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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결혼한 지 12년. 결혼 초기 비슷했던 생각이 많이 달라졌음을 확인하면서 '다르게 바라보기'를 서로의 관점에서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 여자 그 남자의 다르게 들리지만 다르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 '그 여자 그 남자의 다.다.다.'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 남자 이야기는 남편 지용민 시민기자가, 그 여자 이야기는 아내 박보경 시민기자가 썼습니다.... 기자 말

[그 남자 이야기] 아내는 종이었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서정주 <자화상> 중)

나는 미당(未堂) 서정주의 시를 좋아한다. 23세의 어린 나이에 <자화상>이라는 시를 발표해 거만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한국인의 서정적이고 한 서린 마음을 그처럼 풀어낸 그가 나는 좋다. 미당이 사망했을 때 '미당을 추모할 수 없는 이유' 등의 기사가 나왔다. 그에게는 친일이라는 약점이 있다. 으레 사람에게는 공과 과가 병존한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안고 가는 법이다.

미당의 <자화상>을 언급한 이유는 따로 있다. 최근 들어서 '애비는…'이 아니라 '아내는 종이었다'로 인식되는 상황이 내 눈앞에서 너무 자주 펼쳐졌기 때문이다. 생각의 모든 자락을 펼쳐 보일 수는 없는 일. 대표적인 이유만 든다면 '둘째의 지극한 엄마 사랑' 때문이다.

아토피가 심한 둘째는 새벽이면 일어나 "이게 뭐예요!"라고 아파하곤 했다.
 아토피가 심한 둘째는 새벽이면 일어나 "이게 뭐예요!"라고 아파하곤 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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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유치원에 들어간 둘째는 지난해 많이 아팠다. 흔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3대 질병' 중 하나인 아토피 때문이었다. 둘째는 급기야 밤에 잠을 이루지도 못했다. 아이는 새벽 2시면 깼다. 몸을 긁어댔다. 아이는 "이게 뭐예요!"라고 절규하며 밤새 긁어댔다. 울다 지쳐 잠이 들면 나는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출근길에 나섰다. 이러다가는 나도, 아내도 아플 것만 같았다. 때로는 실제 아팠다.

먹는 것에서 발생하는 병이었기에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지 못했다. 어린이집뿐 아니라 집 밖을 나서지 못했다. 주위에는 그 병에 정통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들은 우리가 그토록 노력했음에도 알 수 없었던 사실들을 너무 잘 안다고 말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치료제를 나열하거나 용한 누리집을 알려줬다. 우리는 묻지 않았다. 그들이 말하면 듣고 흘렸다.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집밖을 나가지 않게 됐다. 그리고는 엄마만 찾았다. 엄마는 어린 아이에게 '구원'이었다. 잠들 때에도, 잠에서 깰 때도 엄마는 늘 옆에 있어야 했다. 어디를 가도 시야에 보이지 않으면 소리쳐 엄마를 불렀다. 그 때문이다. 내가 어느 순간부터 '애비는 종이었다'를 '아내는 종이었다'로 바꿔 암송하기 시작한 이유가 말이다. 종도 그런 종이 없었다. 엄마란 이름의 종, 아내였다.

요즘 우리 가족은 행복하다. 행복은 상대적 개념이다. 우리의 상대는 옆집도, 고등학교 동창네 집도 아니다. 비교 대상으로 삼을 집은 없다. 행복의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우리 가족 둘째가 1년 사이 컸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면역력이 강화됐는지 밤에는 제법 잘 잔다. 피부에 난 것들도 많이 사라졌다. 아직도, 여전히 긁지만 새벽 2시에 커다란 울음과 함께 깨서는 "이게 뭐예요!"라고 하진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나와 아내는 행복하다.

둘째는 유치원에도 입학했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은 둘째를 세심하게 배려했다. 못 먹는 음식이 간식으로 나오면 동일한 포장에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담아서 주곤 했다. 어린이집도 다니지 않았던 아이는 이제 유치원을 좋아한다. 어제는 유치원가도 불렀다. 엉덩이까지 흔들어대면서.

