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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작은 대단히 불손하고 오만한 것이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동구릉에 자신과 후손들의 묫자리를 정하고 "이제 근심을 잊을 수 있겠다!"며 정한 이름 망우(忘憂). 일제 강점기, 조선을 영구 지배하려던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 조선의 왕들이 영혼이나마 편히 쉬는 꼴을 두고 보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 맥을 끊겠다며 1933년 5월, 이태원, 신사리, 수철리(금호동), 미아리 등 서울 전역에 흩어져 있던 묘지를 다 이곳으로 옮겨 왔다. 망우리 공동묘지의 시작이었다. 한 때 4만7700여기까지 들어차 만장되어 1973년 3월부터는 새로운 묘를 더 이상 받을 수 없었다.

한 나라를 건국한 태조가 근심을 잊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좋은 땅이었을까? 중랑천과 한강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양지바른 곳, 지금 풍수지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곳은 과연 명당터가 확실하다.

1991년 서울시설공단이 설립되어 묘지관리업무를 맡고 있는데 1998년 공원화 작업을 거쳐 이제 '망우리 공동묘지'에서 '망우리공원'으로 이름까지 산뜻하게 바꿨다. 4.7km의 산책길 '사색의 길'이 조성되었고 유명인들의 묘소가 정비되었으며 그들의 업적과 생을 간략히 기록한 연보비까지 세워 공원을 찾는 이들을 배려하고 있다.

혹자는 묘지에서 무슨 산책이고 사색이냐며 되물을 수도 있겠으나 예상과 달리 이 길은 서울시 걷고 싶은 길 중 하나다. 서울 두드림길(http://gil.seoul.go.kr)중 둘레길 2코스이자 구리 둘레길 1코스(http://gmap.guri.go.kr). 정비를 잘해 마치 걷기 좋은 공원같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냥 걷기만 해도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우리 근현대사의 유명 인물들을 만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까지.

대충 생각나는 이름만 적어 보아도 만해 한용운, 죽산 조봉암, 소파 방정환, 위창 오세창, 송촌 지석영, 오빠 부대의 원조 가수 차중락, 야구 천재 이영민, 시인 박인환, 화가 이중섭 등등 일일이 다 열기하기 힘들 정도. 이런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2012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운동본부가 꼭 지켜야 할 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봄바람 부는 아직은 쌀쌀한 4월. 동네분들 몇이 모인 오늘, 우리는 전교조 위원장이셨던 이부영 선생님을 모시고 문학기행을 떠난다. 선생님은 30여 년 전 이 근처 학교에서 일하실 때 문예반 학생들과 함께 도시락을 싸 답사를 오고는 하셨다고. 이제 다시 30년 전으로 돌아가 그 길을 따라가 본다.

역사의 현장, 13도 창의군 탑

처음 만나는 곳은 13도 창의군 탑. 1907년 8월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 당했다. 이를 계기로 강원도 원주지역에서 활동하던 의병장 이은찬·이구재 등이 당시 경북 문경에 은거하고 있던 이인영을 관동창의대장(關東倡義隊將)으로 추대했고 이인영은 전국 의병장들에 격문을 보내 경기도 양주로 집결할 것을 호소했다. 13도창의군(13道倡義軍)의 서울진공작전이다.

이에 호응해 총병력 1만여 명에 이르는 대부대가 결성되었다. 강원도 지방 의병이 8000여 명. 신식 소총을 가진 3000여 명의 해산 군인도 포함되어 있어 의병운동사상 가장 크고 강력한 의병군이었다.

원수부 13도 총대장은 이인영, 군사장 허위였다. 이들은 서울을 탈환하겠다며 진군을 시작했는데 각자 분산해 동대문 밖에서 집결하기로 했다. 군사장 허위는 결사대 300명을 이끌고 서울 성문 밖 30리 지점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전투를 벌여 일본군을 몰아내겠다는 계획을 세웠음에도 적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신돌석과 평민출신 홍범도·김수민 등의 부대는 제외했던 것. 신분이 낮다는 이유였다.

거기다 창의대장 이인영이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듣고 상을 치러야 한다며 고향인 문경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지도부가 붕괴된 의병부대는 흩어졌고 결국 1908년 2월 28일에 해산한 이후 각기 근거지로 돌아가 개별적인 의병활동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양반 중심 의병운동의 한계.

어쨌든 허위가 진격해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던 '성문 밖 30리 지점'이 이곳이라 생각했는지 1991년 7월 31일 동아일보사에서 여기에 기념탑을 세웠다. 교과서 속에서나 봐오던 역사의 현장인 셈이다. 서울 동대문에서 신설동을 거쳐 청량리역 앞까지 이어지는 도로의 이름은 왕산로. 바로 이 13도 창의군의 군사장이었던 허위의 호를 딴 것이다.

