨먹어라. 그리고 얼굴 한 번 보고 싶구나."

아버지, 죄송합니다. 편찮으신 당신이 저를 걱정해주시다니요. 제가 오히려 아버지를 챙겨야 될 텐데. 하나뿐인 당신의 손자 녀석 하나를 제가 못 지켰습니다. 지금은 찾아뵙지도 못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아버지를 뵈어야 할지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진도체육관 구석에 울던 아버지 모습, 기억합니다

그때, 악몽 같던 진도체육관에서, 구석에서 우시던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제가 힘들어 할까봐 제 앞에서 울지 않으시고 구석 자리를 찾아 혼자 우시던 모습을 보았습니다. 팔순이 되신 편찮으신 아버지의 붉게 충혈된 눈을 보았더랬습니다.

그리고 수개월이 지났습니다. 지금 저와 제 아내는 분노하고, 절망하고 있는 중입니다. 거짓으로 일관된 살인자들의 태도에 언제까지 분노해야 할지 기약은 없습니다만, 하루 하루를 살아내고 있습니다.

길을 막아선 채, 막아선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 경찰. 자신들의 이익을 채우려고 뒤통수나 치는 교활한 정치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왜곡의 극을 보여주는 '말하지 않는' 언론….

이들은 하나같이 그만 끝내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멈출 수 없습니다. 아직 제가 처음부터 가졌던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국회로, 광화문으로, 청운동으로, 법원으로 그리고 진도로 가려 합니다. 아니 가야만 합니다. 가로막는 수많은 힘들을 뚫고 직접 제 목소리를, 울부짖음을 세상에 알리겠다고 다녀야 합니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아버지의 손자이자, 제 아들인 성호에게 미안하지 않을 때까지는 계속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더 추워지기 전에 아버지를 꼭 한 번 찾아뵈러 가야겠습니다. 가서 당신의 아들이 아직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같이 산보도 하고, 병원에 진료도 같이 가봐야겠습니다.

안산 단원고 2학년 4반 최성호 아빠 최경덕 올림

* 다음 편지를 이어서 써주세요. 2013년 순천 매산고에서 한 학기 동안 성호를 돌봐주신 김미연 선생님, 시민기록위원회 다큐팀 김진열 작가님, 단원중 3학년 담임 최은영 선생님, 성호 엄마와 성호가 같이 다닌 공방의 어미선 선생님이 쓰셨으면 합니다.

넉 달 만에 시신으로 만난 성호
회사의 해외파견으로 말레이시아에서 사고 소식을 듣고 진도로 오는 데 이틀이 걸렸습니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바닥을 뒹굴었고, 비행기 안에서 6시간을 또 울었고, 4월 17일 오후가 되어서야 진도에 도착했습니다. 성호와 최근 10년 동안 1년 반가량 같이 살았고, 주말부부로 한 달에 한두 번 가족들을 보며 지냈는데….

45살이 되어서야, 그렇게 사는 게 행복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같이 곁에 있어 주는 게 서로에게 행복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2013년 12월에 성호를 보고서는 올해 4월 20일에야 성호를 시신으로 만난 게 너무 한스럽습니다.



태그:#세월호, #가족편지, #세월호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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