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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야당의 재보선 참패 원인에 대해 "세월호 사건이 박근혜 정부의 정책 실수로 나타났다는 설명구조나 담론지형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라며 "(반면) 보수언론은 의사자 지정이나 대학특례 입학 등을 통해 세월호 피로층을 유발시켰다"라고 분석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야당의 재보선 참패 원인에 대해 "세월호 사건이 박근혜 정부의 정책 실수로 나타났다는 설명구조나 담론지형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라며 "(반면) 보수언론은 의사자 지정이나 대학특례 입학 등을 통해 세월호 피로층을 유발시켰다"라고 분석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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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가 일어난 이후 진도 팽목항과 안산을 직접 방문했다. 그의 말을 빌자면 "경악해서" 내려갔단다. 살려 달라는 학생들의 손길을 해경은 그저 바라만 보고, 대통령조차 국민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헌법적 결단"을 내리지 않는 모습을 보고 "이게 과연 국가인가?"라는 심각한 고민이 들었기 때문이다. '현장'을 다녀와서는 보름 동안 식사를 못했을 정도로 충격이 컸다. 

하지만 지난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에서 '세월호 심판론'은 먹히지 않았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박근혜 정부 책임론이 크게 일었지만 여권은 건재했다. 심지어 '미니 총선'으로 불렸던 7·30 재보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4 대 11'로 새누리당에 참패했고, 정의당과 통합진보당, 노동당 등 진보정당들도 의미있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세월호=박근혜 정부 책임'이라는 담론 못 만들어"

5일 오후 2시 연세대 연구실에서 만난 박명림 교수는 "한 사건이 준 충격이 구조를 넘을 만큼 큰가?"라고 물었다. 그는 "세월호 사건이 박근혜 정부의 정책 실수로 나타났다는 설명구조나 담론지형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라며 "(반면) 보수언론은 의사자 지정이나 대학특례 입학 등을 통해 세월호 피로층을 유발시켰다"라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다른 한편으로 야당에 표를 몰아줬을 때 세월호 사건 같은 것을 막을 수 있을까?"라며 "현재의 야당은 그것에 (긍정적인) 전망을 세워주지 못하는 정당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건 자체는 '호재'였을지 모르겠으나 야당은 (세월호 사건을 박근혜 정부 책임으로) 담론화하고 구조적인 문제로 이슈화하는 데 역량 부족을 드러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박 교수는 "지방선거와 재보선 모두 야권의 패배다"라며 "지방선거의 경우 야당이 차지한 광역자치단체장 숫자를 들어 '비겼다'고 해석하는데 이것은 오류다"라고 말했다.

"지방선거 결과가 비긴 것처럼 나타난 중요한 이유는 정당선거가 아니었던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후보가 대거 당선된 것이다. 이것이 정당간 경쟁에서 야권이 패배한 것을 희석시키고, 감추는 효과를 나타낸다. 교육감 선거가 진보와 보수의 대결구도였지만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정당간 경쟁은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박 교수는 "이념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사회경제적 구도에서도 야당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할 수밖에 없다"라며 "그래서 리더십과 공천문제가 중요한데, 주어진 구조인 '기울어진 운동장'에다가 정당 내부 리더십 문제와 공천 문제에 봉착하니까 완패에 가까운 결과가 나타났다"라고 분석했다.

"국민은 안철수 정치에 심판에 가까운 혹독한 평가 내려"

재보선은 집권 세력(여권)을 심판하는 선거이지, 야당을 심판하는 선거는 아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사고, 잇따른 인사참사, 대통령 지지율 하락 등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참패했다. 박 교수는 이러한 야당의 패배를 "안철수 정치의 중간평가"라는 독특한 관점에서 분석했다. 

"안철수 현상과 안철수 정치가 달랐다. 안철수 정치 세력과 기존 민주당 세력이 통합하면서 '새정치'를 보여줘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거기에서 기존 민주당 세력이든 안철수 의원이든 새정치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게 선거패배에 주효했다.

