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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휴머니즘이 부족한 것 같아."

지난 2년 동안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해준 충고다. 수차례 언론사 입사 시험에서 낙방하며 그 이유를 나 자신이 아닌 스펙이나 글 솜씨가 모자란 것에 돌리고 있었다. 충고를 듣고 생각해 보니 어느 정도 맞는 말 같았다.

어느 때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감정이 없었다. 뉴스에서 사람들이 죽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해도 나에겐 그저 정보 중 하나였고 휘발성 기억에 불과했다. 기사의 내용보다 기자 바이라인을 보며 '저 사람은 입사시험에서 어떤 글을 썼고 스펙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쌍방향 소통이 아닌 나를 중심으로 언제든 상대방을 떠날 수 있는 준비를 하며 관계를 맺고 있었다. 감정이 없어진 후 연애도 될 턱이 없었다. 그렇게 난 껍데기만 있는 인간관계를 2년 넘게 유지하고 있었다. 올해 초 대학원을 졸업하고 완전한 백수가 된 나는 점점 세상과 감정에 담을 쌓았다.

유일하게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은 일 주일에 단 하루 사진을 배우는 날이다. 김진석 사진작가에게 취미 혹은 직업을 목표로 사진을 배우는 사람들 모임인 'La luz(라 루스, 스페인어로 '빛'이라는 뜻)'는 구성원 연령대가 나보다 10살 혹은 20살 이상 많은 까닭에 세상 이야기와 인생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대학로 어느 감자탕 집에서 술병이 늘어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진 이야기부터 정치 이야기, 가정 이야기, 인생 이야기 등등 나는 그저 이야기를 듣고 있으나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가족 사진이 없어서 각자 찍은 사진을 오려 붙였어요"

 화영이네 가족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김진석 작가
 화영이네 가족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김진석 작가
ⓒ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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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사진 찍는 분들이세요? 이야기를 엿들어 미안합니다. 혹시 가족사진도 찍나요?"

다들 얼굴이 벌겋게 취해 가게를 나서는 순간 가게 주인 정병만(56)씨가 말을 걸었다. 갑작스런 대화에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 다시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가족사진을 찍고 싶은데 아이가 몸이 좋지 않아 집밖에 나갈 수 없어 집에 와서 촬영해줄 수 있느냐는 제안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얼마나 아프다고 가족사진 한 장 못 찍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듣고 집에 가려 했다. 하지만 선생인 김진석 작가가 "네 알겠습니다. 제가 사비를 들여서라도 촬영하겠습니다"라는 말을 건넸다. 나는 속으로 '왜 사서 고생을 하나'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선생이 일을 나서서 하면 내가 사전 준비로 피곤해지는 까닭에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도착해서 자려는 순간 선생에게 문자 한 통이 왔다.

"사전 취재 해봐."

며칠 뒤 대학로 감자탕 가게를 다시 방문했다. 정병만씨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화영이(18)는 태어날 때부터 중증 뇌성마비를 앓았다. 유년기에는 휠체어에 앉아 생활했지만, 5년 전부터 면역력이 약해져 합병증으로 기도 삭관과 유관 수술을 한 까닭에 온종일 누워서 생활하고 있다.

화영이를 만나기 위해 가게 측면 작은 통로로 들어섰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가정집이 나타났다. 거실과 방 한 칸, 화장실로 이뤄진 집에 네 명이 살고 있었다. 방에 들어가니 화영이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마침 아동발달 센터에서 나와 화영이의 몸을 마사지하고 있었다. 누워만 있다 보니 근육이 약해지고 뼈가 굳는 까닭에 주기적인 마사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둘째 학교에서 가족사진을 제출하라는데 최근에 찍은 사진이 없어서 각자 사진을 오려 붙여 제출했어요. 그게 제일 마음 아팠습니다."

화영이 침대 위에 가족사진 한 장이 걸려 있었다. 15년 전 화영이가 세 살 때 찍은 사진이다. 화영이네 가족 모습은 15년 전에 머물러 있었다. 정병만씨가 사진을 보며 "아이가 저렇게 누워 있으니 거실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힘들다"라며 "집안에서 가족사진을 찍고 싶은데 딱히 부탁할 곳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설명을 들은 후 철 없는 생각을 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기자가 되겠다고 행동했던 지난 2년이 허무하고 쓸모없이 느껴졌다.

10분 안에 찍어야 하는 가족사진

 세상에 단 한장뿐인 화영이네 가족사진.
 세상에 단 한장뿐인 화영이네 가족사진.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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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내부 사진과 사연을 김진석 사진반 동문회 '라 루스' 커뮤니티에 올렸다. 사연을 본 동문회 회원들이 후원 의사를 밝혀 촬영과 액자, 앨범 제작을 후원하기로 했다.

가족사진을 촬영하는 날짜가 가까워지자 걱정이 많았다. 화영이의 몸 상태가 좋아야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촬영 전날 저녁에 다시 전화해서 화영이의 건강 상태를 묻자 다행히 "좋다"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7월 4일. 가족사진 촬영 날이 됐다. 각종 조명과 장비를 점검하고 화영이네 집에 모였다. 촬영이 오후 8시인 까닭에 오후 7시부터 세팅이 시작됐다. 동문 회원들이 거실 곳곳에 조명을 설치하고 시험 촬영을 하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정병만씨에게 준비를 알리자 화영이를 조심스레 안아 휠체어에 태워 거실로 나왔다.

김진석 작가가 주 촬영을 맡고 나머지 사람들은 현장사진을 찍었다. 촬영은 10분 안에 끝났다. 목에 가래가 찰 때마다 호스로 빼줘야 하는 까닭에 오래 붙잡고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다행인 건 화영이의 표정이었다. 초점이 흐려 앞이 보이지 않지만 화영이는 촬영 내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부모님은 여러 표정이 혼합되어 있었다.

라 루스의 많은 사람이 사진의 보정, 출력, 액자제작 과정에 참여했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 사람들은 "직업 혹은 취미로 사진을 찍지만 자신의 재능이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내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 '왜 기자를 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금 자신에게 해보고 사진을 찍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왜 기자가 되려고 하는가

 가족사진을 건네받은 화영이네 가족.
 가족사진을 건네받은 화영이네 가족.
ⓒ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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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 가족사진과 작은 앨범을 화영이 가족에게 전달했다. 가족사진을 본 화영이 어머니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가족사진 한 장 갖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남들은 쉽게 찍을 수 있지만 우린 그렇지 못하잖아요. 우리와 비슷한 가정이 많아요. 가족사진 촬영했다고 자랑하니 많이 부러워했어요. 정말 고마워요."

대화를 묵묵하게 듣고 있던 화영이 아버님도 무거운 입술을 뗐다. 그는 "힘들게 사진관에 가더라도 고객과 제공자의 관계이지만, 집에 와서 촬영해 주니 인간적으로 느껴져 촬영할 때 마음이 편했다"라고 말했다.

사진 전달이 끝나고 동문회에서 가족사진 촬영을 계속 후원하기로 결정했다. 한 달에 한 가정씩 몸이 불편하거나 집안 사정이 좋지 않은 가정을 대상으로 가족사진을 찍을 예정이다.

이번 일을 통해 깨달은 게 있다. 단순히 봉사활동이 아니라 가족사진을 찍고 전달하는 과정이 나를 세상에 내어 놓는 일이었다. 감정이 메말라 버린 나에게 다시금 힘을 줬다. 화영이 아버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표정과 가족사진을 전달받은 어머니의 표정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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