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 줄거리가 구체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처럼 무게 있는 비판적 사실주의 영화가 개봉했다. <스틸 라이프>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지아장커 감독의 <천주정>은 독특한 형식과 서늘한 시선으로 고도성장의 이면에 드리워진 중국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가차없이 드러낸다. 지아장커는 <천주정>으로 다시 한번 66회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3월27일 개봉한 <천주정>은 66회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3월27일 개봉한 <천주정>은 66회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 (주)에스와이코마드


고도성장의 서늘한 그림자

<천주정>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네 인물의 에피소드를 절묘하게 묶어내 하나의 주제의식을 길어 올리는 독특한 형식의 사실주의 영화다. 지아장커는 시·공간적으로 전혀 연관이 없는 네 인물의 실화를 각 에피소드의 특성에 맞게 장르영화와 접합시켜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영화세계를 보여 준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따하이'(강무 분)다. 따하이의 동창생이며 마을의 유지인 '셩리'는 광산개발로 전용 제트기를 구매할 만큼 큰 부를 쌓았다. 애초 마을의 공유자산이었던 광산을 개발하면서 셩리는 배당금의 40%를 마을위원회에 분배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부패한 촌장과 결탁해 '성장의 열매'를 독식한다.

마을 주민들은 셩리의 횡포에 불만이 있지만 그의 권세에 눌려 아무런 항의도 하지 못한다. 그저 밀가루 한 포대를 얻기 위해 셩리의 귀향환영행사에 박수부대로 동원될 뿐이다. 따하이는 셩리와 촌장의 비행을 공산당 기율위원회에 고발하려 하지만 셩리의 경호원들에게 삽으로 무참하게 폭행을 당한다. 마을 주민들은 따하이를 동정하기는커녕 골프공처럼 얻어맞았다며 그를 '골선생'이라고 빈정거릴 뿐이다. 결국 따하이의 분노가 폭발하고 그의 엽총이 정의의 불을 뿜는다.

두 번째 인물 '저우산'(왕보강 분)은 살인청부업자 혹은 떠돌이 강도로 추정된다. 그의 정체는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중국 전역을 떠돌아다니며 살인, 강도행각을 벌인다. 살인은 그의 직업이고 권총은 그의 생계수단이다. 저우산은 여느 가장이 그렇듯이 자신의 수입을 꼬박꼬박 아내에게 송금한다. 그는 단지 생계를 위해 죄와 접촉한다,

사우나 종업원으로 일하는 '샤오위'(쟈오 타오 분)는 사업가로 추정되는 유부남과 불륜관계다. 그녀는 유부남에게 아내와 헤어지든지 아니면 자신과 헤어질 것을 요구하지만 그의 태도는 모호하다. 어느 날 그녀의 직장으로 내연남의 부인이 찾아오고 샤오위는 무차별 폭행을 당한다.

가까스로 벗어난 샤오위는 사우나의 객실에서 피묻은 블라우스를 세탁한다. 그때 정부 관리로 추정되는 두 남자가 그녀에게 안마를 받고 싶다고 강요한다. 샤오위는 자신은 안마사가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그들은 "돈이면 다 된다"며 돈다발로 그녀의 뺨을 마구 내리친다. 샤오위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우연히 보관하게 된 내연남의 과도로 그들을 공격한다. 

 샤오위는 마치 무협영화의 주인공처럼 과도로 부패한 관료들을 공격한다

샤오위는 마치 무협영화의 주인공처럼 과도로 부패한 관료들을 공격한다 ⓒ (주)에스와이코마드


'샤오후이'(나람산 분)는 봉제공장의 노동자다. 자신의 부주의로 동료가 사고를 당하게 되고 사장은 동료가 치료 받는 동안 샤오후이의 임금을 동료에게 지급하겠다고 말한다. 샤오후이는 공장에서 도망쳐 친구의 소개로 '오락성'이라는 기업형 유흥업소에서 일하게 되고 그곳에서 일하는 접대부에게 연정을 품는다.

샤오후이는 그녀에게 함께 달아나자고 이야기하지만 그녀는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한다며 거부한다. 낙심한 샤오후이는 오락성을 나와 친구가 근무하는 전자업체에 취직한다. 어느 날 봉제공장의 동료들이 그를 응징하기 위해 찾아오고 자신의 참담한 처지와 수치심에 절망한 샤오후이는 결국 공장 기숙사에서 투신한다.  

