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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9시 30분, 서울역은 분주했다. 두 손 가득 짐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걷는 여성,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기차표를 확인하는 엄마, 단정하게 군복을 입은 군인, 보자기로 곱게 포장된 선물을 손에 들고 성큼성큼 걷는 남성 등.

고향으로 가는 길은 분주해 보였다. 그리고 인파 사이에서 전단을 나누어 주고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단체도 있었다. 전단을 받고 유심히 살펴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가던 길을 재촉하는 사람도 있었다.

"빈익빈 부익부 심화시키는 의료민영화"

구정을 앞두고 분주한 서울역에서 '철도 민영화 중단하라'를 선전하는 KTX민영화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구정을 앞두고 분주한 서울역에서 '철도 민영화 중단하라'를 선전하는 KTX민영화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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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내부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철도노조 구조조정 중단'을 외치는 KTX민영화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와 '의료민영화 반대'를 주장하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수신료 인상 반대 및 납부거부'를 주장하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선전전과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서명운동에 참여한 윤성준(27)씨는 "수서발 KTX 민영화가 마무리되면 가스, 교육, 의료 부문이 민영화될 것"이라며 "수서발 KTX 민영화부터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두루마기를 단정히 차려입은 유현(49)씨는 "의료민영화가 되면 없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없어져 반대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의료민영화 반대 100만 서명 운동을 펼치는 전국보건의료 산업노동조합.
 의료민영화 반대 100만 서명 운동을 펼치는 전국보건의료 산업노동조합.
ⓒ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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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손을 잡고 걷던 박지은(41)씨도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박씨는 "의료민영화가 되면 애 하나 낳는데 몇천만 원 든다던데 걱정이다"라며 "의료의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 시키는 의료민영화는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고향인 대구로 내려가던 김수겸(34)씨도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김씨는 "아무래도 서비스 고급화가 되면 병원 측에서 호텔이나 부가시설에 사업을 확장할 것"이라며 "의료요금이 올라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부산이 고향인 이은수(34)씨는 "미국 의료보험 제도가 문제 많은 것으로 안다"며 "선진국도 되돌리려고 하는데 그걸 왜 답습하려 하는지 모르겠다"며 의료민영화를 비판했다.

시민사회 합동 기자회견 열려

27일 오전 11시, 서울역에서 민주주의와 민생을 염원하는 시민사회 합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27일 오전 11시, 서울역에서 민주주의와 민생을 염원하는 시민사회 합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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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에는 '민주주의와 민생을 염원하는 시민사회 합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는 국정원시국회의,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공공운수노조연맹, 민주언론시민연합, 공안탄압대책위, 밀양송전탑전국대책회의 등 10개 단체가 참여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한미정 부위원장은 "국가가 국민 건강을 볼모로 병원의 돈벌이를 하는 정책을 만든다"며 "국민 건강권 쟁취를 위해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철도노동조합 이영익 위원장(직무대행)은 "수서발 KTX를 철도공사에서 맡아 운영수익으로 재투자하면 철도요금을 인상할 필요가 없다"며 "올해 철도 민영화 철폐를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주장했다.

밀양송전탑건국대책회의 염형철 집행위원장은 "오늘도 밀양엔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할머니들이 산에 오르고 있다"며 "밀양 상황을 이해하고 가족들과 이야기 나누고 기억해 줄 것"을 부탁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신태섭 상임대표는 "언론의 자유·독립은 민주주의의 핵심조건"이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공영미디어가 장악돼 언론의 제 기능이 사멸됐다"고 말했다. 또한, "공공자산을 소수 기득권층의 주머니에 집어넣는데 언론이 제대로 보도를 하지 못하니 국민이 상황을 모른다"며 "국민에게 상황을 제대로 알리고 여기 모인 단체들과 연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서울역 앞에서 고 이남종 씨의 추모 100일 기도를 하는 무성 스님.
 서울역 앞에서 고 이남종 씨의 추모 100일 기도를 하는 무성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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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기자회견 장소 옆에는 '박근혜 퇴진, 특검 실시'라는 피켓을 옆에 두고 스님이 목탁을 두들기며 '고 이남종 열사 추모 100일 기도'를 하고 있었다. 경남 통영에서 온 무송(56) 스님은 "이남종 열사 죽음은 소신공양"이라며 "그의 유훈이 실현될 때까지 100일 단위로 계속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다들 사상이 빨갛다"

"미국 좋아하시면 미국 가세요."
"너는 북한으로 가세요."

스님 주변에서 작은 실랑이가 있었다. 피켓에 쓰인 '박근혜 퇴진, 특검실시'를 보며 어느 시민이 "꼭 특검을 실시해야 한다"라고 하자 다른 시민이 "중이 미쳤다"며 "다들 사상이 빨갛다"라고 말했다.

'교학사 역사 교과서 채택'과 '전교조 추방'을 외치는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회원
 '교학사 역사 교과서 채택'과 '전교조 추방'을 외치는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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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교육 20년 결과 우리나라가 이렇게 몰락했습니다. 저 좌파 놈들 죽여야 합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민주노총은 1972년 김일성 지시로 우리나라를 좌경화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스님이 기도하는 자리에서 열 발자국 떨어진 곳에는 '종북, 반대한민국 역사교육 저지 운동'이 한창이었다. 역사교과서대책범국민운동본부, 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 자유총연맹,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유관순어머니회 등 6개 단체로 이루어진 모임은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을 외치고 있었다.

서울역을 지나는 사람들 중에는 두 단체의 마이크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바닥에는 시민들이 버린 전단이 나뒹굴고 있었다. 오전 12시, 점심시간이 가까워오자 단체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나며 서울역은 다시 조용해졌다. 귀향을 재촉하는 사람들만 오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안형준 기자는 오마이뉴스 19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서울역, #귀향, #집회,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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