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주라는 섬이 미지의 신비로움으로 다가온 세 번째 사건은 한창 학교에서 신화를 공부하던 시절의 작은 추억과 관련이 있다. 어느 날 밤, 세미나실에서 제주의 신화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던 중, 제주 출신의 여자 후배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동네에서는 제사 지내면 '제사 지낸다'고 안 하고요, '제사 먹으러 간다'고 해요."
"오오… 정말이야? 완전 현실적이야!"

신화전공자였던 나와 선배 한 명이 입을 모아 외쳤다. 제사를 먹으러 간다니. 제사 때는 평소에 못 먹던 산해진미가 차려지는 만큼 제사를 먹으러 간다는 이야기가 참으로 마음 깊이 와닿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 같은 관광천국이 되기 전, 섬사람들의 먹고사는 정도는 어떠했을까. 섬이라는 곳이 원래 물자가 풍부할 수 없는 고로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했겠지만, 유달리 특산물이 많이 나는 제주인 만큼 그 수탈의 강도는 어느 곳보다 거세었다. <탐라지>에도 이런 기록들이 있다.

땅은 척박하고 백성은 가난하다. (줄임) 하물며 이 고을은 바다 밖에 있어 물산이 넉넉하며 바치는 공물이 지나치게 많다. 위정자는 조정에 바칠 일에만 골몰하고 먹여 살릴 일에는 한만해진다.

물산이 넉넉한데도 백성이 가난한 이유는 지나친 공물과 세금 때문이다. 제주에 표류한 하멜도 그의 기록에서 "생산이 넉넉하지만 백성들은 가난하다. 본토 사람들은 섬사람들을 핍박하고 우습게 안다"라고 썼다.

제주인들은 바다에 목숨을 걸고 살았다. 지금까지도.
▲ 바다에 의지해 살아온 사람들의 섬. 제주인들은 바다에 목숨을 걸고 살았다. 지금까지도.
ⓒ 장윤선

관련사진보기


제주의 특산물 중 가장 중요했다고 할 수 있는 말은 사람보다 더 대접받았다. 말을 뭍으로 실어보내기 위해 많은 제주민들이 죽음의 위협을 감내해야 했으니 말이다.

관선은 경쾌선 한 척이 있을 뿐이므로 말을 실을 때는 본도에서 연해로 배를 따로 보내 싣는 숫자를 정하며, 왕래할 때 구풍을 만나거나 암초에 부딪혀 죽는 사람이 많으니 민망하고 측은하다. 뱃사람들에게 명하여 예비로 별도의 배를 준비시켜 배가 부서져 생기는 환란에 대비하게 한다. 혼탈피모(방수복)를 가지고 가거나 표주박을 끈으로 묶고, 미숫가루와 떡을 지니고 있다가 혹시라도 불행한 일이 있을 때에는 혼탈피를 두르고 표주박을 안고 미숫가루와 떡으로 식량을 삼는다면 간혹 살아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위정자들의 생각이란 이렇듯 이기적이다. 말을 바치러 떠나는 이가 풍랑을 만날 때를 대비해 기껏 내놓은 방책이 털을 뽑은 짐승 가죽을 뒤집어 쓰고 표주박을 안고 있는 것 뿐이라니! 그렇게 죽은 이가 많음에도 다른 대안을 내거나 공물을 줄일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실제 제주의 공물 상황을 보면 백성들이 자못 힘들었을 법하다. 역시 <탐라지>를 보면 당시 관에 바쳤던 공물의 양을 짐작할 수 있다.

2월에는 추복(두드려 말린 전복) 265접, 조복 (가늘고 길게 썰어 말린 전복) 265접, 인복(납작하게 펴서 말린 전복) 95뭇. 청귤 1250개.
세공마(해마다 공물로 바치는 말) 100필. 말을 점검하는 식년에는 어승마 20필, 차비마 80필, 흉구마 100필을 진상한다.

