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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아, 아빠야. 네가 생전에 사인받고 싶어 했던 분들의 사인을 하늘나라로 보낸다. 너의 버킷리스트를 보고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셨어. 일단 YB(윤도현밴드), 김종서님 등 네가 우상으로 생각했던 분들의 사인을 보낼게. 수현아, 이건 네가 살아서 스스로 해내야 할 일인데, 대신 해 주는 것이 아빠는 무척 슬프단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박수현(18) 군의 아버지 박종대씨는 지난달 초, 사고 후 25일째 블로그 '고 박수현이 체험했던 세상'을 만들었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아들을 잊지 않기 위해 가족들이 만든, "수현이를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박씨는 블로그에 수현군의 어린 시절 사진과 함께 그가 쓴 버킷리스트(bucket list)를 올렸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잊지 않기 위한 시도가 계속되는 가운데, 그들이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뤄주는 사람들이 있다. 고 박수현 군의 버킷리스트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잊지 않기 위한 시도가 계속되는 가운데, 그들이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뤄주는 사람들이 있다. 고 박수현 군의 버킷리스트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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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유명 뮤지션 사인받기, 책 2000권 읽기, 영어·일본어 프리토킹 등 수현군이 직접 해보고 싶었던 25개 목록이 들어있었다. 이 중 '뮤지션 사인받기'는 80여 명이 넘는 음악인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현실이 되기도 했다 (관련기사: 세월호 희생자 고 박수현군 소망 윤도현·박효신·조승우가 들어줬다).

지난 4월 16일, 온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한 초유의 사고가 난 날로부터 76일째. 세월호 희생자들을 잊지 않기 위한 시도가 계속되는 가운데, 그들이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뤄주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에는 유가족뿐 아니라 예술인 등 이들과 직접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수현 군의 버킷리스트는 현재진행형이다. 아버지 박종대씨는 30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책 2천 권 읽기'는 엄마와 누나가 진행 중이고, '세계여행 가기'는 현재 고3인 딸이 수능 후  가기로 했다"며 "지금은 제가 진상규명 때문에 정신이 없지만, '진정으로 남을 위해 봉사하기' 부분도 저희 가족들이 어떤 식으로든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목록 중 '자서전 내기'는 박씨가 블로그 등 자료를 모아 책으로 출판할 계획이며, '작곡하기'는 밴드 시나위의 리더인 기타리스트 신대철(48)씨의 도움을 받아 수현군 노트북 속 자작곡들을 복원하고 있다.

아들이 듣던 음악, 24시간 내내 틀어놔... 그림으로, 음악으로 "잊지 않을게"

수현군 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못다한 꿈도 여러 사람들의 참여로 이뤄지고 있다. 박수현군과 절친하게 지냈던 친구 고 최성호군의 경우, 최 군이 평소 가장 좋아했던 피아니스트 이루마가 최군 어머니에게 직접 사인 CD를 보내왔다. 304명의 희생자들을 잊지 않기 위한 예술인 모임 '304 잊지 않을게' 운영진들이 이 둘을 연결해준 덕택이었다.

고 최성호 군의 경우, 최 군이 평소 가장 좋아했던 피아니스트 이루마가 최 군 어머니에게 직접 사인 CD를 보내왔다. 예술인 모임 '304 잊지 않을게' 운영진들이 적극적으로 이 둘을 연결해준 덕택이었다.
 고 최성호 군의 경우, 최 군이 평소 가장 좋아했던 피아니스트 이루마가 최 군 어머니에게 직접 사인 CD를 보내왔다. 예술인 모임 '304 잊지 않을게' 운영진들이 적극적으로 이 둘을 연결해준 덕택이었다.
ⓒ 최성호군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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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진 중 한 명인 이아무개(37)씨는 "예술이 세월호와 관련해 사회적으로 뭘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잊지 않을지를 고민하다가 이 둘을 연결해주게 됐다"며 "(CD를 받고난) 어머니께서 '진심이 느껴져 눈물 나게 고맙다, 성호 방에서 그 CD를 24시간 틀어놓고 듣는다'고 하시더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잊지 말자 세월호'라는 주제로 유족 인터뷰 등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한편, 희생자 숫자인 '304명'에 맞춰 304장의 그림들로 4월 16일을 기억하겠다며 그림을 그려 올리고 있다. 30일 현재까지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그린 100여 장의 그림은 '304 잊지 않을게'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예슬 전시회' 포스터 2만 개 발송... "예슬아, 네 꿈 우리가 이뤄줄게"

