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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우돈(玉陵, たまうどぅん)은 일본 오키나와 나하(那覇)시에 있는 옛 류큐왕국(琉球王國)의 왕릉이다. 옛 류큐 왕국의 왕성인 슈리성(首里城) 바로 아래에 있는 타마우돈이지만 찾는 여행자들은 많지 않다. 모두들 왕들이 살아서 생활하던 정궁인 슈리성 만을 급하게 둘러보고 다른 여행지로 떠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재로 만들어진 타마우돈은 슈리성에 비해 전쟁의 피해 속에서도 원형을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다. 그리고 타마우돈은 류큐인들을 선조로 하는 오키나와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세계문화유산임을 자랑스럽게 알리고 있다.
▲ 타마우돈 입구 세계문화유산임을 자랑스럽게 알리고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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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는 슈리성 입구를 조금 못 미친 곳에서 하차했다. 낮은 언덕길을 조금 오르자 타마우돈 입구가 보인다. 입구 앞에는 이곳이 세계문화유산임을 자랑스럽게 알리는 대리석 석판이 반짝거리고 있다. 입구 매표소에 들어서는데 직원 아주머니가 입장권과 함께 조그마한 타마우돈 팸플릿을 준다. 이곳에 근무하는 아주머니들은 무슨 질문에라도 대답해주겠으니 궁금한 것 있으면 물어보라는 듯한 친절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지하의 타마우돈 박물관을 먼저 둘러보라고 이야기해준다.

지하의 조그마한 박물관에는 타마우돈에서 나온 유물과 석실 안의 사진을 전시해놨다. 타마우돈의 역사를 설명하는 곳이다. 타마우돈의 석실 내부는 대중에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이 박물관의 석실 모형을 둘러보는 것도 타마우돈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된다.

박물관 입구에서부터 눈길을 확 잡아끄는 유물이 있다. 아내는 무언가를 담은 것으로 보이는 장독만한 항아리를 보면서, 이게 무슨 용도로 쓰였는지 궁금해졌다.

"이 항아리는 무슨 항아리지? 무덤 부장품인가? 뭔가 의미가 있는 항아리인 것 같은데. 무덤석실에서 나왔으니 시신을 담았을 것 같은데, 크기가 너무 작네."

그래서 나와 아내는 '어려서 죽은 아이들의 시신을 넣어두던 항아리가 아닐까'라고 생각해봤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전시된 도기 항아리 크기가 모두 작다는 점이었다.

항아리야, 넌 정체가 뭐니?

왕과 왕족의 시신 뼈를 씻어 담는 항아리이다.
▲ 장골기 왕과 왕족의 시신 뼈를 씻어 담는 항아리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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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타마우돈 박물관의 설명문은 대부분 일본어로 돼 있어서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한자를 읽으며 설명문의 뜻을 대충 읽었다. 아! 이 도기 그릇은 바로 시신의 유골들을 씻어서 담는 항아리인 장골기(藏骨器)였다. 이 항아리는 왕의 시신의 뼈를 보관하던 항아리였던 것이다. 이 장골기들 중 상당수는 도굴꾼에게 도난당하고 태평양 전쟁 중의 폭격으로 소실되기도 했지만, 타마우돈 내에 잘 보관됐던 일부 장골기들은 일부가 살아남아 그 생명을 이 박물관 안에서 유지하고 있었다.

살아있을 당시의 왕의 모습이 모두 다르듯 장골기의 외관도 왕마다 모두 다르다. 박물관 입구에 있는 장골기들은 타마우돈 초기의 장골기들인데 투박한 도기에 모양도 수수하다. 푸른색의 코발트 염료가 칠해진 장골기는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것이다. 언뜻 화려해 보이기도 하지만 신성해야 할 왕릉에서 너무 튀는 색상인 듯하다. 이 푸른 장골기는 타마우돈 초기 장골기에서 느껴지는 역사적 무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화려함이 지나쳐서 오히려 왕릉의 경건함을 떨어뜨리고 있다.