<천주정>의 이야기는 모두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하이의 에피소드는 '후원하이' 사건이다. 후원하이는 농촌지부의 횡령을 고발하려다 실패한 뒤 2001년 10월 26일 총으로 14명의 마을주민을 쏴 죽이고 사형 판결을 받았다. 저우산의 에피소드는 '저우커화'사건이다. 2012년 중국 공안에 의해 사살된 저우커화는 8년 동안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현금인출자들을 상대로 살인, 강도행각을 벌였다. 모두 11명을 살해한 저우커화는 충칭 출신의 '농민공'이었다.

'샤오위'의 이야기는 2009년 공산당 간부를 살해한 호텔 종업원 '덩위자오'사건이다. 덩위자오는 자신을 돈다발로 때리며 강제로 성관계를 요구한 공산당 간부를 흉기로 살해했다. 그녀는 정당방위가 인정돼 무죄 판결을 받았다. '샤오후이'는 실존인물은 아니지만 '폭스콘'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2007년에서 20013년까지 세계 최대의 하청업체인 대만 전자업체 '폭스콘'의 중국 공장에서는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20여 명의 노동자들이 연쇄 투신자살했다. 

독특한 형식 속에 선명한 주제의식

<천주정>은 '하늘에 흐르는 운명'이라는 뜻이다. 영어 제목은 <Touch of sin>, 즉 '죄의 접촉'인데 <천주정>의 주제의식을 좀더 뚜렷이 표현하고 있다. 지아장커는 고도성장의 밑바닥에 짓눌린 네 인물들이 죄와 접촉하는 과정을 통해 '천민자본주의'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중국식 사회주의'에 서늘한 문제인식을 던진다.

'따하이'의 에피소드에는 고대 신전의 오래된 석상처럼 고독하게 서 있는 마을 광장의 마오쩌둥 동상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영화의 초반부, 마오의 동상을 배경으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형상화한 성화를 실은 트럭이 스쳐 지나가는 장면은 <천주정>의 주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현대 기독교가 아기 예수의 정신을 잃어 버리고 오직 바벨탑과 같은 거대성전을 쌓아 올리는 데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고도성장의 열매에 취한 중국에서도 마오의 '혁명정신'은 점점 박제가 되어가고 있다.

주인공들이 죄와 접촉하는 수단들은 <천주정>의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한 상징물이며 각 에피소드의 장르적 특징을 규정한다. 따하이의 엽총은 '정의의 무기'이다. 셩리와 촌장, 타락한 마을주민들을 가차없이 응징하는 따하이의 엽총은 마오의 동상과 오버랩되면서 마치 '혁명의 총구'를 떠오르게 한다. 지아장커는 따하이의 에피소드를 타란티노의 <장고: 분노의 추격자>과 같은 유혈서부극으로 연출했는데 엽총은 서부극의 장르적 특성을 규정한다.

 따하이의 에피소드는 마치 타란티노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와 같은 유혈서부극처럼 연출되었다.

따하이의 에피소드는 마치 타란티노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와 같은 유혈서부극처럼 연출되었다. ⓒ (주)에스와이코마드


반면 저우산의 권총은 '생계의 무기'이다. 그는 단지 생계를 위해 권총을 사용한다. 저우산의 에피소드는 <무간도>와 같은 차가운 후기 홍콩 느와르를 떠오르게 한다. 샤오위의 과도는 '방어의 무기'이다. 샤오위가 무협영화의 여주인공처럼 머리를 틀어 올리고 과도로 부패한 관리를 응징하는 장면은 마치 무협영화의 한 장면 같다. 지아장커는 이 장면을 '호금전'의 전설적인 무협영화 <협려>에 대한 '오마주'라고 밝혔다. 샤오후이의 에피소드에서는 드릴처럼 생긴 쇠몽둥이가 등장하지만 그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투신자살한다. 샤오후이의 에피소드는 전형적인 청춘 멜로드라마의 작법을 따른다.

지아장커는 4명의 비극적 이야기를 각각 서부극, 느와르, 무협, 멜로와 같은 장르영화와 접합하여 독창적이고 재기 발랄한 사실주의 영화를 창조했다. 그리고 이러한 장르 영화와의 접합은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방식으로 활용된다. 예컨대 후반부로 갈수록 무기력해지는 주인공들의 무기(저항)는 점점 자본 앞에 점점 무력화되고 있는 중국의 '혁명정신'을 의미하는 듯하다.

