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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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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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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정치학)는 과거 민주당세력에는 '독설가'로 통했다. 저서와 기고문 등을 "보수 단독 시대가 온다"라거나 "박근혜가 당선된다"라고 거침없이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언' 같은 그의 주장은 '현실'이 됐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까지 창출하며 '신보수파 정부 시대'를 열었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후보의 집권을 "한국 보수 포퓰리즘의 본격적인 등장"으로 바라봤다.

반면 '민주당'(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대표되는 야당과 진보정당은 신보수파정부에서 계속 내리막길이었다. 야당과 진보정당은 모두 무기력하고 지리멸렬했다. 세월호 침몰사고와 박근혜 정부의 인사참사 등의 호재가 생겼는데도 지난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에서 패배한 것은 내부위기가 계속 누적된 것에 따른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야당 패배는 운명이다"

8일 오전 경희사이버대 부총장실에서 만난 안병진 교수는 "(야당의) 패배는 운명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야당은) 오래 전 사망을 판정받았다"라며 "그런데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위기의 정도를 정확하게 감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라고 꼬집었다.

"노무현 시기 중반부터 야권, 혹은 광의에서 진보의 위기는 시작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 대 반민주를 넘어서 민주공화국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대한민국 미래와 관련한 다양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야권은 민주파 시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대의 철학과 가치, 어젠다 등을 깊이 고민하고 성숙시키지 못했다. 시대의 한계이기도 했지만, 정권에도 지식인에게도 책임이 있다."

안 교수는 "영국 노동당은 수많은 패배의 역사를 거치면서 문제의식을 갖고 새롭게 모색하다가 토니 블레어가 등장해 노동당을 부활시켰다"라며 "그런데 (한국의) 야권은 패배한 과정에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혁신그룹들이 나오지 않았고, 이후 2017년을 기대하게 할만한 그룹들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안 교수는 "국민의 마음, 우리가 가진 정치자본의  한계에 기초한 치열한 고민과 과학적 문제의식은 없이 4대 악법 저지 등 역풍을 불러올 만한 많은 오류를 범했다"라며 "그런 과정을 통해 (야권 등) 진보는 피곤한 집단, 민주 대 반민주 패러다임 속에서 맨날 심판하자는 세력이 돼 버렸다"라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정치는 떳다방이 아니다"라며 "몰락은 오늘 내일 발생하는 게 아니라 10년 전부터 시작됐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지난 두 차례의 선거는 "식물인간이 된 상태에서 치러진 선거였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그는 "(그런데도) 야권이 재보선의 의미를 지나치게 과장했는데, 이는 여권의 프레임에 말려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야당엔 권력의지가 없다"

 일부 의원들이 '만년 2등 정당에서 공천만 받으면 금뱃지는 보장된다'고 자조한다. 그러니 진정한 의미의 야심이 있을 리 없다. 패배주의가 난무한다. 정권도 못잡을 것 같으니까 자잘한 것만 챙기는 거다
 일부 의원들이 '만년 2등 정당에서 공천만 받으면 금뱃지는 보장된다'고 자조한다. 그러니 진정한 의미의 야심이 있을 리 없다. 패배주의가 난무한다. 정권도 못잡을 것 같으니까 자잘한 것만 챙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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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교수는 최근 야당쪽 의원들을 만나면서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전혀 하지 않았던" 내용들을 이제 얘기한다는 것인데,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신들이 국회의원 배지에만 만족하는 정당이 돼 버렸다는 거다. 그 이상의 꿈과 권력을 향한 의지가 없다고 얘기한다. 다른 하나는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이 얘기했던 거다. 김 소장은 옛날부터 '민주당은 자영업자들의 연합체다'고 얘기해왔는데 이제는 의원들이 그렇게 얘기한다. 그런 점에서 의원들이 어느 정도 위기감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의식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렇게 야당이 무기력한 이유와 관련, 안 교수는 "김대중, 노무현 등 뛰어난 거인이 사라지면서 빅 폴리티션(Big Politician) 즉 큰 정치가의 시대도 사라졌다"라며 "그런데 그런 큰 정치가를 이어받을 사람도 없고, 뛰어난 혁신형 기획가에 힘을 실어줄 구조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애플처럼 스티브 잡스가 없어도 시스템으로 혁신하려는 시도조차도 없다"라며 "(현재 야권은) 완벽한 부재상태다"라고 꼬집었다.