오키나와는 '세골(洗骨)'이라는 장례법으로 유명하다. 이는 시신을 한 장소에 보관해 살 부분이 썩어 없어지면 뼈를 씻어 뼈항아리에 보관하는 장례법이다. 이 풍습은 특이하게도 태평양을 둘러싼 바닷가 지역에 넓게 퍼진 풍습으로 우리나라 전남의 영암 등지에서도 발견된다. 전남 지방에 동남아 등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장례 관습이 전래된 것이다.

타마우돈 박물관 안에는 세골과 장골기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유물 설명이 아주 쉬운 대화식으로 풀어져서 어린 학생들이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다. 타마우돈 석실의 가운데 방에 왕과 왕비의 시신을 모셔뒀다가 뼈만 남으면 씻어서 뼈항아리에 담아 옆방으로 옮긴다고 한다. 오키나와의 타마우돈에 모셔진 왕과 왕족의 시신들도 이러한 세골 과정을 거쳐서 뼈 항아리에 담긴 것이다. 이 과정은 만화로 설명돼 있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오키나와에 남아있는 고려의 흔적

류큐 왕국의 왕릉에도 고려의 흔적이 남아 있다.
▲ 고려계 기와 류큐 왕국의 왕릉에도 고려의 흔적이 남아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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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기와 조각을 모아 전시 중인 유리 전시관 안에 한국에서 온 우리의 시선을 잡아당기는 기와 조각이 있다. '고려계 기와'가 바로 그것! 이 기와는 박물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키와가 아니라 길다란 모양의 암키와이다. 사다리꼴 모양의 암키와에는 물고기 뼈대 모양의 무늬가 함께 새겨져 있다. 슈리성과 타마우돈에서 발견된 대형 기와에는 '계유년고려장인와장조(癸酉年高麗匠人瓦匠造)'라는 글씨가 명확하게 새겨져 있는데, 이 명문은 바로 이 기와를 '계유년에 고려의 기와장인이 만들었다'는 뜻이다.

옛 류큐 왕국 왕릉의 건물에 쓰였던 기와, 이를 만든 사람이 스스로를 고려 장인이라고 떳떳이 밝혀놨다. 이는 당시 류큐왕국에서 고려 장인의 지위가 상당히 높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깨어진 채 전시 중인 이 기와 한 장을 만든 이는 '원나라에 항거하던 삼별초를 따라온 고려인'이라는 설이 있다. 이처럼 고려인의 오키나와 진출은 무수한 상상력을 낳게 한다.

멸망한 왕조의 쓸쓸함이 흑백사진에 배어나온다.
▲ 묘실 내부 멸망한 왕조의 쓸쓸함이 흑백사진에 배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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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 왕족의 슬픈 역사는 1901년과 1920년, 류큐 왕족 마지막 장례식의 어두운 흑백사진으로 남아 있다. 묘실 내부에 장골기가 가득한 흑백사진을 보니 마치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 으스스한 느낌까지 든다. 음영 짙은 흑백사진은 과거의 역사를 회상하는 데 제격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나는 약간 음습한 느낌이 드는 지하의 타마우돈 박물관에서 밝은 세상으로 나왔다. 타마우돈 묘실로 가는 길 양 옆으로는 타마우돈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거대한 반얀트리(Banyan Tree) 나무가 머리 위에서 울창함을 자랑하고 있다.

반얀트리 나무의 거미줄 같은 줄기가 땅위로 흘러내리며 뒤엉켜 있고, 탐욕스러워 보이는 나무 뿌리들이 땅위에 이리저리 얽혀있다. 오키나와가 아열대 지방에 있음을 알려주는 듯한 울창한 나무들은 왕들의 무덤 앞에서 그로테스크(grotesque)한 느낌을 연출하고 있다.

'벌금을 내야 한다'는 말보다 친근한 안내문

아열대의 반얀트리 나무들이 울창하다.
▲ 타마우돈 묘실 가는 길 아열대의 반얀트리 나무들이 울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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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우돈의 역사만큼이나 울창한 아열대 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우리는 역사의 길을 걸었다. 그 느낌의 한 편에는 나무 밖 세상에는 왠지 신비로운 세상이 나타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와 아내는 하얀 산호조각이 깔린 바닥을 걸으며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며 타마우돈 묘실을 보호하고 있는 두터운 석벽과 함께 붉은빛 기와건물이 나타났다.