[그 남자 이야기] 무심코 내뱉은 '오피스룩', 아내 생각 전한 것뿐인데...

내가 "집사람 옷 한 벌 사주려고 갔었는데 오피스룩(Office Look)이어서 살 게 없었어요"라고 말하자 아내는 자리를 박차고 화장실로 갔다.
 내가 "집사람 옷 한 벌 사주려고 갔었는데 오피스룩(Office Look)이어서 살 게 없었어요"라고 말하자 아내는 자리를 박차고 화장실로 갔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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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자유시간이 생겼다. 주말에 우리 가족은 지인이 새로 연 숙녀복 매장을 방문했다. 매장은 작았고, 밖에서 들여다 보니 지인은 없었다. 내가 본 숙녀복들은 '전문직 여성'들이 사무실에서나 입을 법한 옷들이었다. 함께 옷을 보던 아내는 수줍게 말했다.

"내가 집에서 입을 만한 옷은 없구나."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 일이 있은 뒤, 본가에 방문할 일이 생겼다. 우연히 숙녀복 매장에 들렀던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무심코 말했다.

"집사람 옷 한 벌 사주려고 갔었는데 오피스룩(Office Look)이어서 살 게 없었어요."

부모님이 '그렇구나'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갑자기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자연스럽지 않은 태도로 화장실에 가는 아내 뒤로 함께 있던 사촌 여동생이 말했다.

"오빠는 참…. 요즘 젊은 엄마들이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때문에 예민한데 '오피스룩' 얘기하니까 새언니가 섭섭했을 것 같네."

분위기는 썰렁해졌다. 오피스룩? 41년 살면서 처음 써본 단어였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게 맞는 표현인지 검색해 봤을 정도다. 오피스룩? 대체 그게 뭐기에…, 이해할 수가 없다.

[그 여자 이야기] 당신이 내게 그런 말을 하다니...

어떻게 당신이 내게 그런 말을... 힘들어하는 거 다 봤으면서...
 어떻게 당신이 내게 그런 말을... 힘들어하는 거 다 봤으면서...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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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이래서 사람 말은 양쪽을 다 들어봐야 하는 것이다.

시계를 잠시 뒤로 돌려보자. 때는 바야흐로 황금 같은 토요일 저녁이었다. 그 날은 몸도 마음도 쉬고 싶었다. 하여, 남편과 아이들만 시가에 보냈으면 했다. 내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남편이 출발하고 나서 시가에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오늘은 제가 꾀가 나서 애들하고 애들 아빠만 갔어요. 저는 다음에 갈게요."

하지만 시가는 나의 휴식을 원치 않았다.

"그래 뭐…, 어쨌든 알았다. 그런데 내가 오늘은 아파."

어차피 싫은 소리 들은 거 다음에 갈까 했지만, 아프시다는 말씀에 마음이 약해져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설 채비를 했다. 가고 있는 남편을 되돌렸다.

남편은 화를 냈다. 하루쯤 쉬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불러낸다고 투덜거렸다. 내게 가지 말라고, 그냥 쉬라고 다독였다. 풋! 이 남자, 작전인지는 몰라도 내 편을 들어주는 게 좋아서 못 이기는 척 따라 나섰다.

시가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앞치마를 두르고 부지런히 저녁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렇게 내 편을 들어주던 이 남자가 안 보인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내 편을 들어주던 내 남자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방, 저 방 둘러보니…. 이 남자, 따뜻한 흙침대 위에서 가랑가랑 코를 골며 단잠에 빠져 계신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침대 위로 올라가서 발로 차버릴까?' 잠시 생각해 봤지만 여긴 '그의 구역'이다.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된다. '일어나, 난 일하는데 지금 잠이 와?' 복화술로 말했다. 대충 상황을 눈치챘는지 남편이 일어났다. 본인도 본인의 역할을 하고 있는 듯 괜스레 더 큰소리로 아이들과 놀아준다. 으이그…, 하는 짓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머니와 함께 부랴부랴 만두를 빚고 저녁준비를 마쳤다. 근처에 살던 사촌시누이 가족이 도착했다. '좀 일찍 와서 같이 좀 할 것이지….' 소심하게 남몰래 눈을 흘기고 저녁을 내왔다.

