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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무죄를 선고 받은 가운데, 7일 오전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권은희 전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1심 재판부의 무죄 판결에 대해 "전혀 예상 못한 충격적인 결과였다"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권은희 "법원 명확한 판단 위해 노력"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무죄를 선고 받은 가운데, 7일 오전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권은희 전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1심 재판부의 무죄 판결에 대해 "전혀 예상 못한 충격적인 결과였다"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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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무죄 선고를 받았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을 감안하건대 법원의 판결이 납득되지 않는다. 평생 경찰에 몸담았지만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수사 내용을 발표하는 일을 듣도 보도 못했다. 이로써 법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경찰에게 정치에 관여하더라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선례를 남겨주었다. 경찰이 정치화되면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과 '명예로운 경찰가족'에게로 돌아간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범균)는 김 전 청장에 대한 무죄를 선고하면서 "권 과장의 진술이 객관적 사실과 어긋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용판 전 청장은 "공정하게 진실을 밝혀줌으로써 저와 경찰가족의 명예를 회복시켜준 재판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관련 기사 : 활짝 웃은 김용판 "소주 한 잔 하자")

'거짓말쟁이'된 권은희, 가슴 아프다

법원은 한 명의 유능하고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경찰의 직무를 위해 정치적 외압에 맞서 온 양심있는 경찰관 한 명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버렸다. 법원에 의해 권은희 과장은 객관적 사실에 어긋난 주장을 한 셈이 되고 말았다.

나는 권은희 과장이 얼마나 힘들게 자신의 소신을 지켜왔는지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속한 경찰 조직의 비위를 새로운 경찰을 만들고자 고발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평생 경찰에 투신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배 권은희 과장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한순간에 권은희 과장은 거짓말을 일삼는 경찰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

권은희 과장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면서 그녀가 감내해야할 불의에 가득 찬 세상의 무게를 함께 거들어주지 못하는 힘없는 선배가 너무 미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은희 과장은 냉정한 평상심을 잃지 않고 있다. "상급법원에서 명확한 판단이 내려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 "통화내역 없다? 내부 전화로도 가능 재판부, 사실적·법률적 판단 부족했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권은희 후배에게 못난 선배로서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는 약속을 하기 위해서다. 힘들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나는 정말 후배 권은희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경찰 권은희는 수많은 후배 경찰들에게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선배들이 못했던 일을 당당하게 해내고 있는 경찰 권은희가 있는 한, 한국 경찰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제 2의, 제 3의 권은희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경찰은 현장에서 법과 정의를 지키는 최일선의 조직이다. 오로지 국민을 섬기고 법을 수호하는 것이 경찰 본연의 임무다. 경찰이 자신의 임무를 벋어나지 않아야 국민은 안심하고 생업에 충실할 수 있다. 경찰에게 있어서 원칙은 오로지 '국민과 법'이다. 권력을 향한 해바라기도 아니며 권력을 비호하는 일이 아니다. 경찰이 원칙을 벗어난 일들로 더 이상 국민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신뢰 잃고 스스로 만들어 낸 '명예'에 도취된 경찰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은폐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6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오고 있다.
▲ 무죄 선고 받은 김용판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은폐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6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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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판 전 청장이 언급한 '경찰가족의 명예'는 모든 경찰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가치다. 경찰에 투신했던 모든 전·현직 경찰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명예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맡은 직분을 충실히 수행할 때 주변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명예다. 경찰이 국민을 섬기는 조직이니 경찰의 명예는 국민이 주는 것이 마땅하다. 국민적으로 의혹의 시선이 걷히지 않은 지금, 김 전 청장의 명예는 누구에게 부여 받은 명예란 말인가?

국정원의 선거개입 정황이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다. 중간수사 발표에 무리가 있었으며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김용판 전 총장에게 묻고 싶다. 선거를 불과 이틀 앞둔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발표된 수사발표가 정말 명예를 목숨처럼 생각하는 경찰이 할 짓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전까지 그런 전례가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한 때 경찰 조직의 수장이었던 사람으로서 수많은 부하직원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얻은 명예가 정말 자랑스러운 명예인가? 김용판 전 청장은 경찰가족들 앞에 당당하게 자신의 명예를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권은희 수사과장의 말처럼 이제 상급재판의 결과를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재판결과와 별개로 경찰이 지켜야할 스스로의 금도와 상식, 국민이 바라는 좋은 경찰의 모습이 어떤 것일지는 지금 이 순간 모든 경찰이 함께 고민해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잃고 스스로 만들어낸 '명예'에 도취된다면 경찰은 국민과 멀어질 것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국민의 관심과 불의에 대한 당찬 뭉침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야 하는 것은 상실되어 가는 민주주의다. 나쁜 권력을 심판하는 일은 결국 국민의 몫이다.

권은희 과장은 경찰로서 불의한 권력과 맞서고 있다. 우리가 권은희와 함께 해야하는 이유는 그녀가 짊어진 정의의 무게가 바로 우리가 지켜야 할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나는 기꺼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 양심적인 경찰 권은희와 함께하겠다. 권은희를 지키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태그:#김용판, #국정원, #권은희, #경찰, #박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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