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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드디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전 카퍼레이드를 하던 교황은 김영오씨 등 세월호 유족을 보자 일부러 자동차를 멈추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김씨는 교황에게 "세월호를 잊지말아달라"며 직접 쓴 편지를 건넸다. 교황은 그를 위로한 뒤 김씨의 편지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 단식 34일 유민아빠 만난 교황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드디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전 카퍼레이드를 하던 교황은 김영오씨 등 세월호 유족을 보자 일부러 자동차를 멈추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김씨는 교황에게 "세월호를 잊지말아달라"며 직접 쓴 편지를 건넸다. 교황은 그를 위로한 뒤 김씨의 편지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 교황방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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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일 넘게 단식을 하는 김영오씨와 교황의 만남 사진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한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나뿐이 아닐 것이다. 교황에게 세월호 유가족들의 호소문을 전달하면서 읍소하는 장면이다. 세월호 문제는 어찌 되었든 내부적인 문제인데 그것을 외부의 힘에 호소하고 해결을 부탁한다는 것이 썩보기 좋진 않다. 사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급적 당사자 내부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좋다. 제 3자를 끌어들일 경우는 문제가 풀린 후에도 이 제 3자와의 관계에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 3자에 의한 해결이 당사자 내부에 의존성을 키울 수 있기 때문에 썩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제 3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반드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갈등은 당사자 해결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이런 문제에 대한 법적 판결을 위해 법원이 존재한다. 이것은 일국 내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 간의 갈등과 관련해서 해당 국가들 간의 해결이 어려울 때 국제 사법 재판소에 제소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현대의 법치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해결 방식이다.

제 3자를 끌어들이는 정당성의 또 다른 경우가 있다. 갈등을 겪는 쌍방 간에 현저한 힘의 차이로 인해 내부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할 때이다. 나는 위의 사진을 보면서 70년대 유신의 엄혹한 시절을 생각한다. 그 당시 한국의 민주주의는 내부 저항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유신 정권에 의해 폭력적으로 유린되고 있었다.

이 때 국제 인권 위원회나 종교 관련 인사들을 통해 외국에 한국의 상황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로 인해 당시 언론에는 한국의 인권 문제나 민주주의 문제에 연루된 외국의 기자나 선교사들이 추방되는 자그마한 기사가 실리곤 했다. 지금은 호랑이 담배피는 시절의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80년 5·18 이후 광주가 계엄군에 의해 외부 사회와 완벽하게 차단된 상태에서 유린될 때도 서방국가의 해외 특파원이나 종교 관련 인사들을 통해 당시의 상황이 외부 세계로 알려지기도 했다. 내부적 역량만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이러한 제3자들의 지원이 한국의 민주화에 크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상황이 21세기 민주화된 한국의 상황에서 다시 되풀이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가톨릭의 최고 지도자인 교황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고 30여일이 넘게 죽기를 각오하고 단식투쟁을 하던 김영오씨가 교황에게 유가족들의 사연을 호소하면서 편지를 전달한 것이다. 이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도저히 내부적으로 해결이 불망하다는 생각이 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수십년전으로 퇴보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유가족들이 얼마나 안타까운 심정이면 특정 종교의 지도자에게 읍소하겠는가? 그 점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김영오 선생의 손을 잡아쥐고 편지를 받아넣은 교황의 모습은 함께 마음 아파하는 우리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준다. 왜 교황이 가톨릭의 최고 지도자를 넘어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지도자로 받아들여지는지를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2킬로도 안 되는 곳에 있는 자국의 대통령은 나몰라라고 외면하고, 찾아가려고 하면 경찰력으로 패대기치는데,  교황은 보안상으로나 의전상으로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음에도 서슴없이 다가가 손을 잡아준 것이다.

만약 박근혜씨가 한국의 대통령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이런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꽃 다운 자식들을 전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장시킨 부모의 애끓는 심정이 어떻겠는가? 그들이 성역없는 조사와 책임자 처벌, 다시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을 요구하는 것이 그렇게 정치적으로 부담되는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자식잃은 부모가 30일이 넘도록 곡기를 끓고 단식을 한다면 최소한 찾아가서라도 하소연을 들어보고, 안 되면 안 된다는 이유를 유족들에게 납득시키면서 단식을 말려야 하지 않겠는가? 대통령은 특정 정당의 대표이고 지도자가 아니다. 그는 헌법에 의해 규정된 국정의 총 책임자이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가 아닌가? 부모가 자기 자식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듯, 일국의 대통령도 바로 목전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단식을 하는 아비의 고통을 감싸줘야 하지 않겠는가?

대통령은 특검과 특별법 제정에 관한 자신의 약속도 식언한 채 세월호 참사를 정략적으로만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면서 교황 접견시 세월호 참사를 위로해줘 고맙다는 이야기를 할 때 보면, 대통령의 유체 이탈 화법이 이제는 경지에 올랐다는 생각마저 든다.

한국의 민주주의의는 30여년 전에 끊임없이 외부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 현상을 보고 있을라면 다시 한국의 민주주의가 30년 전으로 후퇴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30여년 전에 대통령은 누구였고, 그 때로부터 30여년 후의 대통령은 누구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작성한 이종철은 연세대 철학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재직중입니다.



태그:#교황, #대통령, #세월호, #김영오,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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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사회 비판, 예술 등에 관심있습니다. 전 몽골 Huree ICT University 한국어과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연세대학교 인문학 연구소 상임연구원으로 재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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