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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5개월째인 9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부분의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여전히 문제점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이런 괴리감 속에서 5개월을 보낸 가족들의 마음은 어떨까. 가족들이 편지를 쓰기로 했다. 그동안 마주친 사람들에게 편지를 띄우고, 또 다른 사람이 편지를 이어 써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으로 진실을 밝히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메아리가 전해오기를 바란다. [편집자말]
대학생들이 9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농성장 앞에서 '10만의 동행, 5일의 약속' 기자회견을 열어 프로젝트에 대한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대학생들이 9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농성장 앞에서 '10만의 동행, 5일의 약속' 기자회견을 열어 프로젝트에 대한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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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살고 있는 대학생 여러분께.

저는 세월호 참사로 사랑하는 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낸 2학년 4반 박수현 엄마 이영옥입니다. 제가 지금 이런 편지를 쓰고  있다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제 인생의 전부였고 꼭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던 아들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밝게 웃으며 "엄마, 조심해서 잘 다녀오겠습니다" 하던 아들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누나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사다준다면서 밝게 웃던 아들을 이제 다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담요를 몇 겹씩 덮고도 추위에 벌벌 떨어야 했던 팽목항이었는데... 그 추운 바다 속에서 두려움과 고통으로 엄마, 아빠를 울부짖으며 죽어갔을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살아 있는 그 자체가 죄스럽고 미안할 뿐입니다.

먹고살기 바쁜, 능력 없는 부모라서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구조 의지가 전혀 없는 해경과 정부 관계자들을 향해 수없이 고함도 치고 욕도 해보고 빌어도 보고 애원도 해보았지만 그들의 표정은 늘 똑같았고, 단 한 명의 생명도 구조하지 않았습니다. 방송에는 수없이 많은 장비와 구조 인원이 투입되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나왔지만, 실제로 현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며칠 동안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한 상태에서 아이들의 시신만이라도 빨리 돌려 달라고, 대통령을 만나러 진도대교를 향해 걸어갈 때, 우리 아이들을 살려줄 거라 믿고만 있었던 바보스러운 제 자신이 죽도록 싫었습니다.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내 조국이 저를 배신했다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치를 떨어야만 했습니다.

당연히 아이들을 살려줄 것이라 믿고 기다렸는데 사고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차디찬 주검으로 아들을 돌려주었습니다. 미안하다고, 먼저 안산으로 올라가서 미안하다고, 자식들의 시신도 수습하지 못한 엄마, 아빠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습니다. 살아 돌아온 아들을 데리고 온 것도 아닌데 왜 그토록 미안해야만 했는지 그 상황이 너무 어이없고 기가 찼지만, 정말 남겨진 분들에겐 한없이 미안했습니다.

4월 16일 이후로 단란하고 행복했던 소중한 가족이 끊임없이 아파해야 했습니다. 충분히 아들을 위해 슬퍼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은 채 KBS로, 국회로, 청운동으로 가야 했습니다. 살 수 있었던 아이들이, 어른들만 믿고 기다리던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그 이유 하나 알기위해 내몰려야만 했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 5일째인 4월 20일 오전 전남 진도군 군내면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정부의 더딘 구조작업에 항의하며 진도대교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행진하자, 경찰이 이를 막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 5일째인 4월 20일 오전 전남 진도군 군내면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정부의 더딘 구조작업에 항의하며 진도대교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행진하자, 경찰이 이를 막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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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가만히 있었던 대가가 이렇게 혹독하구나

그러면서 수많은 후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수학여행을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4월 15일 안개 때문에 출발하지 못한다고 했을 때 인천항으로 데리러 가야 했는데, 1998년생인 수현이를 제 나이에 학교에 보냈어야 했는데, 단원고등학교에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먹고 싶다는 거 갖고 싶다는 거 다 해줬어야 했는데, 공부하라고 잔소리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수없는 후회들이 밀려들었지만 가장 후회되는 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했어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내 아이, 내 가정만 안전하다면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동안 가만히 있었던 대가가 이렇게 혹독하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이 나라의 대학생 여러분! 저는 46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았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 나이 먹도록 진실을 알기 위한 권리를 왜 포기했을까요? 왜 진실을 알아가려는 노력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왜 가만히만 있었을까요? 제 아이들과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살아갈 사회를, 안전하고 생명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회로 변화시키지 못한 어른인 저의 잘못입니다.

제가 이루지 못한 변화의 길에서 저희와 함께 작은 촛불을 들어주세요. 그리고 꿈 많던 우리 아이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어가 주시고, 꿈을 향해 도전하고 나아가는 젊은이가 되어주세요. 그리고 부모님들에게는 자식만큼 소중한 존재는 없습니다. 부모님 곁에 건강한 모습으로 계셔주세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누군가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잊지 않고 기억해주세요. 그 힘으로, 그 희망으로 저희 부모들은 끝까지 진실을 밝히는 촛불을 들 것이고, 안전하고 인간의 생명이 가장 소중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작은 힘이지만 엄마, 아빠이기에 끝까지 버티고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해주세요. 팽목항의 실종자들이 하루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시간이 다 되어 수현이를 만났을 때 눈 맞추고 엄마, 아빠 열심히 잘 살다가 왔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게 열심히 잘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9월 26일
2학년 4반 박수현 엄마 이영옥 드림.

* 다음 편지를 부탁합니다. 단원고 2학년 4반 임경빈 엄마 전인숙씨, 방송인 김제동씨, 경희대 학생 용혜인씨, 이재명 성남시장님, 이어서 편지를 써주세요.

애교스러운 개구쟁이 수현이
글쓴이 이영옥님은 안산 단원고 2학년 4반 고 박수현 학생의 엄마입니다. 무거운 짐 들고 가시는 할머니만 봐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착한 수현이, 누나를 동생처럼 잘 챙겨주고 사랑한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던 배려심 많고 애교스러운 개구쟁이 수현이는 4월 22일 밤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태그:#세월호, #단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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