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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말보다 행동을 강조하는 정치인이다. 말이 아닌 행동이 신뢰를 구축한다는 그의 강조점은 국내정치는 물론, 대북 정책과 국제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은 정치인의 일반적 유형에서 벗어나 있다. 이에 대해 국민은 어떻게 평가할까?

지난 2월 박 대통령 취임 1주년에 맞춰 시행한 한국갤럽의 직무수행평가 여론조사에 따르면,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는 56%였다(참고로 박 대통령의 대선 지지율은 51.6%였다). 긍정 평가의 이유는 ▲주관, 소신 있음/여론에 끌려가지 않음(15%) ▲대북/안보정책(14%) ▲외교/국제관계(11%) 순으로 높게 나왔다(19세 이상 남녀 1,218명. 표본오차 95%±2.8%p).

박근혜 '긍정 평가' 이유는 '대북-안보정책의 주관과 소신'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21일 오후 브리핑에서 "우리 정부는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측이 주최하는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 참석하기로 했으며 회담시 북핵 및 비확산 문제에 관해 의견 교환을 가질 예정"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21일 오후 브리핑에서 "우리 정부는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측이 주최하는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 참석하기로 했으며 회담시 북핵 및 비확산 문제에 관해 의견 교환을 가질 예정"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1년 동안 한미, 한중, 한러 정상회담을 각각 두 차례씩 가졌다. 일본과는 정상회담을 한 번도 갖지 못했다. 누가 봐도 '비정상 외교'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아베 신조 총리는 그동안 한일 정상회담 희망 의향을 여러 차례 비쳤으나, 박 대통령은 "일본 정부의 과거사 인식 개선 없이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밝혀왔다.

국민은 이런 '비정상 외교'를 어떻게 평가할까? 최근 한국갤럽의 한일 관계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사 인식 개선 없이 한일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공감하는지 물은 결과, 74%가 '공감한다'고 답했다. 16%는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10%는 의견을 유보했다.

요약하면, 국민 대다수는 북한에 휘둘리지 않고, 일본에 끌려가지 않는 박 대통령의 소신과 강단이 있는 외교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말보다 행동을 앞세운 '박근혜 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 헤이그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 기간(24~25일)에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담이 그것이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21일 오후 브리핑에서 "우리 정부는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측이 주최하는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 참석하기로 했으며 회담시 북핵 및 비확산 문제에 관해 의견 교환을 가질 예정"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미측이 주최하는 3국 정상회담'임을 강조한 것이 눈에 띈다.

미국은 4월로 예정된 오바마 대통령의 한일 양국 순방을 앞두고 한일 관계의 개선을 강력히 주문해왔다. 헤이그 한미일 정상회담은 미국의 중재를 수용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얘기다.

미국의 우려는 북한 핵무기의 국제테러 조직 이전

핵안보정상회의(Nuclear Security Summit)는 핵무기 보유국과 원전 가동국이 모여 핵 테러 대책 등을 논의하는 자리다.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 4월 체코 프라하 연설에서 핵 테러를 국제 안보에 대한 최대 위협으로 지목하고 핵안보 강화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발족된 회의다. 2년마다 전세계 53개국 정상 및 4개 국제기구(UN, IAEA, EU, 인터폴) 대표들이 참석하는 안보 분야 최대 다자정상회의다.

핵안보(nuclear security)는 핵 테러나 방사능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핵무기, 핵물질, 방사성 물질 및 원자력 시설을 악의적 행위로부터 방호하는 일련의 조처를 의미한다. 북한은 2003년부터 8000개의 사용후 핵연료봉을 재처리해 적어도 10기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북한 핵무기가 알카에다 같은 국제테러 조직에 넘어가는 경우다.

이번 3차회의에서는 전세계 핵테러 위협의 감소를 위해 국제사회가 그간 이뤄온 성과를 점검하고 핵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국제 협력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한국은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 의장국이었다. 그러니 핵안보정상회의 기간에 북핵 문제와 동북아 안보협력 방안을 의제로 한미일 정상회담을 갖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수순이다.

문제는 아베 총리가 과거사 인식에 대한 뚜렷한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아베와 만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국내에서도 지지율이 하락세인 아베에게 '면죄부'를 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또 이는 말보다 행동을 강조해온 박 대통령의 정치철학에도 반하는 것이다.

북한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물밑으로 금강산관광 재개와 대북 5.24조치의 해제를 위한 대화를 요구해왔다. 박 대통령은 북측에 말보다 행동을 통한 신뢰 회복을 강조해왔다. 아베 총리 또한 과거사 부정과 역사 왜곡을 일삼으면서도 한국측에는 '정상이 만나서 대화로 풀자'는 신호를 보내왔다.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서도 말보다 행동을 강조해왔다.