여야 전체 정치지형의 변화를 요구했던 것이 안철수 현상이고, 안철수 정치에 거는 기대였다. 하지만 여야 대결구도를 만들어냈지만 새정치의 내용을 채우지 못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실망의 효과는 더욱 커지는 법이다."

이어 박 교수는 안철수 정치의 '치명적 문제점'을 언급했다. 그는 "토론과 경쟁은 정치와 민주주의 기초인데 안철수 정치는 여기에서 이탈한 측면이 있다"라며 "서울시장 후보 양보, 대선후보 사퇴, 민주당과의 통합, 윤장현 후보와 기동민 후보 전략공천 등 안철수 정치는 결정적 선택의 순간에 직면했을 때 경쟁을 우회하거나 회피했고, 토론 과정도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토론 과정도 없고, 경쟁을 회피하는 것은 정치 밖에서는 통용된다. 하지만 민주주의 제도 공간에 들어오면 달라져야 한다. 토론과 경쟁의 회피를 계속 반복하면 지지 세력을 확장하는 문제를 넘어서 생존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몇 가지 요소가 중첩되면서 현상적으로는 야당의 패배로 나타났지만 내용적으로는 안철수 정치의 중간평가다. 국민은 안철수 정치나 새정치에 심판에 가까운 혹독한 중간평가를 내렸다."

박 교수는 안철수 정치의 한계를 계속 지적했다. 그는 "1988년 총선에서 지금까지 유효정당 숫자는 평균 3.7개였다"라며 "총선에서는 김종필 정당이든 정주영 정당이든 민주노동당이든 항상 제3의 정당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양당제가 담아내지 못하는 정치공간이 늘 존재했다. 지속적으로 다당제(3.7개)였다. 그런 속에서 안철수 정치는 대안 세력을 모색했다. 내용이나 형식에서 지역과 이념을 벗어나는 것을 충분히 시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새정치 세력이 기존 지지자와 토론하지 않고 민주당과 통합한 것이 1차 패배다. 이어 민주당과 통합한 뒤 거기에서 자기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2차 패배다. 토론과 경쟁을 우회하거나 배제하고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구조가 지속된 것이다."

"보수의 장기집권은 무력한 진보 때문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7·30 재보선에서 야당의 패배를 "안철수 정치의 중간평가"라는 독특한 관점에서 분석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7·30 재보선에서 야당의 패배를 "안철수 정치의 중간평가"라는 독특한 관점에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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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에 걸친 집권, 지방선거와 재보선 승리 등을 통해 '한국 보수 세력은 강하다'는 사실이 일부 드러났다. 박 교수는 "한국 보수정당은 민주개혁정당보다 조직적으로 강하다"라며 "이 정당은 공화당, 민정당을 거치면서 중앙과 지방에 걸쳐 관료로부터 도움받아 형성, 발전돼 왔다"라고 말했다.

"그 구조가 그대로 살아 있고, 일부 지역을 빼고 지역토호 세력도 장악하고 있다. 또한 자원이 풍부하다. 기업, 언론, 관료, 학계 등에서 보수정당에 들어가려는 예비자원이 풍부하다. 이렇게 방대한 보수자원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경쟁력 있는 후보가 나올 수밖에 없다. 보수의원들을 여러 차례 만나봤는데 이들의 전문성을 무시할 수 없더라. 또한 분단국가 상황에서 이념적으로도 강력하다. 경제민주화, 복지, 노동, 교육 등에서 종북 좌파라고 낙인찍으면 운신할 수 없다."