전복 한 접은 100개이고, 뭇은  '매우 많이'라는 뜻이다. 달마다 수천 개의 전복을 펴고 말려 진상함은 물론 세공마도 바쳐야 하고 각 관청마다 소요되는 물품도 각각 달리 할당되니 백성들의 어려움이 매우 컸을 것이다. 게다가 뭍에서 오는 관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귤과 유자를 좋아하고 복어까지 잡아 대령하게 했다 하니, 그 물품들을 조달하게 위한 수고로움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제사 먹으러 간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먹을 것이 정말 없어서가 아닌, 먹을 것을 빼앗겼기 때문에 가난했던 것이다.

세계적인 관광지, 제주는 어디로 가나

나는 정말로 궁금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제주가 엄청 떴는데, 제주도 사람들은 돈 많이 벌었나? 섬은 부자가 되었을까? 얼마 전 어떤 TV프로그램에서 자리가 없어 손님을 못 받는 제주의 맛집들을 보여준 것이 기억난다. 매출이 몇 배나 올랐다는 민박집과 유적지 부근의 슈퍼마켓도 보았다.

이전부터 유명 관광지이긴 했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어가는 형편이니, 제주민들도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제주에서 뭔가 할 게 없는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땅 값이 많이 올랐겠지만…. 그래도 이번 참에 한번 알아볼까?

"여기 제주 사람들은 돈 없어. 그냥 외지 사람들이 돈만 하영(많이) 주민 다 팔어요 팔어.  돈만 주민 다 되어. 바닷가는 더 팔 땅도 없고, 이제는 내륙까지 다 팔어. 그래도 제주 사람들이 부자 되나? 거기에 호텔 짓고 식당 짓고 하는 사람들이 부자 되는 거지." 

우리가 며칠 머물렀던 허름한 게스트하우스, 그 옆 집에 사는 할아버지의 말씀이다. 아침이 되면 천천히 골목으로 나와 따뜻한 담벼락에 기대 앉아 하염없이 함덕 바닷가를 바라보곤 하던 양반이시다. 그러나 노인들은 대체로 변화에 부정적이지 않은가. 혹시라도 지금의 제주가 그 옛날의 가난을 떨치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부자 섬이 되어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는 전세계를 매료시킨다. 그만큼 더 많은 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 세계인들의 유산, 제주의 자연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는 전세계를 매료시킨다. 그만큼 더 많은 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 장윤선

관련사진보기

"여긴 40년 전에 왔지요. 그땐 참 깜깜했어요. 정말 깜깜했어. 그런데 지금은 많이 발전했잖아? 여기가 이렇게 된 게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그런 거예요."

부산에서 제주로 시집와 식당 일만 30년이라는 할머니의 말씀이다. 모슬포항 근처, 낡고 오래된 동네 국숫집에서 평생을 일해오신 분이다. 제주를 다니다 보면 박정희 대통령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예전에는 저기 관광단지에나 술집이 있고 했는데, 요즘에는 이런 동네까지도 술집이니 뭐니 아주 많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우리 집도 밤장사야. 새벽 6시까지 장사하니까."
"새벽에 해장국 파시나 봐요?"

이번에는 신랑이 묻자, 할머니는 도리질을 한다.

"아니, 여기 업소 아가씨들 밤참 해주고 아침 지어주는 거지. 예전에는 저녁 시간 끝나고 늦어도 9시면 문 닫았는데, 요즘에 완전히 변했어요. 그래도 나이 일흔에 자식들한테 손 안 벌리고 삽니다."

할머니는 이전보다 제주가 비교할 수 없이 "발전"했다고 생각하는 분이었다. 허나 뭍의 자본으로 지어진 많은 관광시설들의 이익이 대부분 육지로 빠져나가고, 현지에서 도는 돈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통계자료도 있었다. 제주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제주 여행은 4월 20일부터 26일까지 했습니다.



태그:#여행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