헤이그 한미일 정상회담은 때와 장소, 모두 부적합

위 왼쪽은 만국평화회의보(1907년 7월 5일자) 1면에 실린 헤이그 특사들(왼쪽부터 이준, 이상설, 이위종 선생. 출처 위키피디어). 위 오른쪽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후 여순감옥 수감중에 면회하는 모습.
 위 왼쪽은 만국평화회의보(1907년 7월 5일자) 1면에 실린 헤이그 특사들(왼쪽부터 이준, 이상설, 이위종 선생. 출처 위키피디어). 위 오른쪽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후 여순감옥 수감중에 면회하는 모습.
ⓒ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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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을 사실상 아베의 과거사 인식에 대한 태도 변화를 압박하는 '지렛대'로 삼아왔다. 청와대는 17일 대변인 브리핑에서도 한미일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생산적인 대화가 가능하기 위한 여건이 조성되기 위해서는 일본측이 역사인식 문제와 과거사 현안 등에 대해서 진정성 있는 조치를 조속히 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정성 있는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의 한미일 정상회담은 '지렛대'를 상실하고 아베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헤이그 한미일 정상회담은 때와 장소가 모두 부적합하다. 헤이그가 어떤 곳인가. 1907년 6월 개최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일제의 강압에 의해 체결된 을사조약의 무효를 알리고 한국 독립에 대한 열국의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고종의 밀사로 파견된 이준 열사가 순국한 곳이다.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처형된 날이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당시 러시아 관할이던 하얼빈에서 한국 독립과 동양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안 의사는 당시 "나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국권 회복을 위한 전쟁 중에 적장을 살해한 것이니 국제법에 따라 나를 포로로 대우하라. 그런데 왜 일본법으로 처리하는 건가?"라고 항의했지만, 관할권이 없는 일본 법정에 넘겨져 이듬해 부당하게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되었다.

지난 2월 하얼빈 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설치되자, 일본 정부 대변인격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안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했다. 이에 지난 2월 중의원에서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는 표현이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인지를 묻자, 아베 총리는 '안중근은 사형수'라고 답했다.

아베는 일본에서 극우보수의 아이콘이다. 과거사 부정과 역사 왜곡에 관한 한 아베는 '확신범'이다. 아베의 그릇된 역사관의 뿌리는 '새역모'를 지원해온 '역사교육 의원모임'(歷史敎育 議聯)이다. 그 토양은 1990년부터 시작된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와 함께 진행된 일본 사회의 보수화다. (관련기사: 아베의 역사 왜곡 뿌리는 '역사교육 의원모임')

'사면초가' 아베에게 활로 열어주는 한미일 정상회담

아베는 지금 '사면초가'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아베의 지지율이 처음으로 50% 이하로 떨어졌다. 17일 성인 21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일본 NNN 방송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베 내각을 '지지한다'고 답한 사람은 전월 대비 2.8%p 감소한 49.0%였다. 아베의 지지율이 50%를 밑돈 것은 2012년 12월 2차 아베 내각 출범 이후 처음이다. 아베의 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반핵 여론이 거센 탓이다.

한중일 새정부는 비슷한 시기에 출범했다. 2차 아베 내각은 2012년 12월, 박근혜 정부는 2013년 2월, 시진핑 정부는 2013년 3월에 공식 출범했다. 아베는 중국과도 정상회담을 한 차례도 못했다. 중일 정상은 지난해 9월 G20 정상회의에서 처음 만났으나, 아베는 "일본은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토대로 미래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는 시 주석의 일침을 들었을 뿐이다. 아베는 거듭 정상회담을 요구하고 있으나 중국은 "중국 인민은 아베 총리를 환영하지 않는다"며 거부해왔다.

아베는 집권 초기에만 해도 일본 사회의 보수화로 장기집권을 예측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1차 아베 내각도 1년 단임으로 끝났다. 중국의 국가주석은 임기가 5년이지만, 통상적으로 한 차례 연임해왔다. 아베는 짧고, 시진핑은 길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헤이그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갖기로 한 것은 잘한 것이다.

반면에 한미일 정상회담은 국제정치에서 고립된 아베에게 활로를 열어주는 것이다. 일본 국내정치에서는 반핵 여론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토는 우리 민족의 '원수'이자 동양평화의 '암 덩어리' 같은 존재다. 핵안보정상회의 기간에 한미일 정상회담으로 아베의 활로를 열어주는 것은 '동양평화' 정신을 거스르는 것이다.



태그:#박근혜, #아베 신조, #한미일 정상회담, #시진핑,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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