<천주정>은 칸 영화제 외에도 아부다비 영화제, 대만 금마장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하지만 정작 중국 본토에서는 아직 개봉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중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당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역설적인 것은 <천주정>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가 아니라 현실을 금지해야 하는 것 아닐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불안한 동거

영국의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은 극작가 버나드 쇼에게 "우리가 결혼하면, 당신의 지성과 나의 외모를 닮은 2세가 태어날 거예요"라며 청혼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버나드 쇼는 "내 못 생긴 얼굴에 당신의 머리를 닮은 아이가 태어날 수도 있어요"라며 청혼을 거절했다. 어쩌면 중국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동거는 버나드 쇼의 우려처럼 최선이 아니라 최악의 결과를 잉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 공산당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동거를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고 말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즉 중국공산당이 '영도'하는 사회주의적 정치체제와 시장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의 결합이 중국식 사회주의의 '특색'이다. 하지만 지적인 남성과 미모의 여성 사이에서 못 생기고 아둔한 아이가 태어날 수도 있는 것처럼 '특색'은 자칫 '변색'이 될 수도 있다.

시장경제에 기초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중국을 단기간에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제대국으로 성장 시켰다. 2016년이 되면 중국의 국가총생산은 미국을 넘어서게 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마천루의 높이와 정비례로 그림자가 커지는 것처럼 고도성장의 그늘도 점점 깊어지고 있다.

2014년 2월 25일 시난 재경대학 '중국가정금융조사연구센터'가 '2014 중국재부 관리포럼'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며 2013년 중국 상위 10% 가정이 보유한 자산은 전체의 60%에 달했다. 소득 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무려 0.717% 였다. 일반적으로 지니계수가 0.4%이상이면 불평등한 상태를 나타내는데 0.6이상은 심각한 불평등 상태이다. 독일 0.28, 한국 0.32, 미국 0.336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중국에서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격차는 1988년 1대7.1이었지만 2007년에는 1대23으로 3배 이상 커졌다.

'크레디트스위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홍콩과 마카오를 제외한 중국 본토에서 100만 달러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사람의 수는 101만7000명이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5년 안에 중국의 백만장자의 숫자가 두 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본토에서 5000만 달러 이상의 초고액 자산가의 숫자는 5400명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 백만장자 중 중국의 백만장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3.4%였지만 5000만 달러 이상 부자는 전 세계의 6.4%를 차지해 초고액 자산가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저우산의 실제인물인 저우커화는 농민공이었다.

저우산의 실제인물인 저우커화는 농민공이었다. ⓒ (주)에스와이코마드


반면 2014년 중국 '인력자원사회보장부'는 농촌을 떠나 도시에 일하는 농민공의 숫자가 2억6900만 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농민공은 중국 전체 13억6072만 명의 20%에 달하며 이들의 월 평균 수입은 2609위안(약 45만 원)에 불과하다. 농민공의 수입은 농민 전체 수입의 절반 가량에 이른다. 여전히 중국 '인민'의 다수가 절대적 빈곤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라고 해도 중국의 소득 불평등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단지 소득 분배의 측면에서 보면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어쩌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의 맹점과 자본주의의 단점이 결합된 기형적 사회주의 혹은 기괴한 자본주의 체제로 변질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4월 1일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벨기에 유럽대학의 강연에서 "전제군주제 종식 뒤 중국은 어디로 갈지 고민해 입헌군주제, 의회제, 다당제, 대통령제를 모두 시도했다"며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사회주의의 길"이라고 밝혔다. 중국 공산당은 중국 공산당 창건 100주년을 맞는 2021년까지 중국 인민들에게 '전면적인 샤오강사회', 즉 모든 국민이 중산층 수준에 다다르는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시진핑이 2021년까지도 인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다시 따하이의 엽총이 불을 뿜을지 모른다.

한때 중국에서는 이런 노래가 유행했다.

"마오쩌둥 병사는 청렴결백하고 공정했네/훠꿔펑의 병사는 그저 그랬네/덩샤오핑의 병사는 백만장자라네"

지아장커가 <천주정>에서 마오쩌둥의 동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청렴결백하고 공정"했던 그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오의 중국은 가난했지만 적어도 공정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나홀로연구소> http://blog.naver.com/silchun615에 중복 게재됩니다.
천주정 지아장커 강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농민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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