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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세계 7대 자연경관이라고도 하고 유네스코가 지정한 우리나라에 하나 밖에 없는 세계자연유산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풍광이 수려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전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제주는 관광객을 위한 안내 책자에 설명되어 있듯 자연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 준 지상낙원일 뿐일까?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섬이 생긴 이래 아무런 걱정없이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누려 왔을까? 그렇지 않은 이유를 좀 알아 보도록 하자.

제주도는 동서 73Km 남북 31Km로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때문에 각 지역에서 세력을 뻗치려 했던 이들은 항상 이곳 제주를 자신의 세력권 안에 두고자 했다.

독립국 탐라시대를 마감하고 백제에 복속된 이래 신라 고려시대를 거쳐 삼별초를 진압하고 눌러 앉은 이민족 몽고의 지배는 무려 100년이나 이어지며 제주의 민중들을 착취했다. 고려 명장 최영의 분투로 겨우 그 지배에서 벗어 났지만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 와서도 제주는 여전히 유배의 땅으로 본토와는 다른 차별받는 섬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자신들 일본 열도를 지키기 위해 연합군의 7가지 진격로에 대한 방어 구상, 즉 '결7호 작전'의 하나로 제주에 7만명에 이르는 병력을 배치하고 온 섬을 군사기지화했다.

이는 조선에 주둔하는 총병력의 절반에 해당하는 큰 규모였다고 한다. 곳곳에 해안동굴을 파고 잠수정이나 어뢰정을 숨겨 놓았고 대규모 비행장을 만들어 그들의 가미가제 특공대를 배치했다. 지금의 제주공항인 정뜨로비행장, 서남쪽 모슬포에 위치한 알뜨르 비행장도 바로 이 계획에 의해 건설된 것이다. 고사포 기지와 지하벙커도 만들었다.

시간에 쫓겼던 일제는 이 모든 일들을 제주도민을 강제로 징집해 변변한 장비도 하나없이 만들었으니 제주민들의 피해가 얼마나 컷을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41년 4월에 있었던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 1만 5천, 일본군 6만 5천, 민간인이 약 12만 명이나 전사했다고 하니 전원 옥쇄를 결의하고 있던 제주도에서 실제 전투가 있었다면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을지는 짐작 조차도 쉽지 않은 일이다.

왼쪽으로 산방산이 오른쪽으로는 형제섬이, 가운데 멀리 한라산의 모습이 손에 잡힐듯 보인다. 이 사진을 찍은 송악산에만도 15개에 이르는 해안동굴진지가 있다. 이른바 '일오동굴'
▲ 송악산에서 바라본 제주의 모습 왼쪽으로 산방산이 오른쪽으로는 형제섬이, 가운데 멀리 한라산의 모습이 손에 잡힐듯 보인다. 이 사진을 찍은 송악산에만도 15개에 이르는 해안동굴진지가 있다. 이른바 '일오동굴'
ⓒ 이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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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를 부어 만든 알뜨르 비행장의 격납고. 이 전투기들은 남쪽에서 일본열도를 향하는 연합군의 군함을 노리고 있었다. 사진속의 비행기 모형은 당시의 것은 아니고 설치 미술작품이라고 한다.
▲ 알뜨르 비행장의 격납고 콘크리트를 부어 만든 알뜨르 비행장의 격납고. 이 전투기들은 남쪽에서 일본열도를 향하는 연합군의 군함을 노리고 있었다. 사진속의 비행기 모형은 당시의 것은 아니고 설치 미술작품이라고 한다.
ⓒ 이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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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산방산을 배경으로 한 알뜨르 비행장의 모습. 알뜨르는 '아래 들녁'이란 뜻으로 제주에서는 드물게 밭작물이 잘 자라는 넓은 평야지대이다. 일제는 이곳에 거대한 비행장과 사진 아래쪽에 보이는 전투기의 격납고를 만들어 군사기지로 만들었다. 총 40여개에 이르렀다는 격납고는 현재 19개가 남아 있다고 한다.
▲ 알뜨르 비행장 전경 멀리 산방산을 배경으로 한 알뜨르 비행장의 모습. 알뜨르는 '아래 들녁'이란 뜻으로 제주에서는 드물게 밭작물이 잘 자라는 넓은 평야지대이다. 일제는 이곳에 거대한 비행장과 사진 아래쪽에 보이는 전투기의 격납고를 만들어 군사기지로 만들었다. 총 40여개에 이르렀다는 격납고는 현재 19개가 남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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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흉물스러운 격납고의 모습이 여러 곳 보인다.
▲ 산방산과 전투기 격납고 그림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흉물스러운 격납고의 모습이 여러 곳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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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혹한 일제의 탄압속에서 맞이한 해방은 제주도민에게는 그 억압의 정도에 비례해 기쁘고 또 기뻤을 것이다. 그러나 생존을 위협받지 않는 새나라 건설의 꿈에 부풀어 있던 그들에게 일제의 끄나풀이었던 자들이 다시금 지배자로 등장하는 믿기 힘든 상황은 너무도 견디기 어려웠을 터 제주가 해방 이후 좌우익의 이념투쟁에 격렬했던 이유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탄압도 거세어졌다.

4·3을 비롯해 수없이 많은 제주 도민의 억울한 죽음이 있었다. 총으로 쏴 죽이는 총살형은 아예 이야기 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성산일출봉 가는 길에서는 사람들을 굴비 엮듯이 묶어 놓고 앞에 있는 한 사람만을 총으로 쏴 바다로 떨어 뜨리면 묶인 사람들이 차례로 바다에 빠져 익사했다고 한다. 오로지 총알을 아끼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한다. 영화 '지슬'에서 재현된 바에 같이 영문도 모른채 한라산으로 쫓겨 산중 굴속에서 당한 이름모를 희생 역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 가히 제주는 '죽음의 땅'이었던 것이다.

세계자연유산 성산일출봉. 이 아름다운 곳에도 일본제국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해안동굴이 있고 국가에 의한 참혹한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
▲ 성산일출봉 세계자연유산 성산일출봉. 이 아름다운 곳에도 일본제국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해안동굴이 있고 국가에 의한 참혹한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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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제주의 아픈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지난 2005년 1월 27일 정부는 국가적 차원에서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선포했으나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대규모 해군기지 건설계획이 발표되고 공사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한 노력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공사를 진행하는 쪽에서는 해군기지가 아니라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고 한다) 제주도가 가진 지정학적 위치 때문일까? 군사적으로 제주를 이용하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제주도 남쪽 강정포구에서는 지금도 대규모 해군기지 건설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 제주 해군기지 건설공사 제주도 남쪽 강정포구에서는 지금도 대규모 해군기지 건설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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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펼침막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 해군기지 건설 반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펼침막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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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풍광을 지닌 아름다운 섬 제주. 9년 전 '평화의 섬' 선언처럼 더이상 지난 날의 억울한 희생을 없이 하기 위해서라도 제주를 돌아 볼 때 눈에 보이는 멋진 경관과 함께 한 번쯤 제주의 아픈 역사도 찾아 보고 짚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태그:#제주, #알뜨르비행장,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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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분야는 역사분야, 여행관련, 시사분야 등입니다. 참고로 저의 홈페이지를 소개합니다. http://www.refd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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