왕릉을 지키는 관리들이 머물던 우반쥬(御番所, うばんじゅ) 안내문이 있다. 이 안내문에는 나중에 오는 참배객을 위해 참배에 사용한 향과 제사 음식은 모두 가져가라고 돼 있다. 여기에는 오키나와인들의 토속신항이 담겨 있다. 이곳을 오키나와인들의 성소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묘실 앞에서 향을 피우면서 참배하는 모양이다. 타마우돈의 관리자들은 화재 등의 사고를 걱정하면서 제대로 된 참배객은 향을 피우며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신과 마음이 통할 것이라고 적어놨다. 벌금을 내야 한다는 등의 말보다는 '신과 마음이 통할 것'이라는 말에서 그들의 사려 깊음을 느낀다.

나는 고개를 돌려 거대한 석벽을 봤다. 지금 우리 앞에 보이는 석조건물 타마우돈은 3년간 보수공사를 거쳐 1974년에 복구됐다. 타마우돈의 모든 건축물들은 돌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곳곳에 거무튀튀한 석재들이 쌓여 있다. 왕릉 전체를 돌로 지은 양식이 지금까지 어느 여행지에서도 보지 못했을 만큼 독특하고 이국적이다. 나는 왕릉에 들어가기 위해 석재 사이에 만들어놓은 작은 문으로 들어갔다.

석벽으로 이어진 2개의 석문을 지나면 묘실이 나온다.
▲ 타마우돈 제2문 석벽으로 이어진 2개의 석문을 지나면 묘실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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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벽에는 오랜 이끼가 낀 석재 사이에 깔끔하고 하얀 석재들이 섞여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에 일부 파괴된 부분을 다시 복원했기 때문이다. 석재들은 반듯한 사각형 모양이 아니라 자연석 형태를 최대한 살리면서 여러 개의 석재가 서로 맞물려가며 쌓여 있다. 자연스러운 석재의 형태가 친근감을 더해준다. 석재끼리 서로 지탱하며 어느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있다. 회색빛 석벽의 그늘진 구석에는 푸른 이끼가 오랜 역사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돌로 이뤄진 석벽 구조물은 보면 볼수록 참 육중한 무게를 느끼게 한다.

가볼 수 없는 공간, 참 궁금하네

넓직한 가운데 마당이 두터운 석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 타마우돈 중정 넓직한 가운데 마당이 두터운 석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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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왕국의 묘지답게 타마우돈의 묘실은 제1문과 제2문을 거쳐야만 접근할 수 있다. 제1문을 지나면 넓은 중정(中庭)이 나오는데, 중정의 왼쪽에는 이 묘실에 매장돼야 할 왕족들이 적힌 비석이 있다. 비석의 비문은 초서(草書)로 적혀 있어서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흘려 쓴 초서를 비문에 정확히 새긴 석공의 실력과 노력이 보통이 아니었을 것 같다.

석문을 통해 들어간 타마우돈 안에는 하얀 중정을 바라보고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서 있는 석조건물, 묘실(墓室)이 있다. 류큐 왕국은 비록 작은 섬나라였지만, 왕릉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고 석재의 세밀함 또한 누추하지 않다. 슈리성의 모양을 본 따 지었다는 석조 묘실은 마치 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전체 구조는 기와 지붕을 이고 있는 당시 류큐 왕국의 궁전을 표현하고 있다.

묘실 입구의 석제 난간에는 동물과 꽃문양의 화려한 부조들이 입구를 장식하고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묘실 입구의 3개 문에는 검은색 철제 빗장이 단단하게 걸려 있다. 석조 묘실 내부는 관광객이 들어가 볼 수 없는 사자(死者)의 공간인 것이다. 묘실 입구의 문은 평소에는 열리지 않으나 류큐 왕조의 의례가 열리는 날에만 열린다고 한다.

정리하면, 타마우돈의 석실은 굳건히 닫아서 보존해야만 하는 죽음의 공간이다. 죽은 자의 공간 안에 들어가서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철제 빗장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들어가 볼 수 없는 묘실 내부가 천연 암벽을 도려내 만들었다고 하니 실제 모습이 더욱 궁금할 뿐이다.