한 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하루가 피곤해서 그런지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얼마 전 종로에 새로 옷 가게를 연 시누이 이야기가 나왔다. 마침 우리는 그 전 주에 가게 구경을 갔던 적이 있어서 남편이 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꼭 그래서라기 보다는 남편은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특히 시댁 식구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숙이고 만두를 먹고 있었다.

"와이프 옷 한 벌 사주려고 했는데 거기는 '오피스룩'이라 와이프가 입을 만한 건 없더라고요."
'뭐? 너 님 뭥미?? 이게 지금 말인지 막걸리인지'

고개를 숙이고 만두를 먹던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고개를 들고 남편을 바라봤지만, 남편은 눈치가 없었다. 옆에 있던 아가씨가 한 마디 거들었다.

"아니, 오빠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새언니가 직장 그만둔 게 애들 키우려고 한 건데. 애들 아니었으면 새언니 지금도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인데."

남편은 아차 싶었는지 이런 저런 부연을 덧붙인다. 아니 뭐 그런 뜻이 아니고 어쩌고…. 내가 가게 앞에서 '내 스타일이 아니네' 했었는데 그 말을 전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아이고 이 남자야, 그냥 그 입 다물라!'

[그 여자 이야기] 누구 때문에 사회생활 접었는데... 눈물이 왈칵

그 자리에 계속 있으면 울 것만 같아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마다 아이들이 있어서 화장실로 숨었다. 화장실에서 들으니 남편을 나무라는 아버님 어머님 말소리가 들렸다. 그렇지만 위로는 되지 않았다. 아니, 더 서럽기만 했다. 저런 남자를 남편이라고 한 이불 덮고 산 세월이 아까웠다. 내일부터 집에서 정장 입고 살림을 할까, 집을 오피스로 꾸며 버릴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둘째를 키우기 위해 사회생활을 접었다. 아이는 아토피가 있었는데 음식 알레르기가 있어서 아무 음식이나 먹으면 안 됐다. 뭐든지 내가 만들어 먹여야 했다. 둘째는 어린이집도 다니지 않았다.

이제 7살이 되는 큰애와 24시간 붙어 있는 작은 아이가 있으니 내게 혼자만의 시간은 사치가 됐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회생활을 그만둔 나는 두려웠다. 나 혼자 뒤처지는 것 같아 참을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다시는 그 '오피스'에 들어갈 수 없을 거 같아서 발버둥을 쳤다. 남편은 그런 모습을 옆에서 다 지켜봤다. 그런 남자가 오피스룩이 어쩌구 어째? 그 오피스를 벗어나서 내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뻔히 알면서, 뻔히 봐왔으면서.

화장실에서 나왔지만 저녁식사 자리 근처에도 가기 싫었다. 가자미 눈이 되도록 남편을 노려봤지만 성이 풀리지 않았다. 그날 저녁 설거지는 아버님이 하셨다.

3월부터 둘째는 7살 누나와 손을 잡고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유치원 종일반에 보내고 '오피스'에 가려고 했지만, 종일반은 현재 엄마가 직장에 다니지 않는 경우는 받아주지 않았다.

남편은 여전히 그때 일로 할 말이 많다. 내가 화를 냈던 게 과했다고 생각한단다. 내가 그렇게 설명을 했건만 속으로는 내가 왜 화를 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해를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알 수는 없다. 본인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만 이야기한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우리는 서로 다른 기억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가수 이소라는 노래에서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라고 했나 보다.


태그:#오피스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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