박 교수는 "정당의 사회권력기반이나 사회권력자원의 측면에서 재벌, 언론, 종교, 대학, 법조 등 모든 영역에서 힘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다"라며 "보수정당과 민주개혁정당의 역량 격차가 크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한국 보수정당은 처음 정권 장악에 실패한 이후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를 거치면서 리더십 재구축에 성공했다"라며 "반면 진보개혁 세력은 내부를 아우르고 국가리더십으로 인정받을 만한 통합리더십, 대안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 주장하는 '보수 세력 장기집권' 전망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박 교수는 "민주화와 외환위기 이후 급격하게 보수화되고 있지만 사회권력자원의 분배가 불평등하기 때문에 (보수정당의) 완전독점을 허용하는 체제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한국전쟁을 치른 이승만 정권이 4·19 혁명으로 붕괴했고,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일군 박정희 정권도 부마사태를 계기로 붕괴했다. 군부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6·10 항쟁으로 더 빨리 붕괴했다. 민주화 이후 보수 세력이 강화되고 있지만 이는 하층과 중산층에게 경제자원을 제공할 수 있는 데까지만 가능함을 보여준다.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에서 불평등한 지수가 OECD 국가 가운데 미국 다음으로 2위다. 그런 점에서 사회경제적인 권력자원이 한곳으로 집중되면 밑으로부터 저항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박 교수는 "일본처럼 1.5당 체제로 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무능한 보수가 장기집권이 가능한 것은 무력한 진보 때문이다"라며 "한국의 진보개혁 세력이 무력함에서 벗어나면 정부를 교체할 수 있는 대안 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진보정당 내분분화는 자멸적이다"

진보정당들은 이번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몰락'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았다. 새정치민주연합과 후보단일화하는 데 성공했는데도 서울 동작을의 노회찬 정의당 후보마저 패배하면서 '원내진보정당'의 한축인 정의당도 심각한 상황에 봉착했다.

박 교수는 "분단국가에서 진보정당이 공간을 확보하는 일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전제했다. 하지만 그는 소선거구제나 압도적인 종북주의 담론 등 제도·이념적 요인보다는 '진보정당 내부요인'에 더 주목했다. 

"한국사회에서 진보 세력이 차지할 공간이 있다. 불평등구조, 소수자 배제와 억압, 압도적인 비정규직과 자영업자 규모, 높은 남녀 임금격차 등이 구조적으로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진보정당이 지지받지 못하는 이유는 조직과 정책의 문제에 있다고 본다.

진보정당이 일관된 조직적, 정책적 연계를 갖고 노동과 소외 세력을 대변해왔나? 진보정당이 대변할 계층, 조직, 부문이 있는가? 게다가 진보정당들의 분화가 지나치게 심하다. 진보정당의 분화는 보수정당이나 민주개혁정당의 계파갈등보다 심각하다. 보수정당은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권력이익 분배를 통해서 갈등을 극복할 수 있지만, 진보정당은 나눠줄 권력이익이 부족하다."  

박 교수는 "그게 부족하면 노선, 정책, 이념, 조직에서 포괄적 합의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라며 "하지만 포괄적 합의나 동의체제보다는 부분적인 차이가 아주 크게 겉으로 드러나는데 이는 통합진보당 분당사태에서 극적으로 드러났다"라고 지적했다.

"운동할 때는 분파가 있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정당, 즉 파티(party)는 '말이 결정되는 순간 자기쪽을 대변한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도 정당 안에서 노선, 분파를 계속 강조하면 정당 결성 의미가 축소된다. 진보정당은 지금 다시 합치기 불가능한 수준이다. 소수파가 이렇게까지 분화할 필요가 있을까? 어떤 부문, 조직, 계층과도 조직적인 연계를 지속하지 못하면서 이렇게 내부분화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박 교수는 진보정당의 분화를 "자멸적"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통합정당 안에서도 민족문제, 노동문제, 환경문제 등을 주장할 수 있는데 민족문제나 통일문제를 강조하면 무슨 당, 노동이나 평등을 강조하면 무슨 당, 환경을 강조하면 무슨 당으로 분화된다"라며 "자정능력의 부재이고 자멸적 현상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진보정당 공간 소멸? 빠른 진단인 듯"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토론과 경쟁은 정치와 민주주의 기초인데 안철수 정치는 여기에서 이탈한 측면이 있다"라며 "서울시장 후보 양보, 대선후보 사퇴, 민주당과의 통합, 윤장현 후보와 기동민 후보 전략공천 등 안철수 정치는 결정적 선택의 순간에 직면했을 때 경쟁을 우회하거나 회피했고, 토론 과정도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토론과 경쟁은 정치와 민주주의 기초인데 안철수 정치는 여기에서 이탈한 측면이 있다"라며 "서울시장 후보 양보, 대선후보 사퇴, 민주당과의 통합, 윤장현 후보와 기동민 후보 전략공천 등 안철수 정치는 결정적 선택의 순간에 직면했을 때 경쟁을 우회하거나 회피했고, 토론 과정도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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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박 교수는 "진보정당의 독자적 생존은 불가능하다"라는 일각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진보정당의 공간이 계속 위축된 것은 사실이지만 진보정당 공간이 소멸됐다고 보는 것은 빠른 진단인 것 같다"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복지 등에서 뚜렷한 정책차이를 내놓지 못했다. 경제민주화, 반값등록금, 복지연금 등에서 박근혜와 문재인 후보는 유사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 이런 공약을 후퇴시키거나 철회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방치된 부문, 계층을 대변하는 세력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렇게 배제되고 방치되고 대표되지 않는 공간이 존재하면 정당구조도 불안정해진다."