"(그런데도) 130석의 거대한 공룡이 됐다. 여기에는 '적대적 상호의존'이라는 한국 특유의 상황이 있다. 어차피 여권도 실력이 없으니까 서로 어느 정도 이득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이득이 애플이 IBM에 대항해 얻은 것이 아니라 그냥 '무기력한 이득'이니까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일부 의원들이 '만년 2등 정당에서 공천만 받으면 금배지는 보장된다'고 자조한다. 그러니 진정한 의미의 야심이 있을 리 없다. 패배주의가 난무한다. 정권도 못잡을 것 같으니까 자잘한 것만 챙기는 거다."

"심판론에 과잉 몰두한다"

이어 안 교수는 "야권 사람들은 인생을 모르고, 대한민국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른다"라며 "상대를 적으로만 생각하는 운동권 특유의 의식이 있어서 지금도 심판론에 과잉 몰두한다"라고 지적했다.

"상대를 적으로만 생각하다 보니 상대를 과소평가한다. 프랑스 맑스주의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는 '한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피지배 계급의 꿈, 염원, 욕망 등을 잘 수용하면서 구성된다'고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위대한 보수로 칭송받는 것도 그 당시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민초들의 꿈을 포착해 이를 실현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우리의 꿈이었다. (새누리당은) 김종인(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통해 경제민주화의 꿈을 잘 포착했고, 최근 소득 주도 성장도 최경환(경제부총리)을 통해 잘 포착하지 않았나? 지배 블록은 그런 점이 굉장히 뛰어나다. 그런데 야권은 이런 것을 과소평가한다."

안 교수는 "일반 사람들은 안철수 전 대표처럼 새벽 3시에 자기 집 앞 신호등을 지키지도 않고, 어떨 때에는 비루하고 야비한 욕망을 가지기도 한다"라며 "그런데 이쪽 사람들(야권)은 이것을 본능적으로 잘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야당은 현장, 시장 등 밑에서부터 오랜 단련을 통해 성장해온 정당의 리더십이 아니어서 등소평이나 시진핑 같은 리더십을 발휘할 수도 없다"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민주당은 전통 제조업 기반에 대항한 IT기반과 튼튼한 동맹을 맺으면서 물적 토대 등을 갖춰 나갔다. 오바마는 지난 2012년 구글, 페이스북과 전무후무한 선거캠페인을 벌였다. 하지만 한국의 새정치민주연합이나 진보정당이 스티브 잡스와 같은 IT 구루와 사회를 디자인하는 거를 본 적 있나? 우리는 새로운 부르주아와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진보의 성장담론을 만들거나 그들을 정치의 우군으로 키워나가려는 노력이 없었다."

안 교수는 "혁신형 기업가로 성공한 이들로 그룹을 짜서 그들이 당의 가치, 어젠다, 의사결정 과정, 인사관리와 교육, 유권자와 접촉하는 방식 등을 다시 설계해야 하는데 계파담합체제인 민주당에서 이것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지자체장 시대'에 주목하다

