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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청와대 새 대변인에 임명된 민경욱 KBS 전 앵커가 춘추관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소감 말하는 민경욱 청와대 새 대변인 5일 청와대 새 대변인에 임명된 민경욱 KBS 전 앵커가 춘추관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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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번호 알려달라."

5일 민경욱 신임 청와대 대변인의 인사가 끝난 후 출입기자들은 그의 연락처를 물었다. 민 대변인은 머뭇머뭇했다.

그는 "제가 이 번호를 (계속) 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 회사에서 쓰는 거라 반납할 수 있다"며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났다. 청와대 대변인 신분인 그는 여전히 KBS에서 지급한 '회사전화'를 가지고 있었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는 민 대변인이 곧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지급되는 '업무 전화'를 쓰게 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4일 <뉴스9>에 나왔는데...

공영방송 KBS의 간판 앵커이자 현직 언론인이었던 민 대변인의 변신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보통 언론인이 공직이나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경우 '유예기간'을 거치는 최소한의 '언론 윤리'를 저버렸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대변인 임명 사실이 알려지기 하루 전만 해도 그는 KBS 보도국 문화부장이었다. 그는 4일 방송된 KBS <뉴스 9>에서 '문화재 복원 제대로 하려면'이라는 주제를 다룬 데스크 분석 코너에 문화부장으로 출연했다.

민 대변인은 특히 보도국 기자를 거쳐 KBS 2TV 7시뉴스와 뉴스8 진행을 맡은데 이어 2011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는 간판 뉴스프로그램인 <뉴스9>의 앵커를 역임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공영방송인 KBS의 얼굴 노릇을 해온 셈이다. 

공영방송의 '얼굴'이었던 기자가 '대통령의 입' 역할을 해야 하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간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KBS 내부에서도 "언론사 뉴스 핵심 인물이 이토록 노골적으로 정권과 손을 잡은 사례는 한국 언론사를 통틀어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KBS 윤리강령 위반 논란... "KBS 앵커 대변인? 경악스러운 발상"

민 대변인의 처신은 KBS 내부 윤리강령을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KBS윤리강령 1조 3항에는 "KBS인 중 TV 및 라디오의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그리고 정치 관련 취재 및 제작 담당자는 공영방송 KBS 이미지의 사적 활용을 막기 위해 해당 직무가 끝난 후 6개월 이내에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다"라고 규정돼 있다. 민 대변인은 9시 뉴스 앵커에서 물러난 지 3개월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KBS는 "윤리강령에서 '정치활동'이란 국회의원 등 선출직이나 당적을 가지고 정당 활동을 하는 것을 의미하며, 청와대 대변인은 선출직이 아닌 공직이기 때문에 '정치 활동'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KBS 내부에서는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KBS 기자들의 여권 중심의 정치권 진출이 계속 이어지면서 공영방송으로서의 공정성과 독립성 시비가 벌어졌다.

이날 KBS 공채 27기 기자들은 성명을 통해 "언론사 뉴스 핵심 인물이 이토록 노골적으로 정권과 손을 잡은 사례는 한국 언론사를 통틀어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라며 "앞으로 어떻게 시청자들에게 우리 뉴스를 믿어달라고 호소하고, 우리 뉴스는 공정하다고 감히 입을 놀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들은 박 대통령을 향해서도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할 KBS의 앵커를 청와대 대변인으로 앉히겠다는 발상이 경악스럽다"며 대변인 임명 철회를 요구했다.

민 대변인 위키리크스에 언급돼 구설

민 대변인을 둘러싼 구설은 이것뿐이 아니다.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이명박 대선후보에 대한 정보를 미국에 건넸던 전력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2011년 내부고발 웹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가 공개한 2007년 12월 17일자 미국 국무부 비밀 전문(cable)에 따르면 당시 뉴스편집부 기자였던 민 대변인은 주한미국대사관측과 만나 자신이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 입수한 이명박 후보에 대한 정보를 전했다.

당시 그는 "이명박은 실용적인 사람이라고 느껴졌고, 수많은 세월이 지나도 큰 탐닉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다", "이명박은 경제적 전문성이 제한됐지만 뛰어난 결단력 덕분에 한국을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한 김대중과 비슷할 수도 있다"는 등의 우호적인 내용을 전달했다.

미국 측은 전문 끝에 "민경욱은 이 다큐(이명박 다큐)에 대한 조사를 하는 한 달 동안 이명박과 그의 측근들에 의해 완전히 설득 당했다"며 "이 다큐는 이명박이 아주 좋아할 만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당시 공영방송 기자가 미국의 '첩자' 노릇을 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자 민 대변인은 "제가 이야기한 것 가운데 세상이 모르고 있던 것은 없었다"며 "다큐 취재과정 일부를 한국에 온 걸 환영한다고 만난 술자리에서 얘기한 게 문제가 될까요"라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대변인 임명 소식이 전해 진 후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트위터에 ""미국 간첩? 대변인 영전을 축하드립니다"라고 비꼬는 등 논란이 커지고 있다.

또다시 약점 드러난 인사... 업무 수행 능력도 물음표

특히 이번 민 대변인 기용은 그동안 인사 실패를 거듭해온 박 대통령의 약점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행 전 대변인이 사퇴 한 지는 한 달이 훌쩍 넘었지만 청와대 대변인 인선은 차일피일 미뤄지기만 했다. 그러다가 청와대는 일주일 전에서야 민 대변인에게 대변인직 제의를 했다. 민 대변인은 이날 가자들과 만나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 에 청와대로부터 대변인직 제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동안 대변인 인선이 난항을 겪으면서 지연되다가, 대변인 제안 일주일 만에 서둘러 인사를 단행하면서 박 대통령 인재풀의 협소함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는 평가다.

특히 민 대변인의 직무 수행 능력에도 물음표가 붙는다. 그동안 박 대통령과 직접 호흡을 맞춰본 적이 없어 '대통령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인사 참사로 기록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처럼 박 대통령의 발언을 단순히 전달하는 역할에 그칠 수도 있다. 또 사실상 대변인 역할까지 겸해온 이정현 홍보수석과의 역할 분담도 남은 과제다.


태그:#민경욱, #청와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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