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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복구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단청 박락 현상이 발견된 이래 일본산 안료 논란, 목재 갈라짐 논란, 기와 변색 논란, 러시아산 소나무 논란이 불거졌다.

여론이 들끓는 와중에 숭례문 복구 일지를 표방한 책이 출판됐다. <숭례문 세우기-숭례문복구단장 5년의 현장 기록(아래 숭례문 세우기)>이라는 이름을 달고서. 2월에 출판된 이 책은 숭례문 복구의 책임자였던 최종덕 전 복구단장이 집필했다.

언론은 최종덕 전 숭례문 복구단 부단장의 저서 <숭례문 세우기> 내용 중 일부에 대해 도보하며 '폭로', '고발' 등의 표현을 썼다.
▲ <숭례문 세우기> 관련 MBC 보도 언론은 최종덕 전 숭례문 복구단 부단장의 저서 <숭례문 세우기> 내용 중 일부에 대해 도보하며 '폭로', '고발' 등의 표현을 썼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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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한 시기였다. 숭례문 복구단장이 숭례문 복구과정을 소재로 쓴 책이 출판된다는 소식은 그 자체로 논란을 야기하기 충분했다. 오얏나무 아래서 갓 고쳐 쓴 격이었다.

내용과 무관하게 여론의 의심부터 샀다. 집필의도가 부실복구의 문제점을 감추고 숭례문 복구를 미화하려는 시도로 읽힌 이유에서다. 출판 이후에는 또 다른 논란이 벌어졌다. 저자가 책에서 복구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상세하게 기술했는데, 이 점이 언론에 보도되면서다.

많은 언론이 이 책의 일부 내용만을 강조하며 저자가 내부비리를 폭로한 양 묘사했다. 논란이 일자 문화재청은 최종덕 문화재청 문화재청책국장을 직위해제하기에 이른다.

낙인에 가려진 <숭례문 세우기>의 가치

출판사 <돌베개>가 지난 2월 3일 출판한 <숭례문 세우기>는 '부실복구 미화', '폭로서적' 등의 낙인이 찍혔다. 그러나 우리 문화재 복구과정을 공개한 첫 기록물이라는 의의가 있는 책이다.
▲ <숭례문 세우기> 표지 출판사 <돌베개>가 지난 2월 3일 출판한 <숭례문 세우기>는 '부실복구 미화', '폭로서적' 등의 낙인이 찍혔다. 그러나 우리 문화재 복구과정을 공개한 첫 기록물이라는 의의가 있는 책이다.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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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세우기>는 대중에게 널리 읽히기 전에 두 번의 낙인이 찍힌 셈이다.

그러나 이 책은 숭례문 부실복구를 옹호하려는 의도로 쓰이지 않았다. 오로지 내부고발을 목적으로 쓰이지도 않았다. 낙인이 덮어 버린 본질은 '5년의 현장기록'이라는 책의 부제가 잘 나타낸다.

<숭례문 세우기>는 숭례문 복구 과정을 상세히 기술하고 이를 공개한 기록물이다. 책은 숭례문 복구단이 꾸려지는 과정부터 복구원칙 수립, 각 분야(목재, 석재, 기와, 안료 등) 장인선정과정, 그리고 분야별 복구과정과 시행착오에 대해 상세히 다뤘다.

문화재 복원의 전 과정에 관한 기록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이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숭례문을 비롯한 문화재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우리의 것이다. 복원 및 보존은 국민의 혈세를 통해 이뤄진다. 그러나 문화재 공사는 언제나 비공개 사안이었다. 복원현장에는 높은 가림막으로 국민의 접근을 차단하기 일쑤다.

국민은 문화재 관광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고증에 맞게 복원되는 것인지, 장인은 어떤 과정에서 선정된 것인지, 목재와 석재는 어떤 것을 썼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저자인 최종덕 전 복구단장은 숭례문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공개했다. 숭례문을 중심으로 문화재 전반의 논의를 담았다. 내용은 비전문가들이 알기 쉽게 풀어 썼고 각 단계별, 각 분야별로 체계적으로 썼다. <숭례문 세우기>는 건조한 기록물에만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문화재와 관련한 꼭 필요한, 그러나 지금까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의제를 국민들에게 제시한다.

대표적인 것이 '원형복원'의 딜레마다. 흔히 우리는 문화재가 훼손되면 원형복원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기 쉽다. 그러나 저자는 원형복원의 개념적 문제를 언급한다. "원형이 무엇인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간단히 정의되기 어려운 개념"이라는 것이다. "역사는 시간적으로 정지된 정적인 한 시점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진화하고 발전하는 동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숭례문은 태조 때, 조선 후기, 일제시대, 6·25전쟁 이후의 모습이 각기 다르다. 이 모두 '원형'이 될 수 있기에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복원할지는 선택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문화재 보존 공론장의 필요성

하버마스는 공론장 개념을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참여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장'으로 정의했다. 그간 우리 문화재가 복원되고 보전되는 과정에서 공론장이 없었다. 소수만이 정보를 독점했고, 권한을 지녔다. 밀실행정이 투명할리는 만무하다.

저자는 극소수에 의해 문화재 복원 및 관리가 이뤄져 온 현실을 지적한다. "문화재청에 근무하는 직원들조차 이 일(문화재 복원)을 담당해본 사람들 외에는 잘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숭례문 복원 및 문화재 전반의 복원 절차를 알게끔 해주는 책을 썼다. '원형복원의 문제', '전통기법과 방식의 문제' 등의 당면과제의 논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이를 문화재 공론장이라 이름짓는 것이 과장일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문화재 공론장의 '맹아'로서 기능하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책 속에는 비판을 살 만한 내용도 분명 있다. 저자는 숭례문 복구공사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시행착오가 있었으나 큰 틀에서는 전통방식의 복원이 옳았다는 논리다. 이는 대중의 인식과는 거리가 있다.

또, 책에 언급된 숭례문 복구 과정의 문제언급은 자충수가 됐다. G20 행사를 위한 날림 가림막 설치, 정부의 공사기한 압박, 전통철 제작 실패 등이 <숭례문 세우기> 을 통해 처음 밝혀지며 '폭로서적'으로 인식된 것이다.

논란거리는 책의 내용 중 일부다. 그것만으로 책 전체를 규정짓는 일은 위험하다. 우리 문화재 복원과 관련한 첫 기록물이자 공론의 첫 발을 떼는 책이다. 문화재가 훼손되고 부실복구되는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책이 시사하는 바를 기억해야 한다.  이제 부분이 아닌 전체를, 손가락이 아닌 달을 볼 때다.


숭례문 세우기 - 숭례문 복구단장 5년의 현장 기록

최종덕 지음, 돌베개(2014)


태그:#숭례문, #최종덕, #문화재청, #숭례문 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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