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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위스에서 모든 사람에게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2800달러· 한화 약 300만 원)의 기본소득을 주자는 국민발의 법안이 성사되어 화제가 되었다. 2009년 독일에서는 기본소득을 위한 국민청원이 의회에 제출되었고, 총선에서 100여 명의 후보가 기본소득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나미비아와 인도에서는 기본소득 실험이 진행되기도 했고, 유럽에서도 기본소득이 정치적 논쟁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의 판 빠레이스 교수는 19세기의 시대과제가 노예제 폐지, 20세기가 보통선거권 획득이었다면, 21세기의 과제는 기본소득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기본소득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자산 심사나 노동 요구 없이 국가가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조건 없는 소득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전국민에게 나라에서 월급을 주는 것. 기존의 복잡한 복지전달체계를 대폭 단순화해 불필요한 관리비용을 없애는 대신 그 혜택을 모두에게 똑같이 돌려준다는 점에서 사각지대 없는 복지시스템으로 각광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실업과 빈곤이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시대조건에서 일자리 나누기를 위한 대안으로도 이야기되고 있다.

'신상' 소비와 빈곤의 사이

세계적인 빈곤과 실업, 양극화 문제는 더 이상 '고용창출'이라는 말이 해법으로 작용할 수 없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일자리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다섯 명의 노동자가 한 대의 자동차를 만들었다면, 지금은 한 명의 노동자가 다섯 대의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고 한 명의 소비자가 다섯 대의 자동차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산수의 법칙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줄어드는 일자리는 필연의 문제다. 그렇기에 하나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과잉생산을 하고 빨리 못쓰게 만드는 '업그레이드'와 '신상' 소비 부추김이 계속된다. 그 과정에서 환경과 자원의 낭비는 점점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1년도 못 가서 새 것으로 바꾸곤 하는 스마트폰 같은 경우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세계는 '분배 없는 성장'과 함께, '고용 없는 성장'을 계속 경신 중이다. 일자리가 모자란 서민들에게 생산품을 구입할 능력이 없으므로 공장과 상인들의 수익은 악화된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무너지고 대기업이 대량 정리해고를 감행하므로 사람들의 일자리는 더 부족해진다. 일자리가 없으면 굶어죽어야 하는 현대사회의 법칙에 따르자면, 이것은 불가피하며 영속적인 문제다. 그렇다면 아예 그 법칙을 바꿔서, 일하는 사람이나 일하지 않는 사람이나 생계에 필요한 돈을 무조건 쥐어준다면 어떨까?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내수는 활성화되고 가계부채는 줄어든다. 노후를 위해 초과노동과 야근으로 수당을 벌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일자리 나누기도 수월해진다. 복지시스템의 사각지대와 빈부격차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되며, 누구나 기본적으로 생계를 이어갈 권리를 충분히 확보할 것이다. 더불어 생산-낭비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점점 더해가는 환경파괴를 막는 것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기본소득, 진지한 논쟁거리 될 수 있을까

한국에서도 최근 5년간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은 꾸준히 소개되고 심도 깊게 논의되었다. 2010년에 서울에서 열린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 이후 학계·연구자들을 중심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문과 연구자료들이 다수 발표되었다.

녹색평론, 르몽드디플로마티끄 한국어판, 말과 활 등의 잡지를 통해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과 소개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홍세화 '말과 활' 발행인, 강남훈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 외 1천명의 공동제안자들이 '기본소득공동행동'을 제안하고 나서기도 했다.

이들은 "기본소득 도입에 동의하는 많은 이들의 힘을 모아 구체적인 대안을 더욱 가다듬고 확산함으로써 기본소득을 통한 사회적 생태적 전환을 앞당기기 위해 나설" 시점이 되었고, 이에 따라 "기본소득 도입에 동의하는 여러 단체와 개인들의 의지를 결집하여 사회적 공론을 일으키고 확산하는 역할을 할 것이며, 한국에서 기본소득 운동을 광범위한 대중이 참여하는 폭넓은 사회운동으로 세우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기본소득공동행동 제안자들은 오는 2월 23일 오후 4시부터 가톨릭청년회관 니콜라오 홀에서 심포지움과 발족식을 열고 이후 공동선언운동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켠에서는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해온 청년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기본소득 청년선언'도 추진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이 본격적이고 진지한 논쟁거리가 될 수 있을지는 이날을 기점으로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본소득공동행동 포스터
 기본소득공동행동 포스터
ⓒ 기본소득공동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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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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