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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는 봉두마을도 한해의 액을 막는 달집을 마음껏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화톳불도 좋지만 드높이 쌓은 달집에서 피어나는 흰 연기가 온 마을을 휘감았으면 좋겠습니다.
▲ 달집태우기 내년에는 봉두마을도 한해의 액을 막는 달집을 마음껏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화톳불도 좋지만 드높이 쌓은 달집에서 피어나는 흰 연기가 온 마을을 휘감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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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시 율촌면 봉두마을이 들썩입니다. 할머니·할아버지들이 꽹과리와 장구 그리고 징과 소고를 치며 마을회관 앞을 빙빙 돕니다. 땀이 옷에 흥건히 베일 즈음 상쇠가 꽹과리 소리를 멈춥니다. 덩달아 다른 악기들도 모두 소리를 멈춥니다. 시끄럽던 마을이 갑자기 조용해집니다.

상쇠가 소리를 지릅니다. "송전탑 귀신 물러가라!" 마을 어르신들도 목청껏 따라 외칩니다. "송전탑 뽑아가라!" 어르신들 목소리가 마을 뒤편 앵무산에 부딪쳐 울립니다. 마을 곳곳에 박힌 시커먼 송전탑은 묵묵부답입니다. 초고압 송전선에 휘감긴 봉두마을, 정월 대보름인데 달집도 마음껏 못 태웁니다(관련기사 : "워매, 우리마을도 형광등이...").

봉두마을은 한해의 액을 막고 마을 사람들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달집도 마음대로 못 세웁니다. 송전탑과 전선이 마을을 휘감고 있기 때문입니다.
▲ 봉두마을 봉두마을은 한해의 액을 막고 마을 사람들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달집도 마음대로 못 세웁니다. 송전탑과 전선이 마을을 휘감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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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제를 올리기 위해 준비한 제문입니다. 마을의 안녕과 사람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제주가 축문을 읽습니다.
▲ 축문 당산제를 올리기 위해 준비한 제문입니다. 마을의 안녕과 사람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제주가 축문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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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때문에 골치 아프지만 오늘만은 즐거운 대보름입니다.
▲ 풍물 송전탑때문에 골치 아프지만 오늘만은 즐거운 대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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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후 6시, 정월대보름입니다. 봉두마을에도 둥근 보름달이 떴습니다. 다른 마을은 달집 태우기를 시작하려고 분주할 텐데 이 마을은 그저 조용합니다. 봉두마을은 한해의 액을 막고 마을 사람들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달집도 마음대로 못 세웁니다.

달집 세워 태우려면 너른 들판이 필요한데 이 마을에는 달집 세울 마땅한 곳이 없습니다. 마을이 초고압 송전탑과 송전선으로 거미줄처럼 뒤엉켰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불기둥이 수십 미터 치솟는 달집은 세울 엄두도 못냅니다. 다만, 마을회관 앞 당산나무 아래 조촐한 제사상이 차려졌습니다.

당산제 올릴 제주들이 손을 씻습니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이 상에 오릅니다. 축문을 불에 태웁니다.
▲ 당산제 당산제 올릴 제주들이 손을 씻습니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이 상에 오릅니다. 축문을 불에 태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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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가 축문을 읽고 당산나무를 향해 큰 절을 올립니다. 뒤이어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각자 소원을 품고 당산나무에 큰 절을 올립니다.
▲ 큰절 제주가 축문을 읽고 당산나무를 향해 큰 절을 올립니다. 뒤이어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각자 소원을 품고 당산나무에 큰 절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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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두마을에 핵발전소 반대를 위해 전국을 돌고 있는 ‘탈핵 희망 국토 도보순례단’도 함께 모였습니다.
▲ 탈핵 봉두마을에 핵발전소 반대를 위해 전국을 돌고 있는 ‘탈핵 희망 국토 도보순례단’도 함께 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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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올리던 제사, 오후로 바꾼 사연

봉두마을은 달집 못 태우지만 당산나무에 제사는 꼭 지내왔습니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매년 오전 11시에 마을회관 앞 당산나무에 제를 올리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음식을 나눠 먹으며 한해를 시작했습니다. 대보름 날 달집 태우고 불 깡통도 돌리던 기억은 까마득히 잊었지만 마을 전통 잇는 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제사는 특별합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매년 오전 11시에 올리던 제사를 오후 6시 30분으로 바꿨습니다. 멀리서 많은 손님들이 오기 때문입니다. '봉두마을 송전탑 철거 시민대책위원회' 사람들과 순천에서 활동하는 놀이패 '두엄자리'가 마을을 찾아 왔습니다.

또 핵발전소 반대를 위해 전국을 돌고 있는 '탈핵 희망 국토 도보순례단'도 함께 모였습니다. 이윽고 약속 시각이 됐습니다. 놀이패 '두엄자리'가 신나는 풍물로 앞마당을 엽니다. 이어, 당산제 올릴 제주들이 손을 씻습니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이 상에 오릅니다.

제주가 축문을 읽고 당산나무를 향해 큰절을 올립니다. 뒤이어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각자 소원을 품고 당산나무에 큰 절을 올립니다. 그렇게 당산제는 모두 끝났습니다. 봉두마을 이장(위성초·65)이 마이크를 잡습니다. 그가 웅장한 달집 대신 드럼통에 쌓아올린 통나무를 보며 말합니다.

마을에서 마련한 음식을 손님들에게 내놓습니다.
▲ 나눔 마을에서 마련한 음식을 손님들에게 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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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하늘에 노란 보름달이 떠있습니다. 봉부마을에도 보름달은 뜹니다.
▲ 대보름 맑은 하늘에 노란 보름달이 떠있습니다. 봉부마을에도 보름달은 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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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대열에 참여합니다.
▲ 흥겨움 마을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대열에 참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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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는 범시민대책위원회 만들었는데... 여수시는?

그는 "이 마을 당산제는 건강과 풍요를 바라는 제사인데 오늘은 송전탑 문제가 잘 해결되도록 하는 의미에서 시민단체와 함께 제사 지내려고 오후에 준비했다"며 "송전탑 문제에 강력히 대응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과 지역 사람들 마음을 한데 모으는 행사"라고 당산제의 또 다른 의미를 전했습니다.

마을 이장 말이 끝나고 회관 앞에 모인 사람들이 풍물패의 움직임에 따라 화톳불 주위를 돕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대열에 참여합니다. 이윽고 신이 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꽹과리와 징을 치며 뜨거운 분위기에 동참합니다. 맑은 하늘에 노란 보름달이 떠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꽹과리와 징을 치며 뜨거운 분위기에 동참합니다.
▲ 신명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꽹과리와 징을 치며 뜨거운 분위기에 동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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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가 송전탑과 송전선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 대책위원회 당진시가 송전탑과 송전선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 당진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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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봉두마을도 한해의 액을 막는 달집을 마음껏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화톳불도 좋지만 드높이 쌓은 달집에서 피어나는 흰 연기가 온 마을을 휘감으면 좋겠습니다. 내년에는 마을 어르신들이 송전탑과 송전선 아래에서 시름시름 앓지 않고 건강한 한해 보내도록 멋진 달집이 세워졌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당진시는 765kV 초초고압 송전탑과 송전선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당진시는 지난 1월 22일 첫 모임을 열고 '당진 송전선로 범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유종준 당진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말 들으니 "지금까지 당진시에 있는 82개 시민사회단체가 대책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고 소식을 전해줬습니다.


태그:#송전탑, #정월대보름, #봉두마을, #달집태우기, #두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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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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