13도 창의군 탑 13도 창의군 탑
▲ 13도 창의군 탑 13도 창의군 탑
ⓒ 이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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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와 숙녀' 박인환

다음에 만날 사람은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버지니아 울프를 이야기하자던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으로 유명한 시인. 1956년 이른 봄. 명동 한 귀퉁이 막걸릿집. 몇몇 문인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백치 아다다'의 가수 나애심도 함께였다. 취기가 돌자 노래를 청했는데 나애심은 마땅한 것이 없다며 거절.

그러자 박인환이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종이 한 장을 꺼내 즉석에서 시를 써내려갔고 완성된 시를 넘겨받은 언론인이자 극작가였던 이진섭이 단숨에 악보를 그려 냈단다. 나애심이 악보를 보고 노래를 흥얼거렸고 한 시간쯤 뒤 테너 임만섭이 합석한 뒤 정식으로 노래를 부르니 그걸 듣고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이 술집으로 몰려들어 왔다고. 믿거나 말거나 우리에게는 박인희의 노래로 더 유명한 '세월이 가면'의 탄생 비화이다.

막걸릿집은 배우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곳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나애심은 DDD를 부른 가수 김혜림의 어머니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박인환은 이날 낮에 망우리에 있던 첫사랑 여인의 묘지에 다녀왔단다.

죽음에 대한 어떤 영감같은 것이 있었을까? 박인환은 이 시를 남기고 사흘 뒤 만취한 상태로 숨져 망우리 그녀의 곁으로 갔다. 향년 30세. 심장마비였다. 6·25 한국전쟁의 황폐함을 겪으면서 느꼈던 도시문명의 불안과 시대의 고뇌를 감성적으로 노래했던 시인이었다.

시인 박인환의 묘 생전에 시인이 그리 좋아했다는 술 한 잔을 올리고 있다.
▲ 시인 박인환의 묘 생전에 시인이 그리 좋아했다는 술 한 잔을 올리고 있다.
ⓒ 이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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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이중섭

이번에는 이중섭. 작품 '황소'로 유명한 화가. 평안남도 평원군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한국전쟁을 겪으며 월남,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다. 종이 살 돈이 없어 담배를 쌌던 은박지에 그림을 그려야 했을 정도였다고. 이른바 은지화. 이런 형편에 온 식구가 함께 살 수 없어 일본인 부인과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는 평생 이들을 그리워 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이중섭 그림에는 유난히 어린이, 가족을 소재로 한 것이 많다. 결국 1956년 9월 6일 41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는데 시신은 화장되어 반은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히고 반은 일본으로 보내졌다. 죽어서야 반쪽이나마 그리워하던 아내와 아이들 곁으로 돌아간 것이다.

후배 차근호가 만든 묘비에도 두 아들을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의 작품 '소'는 최근 경매에 나와 47억원에 낙찰되었는데 김환기의 추상화에 이은 우리나라 그림 중 두 번째 고액이라고. 만약 생전에 조금만 일찍 그 예술성을 인정받아 생활고만 해결되었더라면 우리는 더더욱 훌륭한 세계적 거장의 작품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전에 독일민요 '소나무'를 즐겨 불렀다더니 과연 잘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그의 묘를 지키고 있다.

이중섭 묘소 가는 길 문학기행 참가자들이 화가 이중섭 묘소로 가고 있다.
▲ 이중섭 묘소 가는 길 문학기행 참가자들이 화가 이중섭 묘소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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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묘 뼈를 묻을 때 따라 죽겠다며 구덩이로 뛰어 들기까지 했다는 후배 조각가 차근호가 만든 조각비. 동그란 원 안에 두 아이를 꼭 껴안고 있는 모습을 새겨 넣었다. 전문가의 솜씨이기 때문일까? 탁본을 하면 이것이 그리 예쁘게 나온다고.
▲ 이중섭 묘 뼈를 묻을 때 따라 죽겠다며 구덩이로 뛰어 들기까지 했다는 후배 조각가 차근호가 만든 조각비. 동그란 원 안에 두 아이를 꼭 껴안고 있는 모습을 새겨 넣었다. 전문가의 솜씨이기 때문일까? 탁본을 하면 이것이 그리 예쁘게 나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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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 옆 소나무 쭉 뻗은 소나무 한 그루가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 묘 옆 소나무 쭉 뻗은 소나무 한 그루가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 이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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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꽃대궐 봄바람 맞으며, 곳곳에 이렇듯 문학과 역사를 이야기 할 수 있는 분들이 잠들어 있는 망우공원은 참으로 멋진 곳이다.

망우공원 전경 울긋불긋 꽃대궐을 이룬 망우공원 전경
▲ 망우공원 전경 울긋불긋 꽃대궐을 이룬 망우공원 전경
ⓒ 이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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