모두 석재로 이루어진 묘실이 이국적이고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 묘실 모두 석재로 이루어진 묘실이 이국적이고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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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이어져 있는 왕의 무덤은 중실(中室), 동실(東室), 서실(西室) 3개의 묘실로 이루어져 있다. 3개의 묘실에 왕과 왕비, 선조, 왕실 가족이 각기 모셔져 있다. 하후묘(破風墓, はふうばか)라고 불리는 류큐왕국 왕들의 석실 합장묘와 장례풍습은 인근 국가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참으로 독특하다. 중실은 왕이 승하하면 장례 후 유해가 몇 년간 썩어서 뼈만 남게 될 때까지 풍화시키는 방이다. 즉 세골(洗骨) 전의 국왕과 왕비의 시신이 안치돼 있던 석실이다. 그 후 왕과 왕비의 뼈는 꺼낸 후 씻어서 묘실 왼쪽에 자리한 동실에 뒀다.

묘실 중정에서 봤을 때 묘실의 오른쪽에 자리한 방이 서실이다. 왕과 왕비를 제외한 왕족의 뼈는 서실에 옮겨 안치했는데, 묘실 앞 중정에 있는 비석에 기록돼 있는 한정된 왕족만이 이곳에 뼈를 남기고 있다. 오키나와의 장묘 관습과 마찬가지로 묘실의 입구에는 가장 최근에 죽은 사람의 뼈항아리가 놓였다.

동실, 중실, 서실의 묘실은 오키나와의 독특한 장례습관을 보여준다.
▲ 묘실 배치도 동실, 중실, 서실의 묘실은 오키나와의 독특한 장례습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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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묘실은 1501년에 류큐왕국을 통치했던 다이니쇼씨(第二尙氏)의 쇼신왕(尙眞王)이 아버지인 쇼엔왕(尙円王)의 유골을 남기기 위해 세워졌고, 그 이후 19세기까지 다이니쇼씨의 역대 국왕과 다이니쇼씨 왕족들의 유골만이 남겨졌다. 이 왕들의 이 묘실 형태는 워낙 세계적으로도 독특해서 2000년에는 류큐왕국의 구스쿠 및 관련유산군(琉球王国のグスク及び関連遺産群)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나는 석실 안으로 들어가 보는 상상을 해봤다. 석실 안에 들어서면 왕족들의 유골을 담아 놓은 뼈항아리가 정연하게 놓여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오랜 역사를 견뎌온 묘실의 어두운 석벽에는 음침하고 습한 기운이 퍼져 있을 것이다. 그 묘실은 류큐 왕조의 쓸쓸함을 한 귀퉁이에서 눈물로 봤을 것이다.

해태 같이 친근한 영물, '시사'

석벽 위에서 시사가 여행자들을 노려보고 있다.
▲ 타마우돈 시사 석벽 위에서 시사가 여행자들을 노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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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면서 묘실을 다시 돌아보니 돌산 같이 보이는 석벽의 가장 위에서 뭔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오키나와 어디에서도 출현하는 성스러운 영물, '시사'(シーサー)였다. 이 시사는 서실뿐만 아니라 동실의 가장 위에서도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시사는 손을 앞에 모으고 묘실 뒤 석벽 위에서 주변을 노려보는 듯 내려다보고 있다.

이 오키나와의 시사는 아무리 근엄한 표정을 지은다고 해도 무섭지 않을 것 같다. 배 앞에 새끼들을 안고 있는 듯한 모습이 해학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릅뜬 것 같이 묘사된 시사의 눈매는 무척 선하기만 하다. 마치 우리나라의 해태 같이 친근한 모습이다. 류큐 왕국 왕의 무덤을 지키는 이 시사는 전혀 위압적이지도 않고 그 작은 몸집이 쓸쓸해 보이기까지 한다.

시사는 왕국을 지킨다기보다 왕묘를 구경 온 여행자들을 물끄러미 구경하고 있는 듯했다. 마치 힘없이 망해간 한 왕조의 슬픈 역사를 간절하게 말해주고 싶다는 표정이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태그:#일본여행, #오키나와, #나하, #타마우돈, #장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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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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