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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게이트 표지 책 블루게이트의 표지다.
▲ 블루게이트 표지 책 블루게이트의 표지다.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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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구에 고인 바닷물은 부패하지 않는다. 소금이 있기 때문이다. 바닷물 속 소금의 함량은 2.8%에 불과하지만 97.2%의 부패를 막는 큰 역할을 한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고인 물처럼 부패하기 쉽다. 다행인 것은 우리사회에도 소금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덕에 삼성일가의 비자금 비리가 세상에 알려졌다. 권은희 전 수사과장이 있었기에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 때 윗선의 개입 또한 밝혀질 수 있었다. 이들 내부고발자는 극소수지만 권력의 횡포를 고발하며 사회의 부패에 제동을 걸었다.

책 <블루게이트>는 한 내부고발자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 그는 2012년 3월,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청와대 등 윗선이 개입됐음을 폭로했다. 민간인 불법 사찰과 증거인멸에 박영준 전 차관과 이영호 전 청와대 비서관 등 윗선이 개입됐다는 것이다. 이는 검찰의 기존 수사결과를 뒤집을 뿐 아니라 이명박 정권의 존립마저 흔들 수 있는 내용이었다.

'평범한 사람' 장진수의 고백

<블루게이트>는 장진수 전 주무관이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은폐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공직윤리지원관실 발령부터 증거인멸 지시 하달, 검찰수사, 1심과 2심 재판, 이후 진실폭로 등 시간 순으로 서술됐다. 특이한 점은 정작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에 대한 설명이 적다는 사실이다. 폭로 이후의 상황 또한 구체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대신 장진수 전 주무관이 폭로를 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으며, 어떤 갈등을 했는지 그 과정에 집중한다.

책에 등장하는 장진수 전 주무관은 여느 내부고발자와 다르다.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사명감에 불타거나 부조리에 맞서는 모습은 찾기 힘들다. 대신 '영혼 없는' 공무원의 전형적인 모습이 등장한다. 눈앞에서 정체불명의 거액이 오가고 상사가 비상식적인 명령을 내려도 별 말 없이 따른다. 시킨 일만 탈 없이 처리하면 된다는 식이다. 급작스럽게 사무실 하드디스크 전체를 폐기하라는 상관의 지시 역시 의심을 갖지 않는다. 그것이 민간인 사찰 문건의 증거인멸이라 몰랐다 할지라도 말이다. 검찰 수사 때는 민간인 사찰의 피해자인 김종익을 음해하는 거짓 문건이 만들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눈 감는다.

"옳고 그름을 외면한 채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비겁하고 소극적인 태도. 정말 부끄럽게도 (나는) '영혼 없는 공무원' 그 자체였다"(118p)

진실을 밝히고자 결심한 후에도 장진수 전 주무관은 흔들린다.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공무원으로서의 양심과 밥벌이를 걱정하는 가장 사이의 역할 갈등이다. 그 결과 부정한 돈을 증거물로 남겨두겠다고 마음 먹지만 이내 써버리기도 한다.

"스테이플러로 봉해진 쇼핑백을 열어보니 압착 비닐로 포장된 5만원 짜리 신권 다발이 들어 있었다. 한마디로 5000만원 짜리 벽돌 한 장이었다. (중략) 그 돈을 다시 돌려주지는 못했다. 한 달 후 전세금 대출을 상환할 때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우 부끄럽지만 그러고 말았다"(246p)

이처럼 장진수 전 주무관은 부패에 맞선 비범한 영웅이 아닌 평범한 공무원이다. 이러한 면모는 <블루게이트>가 폭로를 하게 되기까지에 과정에 집중하는 까닭에 더욱 부각된다. 민간인 사찰의 문제점에 집중하거나 장진수 전 주무관이 폭로 후 처한 상황을 중점적으로 묘사했다면 어땠을까. 비범하고 용기 있는 내부고발자의 모습이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저자인 장진수 전 주무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의 민낯을 솔직히 드러냈다.

장진수는 바로 '우리'다

장진수 전 주무관이 진실을 알리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거액을 건네주고 새 직장을 알선해주겠다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친 채 위험한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책은 팟캐스트 <이슈 털어주는남자> 제작진과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그 이유를 밝힌다.

"제게 두 딸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들에게 아빠로서 이런 모습을 남겨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아이들이 나중에 본다면 어떻겠습니까?"(267p)

<블루게이트>가 궁극적으로 다루고자 한 것은 민간인 사찰 문제의 심각성 폭로가 아니다. 평범한 공무원이 목격하게 된 부정과 이로 인해 갈등하고 고뇌하는 모습이 핵심이다. 장진수 전 주무관의 삶을 통해 독자들이 내부고발 문제를 그저 남의 일로 여기지 않게 한다. 비슷한 일이 언제든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내부고발자라는 사람이 그저 우리와 동떨어진 비범한 이들이 아니라는 것 역시 보여준다.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 헌신하는 비범한 인물 대신 두 딸의 아버지로 떳떳하길 바라는 평범한 아버지가 있을 뿐이다.

"평범했던 한 공무원이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일을 겪으며 세상을 보는 시선이 바뀌었고 조금씩 더 강해졌다. 영혼 없던 공무원이 뒤늦게나마 용기를 낸 고백으로 진실을 밝혀 당당한 아빠와 남편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제 우리 사회의 떳떳한 일원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수 많은 사람의 편에서 작은 노력을 계속 보태려 한다."(281p)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갖은 부정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이에 가담한 사람들은 장진수가 그랬던 것처럼 그저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 합리화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들에게, 그리고 잠재적 장진수인 우리 모두에게 <블루게이트>는 필독서다. 고민 끝에 소금이 되기를 택한 장진수 전 주무관의 고뇌를 기억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블루게이트> (장진수 씀 | 오마이북 | 2014.6. | 1만5000원)



블루게이트 - 불법 사찰 증거인멸에 휘말린 장진수의 최후 고백

장진수 지음, 오마이북(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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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준경입니다. 현재 <미디어오늘>에서 일 합니다. 제보는 teenkjk@mediatoday.co.kr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