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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논골담길 벽화. 바람이 심하게 부는 바닷가 산동네 마을. 바람에 날아가는 빨래들.
 동해 논골담길 벽화. 바람이 심하게 부는 바닷가 산동네 마을. 바람에 날아가는 빨래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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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길목으로 들어선다는 입춘도 지나고, 겨우내 잠들었던 개구리들이 기지개를 펴고 깨어난다는 경칩도 지났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 꽃샘추위도 사실 한겨울 찬바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바야흐로 따뜻한 봄, 봄이 다가온 것이다.

한낮에 햇살이 강할 땐, 노곤한 기운이 온몸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졸음이 한없이 밀려오는 걸 막을 수 없다. 이때쯤 되면, 지난겨울 내 머릿속을 맑게 해주던 차고 날카로운 공기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눈으로 덮인 무릉반석 위에서 바라다 본 풍경.
 눈으로 덮인 무릉반석 위에서 바라다 본 풍경.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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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엔 거의 의식하지 못했는데, 이제 그 추운 겨울이 곧바로 사라지고 말 거라고 생각하니 그저 아쉬울 뿐이다. 아쉬운 마음은 곧 그리운 마음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그런 마음이 가슴 속을 가득 채울 때, 그때가 바로 마지막 겨울여행을 떠나야 할 때다.

가는 겨울을 배웅하기에 딱 좋은 곳이 있다. 지난 2월 말 강원도 동해안에는 적설량이 지역에 따라 적게는 150cm에서 많게는 190cm나 되는 눈이 내렸다.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기상 관측 이래 최대의 눈이 내린 탓에, 동해안이 온통 하얀 눈 밑에 잠기고 말았다.

눈 길을 겪는 등산객들.
 눈 길을 겪는 등산객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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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었다

어찌나 많은 눈이 내렸던지, 도로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던 길마저 사라져, 눈 위에 새로 길을 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람들마다 삽과 넉가래를 들고 나와 길 위에 다시 길을 내느라 하루 종일 눈을 퍼내야 하는 일상이 열흘이 넘게 지속됐다.

눈은 아무리 퍼내도 끝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겨울'도 끝없이 계속 될 것만 같았다. 동해안 전체가 눈 속에 갇힌 채 영원히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상황이 지속됐다. 하지만 계절은 결코 '시간'을 거스르지 않는 법.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었다.

동해 무릉계곡.
 동해 무릉계곡.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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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깊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동해안에도 봄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열흘이 넘도록 2m 가까운 눈이 내린 탓에, 산 속 계곡 같이 인적이 드물고 외진 곳은 여전히 깊은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곳에도 봄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동해안에 눈이 그치고 나서, 일주일 후인 지난 2월 27일 두타산에 올랐다. 두타산은 여전히 두터운 눈에 덮여 있었다.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계곡을 끼고 여전히 수십cm 미터 두께로 덮여 있는 눈길을 걸어야 했다. 길은 그 폭이 한 사람이 겨울 지나갈 수 있을 정도에 불과했다.

그 길에서 한 발만 잘못 디뎌도 발이 곧바로 눈 속에 깊이 빠지고 말았다. 앞에서 누군가 마주 오기라도 하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눈에 빠지는 걸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길도 정상까지 다 잇지 못해,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용추폭포'까지만 다가갈 수 있었다.

무릉계곡 용추폭포.
 무릉계곡 용추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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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더 높이 올라간 산 속은 여전히 눈 속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두타산에서도 어디에서인가 끊임없이 봄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봄기운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산 속 깊은 계곡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매우 요란했다.

그 물은 한겨울에 얼음장 밑으로 소리 없이 흐르던 물이 아니었다. 두타산의 눈은 그때 폭포수가 되고 계곡물이 되어서, 눈 속에 잠든 산을 깨우고 있는 중이었다. 동해안의 마지막 겨울여행으로 두타산 속, 눈에 덮인 등산로를 걷는 것처럼 잘 어울리는 여행도 없다.

동해 논골담길 벽화. 붉은 대야에 담긴 생선들.
 동해 논골담길 벽화. 붉은 대야에 담긴 생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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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랫줄에 함께 걸린 오징어.
 빨랫줄에 함께 걸린 오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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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산을 내려온 뒤에는 묵호항이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산동네 마을, '논골담길'을 걸었다. 논골담길은 바닷가 벼랑 위에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사이로 나 있는 좁은 비탈길을 말한다. 그 길이 마치 미로를 연상시킬 정도로 복잡하다.

최근 이 길을 찾는 여행객들이 부쩍 늘고 있다. 사람들이 이 길을 찾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바닷가 산동네에서 내려다는 바다가 독특한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논골담길에서 보는 벽화들이 애틋한 감성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부둣가에 앉아 낚시를 하는 풍경.
 부둣가에 앉아 낚시를 하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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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골담길 벽화, 밤 풍경.
 논골담길 벽화, 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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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골담길을 따라서, 지붕 낮은 집들의 옹색한 담장에 정감이 넘치는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사람들은 이 벽화에 바닷가 사람들의 신산한 삶을 기록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단지 그 '기록'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곳의 벽화는 바닷가 사람들의 살아온 삶을 그려 보인 뒤, 거기에는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까지를 곁들여 이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겨울을 떠나보내고 봄을 맞이하는 여행에, 동해의 논골담길 여행을 빼놓을 수 없다.

벽에 그리고 쓴 시서화. '논골 담화'.
 벽에 그리고 쓴 시서화. '논골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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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골담길 위에서 내려다 본 마을과 바다.
 논골담길 위에서 내려다 본 마을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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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에서 눈 덮인 등산로를 걷는데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아이젠과 스패츠를 갖추는 건 기본이다. 설사 아이젠을 갖췄다 해도, 봄철 해빙기에 눈이 녹기 시작하는 길에서는 언제든 눈에 미끄러지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동해 묵호항 어판장. 눈이 그친 뒤 횟감을 사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동해 묵호항 어판장. 눈이 그친 뒤 횟감을 사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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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두타산, #논골담길, #동해, #겨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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