 기존 보수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진보주의에 걸맞는 시대정신과 정치질서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미 박원순, 안희정 등이 지자체장으로서 그런 방향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진보, 아주 개명된 보수에게 맞는 정치질서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보수세력의 장기집권을) 결정론적으로 얘기할 수 없다.
 기존 보수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진보주의에 걸맞는 시대정신과 정치질서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미 박원순, 안희정 등이 지자체장으로서 그런 방향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진보, 아주 개명된 보수에게 맞는 정치질서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보수세력의 장기집권을) 결정론적으로 얘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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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 교수는 '보수세력 장기집권 가능성'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오히려 그는 "정치질서의 흐름으로만 보면 야권에 유리한 시대가 형성되어 있다"라며 "세월호 사건 이후에 한국의 경제물신주의 시대, 경제개발주의가 퇴조하고 생명의 가치, 과정의 가치가 중요해지고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건 어마어마한 변화다. 기존 보수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진보주의에 걸맞는 시대정신과 정치질서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미 박원순, 안희정 등이 지자체장으로서 그런 방향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진보, 아주 개명된 보수에게 맞는 정치질서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보수세력의 장기집권을) 결정론적으로 얘기할 수 없다."

다만 안 교수는 "마키아벨리가 말했듯이 이런 정치질서의 가능성이 오더라도 (야권의) 정치인 그룹에서 이를 포착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비르투(Virtu, 역량)가 없다면 20, 30년 동안 보수시대가 지속될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특히 안 교수는 '지방자치단체장 시대'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는 "한국도 미국의 주지사 정치시대처럼 지자체장 시대의 길이 열리고 있다"라며 "유력한 대선후보인 박원순, 안희정은 물론이고, 남경필(경기지사), 원희룡(제주지사)도 개혁적 보수로 잘 성장하고 있어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보수든 진보든 지자체에서 대담하게 실험한 뒤 그 속에서 얻은 성과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비전을 찾고 대선후보로 떠오를 수 있다면 그것은 건강한 한국모델이 될 수 있다"라며 "한국이 (중앙으로 수렴되는) 소용돌이 정치라는 점에서 지자체장이 바로 대선후보가 되기는 어렵긴 하지만, 현재까지는 좋은 경로로 가는 것 같다"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지금은 20세기 진보 시대가 아니다"

또한 안 교수는 국민들이 현재의 진보정당에도 사망선고를 내렸다고 진단했다. 그는 "20세기형 진보정당은 무기력한 민주당을 견제하고 무상급식, 기본소득제 등 훌륭한 어젠다를 선제적으로 남겼다"라며 "하지만 지금은 20세기 진보가 움직일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제는 잿더미 위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진보정당이 새로운 디지털세대의 동력(창의력 등)에 기반해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 한국의 진보정당이 독일의 '해적당'이나 이탈리아 신당인 '오성운동'(5-Star Movement)처럼 할 수 있느냐? 없다. (낡은) 인적 구성, 당의 폐쇄적 구조, 옛날 정파운동의 관행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니까 안된다. 게다가 이정희 대표를 중심으로 한 통합진보당에는 '진보'라는 이름도 붙이고 싶지 않다. 어떻게 북한에 온정적인 정치세력을 진보라고 부를 수 있나."

그런 점에서 안 교수는 진보정당의 세대교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오랫동안 진보정당운동에 복무해온 조승수 전 의원도 'NL-PD노선이 대립하던 세대 이후 세대'(이를 '전후세대'라고도 부른다)의 등장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지난해 9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진보정당운동 1세대가 물러나고 바탕과 활동양식, 생물학적으로 전혀 다른 세대가 진보정당을 새롭게 건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한국에 진보정당은 필요한데 20세기 꼰대진보정당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상상을 수혈받을 수 있고, 새로운 전형을 만들 수 있는 진짜 급진적인 정당이어야 한다"라며 "여기서 급진적이라는 것은 근본적이고 발본적인 비판을 가리킨다"라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진보정당운동 1세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노회찬·심상정(정의당)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안 교수는 "두 사람은 우리 정치의 귀중한 자산이지만 '더 좋은 미래' 등 민주당내 진보블록과 큰 차이가 없다"라며 "그러면 민주당 안에서 진보블록을 구성해서 민주당의 우경화를 견제하는 게 맞다"라고 주장했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에 들어가라는 게 아니다. 어차피 새정치민주연합은 지금 근본부터 다시 리모델링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리모델링의 밀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거다. 빅텐트의 변종은 아니어야 한다. 본질적인 혁신 과정 속에서 '더 큰 민주당'을 만들어야 한다. 그냥 세력을 합쳐서 단일화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겠다는 것은 천박한 발상이다. 더 큰 빅텐트로 보수와 싸운다? 그건 위험할 것 같다. 새로운 형태의 힘이나 아이디어가 그 안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 것 같기 때문이다. 노회찬·심상정이 새정치민주연합과 함께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을 새롭게 리모델링해서 '더 큰 민주당'을 만든다면 거기서 진보블록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자신들의 기존 진보주의 모델도 혁신대상이다."