박 교수는 "안철수 세력이 지역이나 경제요소를 뚫고 정책, 노선, 대안 등을 추구하는 제3정당이 될 수 있었는데 이것을 급속하게 중단하고 기존 거대정당에 흡수됐다"라며 "경제와 지역요소의 영향력이 끝나는 순간 정책, 공공성, 노선, 대안 등을 가지고 등장했던 것이 안철수인데 그것이 중단됐기 때문에 여전히 두 정당이 대변하지 못하는 공간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한국은 양당구조 같지만 3.7 (다당체)체제가 반복되는 것을 경험적으로 봤다"라며 "안철수 정치가 소멸되면서 생긴 공간을 생각해서 조금 더 독자적인 노선을 노력했으면 좋겠다"라고 '진보정당 독자노선'을 거듭 강조했다.

끝으로 박 교수는 "연합은 진보와 진보 사이에서도 가능하다"라며 "민족문제, 노동문제, 사회경제문제, 환경문제 등을 배타적으로 강조해 독립하는 것보다 진보 안에서 연합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진보의제를 연합하는 능력없이 재벌체제, 분단국가에서 분화하는 것은 제도의 공간이 보장되더라도 (진보정당은)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현재 한국정치가 1988년 총선-1990년 3당합당의 정초국면에서 막혀 있는데 또 한번 한국정치의 정초국면이 와야 한다"라며 "대표체제, 사회권력 배분 등이 계속 악화되어왔기 때문에 25년간 막혀 있는 (한국정치) 구조전환 국면은 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인터뷰 발언록] "한국 보수, 결코 유능하지 않다"

"일본은 전후에 진보 세력이 위축됐지만 55년체제에서 자민당이 진보의제들을 수용해 집행했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무능한 보수와 무력한 진보다. 일본과 달리 한국 보수는 무능하다. 저는 민주정부와 보수정부의 능력을 등치시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 보수는 조직기구로서는 방대하고 강력한데 정신, 역할, 능력 측면에서는 너무 무능했다. 성장율 등 경제지표상에서도 그렇다. 김영삼, 이명박 등 두 보수정부의 경제지표가 김대중, 노무현 등 민주정부보다 앞서 있는 게 없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보수는 결코 유능하지 않다. 결코 유능하지 않아서 종북좌파 등 이념자원을 동원하지 않으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없다. 앞으로는 유능한 보수, 강력한 진보로 가야 한다."

"정치개혁은 기득권을 내려놓을 정도로 급진적이고 혁명적으로 하고, 경제개혁은 점진적이고 안정감 있게 하는 게 필요하다. 또한 남북관계는 온건하고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또한 리더십의 문제가 있다. 한국 보수는 이익을 많이 주든 위계질서가 있든 정당 안에서 질서, 승복의 문화가 있다. 반면 개혁정당들은 정당규율이 굉장히 약하다. 민주개혁 세력 안에서 힘이 모이고, 가치가 모여야 하는데 그 안에서 견제, 분산이 있다. 그러면 국민의 중심적 대안으로 서는 게 쉽지 않다.

