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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0년 2월에 그녀를 처음 보았다.

4월 어느 날 똑똑하고 귀엽게 보이는 그녀에게 용기내어 "혹시 나랑 사귀지 않을래요"라고 물었다. 놀라 눈이 둥그레진 그녀는 "지금은 대답하기 곤란하고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라고 하였다.

거절의 뜻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한 번 더 용기내어 "충분히 생각을 해봤어요?"라고 물었고 아가씨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기다렸다. 아가씨는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자취방에서 나와 근처 도로가를 걷고 있었다. 어디선가 차가 내 앞에 서더니 타라고 했다. 그 아가씨였다.

"생각해봤는데, 결혼하는 게 어때요?"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다. 단 둘이 탄 자동차는 아무말 없이 계속 달렸다. 더 이상은 갈 수 없는 곳까지! 바다로 차를 몰고 갈 수는 없지 않는가? 그곳은 부산의 송정해수욕장이었다. 차에서 내려 나란히 바다를 보고 앉았다. 그녀의 대답이 드디어 나왔다.

"생각해봤는데 결혼하는 게 어때요?"

당황한 나는 "지금은 대답하기 곤란하고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라고 말하고 생각했다.

'모아둔 돈도 없고 직업은 시한부(기간제)교사고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내가 결혼을 하냐.'

몇 분이 지나고 말했다.

"충분히 생각했어요. 결혼하겠어요."

그 날, 밤 늦도록 함께 있으며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은 다 나지 않지만 몇 가지는 항상 간직하고 있다. 그녀는 말했다.

"난 꿈이 많아요. 예쁜집을 갖고 싶고 애기는 4명정도 가지고 싶고,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고, 직장에서는…."

하여튼 많았다. 난 별다른 꿈이 없이 지금 하고 싶은 걸 먼저하며 살아가고 있던터라 "그 많은 꿈을 나에게 나누어 달라"고 했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살아가겠다"고 하였다.

그 후 2001년 1월 14일. 부산에는 흔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내가 아내와 결혼한 날, 폭설이 내려 신혼여행이 항공기 결항으로 취소됐다.

일단 아내의 꿈의 리스트중 하나가 너무 쉽게 이루어졌다. 눈이 자주 오지 않는 부산에서 눈덮인 세상을 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손쉽게 이루어진 것이다.

눈덮인 세상을 보기 위해 고등학교 친구가 강원도로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신혼여행은 시작되었다. 부산에만 적응된 차는 다음날 시동이 정말 어렵게 걸렸고 이 난관을 타계하기 위해 운전병 출신인 내 동생을 불렀다. 그래서 아내와 나, 동생, 그리고 친구 4명의 신혼여행은 계속되었다. 매일 밤 계획을 세우며 전국일주를 하였다.

안 이루어진 게 더 많지만 아내의 꿈들은 하나하나 이루어졌다. 아이는 3명이 되었고 예쁜 주택은 아니지만 아파트를 가지게 되었고(물론 은행의 돈이 상당부분 차지하지만) 자전거 타기도 성공했다.

"나머지 꿈도 죽을 때까지 하나하나 함께 만들어가자"

아내가 사람하는 사람들, 나는 아이들 반만큼만 사랑한다고 함.
 아내가 사람하는 사람들, 나는 아이들 반만큼만 사랑한다고 함.
ⓒ 송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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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내는 항상 계약직으로만 일을 했던 남편 때문에 힘들어 했고 점점 나를 멀리하게 되었다. 2013년 5월 15일. 10여 년 전 나에게 청혼을 해주고 꿈을 나누어주었던 그녀에게 "오늘부터 우리 사귀자"고 다시 용기내어 말했다. 아내는 예전처럼 '생각할 시간을 줘'라고 했고 잠시 후 말했다.

"사귀면 내한테 잘해야 한다. 내 말 잘 들어야 한다. 하고 싶은 일 먼저 하지 말고 해야될 일 먼저 해야한다."

아내와 사귄 지 1년 8개월. 꽃다발 선물도 하고, 귀걸이도 선물하고, 아내를 위한 시도 쓰고, 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퇴근시간에 맞추어 드라이브도 하고 한 번씩 문자도 하고….

역시 여자와 사귀는 것은 에너지 소모가 많았다. 하지만 아내와 사귀기로 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게 꿈을 나누어 주고 나를 세 아이의 아빠가 되게 해준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내와 사귀지 못했다면 실직한 상태인 나와 사는 아내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아내, 나, 첫째 딸, 둘째 딸, 그리고 막내 아들은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고 있다.

"나머지 남은 꿈도 내가 죽을 때까지 하나하나 함께 만들어 가자! 사랑해 민."

다음은 내가 아내에게 적어준 글.

어린 왕자

난 어린왕자를 만난 적도 없습니다.
물론 이야기 해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어린왕자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맑고 순수하고 깨끗한 이름.
그 이름을 가지게 된 대가로

눈물의 짐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기쁨의 미소도 얻게 되었고

슬픔의 웅덩이를
사랑으로 채우기도 했습니다.
미소를 지울 용기도 키우고 있습니다.

아내의 미소

지치고 갑자기 무거워진 발걸음
현관을 들어선다.
늦어버린 퇴근길
몹시도 분주한 하루였나?

가득한 설거지
빼곡히 널려있는 빨래들
오늘도 고맙게도
내 몫의 집안일이 남겨져 있다.

청소기를 돌리고 간만에 걸레질도 한다.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걷고
남은 음식물도 처리하고
달그락 달그닥 윙윙 첨벙첨벙
쓰싹쓰싹
애들 연필도 깍는다.
막내는 현관의 신발를 정리한다.
각자의 책상도 정리한다.

커튼너머 도시의 불빛이 흩어져 버리고
형광등 불빛아래 거실에선
세 아이도 무척이나 바쁘다.

어느새 기다리던 아내가 온다.
정돈된 집안에
아내의 환한 미소가 들어온다.

아하......
아내의 미소에는 공짜는 없다.
사랑하는 아내로부터 잠시의 자유를
선물받았다.

덧붙이는 글 | 사랑이 뭐길래 공모입니다.



태그:#사랑,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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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폐지, 헌옷, 고물 수거 중 하루하루 살아남기. 콜포비아(전화공포증)이 있음. 자비로 2018년 9월「시(詩)가 있는 교실 시(時)가 없는 학교」 출간했음, 2018년 1학기동안 물리기간제교사와 학생들의 소소한 이야기임, 책은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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