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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서 2012년 대선 당시 세대별 구성과 선거인단 구성을 비교해본 통계표
▲ 역대 대선 선거인 연령별 현황 2002년에서 2012년 대선 당시 세대별 구성과 선거인단 구성을 비교해본 통계표
ⓒ 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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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문제를 가지고 말들이 많다. 처음 이 문제를 지적한 강준만은 직관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을 대변한다. 진보가 선거에 참패한 것은 싸가지 없어서라고. 싸가지 없어 보이는 행동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싸가지가 문제되는가?

진보는 젊고 보수는 늙다. 이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나이를 먹으면 정체되고 생각도 경화되는 것은 사실이다. 젊은이가 싸가지 없다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이 아니다. 이미 2500년 전에 아리스토텔레스도 요즘 젊은 것들 하면서 싸가지 없다는 것을 탓한다.

이런 싸가지 없다는 심정적 판단에 대해 진중권은 좀 더 객관적인 접근을 한다. 진보가 싸가지 없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줄 메시지가 없고, 정책이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진보 정책의 부재이고 한계라는 것이다. 이런 접근은 진보의 정책과 사회적 배경을 이야기하는 객관주의적인 접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책이 없어 참패했겠는가? 당장 이택광은 주관주의와 객관주의 모두를 비판하면서 진보의 문제는 싸가지도 아니고 메시지도 아니라고 한다. 문제는 그 양자를 엮을 수 있는 정치의 역량 부족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담론들의 논쟁을 보다 보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다. 각자 주관적 경험을 극대화하고 일반화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일리야 없지 않겠지만, 이런 개별 주장들을 하나로 모으면 전체 코끼리가 그려질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한결같이 놓치고 있는 점이 있다. 사회 발전에는 주체의 역량을 넘어서는 생물학적이고 물리학적인 법칙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의 인구 구성과 선거인단의 구성에서 노인세대가 급격히 증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많은 연구소들이 한국사회의 저출산과 고령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에 대해 우려스러운 진단을 내리고 있고, 2800년경에는 지구상에서 완전 소멸할 것이라는 한 예측도 내놓고 있다.

후자의 예측은 너무 먼 미래라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저출산과 고령화 세대의 증가는 한국 사회의 성장 동력을 훼손할 뿐더러 선거에도 불길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장 2002년 노무현이 대통령이 당선될 때와 2012년 박근혜가 대통령이 당선될 때의 20~30대의 선거인단과 50~60대 선거인단의 인적 구성과 선거 참여율을 비교해보라(위의 표 참조).

이 표를 보면 2002년 노무현의 황색 돌풍이 일던 당시 20~30대와 50~60대 선거인단수는 48.3% v. 29.3%이다. 그런데 지난 2012년 박근혜 당선 시는 선거연령을 19세로 낮추었음에도 38.2% v. 40%로 급격하게 역전 당한다.

게다가 고령화 세대의 선거참여율이나 여당 지지율은 젊은 세대들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이 단순한 통계만으로도 한국사회의 급격한 고령화와 보수화가 분명해진다.

한국사회에서 유일하게 변동이 적고 정치적으로도 균형을 이루고 있는 세대가 40대이다. 그런데 이 세대가 왼편으로 손을 들어주었음에도 2014년 지자체 선거에 실패하고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불행히도 현재의 세대 간 인적 구성으로는 젊은 세대와 진보 세력이 똘똘 뭉쳐 2002년처럼 SNS를 통해 황색 돌풍을 일으켜도 선거에서 이기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싸가지 담론은 이런 고령화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진보는 젊고, 보수는 늙다. 이미 한국의 보수주의는 고령화에 진입하면서 인적 구성 비율을 늘리고 물적 조건과 복지 혜택을 선점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되는 것도 이런 경향에서 나온 것이다.

돈 있는 늙은 세대는 싸가지 담론으로 젊은 세대를 몰아세우고, 돈 없는 늙은 세대는 제한된 사회적 자원을 둘러싸고 젊은 세대와 세대 간 갈등하고 있다. 늙은 보수세대가 인구구성을 늘리고 힘까지 가지고 있으니까 젊은 세대들의 행동 하나 하나가 눈에 거슬리게 된 것이다.

역으로 젊은 세대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사회를 역동적으로 변화시켜 나가고 있을 때 노인 세대들이 그런 발언을 할 수가 있겠는가? 이제는 그 모두에서 밀리다 보니 무기력한 진보가 싸가지 없다는 식의 자기 검열을 하는 것이다.

게다가 젊은 세대들의 독점물이었다고 생각되었던 SNS도 이제는 노인 세대들이 적극 활용하고 있다. 페이스북처럼 개방된 공간은 아직까지 젊은 세대와 합리적 사고를 갖춘 중년 세대들이 담론을 지배할는지는 몰라도, 카톡이나 네이버 밴드같은 폐쇄형 SNS는 이미 노인세대들이 똘똘 뭉쳐 보수 담론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것이다.

때문에 이런 세대 간 구성 비율에 변화가 오지 않는 한 한국의 민주주의의 미래는 일본식 극우 정치처럼 암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무현, 김대중의 장례를 경험하고, 촛불 시위를 겪고, 최근에 수백 명의 어린 영혼들이 원인도 모른 채 참사를 당하면서 죽음을 불사한 단식을 해도 이 사회에 아무런 변화의 조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아니 적극적으로 냉소하고 조롱하고 거부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진보가 메시지가 없다는 진중권의 판단은 진보가 무능하다 못해 나태하다는 것을 말한다. 무능한 데다가 나태하기 까지 하니 사회 변화에의 전망은 더더욱 힘들어진다. 스스로 자책하고 자탄하는 목소리만 높아지고 완고한 고집만 느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문제만 해도 그렇다. 세월호 참사의 합리적 해법을 찾지 못하면 진보는 더더욱 수렁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보가 무능하다는 비난을 벗으려면 이런 문제에서 합리적이고 탄력적인 사고를 보이면서 문제의 실질적 해법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철학박사 이종철은 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재직중입니다.



태그:#진보 담론, #싸가지 , #메시지, #정치, #인구구성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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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사회 비판, 예술 등에 관심있습니다. 전 몽골 Huree ICT University 한국어과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연세대학교 인문학 연구소 상임연구원으로 재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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