안 교수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정의당과 통합하자는 것은 제국주의적 발상이다"라며 "자기들도 패배를 인정하고 정의당도 패배를 인정하고 '더 큰 의미의 민주당'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진보정당은 지자체에서 실험하라" 

"집권은 '더 큰 민주당'에서 하고, 한국사회에서 급진적 목소리를 내고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정당은 필요하다"
 "집권은 '더 큰 민주당'에서 하고, 한국사회에서 급진적 목소리를 내고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정당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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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교수는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의 공간이 있다고 본다. 그는 "집권은 '더 큰 민주당'에서 하고, 한국사회에서 급진적 목소리를 내고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정당은 필요하다"라며 "진보정당이 한국사회에서 등대정당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결선투표제 같은 것을 어젠다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진보정당에게는 이번 녹색당처럼 처참한 결과만 기다리고 있을 거다. 등대로서 화두를 던지고, 더 큰 민주당이 집권하면 연합정부의 일원으로서 그 화두의 일부를 실험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특히 한국사회는 서울 중심주의, 중앙 권력 집중주의 등이기 때문에 길게 봐야 한다. 진보정당은 일부 지자체에서 지속가능한 진보 모델을 만들어서 나중에 연합정부에서 그것을 아젠다할 수 있다. 다만 과거 진보정당에서 장악하던 울산 등에서 민주당에서도 수용할 만한 지속가능한 진보 모델을 만들었는지는 좀 회의가 든다."

안 교수는 "스타 정치인에 의존하는 진보정당 실험은 계속 할 필요가 없다"라며 "길게 보고 지자체 차원에서 지속가능한 모델을 만들어내고 일정 조건이 되면 중앙 차원에서 '(정치)연합'의 방법을 통해 더 큰 실험을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자꾸 모여서 통합하려고만 하며 안된다"라며 "진보의 빅텐트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자체 등에서) 매력적인 실험을 잘 축적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안 교수는 "레프트(left), 특히 래디컬 레프트(radical left)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라며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민주당의 위기는 제대로 된 레프트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노회찬·심상정은 리버럴 레프트(liberal left), 자유주의적 진보 정도다. 리버럴 레프트는 뒤베르제 법칙상 (양당제의) 밖에 있으면 안된다(그래서 두 사람은 양당제체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얘기다... 기자주). 처음에 기본소득제 같은 아이디어는 굉장히 레디컬한 데서 나왔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 기본소득제는 레디컬해 보이지 않는다. 보수에서도 수용할 만한 의제가 됐다. 과거 닉슨도 기본소득을 얘기했는데 그것도 레디컬 레프트가 제기한 어젠다였다. 아마 한국도 미래에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런 상상력을 심어주는 것이 레디컬 레프트의 역할이다. 그것을 일부 지자체에서 부단하게 실현하는 게 중요하다."

"야당, 도전자 브랜드가 되라"

안 교수는 애덤 모건의 역작 <1등 브랜드와 싸워 이기는 전략>을 언급했다. 여기에는 '도전자 브랜드의 8가지 원칙'이 나오는데 ▲ 직전의 과거와 단절하라 ▲ 재평가의 상징을 창출하라 ▲ 과도하게 헌신하라 ▲소비자 중심이 아니라 아이디어 중심이 되라 ▲ 불안정하게 비행하라 등이 포함돼 있다.