또한 민주주의는 기초단위가 중요하다. 저는 공천제 폐지를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공천제는 민주주의와 맞지 않는다. 공천권은 당원과 국민, 기초단위에 돌려주는 게 맞다. 이들이 처음부터 대표를 뽑는 데 참여하지 않으면 위에서 공천하고 국민이 추인하는 이중구조가 지속된다. 이러면 사회권력자원을 과점하는 거대 보수정당에 맞서서 조직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대등한 관계를 구축하기 어렵다. 공동체 일원으로 공공영역에 참여하게 해야 애정과 참여, 충성도가 높아진다. 기초단위는 토호 세력, 관료 등이 다 장악했는데 민주개혁 세력은 일반 대중과 관계를 구축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오랫동안 중앙당 대 중앙당의 권력관계 유지에 신경쓰다 보니 기초단위가 다 무너졌다."

"민주화 이후 최대 개악 가운데 하나가 지구당 폐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정치의 비용이 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치비용이나 의회 예산은 다른 나라에 비해 적다. 의회예산은 5000억 원 정도인데 광명시나 안산시 예산 수준이다. 수원시나 고양시보다 적다. 정치를 돈먹는 하마라고 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담론이다. 보수는 언론과 재벌, 사법부가 합작해서 정치공격을 하는데 민주개혁 세력은 사회권력자원이 부족하니까 정치를 통해 이들을 견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구당 폐지로 완결됐다. 이는 최악의 정치개혁 가운데 하나다. 지구당은 부활해야 한다. 또한 기초공천제 폐지가 두 번째 개악이 될 뻔했다.

박정희 정권이 대폭 줄였던 국회의원 정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정치가 군부와 재벌을 견제하는데 이것을 박정희 정권이 줄인 것이다. 의회를 강화하지 않으면 이들을 견제할 수 없다. 민주개혁 세력이 민주주의의 보루에서 너무 쉽게 물러났다. 의회제도가 강화되어야 민주주의의 행위자인 정당이 강화된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299명이다. 국민 16만 명 당 국회의원이 1명이다. OECD 평균은 국민 6만 명 당 국회의원 1명이다. 국회의원 숫자가 너무 적다. 700~800명 정도 되어야 한다. 대표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기득 세력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뜻한다. 대표원리는 기득권 세력의 독점현상을 완화한다. 한국은 의회예산은 적지만 세비는 가장 비싼 세 나라 가운데 하나다. 독일이나 프랑스와 비슷하다. 세비를 줄이고 의원숫자를 늘려야 한다."

"저는 미국식 양당체제에 비판적인 편이다. 미국식 양당체제는 거대자본 등에 복무할 수밖에 없다. 미국 정당은 복지문제나 양극화 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점점 기업에 종속되고 있다. '민주주의 주식회사'라고까지 부른다. 한국처럼 무능한 보수가 지배하면 사회경제적 문제가 더욱 악화된다. 이런 체제에서 미국식 정당체제로 가면 한국에서는 불평등이 더욱 악화되고, 지역구조와 재벌체제를 고착시키고, 이념대결구도를 고착시킬 것이다. 다만 미국은 지방자치(연방)가 활성화돼 있다. 정당이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에서는 지방의 기초조직들, 시민단체, 노동조합 등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 문제해결 능력이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다."

"남한의 진보는 북한문제를 비판하는 데에서 거리가 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반핵과 평화는 진보담론이다. 그런데 왜 한국 진보정당들은 세습과 북핵을 비판하는 데 주저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북한 인권과 반핵 담론은 보수가 독점하게 됐다. 북핵, 세습 등 북한문제와 자유, 평등, 인권, 평화 등 진보의제를 분리하는 데 실패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북한문제를 비판하면 안 된다는 것은 한국 진보의 불행한 역사다. 어떤 형태로든 진보의 보편성을 회복해야 한다. 보편성은 상황론을 이해하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객관성이 있어야 한다."




태그:#박명림, #7.30 재보선, #안철수, #진보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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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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