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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일 아침, 경남 진해 시루봉에서 바라본 일출.
 2016년 1월 1일 아침, 경남 진해 시루봉에서 바라본 일출.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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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중받았으면 좋겠다. 그의 나이, 성별, 신분, 피부색 등과 상관없이 오로지 그가 사람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차별없이 똑같이 존중받았으면 좋겠다. 사람이 그 자체로 하늘로서 존중되고, 사람이 그 자체 목적이 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그가 사람으로서가 아닌 다른 어떤 규정들에 의해 차별받고 무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가 얼마나 다양하고 얼마나 차이가 많겠는가?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 모든 것들이 차별들과 동일시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돌아보라, 우리가 속한 이 집단, 이 사회에 얼마나 많은 우리 안의 차별과 배타적 호칭들이 넘쳐나는가? 우리 사회는 그런 차별들이 없어도 이미 존칭어에 의해 위계질서가 선험적으로 잡혀 있는 사회다. 그위에 더해서 남자냐 여자냐, 정규냐 비정규냐, 전라도냐 경상도냐, 외국인이라 해도 피부 색깔이 어떻고 어디 출신이냐 등 끊임없이 차별의 구실을 만드는 사회가 우리 사회다. 새해에는 그 모든 차별 규정들을 넘어서 사람들이 그 자체 인간으로서 존중했으면 좋겠다. 다른 모든 규정들은 다만 사람들간의 개성이고 차이일 뿐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새해에는 사람들이 좀 더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는 유독 슬픔과 원한이 가득차 있는 사회다. 우리 사회는 매일같이 40명이 일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회다. 이라크나 시리아의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죽어가는 사회가 우리 사회다. 우리 사회의 일상이 곧 전쟁터이고 지옥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슬픔과 고통이 넘치는 사회다. 그럼에도 그 슬픔을 조롱하는 사회, 그만 슬퍼하라고 훼방하는 사회다.

전쟁과 국가 폭력으로 개인의 모든 삶이 찢겨버린 위안부 할머니들의 슬픔, 분단의 고통으로 80~90이 되어서도 여전히 이산가족 문제로 슬퍼하는 사람들, 세월호 참사로 죽어간 어린 학생들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들, 직장과 일터에서 쫓겨나 여전히 추운 거리에서 떨고 있는 사람들의 슬픔, 아등바등 낙오되지 않기 위해 경쟁하지만 희망과 전망을 상실한 젊은 세대들의 슬픔들, 열심히 살아왔지만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사회 바깥으로 떠밀려 버리고 무시되는 가난한 노인 세대들의 슬픔,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슬픔, 소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슬픔.

그 밖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슬픔이 넘치는가? 살아 있는 한 슬픔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슬픔을 이해하고 그 슬픔에 공감하면서 그 슬픔을 덜어주기 위해 우리 함께 배려한다면 이 사회의 슬픔을 크게 줄일 수 있지 않겠는가?

새해에는 좀 더 자기 욕망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21세기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자기로서 살기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의해 살고 있다. 자기 주장을 펴기보다는 자기가 속한 집단, 진영, 연령, 성별 등의 타인들의 주장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다. 새해에는 사람들이 좀 더 자기 욕망에 충실하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성숙한 개인으로 살아 갔으면 좋겠다.

우리가 아니라 나로서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때문에 무엇을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기 때문에 한다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뒤에 숨어서 비겁하게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개인으로서 주장하고 비판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개인들을 따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개인들이 존중받고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결코 봉건적 집단성과 어울리는 개념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어떤 경우든 자유로운 개인들,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개인들, 타인들을 자기처럼 배려할 수 있는 개인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사회이다. 이런 성숙한 개인들이 전제되지 않는 한 선거를 백번해도 이 사회는 바뀌기 힘들다.

나의 이런 소망은 새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병신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다시 한 번 이런 소망을 생각해본다. 사람으로서 존중받는 사회, 타인들의 슬픔을 함께 슬퍼하면서 줄이려는 사회, 책임지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사회, 새해에는 좀 더 그런 사회에 가까이 갔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나의 이런 소망들이 엉뚱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 종철 박사는 연세대 철학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으로 재직중입니다.



태그:#차별, #한국사회, #사람, #슬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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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사회 비판, 예술 등에 관심있습니다. 전 몽골 Huree ICT University 한국어과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연세대학교 인문학 연구소 상임연구원으로 재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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