"예들 들어보자. 제가 서울에 산다고 했을 때 IBM은 서울 광화문에서 제품을 팔고, 애플은 경기도 화성에서 판다고 하자. 그럼 소비자들은 어떻게 할 것 같은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화성까지 간다. 이렇게 먼 데까지 가서 살 정도의 강렬한 매력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도전자 브랜드다.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이 과거와 단절한 적이 있나? 새누리당은 빨간색으로 재평가의 상징색을 창출했는데 새정치민주연합은 재평가의 상징이 뭔가? 박영선 원내대표의 세월호 걷기나 강금실 전 서울시장 후보의 48시간 유세 등은 좋은 헌신이었다. 하지만 지금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가운데 '과도하게 헌신한' 사람은 거의 없다.

게다가 이 사람들은 질서 있는 혁신을 주장한다. 역사상 망하게 된 기업이나 정당 가운데 질서 있게 혁신한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국민들한테 내일이라도 당장 당이 쪼개질 것 같은 상황을 보여줘야 한다. 굉장히 안전하게 혁신하겠다는 것은 차기 대선에서 이기고 싶지 않다는 거다."

안 교수는 "이 책에 나오는 8가지 원칙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이 한 가지라도 실행한 적 있나?"라며 "새정치민주연합이 이 원칙들을 그대로 실행해 도전자 브랜드가 된다면 다음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질서 있는 혁신이 아니라 불안정한 비행을 감행하라"는 주문이다.

[인터뷰 발언록] "486은 더 몰락하고 퇴조해야"
"안철수는 실패했다. CEO적 마인드를 갖고 있었고, 정치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독자적 정당을 건설했더라도) 실패했을 것이다. 당시 새로운 형태의 정치블록이 충분하게 모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총선을 멀었고, 누가 그 벤처기업에 큰 리스크를 걸려고 하겠나. 다만 대선 직후 아래로부터 조직화된 시민정치 네트워크, 준정당적인 조직을 만들고, 길게 보는 승부의 관점을 가졌더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철수 그룹은 선거대응에서도 적극적이지 않았고, 그런 가운데 영향력이 큰 인물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정치 리더십이 부족했던 거다. 국회의원 수를 축소한다고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정치인으로서 미성숙했다. 지금이라도 본인의 미성숙을 인정하고 다시 벤처기업을 한다는 생각으로 모두가 부인할 수 없는 정치의 새 모델을 내놓는다면 국민이 다시 기대를 걸 수 있을 거다. 성과로 증명해야 한다."

"야권은 스티브 잡스와 같은 혁신형 리더를 키워내지 못했다. 기득권에 젖어서 리더 키우는 일을 의도적으로 미뤘다. 20, 30대를 키웠나? 오히려 막았다. 제가 인재개발원을 만들어 20, 30대에 집중하라고 했지만 하나도 된 게 없다. 새누리당이 이준석을 키울 때 새정치민주연합은 뭐 했나? 청년비례도 마지 못해서 한 거다. 몇 사람이 강하게 얘기하니까 일부만 겨우 받은 거다. 10년을 바라보면서 한 게 아니다. 민주당이 왜 위기냐고 묻는 것은 우문이다. 당연히 위기여야 한다. 저를 포함해 486은 더 몰락하고 퇴조해야 한다.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위기가 깊다. 다만 혁신형 기업자들이 보여준 사례처럼 목숨걸고 불안정한 비행을 한다면 기회는 있다."

"진보정당만 해도 무상급식이라는 훌륭한 어젠다를 던졌다. 하지만 21세기에 맞는 진보의 어젠다 모델, 정당활동 방식, 시민과 결합하는 방식 등에서 단 하나도 성공한 게 없다. 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이 노회찬, 심상정이다. 노회찬은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처음 내놓았을 때 당직자들한테 아이폰 30개를 나눠줬다. 혁신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 거다. 그런데 당시 진보정당은 아이폰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시도할 정당은 아니었다."



태그:#안병진, #노회찬, #심상정, #새정치민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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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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