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프랑스에는 3가지 종교와 300가지 소스가 있고, 영국에는 300가지 종교와 3개의 소스가 있다."

프랑스 외교관 탈레랑 페리고르가 했던 농담처럼, 영국 바로 옆인 아일랜드에는 정말 먹을 게 없다. 위도가 높은 지대라 춥고, 토질이 좋지 않아 나오는 산물이 다양하거나 풍족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주식인 감자가 들어오기 전에는 주로 방목을 했고, 17세기 감자가 들어오고 나서는 전 국민이 감자만 파먹다가 감자에 전염병이 생기자 국민의 절반이 죽거나 외국으로 떠나 아직도 전성기 인구의 1/2을 회복하고 있지 못하다고. 최근 재료가 다양해지고 풍족해지면서 조리법이 많이 개발되고, 식탁이 다양해졌다고 한다.

<미식 견문록>에서 요네하라 마리가 말했듯이, 음식이란 그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음식은 역사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으며, 음식 한 그릇 한 그릇을 볼 때마다 그 속에 담긴 삶의 풍경과 시대를 볼 수 있다. 음식이야말로 사람과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재미있는 수단일 것이다. 내가 무엇을 먹는가를 고찰하는 것은 지금의 나를 해석하는 재료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일랜드의 주요한 전통 음식이래봐야 피쉬엔 칩스, 스테이크-감자, 베이컨 세 가지 정도. 정말 맛있는 두툼한 칩스와 함께 감자가 여기저기 안 들어가는 데가 없다. 이곳에서 우리는 찌거나 튀긴 감자를 냄새가 따라다닐 만큼 먹고 있다.

아일랜드의 흔한 아침식사
 아일랜드의 흔한 아침식사
ⓒ 류옥하다

관련사진보기


전통적이고 대중적이고 어쩌면 아일랜드 식탁의 모든 것인 '피쉬앤칩스'
 전통적이고 대중적이고 어쩌면 아일랜드 식탁의 모든 것인 '피쉬앤칩스'
ⓒ 류옥하다

관련사진보기


원래 우리의 여행 계획은 아일랜드에 처음 도착해 이틀간 호텔에 머물다가 더블린 시내에 집을 구하는 것이었다. 휴가 기간에 비어있는 집을 임대해 한 달간 묵을 생각이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비어있는 집이 몇 곳 없는데다, 한국에서 연락을 넣어놓았던 곳에서도 답이 없다. 더군다나 우리가 온 7, 8월이 이곳의 성수기라, 몇 곳 없는 빈 집조차 다 차버리고, 호텔은 물론 호스텔 같은 곳에서도 머무를 곳을 찾기 쉽지 않았다. 겨우 호텔급의 숙소를 구해 장기 투숙.
 
우리 숙소에는 취사시설이 없다. 원래는 아파트에서 밥을 직접 해먹을 생각이었는데, 밥 먹는데 차질이 생겨버렸다. 매 끼니를 사먹는다는 것이, 돈도 돈이고, 계속 바깥 밥을 먹는 게 편치 않다. 그래서 어머니가 안에서 먹을 방법을 궁리했다. 원래 차를 끓여먹는 용도인 작은 스테인리스 주전자 하나가 만능의 솥단지가 되었다. 혹시나 하고 챙겨온 과도가 큰 힘을 발휘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첫 밥상. 토마토, 오이, 양배추 등을 썰어넣은 샐러드, 익힌 가지, 삶은 계란과 줄콩, 파스타와 스시 쌀을 사와 몇 분마다 물을 부으며 조리한 밥까지. 계란 찜과 삶은 계란이 풍성하다. 옹색하지만, 이 먼 타지까지 와서, 건강한 집 맛을 맛볼 수 있었다. 이런 예기치 않은 일이 여행에 재미를 주고 시간을 풍성하게 하지 않던가.

어릴 적 어머니와 3년동안 일곱 개 나라 공동체를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비행기표만 끊어서 만 세 살짜리 꼬마를 데리고 여러 나라를 떠돌면서도 정말 잘 해먹고 잘 지냈다. 공동체 사람들이 우리가 해먹는 걸 보면서 놀랄 정도였다고. 뭐든지 시도해보고, 없는 게 있으면 대신 할 걸 구하고, 열약한 상황에서도 도움을 청하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았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인상 깊었다면서 내 행동을  칭찬해 주신 일이 있다. 교내 대회가 있었을 때 몇 명이 공부할 수 있는 책자를 받지 못한 상황. 다들 포기하는 분위기에서 담당 선생님을 찾아가 선생님 거라도 대회까지 빌려달라고 부탁드렸던 것. 죽이 되는 밥이 되든 시도해 보는 데에는 분명 어머니랑 함께 한 시간이 도움이 되었다.

오늘의 밥상 차리는 중
 오늘의 밥상 차리는 중
ⓒ 류옥하다

관련사진보기


밥을 먹던 도중 어머니가 일어서서 스테인레스 주전자를 다시 가지고 오셨다. 그 속에는 심지어, 구수한 양송이가 가득 들어간 된장국이 있었다. 터져 나오는 아빠의 감탄사, "엄마가 정답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엇이든 되게 하는 엄마.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는 엄마. 아빠는 엄마하고 같이 가면 어디든 걱정이 없다고. 그렇다.
 
그런데, 어디 우리 어머니만 그렇겠는가. 나는 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렇다. 먹이고, 입히고. 어떻게든 우리들을 건사해낸다. 전쟁에서도, 가뭄에서도, 나라를 잃은 어려운 시대에도 어머니들은 그렇게 식구들을 살피지 않았던가. 이 세상 모든 엄마가 정답이다!

덧붙이는 글 | 류옥하다 기자는 열여섯 살 학생기자입니다



태그:#아일랜드, #요네하라 마리 , #미식견문록, #여행음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