평소 장래희망이 '디자이너'였던 고 박예슬 양의 꿈은 오는 4일 현실이 된다. 예슬양이 유치원 때부터 그린 그림과 일기, 최근까지 그렸던 구두디자인 등 36점의 작품들은 오는 금요일부터 서울 종로구 효자동 서촌갤러리에서 '무기한' 전시될 예정이다.

평소 장래희망이 '디자이너'였던 고 박예슬 양의 꿈은 오는 4일 현실이 된다. 예슬양이 유치원 때부터 그린 그림과 일기, 최근까지 그렸던 구두디자인 등 36점의 작품들은 서울 종로구 효자동 서촌갤러리에서 '무기한' 전시될 예정이다.
 평소 장래희망이 '디자이너'였던 고 박예슬 양의 꿈은 오는 4일 현실이 된다. 예슬양이 유치원 때부터 그린 그림과 일기, 최근까지 그렸던 구두디자인 등 36점의 작품들은 서울 종로구 효자동 서촌갤러리에서 '무기한' 전시될 예정이다.
ⓒ 서촌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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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2학년 3반 17번 박예슬 전시회'에는 박양이 스케치한 '살고 싶은 집' 3D 입체모형과 직접 그린 풍경화 등이 놓이는 한편, 구두 디자이너가 박양의 구두디자인을 바탕으로 제작한 실제 구두 등이 전시된다.

전시회는 서촌 갤러리의 장영승 대표가 예슬양 아버지인 박종범씨에게 먼저 연락해 성사됐다. 장 대표는 "방송에서 예슬양 부모님이 아이 꿈에 관해 얘기하시는 걸 보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예슬양 부모님도 무척 좋아하시고, 동생 예진양도 적극적으로 돕기 시작하면서 많이 밝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시회뿐 아니라 포스터를 전국 곳곳에서 함께 붙였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준다는 것만으로도 기획자 입장에서는 이미 뜻 깊은 전시"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장 대표가 페이스북 등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공개한 이메일로 포스터를 요청하는 메일이 쏟아져 현재 2만 개 이상의 포스터가 발송됐다.

'박예슬 전시회'에는 박 양이 스케치한 '살고 싶은 집' 3D 입체모형과 직접 그린 풍경화 등이 놓이는 한편, 구두디자이너가 박양의 구두디자인을 바탕으로 제작한 실제 구두 등이 전시된다.
 '박예슬 전시회'에는 박 양이 스케치한 '살고 싶은 집' 3D 입체모형과 직접 그린 풍경화 등이 놓이는 한편, 구두디자이너가 박양의 구두디자인을 바탕으로 제작한 실제 구두 등이 전시된다.
ⓒ 서촌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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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고 이다운군 작곡·고 남현철군 작사로 알려진 미완성곡 '사랑하는 그대여'는 가수 신용재가 불러 이를 완성했으며,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가톨릭대 진학을 꿈꾼 고 장준형 학생의 유족들은 오는 8월 천주교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사에 초대돼 만나게 될 예정이다. 

단원고 학생들은 지난 25일 사고 후 처음으로 등교하면서, 국민들을 향해 "사람이 진짜 죽을 때는, (모두에게서) 잊힐 때"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이들은 '리멤버 0416(세월호를 기억하라)'가 새겨진 노란 팔찌를 손목에 찬 채 "끝까지 기억해 철저히 조사해달라"고 말했다(관련기사: "친구들 잊지 말아주세요" 단원고 2학년 눈물의 등굣길).

세월호 침몰사고가 100일째를 맞는 7월 24일, KBS 지상파 방송은 박예슬 양과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할 계획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고 초기의 울분이 깊은 슬픔으로 자리한 지금, 대한민국은 여전히 희생자들을 잊지 않기 위해 피땀 어린 '기억 투쟁'을 하고 중이다.


태그:#단원고 박예슬, #박예슬 전시회, #304 잊지 않을게, #세월호 침몰사고, #세월호 잊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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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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