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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포스터
 제1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포스터
ⓒ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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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뻥으로 가득찬 세상), 펀(즐겁고), 뻔(뻔뻔하게), 차별에 저항하라!"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 주최하는 제1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8일부터 10일까지 서울 백범로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에서 열리고 있다. 개막작인 <카페 이매진(Cafe Imagine)>, 폐막작인 <못다 한 이야기> 외에도 14개의 작품이 상영된다.

기자는 9일 오후 6시 30분에 상영된 90분짜리 다큐 영화, <서른 넷, 길 위에서>(김병철 감독)를 관람했다. 영화 상영 이후에는 영화 기획자와 감독, 출연자들이 참여한 '관객과의 대화' 행사가 열렸다.

영화는 서른네 살의 뇌병변 장애여성 정진희, 문애린씨의 일상을 그려낸다.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에 참여한 이선희씨는 진희씨·애린씨가 활동한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글쓰기 모임 '이야기 조각보'에 함께 참여했다. 그는 "모임에서 본 두 여성의 미소가 너무 예뻤다"고 말한다. 서른네 살 두 여자의 미소에 담긴, '같으면서도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획자 이선희씨와 김병철 감독은 "주인공들이 다니는 '길'이란 공간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고 말한다. 영화에는 전동휠체어에 타고 이동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카메라가 이동하고 있는 휠체어의 옆을 비추며 계속 따라가는 장면도 있었다. 김 감독은 "장애인들에게는 전동휠체어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며 "길 위에 있는 이 사람들의 움직임은 전동휠체어 위에서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선희씨는 "진희씨와 애린씨가 영화 속에서 다양한 곳을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도 그나마 전동휠체어가 갈 수 있고 활동보조를 받을 수 있는 시공간으로 한정되어 있다"고 했다.

"이 공간들은 진희씨와 애린씨가 다른 빛깔의 투쟁과 삶 속에서 확장시킨 공간이에요. 지금 만들어진 이만큼의 공간은 저렇게 해서 조금씩 조금씩 넓어져 왔구나, 하고 느끼셨으면 합니다."

'길 위에서' 살아가는 그녀들의 이야기

이 영화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정진희씨. 장애인과의 접촉이 거의 없는 사람들은 뇌병변을 앓고 있는 그의 말을 쉽게 알아들을 수 없다.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는 옆에 있던 문애린씨가 '통역'을 자처하기도 했다.

그의 인생 목표는 '자립'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 중간에 진희씨가 혼자 힘겹게 세수를 하는 모습이 비춰진다. 비장애인인 기자는 이 장면을 불편한 마음으로 보고 있었지만, 진희씨는 영화 속에서 "그냥 웃고 싶다"며 마구 웃는다. 영화 상영 중에도 진희씨는 객석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웃고 있었다.

다큐 영화 <서른 넷, 길 위에서>의 한 장면
 다큐 영화 <서른 넷, 길 위에서>의 한 장면
ⓒ 김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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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씨는 "진희씨가 자신의 꿈인 자립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 그리고 그 자체가 자립이 되는 모습을 찍고 싶었다"고 말한다.

"진희씨가 10년 전 시설에 잠깐 있었어요. 진희씨를 시설에 보냈을 때 진희씨 부모님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우리가 영화 속에서 이슈로 다루었던 부양의무제라는 '짐'을 진희씨의 어머니가 지고 있는 모습, 사회가 자꾸 진희씨 가족들에게 그것을 강요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것을 떨쳐 내는 모습들. 이런 것들을 그녀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영화 말미에서 그는 최근 같은 장애를 앓고 있는 영희씨와 교제를 시작한다. 둘이 함께 전동휠체어를 타고 마로니에 공원 주변을 돌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관객이 "영희씨와의 미래 계획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사적인 질문에 객석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진희씨도 "서로 바쁘긴 하지만 예쁘게 만나고 싶다"고 대답하며 웃었다.

"결국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공간은 이 길"

다른 주인공인 문애린씨의 인생 모습은 진희씨보다는 조금 더 '투쟁적'이다. 2012년 8월 21일 서울 지하철 광화문역 내에서 진행된 장애인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농성 현장에서, 경찰과 충돌하면서도 열심히 자신의 의견을 펴던 모습이 인상 깊다.

관객과의 대화 중간에 진희씨가 장애인 콜택시를 타러 먼저 자리를 뜨자, 애린씨는 "대기시간이 2~3시간이나 되는 이 장애인 콜택시를 만들기까지도 10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 10년 동안 저와 많은 분들이 길거리에 나와서 '지랄 맞게' 싸워 이뤄낸 것"이라고 했다.

계속되는 농성에 애린씨는 지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아직도 이루어야 할 것은 많지만, "활동가들도 많이 빠져나가고 예전 같지 않다"고 씁쓸한 표정으로 영화 속에서 이야기한다. 글쓰기 모임에서는 '너(농성 현장)와 이제는 헤어지고 싶다'는 시를 쓰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결국 돌아갈 길은 이곳인 것 같다"며 "그 길에서 만나고 얘기하고 다시 싸우고. 이런 모습들을 모두가 힘들게만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보시고 비장애인 분들이 '저 사람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연애, 미래, 삶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분명히 저희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에요. 그렇지만 저희들이 어차피 이 땅에 태어난 이상 사람으로서 최소한 살아갈 수 있는 환경과 조건과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조금이나마 개선하려고 하는 것이지, '다 고쳐주세요' 하는 건 아니에요. 여기 계신 분들도 다 함께 참여해주셨으면 합니다."

덧붙이는 글 | 황혜린 기자는 오마이뉴스 1기 대학통신원입니다.



태그:#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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