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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우도 금강사입니다. 절집같지 않으나 절집 안에는 보물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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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이 없어야 한다 했거늘…. 아무리 도가 높으신 분이어도 기분 나쁜 것과 기분 좋은 것의 구분은 있나 봅니다. 분별을 들고 나온 이유가 있겠죠?

도선생 다녀간 후 어머니 말씀 "있는 집에서나 털지..."

"뭐 가져갈 게 있다고 이렇게 홀딱 뒤졌을까? 좀 있는 집에 가서나 털지…."

수년 전, 밤손님에게 집을 털린 어머님께서 웃으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교회 새벽 예배를 다녀왔더니, 도선생이 농과 서랍, 찬장 등 무엇이든 숨길만한 곳은 죄다 뒤집어 놓았더군요. 거기에 통장과 도장은 잘 챙겼더군요. 하여, 어지러운 중에 몸만 홀라당 빠져 나가신 도 선생님 전에 기도했습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지난 7월 중순, 제주도 우도 금강사에 갔더랬습니다. 선암사·낙산사·봉정암 등을 거친 후, 지금은 금강사에서 홀로 절집을 지키시는 덕해 스님을 뵙기 위함이었습니다. 스님과 매일 차를 마셨습니다. 차가 좋아서였을까? 자연이 좋아서였을까? 벗이 좋아서였을까? 정신이 하루가 다르게 맑아졌더랬습니다.

"스님, 시주는 좀 들어옵니까?"

무심코 던진 말이었습니다. 근데 우물 안 개구리처럼 스님께서는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스님 얼굴에 가벼운 일렁거림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비웠다는 듯 말씀하셨습니다.

스님이 꺼내신 화제 '불전함'... 무슨 사연 숨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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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 전 밑에 불전함이 보입니다. 덕해 스님께서 전한 불전함 때문에 한바탕 웃었드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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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10만 원도 안 들어옵니다."

개구쟁이 동자승처럼 100만 달러짜리 웃음을 가진 스님의 대답치곤 궁색했더랬습니다. 관광객이 많은 제주도 우도라 돈 좀 되는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아닌 사정이었습니다. 하기야 절집을 찾는 관광객이 거의 없고, 신도가 많지도 않은 형편이라 이해됐습니다. 그렇더라도 한 달에 들어오는 시주가 10만 원이 안 된다니, 더러 좀 해주시길….

"스님, 금강사에 오신 후 기억나는 사건 있으면 하나 이야기해주세요."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던 질문이 또 낭패였습니다. 말이 새는 날이었습니다. 통 큰 스님이셔서 그랬던 걸까요. 괘념치 않은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뭐가 있을까?"

스님은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곰곰이 생각하시더니 하나 있다며 꺼내신 화제가 '불전함'이었습니다.

"밖에 나갔다 왔더니 뭔가 이상해. 여기저기 살펴보니 불전함이 털려 있는 거라. 한 번이라 배고픈 사람이 가져갔겠지, 오죽했으면 그랬겠냐? 하고 보시한 셈 쳤어."

스님, 배움과 수양이 깊어 여기에서 이야기 진도가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아뿔싸! 무방비 상태에서 느닷없이 죽비로 뒤통수를 한 대 호되게 쥐어터진 듯한 일갈이 터져 나왔습니다.

맑은 사람 눈에 그의 탁함이 고스란히 보였던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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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여운 동자승 같은 백만 불짜리 웃음을 지니신 덕해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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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우리 절에 다시는 오지 마. 다음부터 내 눈에 보이는 날에 너는 죽는다. 그렇게 살지 마."

깜짝 놀랐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지요. 아, 글쎄. 절에 오지 마라니…. 눈에 보이는 날에 죽는다니…. 그렇게 살지 마라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내심 당황스러웠습니다. 그건 공중에 던진 스님의 진심 어린 가르침이었습니다. 스님께서 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드랬습니다.

"놀라기는…. 그런데 어느 날 또 불전함이 털린 거라. 간혹 절에 와서 되지도 않은 말을 하고, 일을 도와 준 척하던 한 사람이 있었지. 그 사람에게 냉정하게 정색하며 던졌던 말이야."

난 또 뭐라고. 그렇지만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상황. 그럼에도 스님에 의해 암묵적 불전함 털이꾼으로 지목된 그는 자기 딴에는 스님에게 강하게(?) 반항했더랍니다.

"스님, 뭣 땜에 그러세요? 왜 그러세요?"

그런데 반발이 아주 어설펐답니다. 속 보였답니다. 스님이 그를 불전함 털이범으로 지목한 것은 순전히 육감이었답니다. 맑은 사람 눈에는 그의 탁함이 고스란히 보였던 게지요.

불전함이 털리고 나니까 얼마나 들어 있는지 궁금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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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우도 금강사에 안개가 끼면 경내에 세워진 관세음보살상 뒤 배경은 소나무만 보이고 나머지는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그림이 덕해 스님께서 제일 좋아하는 산수화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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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전함 처음 털렸을 때 낌새가 이상했는데, 그냥 넘긴 게 화근이었어. 다행이 우리 절에 CCTV가 없어 망정이지, CCTV가 있었다면 호되게 망신살 뻗쳤을 거야. 훗날 그는 제주도 어느 절에서 불전함을 털다 결국 경찰서에 잡혀갔대."

인과응보(因果應報). 불가에선 업을 지우기 위한 보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스님께선 본의 아니게 도둑을 키운 꼴이 됐습니다. 잡히기 전에 더 따끔한 맛을 보였더라면 그는 교화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여기에 머물렀을 때, 스님의 기상천외한 말씀이 나왔습니다.

"얼마나 궁금했는지 알아?"

스님의 깊은 속, 알 길이 없었드랬습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할 수 없이 물었지요. 그랬더니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어처구니없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불전함 털리기 전에는 그 속에 얼마가 들어 있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았어. 그런데 불전함이 털리고 나니까 얼마나 들어 있었을까? 그게 궁금하대. 너무 궁금해 잠도 안 오더라니까."

하하하하. 실없이 웃음이 터졌습니다. 나 원 참! 스님은 없는 살림에 뭐 가져 갈 게 있다고, 그렇게 궁금하셨을꼬. 여기에서 원효스님을 해탈의 경지로 끌어 올린 '원효대사와 해골 바가지' 설화를 떠올렸습니다.

"좀 있는 집에 가서나 털지…."

앞서 끄집어냈던, 어머니께서 없는 집 털어 간 도선생님을 보고, 가엽게 여겨 하신 말씀입니다. 팔순을 넘기신 어머님의 삶에 대한 깨달음이 원효대사와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스님의 불전함 이야기는 뒤늦게 어머니를 새롭게 알게 하신 원동력이었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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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지나는 길목, 덕해 스님과 마주 앉아 마시는 차 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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